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12화 정희
비가 내리면 판잣집은 금세 냄새를 풍겼다. 썩은 나무와 흙탕물이 뒤섞인 냄새라고나 할까? 정희는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불 끝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확인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다시 덮을 수는 없었다. 곧장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좁은 방구석에서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은 영석이가 뒤척였다. 밤새 문제집을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엎드려 잠든 모양이다.
“영석아, 밥 먹고 좀 자라. 안 그러면 오늘도 도서관에서 졸겠다.”
정희가 양은 냄비에 지은 밥을 푸며 말했다. 오늘만이라도 영석이 아침을 차려주고 싶었다. 좁은 방 안에 하얀 김이 퍼졌다. 영석이는 고개를 흔들며, 피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영석이가 일어나 다시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다. 그의 눈 밑은 검게 꺼져 있었다.
“누나, 혹시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영석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희는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냐. 어떻게든 서울대에 붙어야 해. 넌 공부 계속해. 난 돈 벌 테니까.”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밖에 없어”
“서울대 못 붙으면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을까?? 그런데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는데, 우리에게 어디 땅 한 뙈기나 있어야 말이지,”
정희는 대답 대신 멀건 콩나물국을 떠서 김치와 함께 영석이 앞에 차려주었다. 위로의 말보다 한 숟가락의 밥이 필요했다.
아침밥을 대충 먹고, 정희는 흰 블라우스 위에 싸구려 코트를 걸쳤다. 거울 속 얼굴은 예쁘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은 부스스했다. 정희가 오목교 버스 정류장에서 출근길 사람들과 함께 몸을 버스에 밀어 넣자, 생선 비린내, 튀김 냄새, 화장품 냄새, 포마드 냄새, 휘발유 냄새 등이 섞여서 묘한 냄새가 난다. 하루의 시작은 늘 그렇게 분주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면 판자촌은 바람 소리와 개 짖는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지붕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고, 벽을 타고 물방울이 줄줄 흐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웃고 울며 살아갈 것이다. 정희는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손잡이를 잡은 채,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하늘의 사람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늘도 아모레 화장품 가방을 메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닐 엄마를 생각하니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을 틀어막는 듯했다. 그것은 억지로 삼키려 해도 넘어가지 않는 슬픔의 응어리다.
정희가 다니는 회사에서 받은 월급은 한 달에 만 원 정도 되는 돈이다. 방세와 영석이와의 생활비를 제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그래도 동생이 서울에 올라온 건 정희에게 작은 위안이었다. 엄마 혼자 계신 고향집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한없이 시리지만, 정희에게 영석은 무서운 서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영등포 시장은 서울 서민들의 축소판이다. 항상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고, 섬유, 생선, 채소, 닭, 그리고 술까지 없는 게 없다. 정희는 출근길마다 이 길을 지난다. 좁은 골목길에서 여공들이 삼삼오오 모여 김밥을 사 먹거나, 붕어빵을 사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다들 또래의 젊은 여자들이지만, 얼굴에서는 웃음보다 피곤이 먼저 보인다.
“정희야, 시방 출근하는 거여?” 아침 새벽 댓바람부터 시장에 나온 곰소댁이 정희를 보고 반가워했다.
“네, 아주머니. 오늘은 회계 마감이라 늦을 것 같아요.”
“허구헌 날 마감이라니. 몸 상하지 않게 조심혀. 그라고 집에 가는 길에 여기 들러서 생선 대가리라도 가져가서 찌개 끓여서 두 남매 먹어라 잉”
곰소댁은 ‘생선 대가리’라고 하지만 손이 큰 곰소댁이 생선 대가리만 주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정희는 너무 잘 안다. 게다가 음식 솜씨가 엄마를 쏙 빼닮은 것 같아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곰소댁의 요리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맨날 신세만 져서 어쩌죠?”
“아따 뭔 소리당가? 걸핏하면 우리 숙희 맽기고, 그라고 우리가 남이여? 남이냐고?”
“그럼요, 남이 아니죠”
정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 아주머니 수고하세요, 퇴근길에 들러서 뵙고 얼른 집에 가게 되면 숙희 밥도 챙겨줄게요.”
“그려, 퍼뜩 댕겨와”
정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을 지나 공장지대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기계음이 따갑게 귀를 울린다.
회사 건물 앞에 다다르자, 이미 수십 명의 여공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출근 도장은 정각에 찍어야 하고, 늦으면 임금에서 삭감한다. 정희는 경리 사무실로 향하면서,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가길 속으로 빌었다.
