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13화 유신의 그늘(1)

정희와 여성노조원들은 즉시 경찰서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희는 수화기 건너편으로부터 들려오는 경찰의 목소리가 심드렁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동시에 회사 측이나 남성 노동자 측으로부터 이미 연락을 받은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정희가 관리부에 근무하면서 관찰한 경찰의 태도를 보면, 경찰은 노동자 보호기관이 아니라 노동운동 감시·탄압기관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러므로 경찰이 똥물 투척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왜 바로 출동하지 않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회사 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 보호’보다는 ‘질서유지’와 ‘정권·자본에 유리한 방향’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정희는 남성 노동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소리를 들었더라도 경찰은 ‘내부조합 갈등’ 정도로 치부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회사가 직접적으로 “여성 조합원들을 제압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 전까지는 굳이 개입할 필요를 못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경찰은 회사 측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이미 잘 알고 있으므로 굳이 초동 출동을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 난리가 났으니 빨리 일동방직으로 출동해 주세요”

“아! 예, 곧 출동할 겁니다.”

“신고한 지 한참 지났는데요?”

“지금 갑니다”

여성 노동자들만 애가 타고 있을 뿐 경찰은 느긋했다.

정희는 경찰이 여성 노동자들을 ‘문제 일으키는 존재’로 낙인찍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늑장을 부리며 출동한 경찰은 정사복 차림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정희에게 경찰들은 실질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영이와 순덕이 그리고 영자는 똥물을 뒤집어쓴 채, 경찰에게 달려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왜 저놈들을 체포하지 않는 거예요?”

“야! 이 쌍년아! 가까이 오지 마! 이따가 해결할 거야!”

경찰은 손으로 코를 막고 뒷걸음치며 말했다.


흥분한 여성 노동자들은 경찰을 향해 달려가 “가해자를 체포하라”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조합사무실을 점거하고, 농성 시위를 하는 것은 질서문란‘과 불법점거’ 행위입니다. 따라서 경찰은 여러분을 연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하고 경찰에게 협조하십시오.”

경찰 중에 높은 사람인 듯한 자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러나 흥분한 여성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미영이와 순덕이 그리고 영자는 울부짖으며 경찰 쪽으로 달려가 항의했다.

“당신들이 민중의 지팡이라고요? 그런 지팡이 개나 주세요”

“뭐라고? 저년이 눈에 뵈는 게 없구먼”

“가까이 오지 마! 냄새나!, 내 몸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알아서 해”

그러나 미영이와 순덕이 그리고 영자는 그들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찰을 향해 돌진했다.

“저년들 붙잡아서 연행해”

아까 앞으로 나와 경고하던 경찰이 소리쳤다.


그러자 경찰들은 곤봉을 이용해 여공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며 연행하기 시작했고, 이를 본 여성 노동자들은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여성 노동자 한 명의 팔을 양쪽에서 붙들어 차에 태웠고, 항의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쌍년아,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정희는 사건의 가해자를 연행하지 않고, 피해자를 연행하는 기형적인 상황을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고무장갑을 낀 저놈들이 똥을 양동이로 들고 와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씌우고 손으로 찍어 투표하러 들어오는 저희 입속에 쑤셔 넣고 걸레에 묻혀 얼굴에 문대어 똥으로 뒤범벅이 된 눈은 뜰 수가 없었으며, 귓구멍에 틀어박힌 똥 때문에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없었어요. 그것으로도 부족해 무지막지한 저 깡패 놈들은 저희 머리채를 낚아챈 후, 뒤로 젖히고 이빨로 입술을 물어뜯는 이리와 같은 행동을 했는데, 왜 우리만 연행한단 말입니까? 왜?” 여성 노동자들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강력히 저항했다.

섬유노조 본조에서 나온 사람들과 회사 관계자들은 이런 처참한 장면을 지켜만 볼 뿐 어떤 다른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언니, 수진이가 쓰러졌어!” 수진이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듯 쓰러져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희는 수진이를 병원으로 이송하도록 조치했다. 그런데도 50여 명이 기절했고, 72명이 경찰차에 태워져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정희도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영등포경찰서로 갔다.

