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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들은 나도 모르게

영화 '화양연화"를 보고서

by 서완석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지.

차우(양조위)가 낮은 목소리, 조심스러운 어조로

첸(장만옥)에게 말했지.

“많은 일들은 나도 모르게 갑자기 시작되죠.”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사랑 아닌 세상의 눈을 선택했지.

아니, 상대방 배우자와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내적인 망설임과 자존심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많은 일들이 아무 예고 없이 그렇게 시작되지.

깊은 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가느다란 마음처럼

눈치도 채지 못한 고요한 새벽의 어둠처럼

스며들듯,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안을 흔들지.


사랑도, 일도, 운명도 그렇게 시작되지.

불현듯, 그렇게 시작된 어둠을 뚫고 온 하나의 떨림이

시간을 지나 마음 깊이 고요히 새겨지고,

우리는 모르지. 언제부터, 왜 이리

모든 떨림이 내 안에서 시작되었는지.


사랑도, 일도, 운명도

그렇게 마주쳤다가

엇갈릴 수도 있는 것이지.


나도 모르게 시작되었다가

나도 모르게 흔적 없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지.


다만 남아서, 오래도록 우리를

어쩌면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게 하는 것이지.


그런 힘으로 세상 살아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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