경리 사무실은 좁고 어둡다. 창문 틈새로 겨우 햇살 한 줄기가 들어오지만, 언제나 종이 냄새와 잉크 냄새가 가득하다. 정희는 낡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냉정하고, 거짓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의 손길이 거짓말을 만들기도 한다.
“정희야, 이번에도 잔업수당은 반만 기록해. 알겠지?” 관리부장 이상우가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반만 기록한다는 건 곧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돈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희네 회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는 기본급에 잔업수당, 특근수당 등을 모두 포함하여 정액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은 이 제도를 악용하여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일정 금액만 지급하며 법정 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정희네 방직공장 여공들은 임금 명세서 없이 일당이나 월급을 받기 때문에 실제 근로 시간에 대한 정확한 수당 계산이 불가능하고 이는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경리부장 같은 관리자는 이러한 불투명성을 이용해 임의로 수당을 삭감하거나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정희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밥줄이 끊길 것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작업장에서 땀을 흘리며 기계를 돌리는 은숙 언니, 아직 열아홉도 안 된 막내 수진이…. 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정희는 이상우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경리로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없다. 정희는 여자상업고등학교를 나온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정희의 책상 위에는 언제나 고향에서 온 어머니의 편지가 놓여 있다. “정희야, 몸 건강이 제일이다. 영석 잘 챙기고, 네 몸 버리지 말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그 글씨를 볼 때마다 정희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점심시간, 정희는 작업장 구석에서 도시락을 풀었다. 여공들은 땀에 절은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앉아 김치를 나눴다.
“정희야, 이번 달도 우리 수당 잘려 나갔다면서?”
은숙 언니가 씁쓸하게 물었다.
정희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언니 미안해요.”
“알지. 네 탓 아냐. 회사 놈들 탓이지. 그래도 답답해서 말 좀 꺼내봤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이 허다한데도 어떻게 된 게 우리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기만 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누군가가 농담을 던졌다.
“야, 오늘 저녁에 시장통 가서 호떡이나 사 먹자. 이대로는 기운이 안 나.”
웃음소리가 터졌지만, 그 웃음은 금세 사그라졌다.
정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언제나 웃음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감춰진 눈물은 장부에 찍히지 않았다. 숫자는 웃음을 기록하지 않았고, 눈물도 기록하지 않았다.
“내가 호남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지 말랬지?”
“아니 호남 사람들이 부장님헌티 밥을 달라고 혔소, 떡을 달라고 혔소, 왜 우덜만 보면 못 잡어 먹어서 안달이라요?”
효정이 언니 목소리였다. 효정이 언니는 벌교에서 올라와 이 공장에 오래 근무한 사람이다.
“전라도 깽깽이들은 뒤통수 잘 치고, 사기 잘 치는 것들이라 모이면 언제 빨갱이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러지.”
“뭣이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보쇼”
효정이 언니가 대차게 대드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전라도 출신 여공들도 흥분해서 대드는 듯 갑자기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가 이 공장을 안 다니는 한이 있드라도 이 말은 못 참겄소, 부장님 다시 한번 말해 보쇼.”
“아 내가 농담으로 한 말 가지고 왜 그래?”
“농담?, 모든 공업시설은 경상도에다 건설혀 놓응게 우리 전라도 사람들은 먹고살 수가 없잖여? 그렁게 서울로 서울로 와서 저그 삼양동, 하월곡동, 난곡, 미아리, 가리봉동, 구로동, 봉천동, 신림동 같은 디서 끼니 걱정함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 아뇨? 그러다봉게 도둑놈도 나오고, 사기꾼도 나왔을 거 아녀? 그런디 나가 부장님 뒤통수를 칩디까, 사기를 칩디까? 되려 우리 회사 관리자들께서 우덜 뒤통수치고 사기 치는 거 아뇨?”
“아니 내가 뭐랬다고 뒤통수를 치네, 사기를 치네, 하는 거야?”
관리부장은 효정이 언니가 세게 나가니까 바로 꼬리를 내리는 모양이었다.
“자 점심이나 맛있게 먹으라고, 내가 한 말은 그냥 밥반찬이었다고 생각해 알았지?
관리부장이 한마디 하고 서둘러 도망가는 모양이었다.
“저 새끼 봐라,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전형적인 간신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은숙 언니가 말했다.
“관리부장 저 사람, 사장님 앞에서는 무릎 잘 꿇기로 유명해요. 직원 채용 과정에서 돈 받아먹다 걸리고, 하청회사 사람들에게 뇌물 받아먹다 걸리고, 여공 성폭행해서 걸리고 정말 나쁜 사람이랍디다.”
