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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14화 체력장과 쌍문동 가는 길

1979년 11월 8일, 중동고등학교 운동장은 쌀쌀한 가을바람과 함께 학생들의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전날 치른 대입 예비고사의 피로가 남아 있는 가운데, 체력장시험이 시작되었다. 영석은 솔직히 체력장시험을 포기할까 싶어 한 적이 많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무리 노력해도 쇠약해진 몸 탓인지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었고, 원서접수만 하고 응시하지 않아도 15점이라는 기본 점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응시만 한 경우에는 기본 점수 15점에 응시가산점 1점을 더해 16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체력장은 각 종목의 기록에 따라 ‘특급’, ‘1급’, ‘2급’ 등으로 등급이 나뉘었고, 이 등급에 따라 20점 만점 내에서 점수가 부여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응시만 해도’ 비교적 높은 기본 점수가 부여되므로 수치상의 비중보다는 당락에 미치는 변별력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데 0.1점 차이로 대학 합격이 갈릴 수 있는 입시 환경에서, 체력장 20점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 외에 추가 점수를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경우 1점은 엄청난 점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영석은 오늘 체력장시험에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문교부는 “정신·체력의 조화”를 강조하며 체력장 종목을 지구력·근력·순발력 중심의 5 종목으로 통일하였다. 각 학교에서 파견된 교사들이 감독을 하며, 기록 요원이 기록하고 반드시 학생의 확인을 받는다. 그리고 1979학년도 대입 체력장은 남학생의 경우,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등 5 종목이며 종목당 4점을 기준으로 하여 총점 20점이 만점이다. 그런데 작년의 경우, 80%가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첫 종목은 제자리 멀리 뛰기다. 운동장 한가운데 모래를 평평하게 다져놓고 흰 선을 그어 놓았다. 감독교사가 “자, 발끝을 선에 맞추고! 준비!, 뛰어!”라고 외쳤다. 영석은 팔을 두 번 크게 흔들고 땅을 박찼다. 두 발이 모래 위에 닿을 때 무릎이 꺾였다. 감독교사가 재빨리 막대를 모래 위 영석의 뒤꿈치 자국이 난 곳에 대고 “1미터 98”하고 외쳤다. 3점이다. 영석은 숨이 조금 가빠 오면서 조금 어지러움을 느꼈다. 보조요원이 가래로 모래를 다시 고르게 다진다.


다음은 턱걸이다. 영석은 잡은 철봉이 차갑다고 느꼈다. 몸이 가볍지 않으니 두 팔로 몸을 끌어올리는 일이 고역이다. “배치기 하지 마!” 감독교사가 옆에 매달린 친구에게 외쳤다. 앞에는 숫자를 세는 학생이 서있고 그것을 감독교사가 감시하고 있다. 주위에서 몇몇 친구들이 ‘하나! 둘!’을 외치며 독려했다. 영석은 이를 악물고 매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팔이 끊어질 듯 아팠다. “네 번.” 감독교사가 냉정하게 말했다. “2점” 영석은 팔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윗몸일으키기다. 체육관 안으로 이동했다. 마룻바닥에는 낡은 담요가 깔려 있었고, 한쪽 학생은 다리를 붙잡아 주고 다른 학생은 머리에 깍지를 끼고 누워서 ‘시작’ 소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1분 동안 윗몸일으키기를 몇 회나 할 수 있는지 측정하는 종목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이 종목만은 성적이 괜찮았었다. 영석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작!”

감독교사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배가 묵직하게 당겼다.

1, 2, 3… 세어보니 30개를 넘기고 있는데, 옆자리 학생은 40개를 넘기고 있다.

“46개. 4점” 가슴이 바늘로 찌른 듯 아팠다.


다음으로 영석은 100m 달리기를 위해 운동장 트랙 끝의 출발선에서 두 손을 땅에 대고 한쪽 무릎을 구부린 채 총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탕” 신호와 함께 죽을힘을 다해 달리는데 옆 레인의 친구가 한 발짝 앞서 달린다. 영석은 몸이 너무 무겁고, 발끝이 제멋대로라고 느꼈다. 영석은 2점을 얻었다.


이제 마지막 종목인 1000m 달리기다. 출발선에 선 순간, 영석은 왼쪽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어젯밤에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몸이 너무 무겁다. “탕!”

