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9화 중앙극장


"왜 아무 말도 안 해? 공부는 안 하느냐고?"

영석은 아무 말없이 공중전화 부스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삼촌, 밀어붙여, 밀어붙이라고"

경숙이가 전화기로 흘러나오는 수아의 말을 듣고 답답하다는 듯이, 자기 가슴을 치며 전화부스로 몸을 밀고 들어와 영석에게 귓속말을 했다.

"응, 누나는 시골에 가고, 도서관도 휴관이라서 잠시나마 긴장을 풀어보고 싶었어, 시간이 없으면 안 가도 돼, 미안해"

경숙은 아주 난리가 났다 폴짝폴짝 뛰며 자기 가슴을 계속 쳤다.

"아이고 답답해, 답답하다고"

영석은 경숙의 그런 모습을 보며 경숙을 향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전화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보세요, 지금 어딘데?"

영석은 매우 당황했다. 옥수동이라고 하면 경숙이가 시킨 것 아니냐고 물어볼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어, 시내야 이제 집에 가야지"

영석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나랑 밀당을 하자는 거야? 영화 보러 가자고 해놓고는 집에 간다고?"

"시내 어딘데?"

영석은 또 당황해서 경숙을 쳐다봤다.

"종로라고 해, 종로"

경숙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밖에서 작은 목소리로 입술을 동그랗게 하며 말했다.

"종로야"

"그럼 중앙극장이 어디 있는지는 아는 거야?"

"그럼 아무리 내가 촌놈이라 해도 서울에 유명한 극장들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지"

"알았어, 그럼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하니 오후 7시 정도에 상영하는 표를 미리 구해놔, 예매를 하는 것도 아니고 현장판매니까 암표상들이 많을 거야, 그놈들한테 휘둘리지 말고, 정당하게 줄 서서 표를 사고, 6시 반에 극장 앞에서 봐"

"알았어, "

영석은 경숙을 향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여주었고, 경숙은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삼촌, 그럼 나는 먼저 집에 들어가서 엄마를 도와줘야 하니까 삼촌은 중앙극장에 가서 표를 사고, 수아를 만나 영화 보고 집으로 와"

"아무 말도 없이 그리고 인사도 하지 않고 갑자기 나와서 너만 들어가면 엄마가 뭐라 하시지 않겠니?"

"내가 알아서 적당히 둘러댈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밤 12시 전에만 들어와"

"밤 12시? 그럼 너무 늦지 않니? 형님 눈치도 보이고 엄마 눈치도 보여서 어떡하니?"

"아니 영화상영이 오후 7시부터 면 120분 정도는 상영할 거 아냐? 그럼 밤 9시야, 수아랑 아무것도 안 먹고 헤어진단 말이야?"

"삼촌이 정 불편하면 내일 아침에 차례 지내기 전에만 들어와, 그것도 내가 알아서 잘 말할 할 테니까. 엄마한테 삼촌 공부하러 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온다 했다고 말하면 될 거 아냐?"

"저기 있는 정류장에서 74번 신진운수 버스를 타고 약수동과 광희동을 지나 퇴계로에서 내리면 중앙극장이 있어, 그리고 내가 돈 천 원을 줄 테니 나중에 잘되면 나한테 갚아"

"아냐 내게도 돈 있어, 누나가 주고 간 돈이 있으니 걱정 마라"

"그건 영화 끝나고 수아랑 맛있는 것 사 먹는데 쓰고, 이 돈은 영화 보는 데 쓰라는 거야, 조카가 주는 돈이라서 자존심이 상하나?, 자존심이 높은 사람은 쪼잔하게 기분 나빠하지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런 것에 상처받지 않아"

영석은 할 말을 잃었다. 조카라지만 나이는 동갑이고 여자가 남자보다 지적 능력이 우수하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싶었다.

경숙이 집으로 들어 가자, 영석은 74번 버스를 탔다. 홍은동이 종점이라 퇴계로를 거쳐 서울역을 지나가는 노선이었다.


중앙극장 앞에는 표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극장 간판 위로 '토요일 밤의 열기'라는 큼지막한 영문 제목이 빛나고, 그 아래로 존 트라볼타의 번쩍이는 포스터가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바지에 나팔바지를 입고 최신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람들, 손에 선물 세트를 들고 귀성길에 올랐다가 잠시 들른 듯한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고소한 팝콘 냄새와 뜨거운 핫도그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를 밀치며 조금이라도 빨리 표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표 있어요?" 하고 묻는 목소리, "오늘 영화 꼭 봐야 하는데..."라며 초조해하는 탄식, 그리고 겨우 표를 손에 넣은 사람들의 환호성이 뒤섞여 극장 앞은 온통 활기로 가득했다. 거리에는 종종 시내버스와 포니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고, 그 소음마저도 명절 특유의 들뜬 분위기를 더하는 듯했다.