조용히 앉아 있던 경숙이 언니도 한마디 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왜 저런 사람을 자르지 않는 거야?”
“상무님이 자르자고 했는데, 사장님이 다 쓸모가 있다고 하시면서 상무님에게 넌 내 앞에서 무릎 꿇을 수 있냐고 하셨다던데?”
“야, 이제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은숙이 언니가 한마디 하자 장내가 바로 정리되었다. 정희도 도시락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회사 안이 술렁였다. 젊은 여공 하나가 작업반장 박경진에게 따졌다.
“왜 우리 생리휴가 빼앗는 거예요? 법에 있는 권리잖아요!”
작업반장은 비웃듯 대꾸했다.
“권리? 권리 따질 시간에 일이나 해. 싫으면 나가든가.”
순식간에 주변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주먹을 움켜쥐었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정희는 사무실 문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날 밤, 정희는 판자촌 좁은 방에 앉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석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낮의 소란이 계속 맴돌았다.
“권리… 권리….”
그 한마디가 귀에 메아리쳤다.
다음 날 오전, 공장은 평소보다 훨씬 더 시끄러웠다. 기계 소음 위로 관리자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야, 2반! 작업대 점검 제대로 안 했으면 바로 정리해!”
여공들은 침묵 속에 기계를 돌렸다. 그러나 점심 무렵, 한 여공이 불만을 터뜨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격해졌다.
“왜 우리를 이렇게 착취만 하세요! 우리도 사람입니다!”
작업반장은 빈정대듯 웃으며 답했다.
“사람? 그래, 사람은 숫자에 찍힌 만큼만 사람이야.”
정희는 사무실 문틈에서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쓰러졌다. 다른 여공들이 달려가 부축했지만, 이미 울음과 고함이 공장 안을 메웠다.
정희의 손은 떨렸고, 장부 위의 숫자가 왜 이렇게 잔혹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경리지만, 인간으로서의 분노와 연민이 넘쳐났다.
괸리부 사무실 창문 너머로 여공들의 함성이 이어졌다. 일부는 소리치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정희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오후 늦게, 작업반장은 모든 여공을 집합시켰다. 정희는 기록지 위에 눈을 떼고 바라보았다. 회사 측은 경찰 개입을 암시하며 위협했다. 그러나 여공들의 눈빛에는 분노와 결의가 스며 있었다.
정희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숨죽이지 않아야겠다. 기록해야 한다. 내 힘은 작지만, 외면하지는 않겠다.”
퇴근길에, 정희는 곰소댁을 만나 고등어 한 마리를 얻어 오목교 판자촌으로 향했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흙탕물이 판자촌 골목에 흘렀고, 등불은 바람에 흔들렸다.
영석이 숙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숙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까르르까르르 웃고 있었다.
“누나,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얼굴이 창백해.”
정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깨물고, 도시락 가방을 내렸다.
그날 있었던 모든 광경이 눈앞을 스쳐갔다. 여공들의 눈물, 울부짖음, 관리자의 냉정함, 사무실 장부 위의 숫자.
정희는 방 안으로 들어와 등잔불을 켰다. 창밖에는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만 가득했다.
“엄마, 나… 오늘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 말에는 안도감보다, 또 다른 결심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판자촌의 밤은 늘 고요하면서도 시끄러웠다.
빗방울이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 먼 골목에서 개가 짖는 소리,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합판의 삐걱거림.
정희는 좁은 방바닥에 앉아 하루를 되짚었다.
영석은 책상에 앉아 문제집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물끄러미 영석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았다.
“괜찮아, 영석아. 누나가 있으니까.”
정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공장 안에서 본 모욕과 불평, 눈물과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정희는 작은 등잔불 앞에서 장부를 펼치고, 오늘 본 모든 일을 기록했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 울음과 대사까지 세세하게 적어 내려갔다. 이 기록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 날, 정희는 엄마에게서 온 편지를 꺼냈다. 종이에는 빛바랜 글씨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정희야, 몸 건강이 제일이다. 영석이 잘 챙기고, 네 마음 다치지 말고, 힘든 일 있거든 혼자 참고만 있지 말고 편지 써라. 엄마는 항상 네 편인 것 알지?”
글씨를 읽는 순간, 정희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엄마… 알아요. 나도 이제 더 이상 참지만은 않을 거예요.”
편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어머니는 늘 말했지만, 정희는 이제 그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가난과 억압 속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조금씩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제가 오늘 아버지 성묘를 다녀오기 위해 시골에 갑니다. 전주에서 친구들도 만나야 하므로 이틀 정도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