신호가 울리고, 학생들이 앞다퉈 달려 나간다. 첫 바퀴는 그런대로 페이스를 조절하며 다른 친구들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바퀴째 들어서자, 치고 나가는 학생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영석은 숨이 조금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세 바퀴째, 가슴 안에서 딱딱한 돌덩이가 뒹구는 듯하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난다. 입으로, 코로, 아무리 공기를 들이마셔도 가슴 깊숙이 닿지 않는 것 같다. 영석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운동장에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4분 42초.” 감독교사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면서 아울러 “1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 하늘에 햇살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눈물이 고였다. 그것이 피로 때문인지, 자신에 대한 서러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감독교사가 채점표를 건넸다. 제자리멀리뛰기 3점, 턱걸이 2점, 윗몸일으키기 4점, 100m 달리기 2점, 1000m 달리기 2점. 총점 16점이다. 80%의 학생들이 만점이라면 영석은 4점이나 불리한 핸디캡을 안고 본고사를 치러야 한다.

“그래도 기준은 넘었어.”

감독교사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영석은 기침이 심하게 나면서 구역질이 나는 듯해서 다시 운동장에 드러누웠다. 참가만 해도 16점을 맞는데 뭐 하러 열심히 했을까 싶은 생각에 영석은 운동장에 누워 한참 동안 일어날 줄 몰랐다. 늦가을 하늘은 파란색을 띠고 있고 흰 구름 몇 점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터덜터덜 운동장을 나서는데 “삼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영석은 너무 놀라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고했어, 고생 많았지?”

“아니!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던 거야?”

“한 시간 전쯤에 왔어”

“그럼 내가 뛰는 장면을 본 거야?”

“아니, 보지 못했어.”

영석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1000m 달리기에서 자신이 꼴찌로 들어오는 장면을 수아가 보았다면 얼마나 창피한 일일까 싶어서였다.

“정문에 와 보니 체력장이 한창 진행 중인 것 같아 근처 다방에 들어가 있다가 학생들이 몰려나오길래 와 봤지.”

“점수는 잘 나온 거야?”

“아니! 아주 저조한 점수야”

“웬만하면 거의 다 만점이라던데?”

“응! 난 체력이 좋지 않고 원래 체육을 잘 못해”

“그래? 앞으로 살도 찌우고 대학 들어가서 잘 먹으면 체력도 좋아질 거야”

수아는 체력장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지난번에 삼춘이 여기에서 체력장시험을 치른다고 했잖아? 우리 집이 여기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데 있고.”

“그런데 점심은 먹어야 할 것 아냐? 오늘은 고기 먹자. 수고한 삼춘을 위해 내가 한턱낼게.”

수아가 데려간 곳은 이태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용산 삼각지에 있는 ‘평양집’이었다.

“삼춘!, 여기 와봤어?”

“아니! 처음 와 보는 곳인걸”

영석은 속으로 “어디 고기를 자주 먹을 기회가 있기나 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낡았지만 정겨운 간판, ‘평양집’이라는 세 글자가 영석의 눈에 들어왔다. 실내로 들어서자 고기 굽는 냄새가 영석의 코를 자극했다. 드럼통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둥근 테이블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고, 남자 종업원이 그 구멍에 숯불이 담긴 화로를 집어넣자, 여종업원이 그 위에 둥근 석쇠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여종업원은 다시 양배추 반쪽이 들어 있는 스테인리스 그릇과 고추장이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을 놓은 후, 간장, 식초, 대파, 고추 등이 들어 있는 소스를 갖다 놓았다.

“이 집의 특제 소스인데 삼춘이 이 맛을 알게 되면 분명히 이 집에 자주 오게 될 거야.”

“용산에는 차돌박이 구이 맛집으로 ‘평양집’ 외에도 ‘봉산집’이 있어, 사람들이 그 두 집을 차돌박이와 특수 부위 전문점의 양대 산맥으로 손꼽는 곳이야.”

“언젠가 사장님이 이야기해 주신 건데 이 집은 1973년도부터 장사를 시작했고, 봉산집도 아마 그쯤에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어”


영석은 옥수동 지석이 형으로부터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해방촌’이 있는데, 그곳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군용지나 무기고, 훈련장이 있던 곳이고, 1945년 광복(해방) 직후, 주로 해외에서 살다가 귀국한 동포와 북쪽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몰려들어 판잣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평양집’이라는 상호 자체가 해방이나 6.25 전쟁 이후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점을 고려하여 식당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지, 아니면 사장님이 진짜로 평양에서 내려온 실향민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묻지 못했다.