영석도 줄을 섰다. 수아 말대로 검은 점퍼를 입은 장발 청년이 영석 옆으로 다가서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4시 표 있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영석은 수아가 지침을 준대로 그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30여분을 기다려 7시 표를 샀다. 그리고 아직 6시 반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동국대학교 교정이나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동국대학교 교정은 학생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좀 쓸쓸했다. 영석은 유신 체제가 절정에 달하고 있고, 사회 전반에 걸쳐 강력한 통제와 억압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추석명절을 쇠러 지방으로 내려간 학생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교정은 남산 자락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교정 중앙에는 석조 연화대 위에 대형 석가모니 불상이 서 있고, 불상 앞으로 8갈래 길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는 팔정도 광장이 있었다. 그리고 교정 곳곳에 불교대학답게 보리수나무가 보였다. 동국대학교의 간판학과는 역시 불교학과와 하도 말씀을 잘하셔서 '주댕이 박사'로 불리는 양주동 박사가 계신 국문학과가 있다. 그리고 1974년도에 우리나라 최초로 경찰행정학이라는 교육과정이 만들어져 신흥 인기학과로 유명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울예술전문대학교, 중앙대 연극영화과와 함께 '3대 연극영화 메카'로 손꼽히는 동국대 연극영화과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영화과라 할 수 있다. 영석이 어린 시절 3본 동시상영영화관에서 보던 '용팔이' 시리즈의 주연배우인 박노식 씨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로 편입해 졸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영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선생님께 왜 사람들이 '양주동 교수'라는 직함보다 '양주동 박사'라고 더 많이 부르는지 여쭤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그분의 학문적 성과가 워낙 독보적이어서, 단순히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이상의 '학문적 거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학원 국어선생님도 양주동 박사는 일본 유학 후 와세다대학과 연희전문학교에서 각각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향가 해독과 고전문학 연구분야에서 한국 학계의 초석을 다진 분이며,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일본 학자들의 연구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향가 해독법을 제시하며 국문학계의 권위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교수'의 범주를 넘어섰다고 하셨다. 영석은 '박사'라는 호칭은 학문적 권위와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앞으로 꼭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되어서 남들에게 존경받는 교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언젠가 양주동 교수가 방송에 나와 자신을 '대한민국 국보 1호"라고 칭하던 것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자신도 나중에 교수가 되면, 학생들에게 일반적인 신분이나 직위를 나타내는 '교수' 보다 인격과 덕망, 지혜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는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국대학교 화장실에 들어가니 '유신반대'라고 쓰인 낙서들이 눈에 띄었다. 가끔 보이는 남학생들은 단정한 셔츠나 니트, 점퍼에 통이 넓은 나팔바지나 면바지를 입었고, 여학생들은 스커트 정장, 블라우스, 긴 생머리 또는 파마머리를 하고 있는데, 여학생들은 가방에 책을 넣어도 될 것을 굳이 왜 팔에 들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석이 생각하기에는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이 현저히 떨어지다 보니 여대생은 특수한 자신의 지위, 즉 "나는 지성을 갖춘 대학생입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그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동시에 아직 대학생이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한스럽게 느껴졌다.


동국대학교는 친구 현이나 흥룡이가 이미 입학해서 다니고 있지만, 자신의 처지에서 만나는 것도 그렇고 해서 교정을 내려와 중앙극장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시간은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토요일밤의 열기'라고 크게 쓰고 다시 영어로 'Saturday Night Fever'라고 쓴 커다란 간판에는 존 트라볼타(토니 미네록 역)가 팔을 들어 올리며 춤추는 역동적인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저 그림은 누가 그리길래 붓으로 저렇게 극사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락 수확이 끝날 때쯤 벼를 벤 자리에 하얀 천막을 친 이동영화관이 들어오면 돈은 없으니 친구들과 머리가 아닌 엉덩이를 먼저 밀고 들어가 도둑관람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형들이 머리부터 들어가다 걸리면 영락없이 돈을 내야 하고 혼이 나지만, 엉덩이부터 들어가다 걸리면 입구가 비좁아 지금 나가고 있는 참이라고 거짓말을 해서 풀려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면 추첨을 해서 '무궁화 비누라는 빨랫비누나 '유엔성냥'이라는 팔각성냥을 나누어 주던 추억도 생각났다.


수아는 오늘도 5분 늦게 도착했다. 흰색 블라우스에 영석이가 고등학교 시절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하던 자주색 카디건을 걸치고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모습이 확 눈에 띄었다.

"저녁은 먹었어? 난 삼춘하고 먹으려고 안 먹었는데"

"응 나도 안 먹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간단하게 분식 사 먹고 들어갈까?"