정희는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으며 옆에서 연행되어 조사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경찰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여자가 어디 감히 회사 일에 나서나”

“부엌에나 있을 것이지, 공장일을 하면서 무슨 노조야”

“치맛바람으로 세상을 바꿔보려고? 아서라”

“여자들이 공장 말아먹으려고 설치는 구만”

“여자들이 단체로 뭘 한다고? 에라 이! 창피한 줄 알아야지”

“시집도 못 간 것들이 말만 많구먼”

“남자들도 가만히 있는데 여자들이 까불어?‘

“노조니, 민주화니, 그건 남자들이나 하는 거야. 알아들었어?”

조사를 받던 여성 노동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리는 똥을 먹고살 수 없습니다. 도대체 경찰은 누구 편입니까?”

“우리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욕설과 폭력을 퍼붓는 당신들이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머리부터 뒤집어쓴 똥물과 함께 ‘야 이 쌍년아!’라는 욕설을 들었습니다. 몸이 굳고 숨이 막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뿐입니다.”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던 정희의 뺨에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정희 양은 저런 사람들 편들지 마, 동생 같아서 말해주는 거야”

경찰은 마치 정희를 생각해 주기나 하는 듯이 말했다.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정희는 수진이가 정신적 쇼크로 정신병원에서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소식과 아울러 여공들 14명은 당분간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풀려난 여성 노동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사건을 사회에 알리는 호소문과 언론 인터뷰로 대응하기로 했다.


그다음 날, 관리부장이 정희를 불렀다.

“경찰에서 뭘 묻더냐?, 그리고 너는 뭐라고 대답했어?”

“저는 보고 들은 바를 그대로 진술했어요”

“너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한 건 아니지?”

“무슨 소리요?”

“우리 회사 측에 불리한 소리를 했냐는 거지”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어요, 뭐가 유리하고 불리한지 잘 모르겠어요.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잘못한 건 맞잖아요?”

이상우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경찰은 여자들 편이 아니야,”

“너! 여자라고 여성 노동자들 편에 서서 회사에 불리한 행동을 하면 안 돼! 알았어?”

“이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명심해”

정희가 갑자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창밖을 내다보았다.

회사 측에서도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조사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입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회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정희는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 측의 일방적인 조사에 반발하며,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추가적인 시위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사 측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막기 위해 보안요원을 배치하고 공장 내 감시를 강화했다. 정희는 이러한 현실에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희가 언젠가 영등포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에서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자신과 같은 사무직 여성들이 생산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과 직접 연결되지 못하고, 사회적 억압 구조 속에서 자신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자각을 하며 느끼는 감정을 ‘자기 소외’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간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켜주지 못할 때 실존적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사회적 억압 구조에서 타인의 고통을 목격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개인의 심리를 분석하였는데, 결국 자신과 같은 사무직 여성은 “동료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실제 행동하지 못함” 사이에서 도덕적 자괴감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벨 훅스(Bell Hooks)는 여성이 사회적 억압에 맞서 연대할 기회를 상실했을 때 느끼는 소외와 자책을, 구조적 억압을 인식하지만, 자신이 안전한 위치에서 직접 행동하지 못할 때 생기는 내적 갈등과 자책감이라고 설명했었다.

정희는 자신이 사무직, 즉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서 느끼는 내적 갈등과 자책감을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을까 싶어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처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고민이 되어 찾아 읽은 책들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똥물 투척 사건이 있은 후, 영등포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반납한 후, 우순이에게 고마움의 의미로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밥 한 끼를 샀다.

“누나! 그렇다면 그들은 문제의 원인만 제시하고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는 거네?‘

우순이가 정희에게 물었다.