"그래 좋아"

영석과 수아는 근처 골목에 있는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시켜 먹은 후, 7시가 되기 전에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극장은 단일 상영관이었지만, 규모가 매우 컸다. 웅장한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벽면에는 상영 중인 영화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객석은 1층과 2층(발코니)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수백 명의 관객이 한꺼번에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좌석지정제가 아니므로 영석과 수아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얼른 줄을 섰다. 진한 팝콘과 캐러멜 냄새, 낡은 의자와 스크린에서 풍기는 독특한 냄새는 영석이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영석은 고전 읽기 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 대상을 받고, 아침 조회시간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가 보고 싶은 나머지 할아버지께 또 고전 읽기 대회 나가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해서 5원을 받아 오거리사장에서 건빵 한 됫박을 사서 주머니에 빵빵하게 넣고 나머지 돈으로 3본 동시상영 영화를 보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의 은사이신 할아버지가 제자인 영석이 국민학교 교장실을 찾아왔다가 손주 놈이 자랑스러운 나머지 손주가 또 고전 읽기 대회를 나가느냐고 물으셨다가 진실을 아시게 되었다. 그래서 수업 중이던 손주 놈을 교장실로 불러서 교장선생님 앞에서 운동장에 있는 수양버들 나뭇가지 열개를 잘라가지고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교장선생님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께 당신의 자리를 양보하시고 죄라도 진 모습으로 어쩔 줄 몰라하셨다. "너는 어떻게 제자 놈을 거짓말쟁이로 키우고 있느냐"라고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다른 나뭇가지로 바꾸어서 때리고 열개가 부러질 때까지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수양버들 나뭇가지는 좀처럼 부러지지 않았다. 여하튼 정읍극장, 성림극장, 중앙극장에서 맡던 냄새를 또 맡으니 영석은 감회가 새로웠다. 극장 내부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영석과 수아는 짭짤한 소금 팝콘과 콜라를 사들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스크린에 태극기가 나오고 애국가가 연주되자 영석과 수아 그리고 모든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 불렀다. 그리고 정부 정책을 홍보하고 스포츠 소식 등을 담은 '대한 늬우스'가 상영되었다. 그 후, '죠스 2'와 '디어 헌터'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 주었다.


드디어 본 영화의 타이틀이 스크린에 올랐다.


"그해 토요일 밤, 브루클린의 열기는 끓어올랐다."

1978년, 뉴욕 브루클린의 젊은이들에게 일주일 중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토요일 밤이었다. 낡은 청바지에 땀내 나는 작업복을 벗어던진 토니 마네로는 옷장 속에서 가장 아끼는 흰색 슈트를 꺼냈다. 넓은 옷깃, 나팔바지, 그리고 반짝이는 검은 셔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낮의 페인트 가게 점원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춤의 신이었다.

"스테퍼니, 오늘 밤도 함께 춤출 거지?"

친구들과 함께 ‘2001 오디세이’ 디스코텍에 들어서는 순간, 토니의 심장은 디스코 리듬에 맞춰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공기 중에는 땀 냄새, 향수 냄새, 그리고 음악의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조명이 켜지고, 비 지스(Bee Gees)의 노래가 스피커를 가득 채우자 사람들은 일제히 몸을 흔들었다.

토니는 춤의 제왕이었다. 그의 동작은 물 흐르듯 유연하면서도 힘이 넘쳤다. 스텝을 밟을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렸고, 핀 조명 아래 그의 흰 슈트는 더욱 빛을 발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토니는 그 시선에 취해 밤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에게 디스코텍은 좁은 현실을 벗어나 오직 춤으로만 존재하는 해방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화려한 춤의 끝에는 늘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친구와의 갈등, 의미 없는 폭력, 그리고 좁은 동네를 벗어나고 싶은 갈망. 토요일 밤의 열기가 뜨거울수록, 현실의 벽은 더욱 차갑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토니의 춤은 단순히 즐기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더 나은 삶, 다른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춤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이 도시의 왕이 될 수 있음을, 그리고 이 밤의 열기가 영원히 식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춤은 단순한 댄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브루클린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었던 한 청춘의 처절한 몸부림이자, 가장 눈부신 꿈이었다.


영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이 토니 마네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답답한 세계를 벗어나 자신도 토니 마네로처럼 날개를 펼치고 싶었다.


스크린에 비지스(Bee Gees)의 음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아는 의자에 몸을 들썩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존 트라볼타가 춤을 출 때마다, 그녀는 옆에 앉은 영석의 팔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

"봐봐, 진짜 멋있지, 저 슈트!"

영석은 수아의 손길에 몸을 움찔하며 그녀의 작은 소란에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는 영화의 리듬을 타고 흥분하는 수아와 달리, 조용히 등받이에 기댄 채 스크린 속 사람들의 거친 몸짓과 화려한 조명을 응시했다. 그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주변 사람들의 숨소리와 움직임에 더 예민했다. 누군가 팝콘을 씹는 소리, 콜라병을 여는 소리, 이 모든 작은 소리들이 그에게는 하나의 풍경이었다.

"우리도 저런 데 가볼까? 삼춘도 춤 잘 출 것 같은데?"

수아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몸을 흔들었고,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영석은 살짝 웃었다. 사실, 그는 춤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부딪치는 것도,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수아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그는 상상했다. 만약 저런 공간에 간다면, 자신은 그저 구석에 서서 반짝이는 수아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을 거라고.

수아가 무심코 영석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영화의 열기처럼 따뜻했다. 영석은 자신의 손에 땀이 차는 느낌이 들었다. 화려한 스크린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그는 세상의 모든 소음과 화려함이 사라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매주 수요일은 강의가 있는 날이라 '오목교'가 못 올라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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