"바로 그거야, 네가 정확히 초점을 맞추는 것을 보니 너도 대단하구나. 내가 왜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지 않았겠니? 그들은 해결책도 제시해 주고 있거든"

"첫째,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신의 노동과 사회적 현실에서 소외됨으로써 자괴감과 무력감을 느낄 때, 사무직 노동자는 자신이 직접 생산 노동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어, 다시 말해, 나에게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하고 알리거나,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는 활동에 참여하라는 의미 아니겠니?"

"둘째, 사르트르와 아렌트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인식한 사람은, 행동하지 못했을 때 실존적 죄책감을 느끼지만, 행동은 선택적 자유에 기반해야 한다고 했어. 즉 나 같은 사무직 노동자는 “직접적인 공장 점거나 시위 참여”가 어렵더라도, 정책·조직·법적 지원 등 가능한 방법으로 권리를 지지할 수 있다고 했어, 중요한 건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바꿔 말하면, 눈감거나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겠지"

"셋째, 벨 훅스는 억압 구조를 인식하고, 자신이 그 구조 속에서 안전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면, 연대 실천은 선택적 활동으로 가능하다고 했어. 이 말은 사무직 여성은 공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기록, 홍보, 정책 제안, 교육 등으로 사회적 변화를 지지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니겠니? 다시 말해, 연대는 반드시 현장 참여만을 의미하지 않고, 권력·구조를 분석하고 제도적·문화적 변화를 촉진하는 방식으로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일 거야.”

“와! 누나! 정말 대단한데?”

“누나가 국민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야간 여상을 다닐 때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영석이가 말하더니만 그게 사실이네? 난 철학책을 읽으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토할 것만 같은데, 어떻게 그 사람들의 사상을 이해해서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지?”

“누님! 존경스럽사옵니다”

우순이는 일어나더니 누나 앞에 허리를 굽혀 공손한 인사를 하며 웃었다.


“그런데 누나! 나는 누나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 걱정스러운 일이 생각나는데?”

“그게 뭔데?”

“나도 누나가 앞에서 말한 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연대, 책임, 자기 소외 극복 같은 개념은 여성들이 현실에서 권리를 찾으려는 정당한 노력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봐. 그런데 정치인들이 이런 움직임을 사회적 진보의 동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그렇고 말고! 여성들이 임금차별, 노동권, 성차별 해소를 요구하면, 정치인들은 이를 “남녀 갈등”으로 프레임화해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키는 시도를 한 정치인들이 있게 마련이지. 실제로는 노동착취, 권위주의, 정경유착 등의 구조적 문제는 가려두고, 책임을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으로 돌리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하더라."

“마르크스는 원래는 계급 구조와 자본-노동 갈등을 드러내야 하지만, 정치권은 이를 왜곡해 “성별 대립”으로 축소함으로써 노동자 간 분열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았고, 사르트르와 아렌트는 개인이 자유와 책임을 실천하려 할 때, 정치가 이를 이용해 집단적 증오나 갈등으로 전환함으로써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보았어, 그리고 벨 훅스는 원래 억압 구조를 해체하려는 여성 연대가 정치에 의해서 남녀 간 혐오 담론으로 탈바꿈되어 페미니즘을 왜곡된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어.”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실제 나타나는 정치적 전략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우순이는 자가의 삶도 누나의 삶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예를 들면, 희생양 만들기가 있지 않겠니? 여성의 권리 요구를 “남성의 피해”로 왜곡함으로써 성별 갈등을 조장하거나 정치적 포퓰리즘, 즉 “여성 편” 혹은 “남성 편”을 드는 척하며 특정 집단의 표를 얻는 전략, 그리고 사회 문제 은폐가 있을 수 있지. 임금 착취나 비정규직 문제는 덮고 “성별 갈등”만 부각해 구조적 개혁을 지연시키는 방법도 있겠지.”

“맞아! 요즘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중 6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하잖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야.”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들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어?”

“응!, 마르크스는 갈등의 본질이 성별이 아니라 구조적 불평등임을 드러내야 한다고 했고, 사르트르는 정치적 선동에 휘말리지 않고, 자기 책임과 자유를 지키는 방향에서 행동하라고 했지, 그리고 벨 훅스는 남녀 모두를 억압하는 구조를 지적하며, 갈등이 아닌 공동투쟁의 장을 복원하는 연대를 강조했지.”

“와! 누나! 앞으로 영석이가 서울대학교 들어가면 누나도 반드시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해서 박사학위 받고 교수하는 게 어때? 누나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너무 신기해”

“결국 그들의 저열한 전략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모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겠네”

“야! 정확한 지적이다. 국민이 깨어 있다는 것은 곧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선동적 언어를 걸러내며, 연대와 상생의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겠지. 그래야만 정치인들이 던지는 싸움판에 휘말리지 않고, 진짜 문제를 해결할 힘을 모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우리 일동방직 여성 노동자들의 아픔에 눈감지 않을 거야. 즉 “내 일만 챙기면 되지”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싸워야 바뀐다”는 연대의 의식을 가지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서 할 거야”

“와! 우리 누나! 자랑스럽다”


정희는 우순이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1972년부터 시작된 유신체제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으나 여성의 직감으로 볼 때, 유신체제의 끝도 얼마 남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유신체제 하에서 노동운동은 곧바로 정권 안보의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일동방직 똥물 투척 사건 이후,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경찰서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한 자기의 삶이 평탄치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경찰서에서 담당 형사가 정희에게 여성 노동자들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아느냐고 집요하게 질문을 하면서 동시에 “너도 선동에 넘어간 것 아니냐”라고 여러 번이나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희는 부인했다. 그러나 그들은 정희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재야 지식인, 그리고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뭐죠? 그리고 재야 지식인란 말도 잘 모르겠고 제게는 현재 재수생인 동생이 있을 뿐이며, 제가 대학을 가지 못해 대학생 친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목교에 살고 있으니, 도시 빈민 사목을 하는 존 밀러 신부는 알겠네?”

정희는 경찰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까지 알고 있는 데 대해서 깜짝 놀랐다.

“네, 존 밀러 신부님은 제가 오목교에 이사 왔을 때 축복을 해주신 분이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십니다.”

“아, 그래?”

“그럼 도시산업선교회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

“그게 뭐죠?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교회 다녀? 아니면 성당 다녀?”

“중고등학교 때 여러 종교를 공부해 보기 위해 전도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나 개신교회 등을 잠시 다닌 적이 있지만, 지금은 어느 곳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은데, 왜 그러시죠?”

“조사관이 묻는 말에만 답하면 돼, 정희 양은 내게 질문할 권리는 없어”

정희는 참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할 권리가 없다니?” 이게 민주주의 국가인가 싶었다.

“존 밀러 신부와는 자주 만나나?”

“요즘 회사 일이 바빠서 거의 뵙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정희는 경찰서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생각하며 왔다.

“언니!” 숙희가 반갑게 달려왔다.

그런데 숙희네 집 평상에 앉아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고개를 숙인 채 황급하게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언니! 이거 봐 저 아저씨가 쫀드기와 별사탕을 사줬다!”

“낯 모르는 사람인데 그런 걸 받으면 안 되지”

“언니를 잘 아는 사람이라던데?”

“난 모르는 사람이야, 그런데 너 복음자리 교회에 있으랬더니 언제 왔어?”

“응! 언니 올 때가 된 것 같아서 30분 전쯤에 왔는데 저 아저씨가 우리 집 앞에 있다가 봉창에서 쫀드기와 별사탕을 꺼내주면서 언니를 잘 안다고, 언니 언제 오느냐고 물었었는데 어디 가셨지?’ 숙희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정희는 섬찟한 기분이 들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 들었다.

"언니! 저 아저씨가 신부님도 잘 아신대"

"숙희야! 앞으로 내가 너를 데리러 가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집에 와서는 안 돼, 알았지?"

"응!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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