“우선 이 양배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어봐”

수아가 양배추 한 겹을 벗기더니 영석에게 내밀었다. 수아가 건넨 양배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더니 양배추의 달큼한 맛이 고추장과 어울려 기가 막힌 맛이 난다.

“그리고 이 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소스야. 조금 있다가 차돌박이가 구워지면 이 소스에 찍어 먹어 봐”

“여기, 차돌박이 2인분 주세요”

수아가 손을 들어 주문했다.

여종업원이 스테인리스 쟁반에 차돌박이 한 무더기를 가지고 오더니 하얀 비곗덩어리로 석쇠 위에 기름을 발랐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금세 차돌박이가 몸을 뒤틀었다.

“이제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어 보자.”

“자! 이렇게 하는 거야”

수아는 익은 차돌박이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접시에 놓더니 그 위에 소스 속에 들어 있는 양파 한쪽과 잘게 썬 고추를 집어넣고 돌돌 말아 영석에게 내밀었다.

영석이 그걸 받아 한입 씹자 고소한 차돌박이가 새콤한 소스와 섞이면서 아삭 소리를 내는 양파의 달콤 쌉쌀한 맛과 고추의 매콤함이 어우러져 기가 막힌 맛을 냈다.

“어때?”

수아는 애가 닳은 모습이었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여주고 나서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바로 그 자체였다.

“와! 너무 맛있어”

“그렇지?”

수아는 아주 신이 난 것 같았다.

“내 평생 이런 맛은 처음이야. 정말 고마워”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 난 우리 아빠랑 자주 와”

“오늘 고생했으니 마음껏 먹어”

“그리고 우리 소주도 한잔 마실까?”

영석은 깜짝 놀랐다.

“뭘 그리 놀라시나?”

“이제는 우리도 성인이라고, 소주 한 잔은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영석은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 가서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경월소주 한 잔 이외에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엄마가 술 좋아하신 아버지를 원망하시던 소리를 듣고 자랐고, 아직 재수생 신분에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줌마! 여기 진로소주 한 병이요!”

영석이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수아는 소주를 주문했다.

“오늘 딱 한 잔만 마시고 본고사 볼 때까지 열심히 공부하면 되는 거야”

영석은 수아가 따라준 소주 한잔이 가슴을 타고 내려갈 때 아주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수아도 영석이 따라준 술을 홀짝 한 모금 마시더니 석쇠 위의 차돌박이 한 점을 간장 소스에 찍어 맛나게 먹었다.


“나중에는 바로 옆에 있는 ‘자원대구탕’ 집도 가보자”

“우리 아빠가 날씨가 쌀쌀해지거나 해장이 필요할 때,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로 속을 달래기 위해 자주 가시는 집이야. 나도 가끔 데리고 가시는데,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야. 신선한 대구와 무, 콩나물, 미나리 등을 넣고 즉석에서 끓여 먹는 방식인데, 특히 대구 애(간), 곤(알집), 이리(정소) 등 버릴 것 없는 다양한 부위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어서 좋아”

영석은 주눅이 드는 느낌이었다.

특히 평양집 메뉴판에 적힌 소 곱창, 양(깃머리), 차돌박이, 염통, 소 등골, 내장 곰탕 등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영석이 자신이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그러했다.


“봉산집은 차돌박이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가 정말 맛있어. 사람들이 고기 먹고 난 후 마지막에 먹는 음식인데 아주 맛있어. 나중에는 거기도 가보자고”

“곱창이나 다른 것도 먹어 볼래?”

“염통구이나 한번 먹어 볼까?”

영석은 염통구이가 메뉴 중에서 가장 싼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응! 염통구이도 좋지”

염통구이도 소스에 찍어 먹으니 맛이 차돌박이와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양밥’을 먹자”

수아는 종업원에게 ‘양밥’ 2인분을 주문했다.

“‘양밥’이 뭐지?”

“후식 식사 메뉴로 양깃머리를 깍두기와 함께 볶아주는데, 이것을 ‘양밥’이라고 해”

“‘양’이 소의 위를 말하는 것이지?”

“응! 나도 몰라서 우리 아빠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어”

“소가 네 개의 위를 가진 반추동물이라는 건 알지?”

“그럼! 잘 알지”

“소는 네 개의 위를 가지고 있는데, 제1위로서 전체 위 용량의 80%를 차지하는 ‘양’은 풀이나 사료를 저장하고 미생물의 도움으로 발효시켜 소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식용으로 쓰일 때는 두툼하고 매끄러운 바깥쪽을 ‘양깃머리’라고 부른대. 그리고 제2위는 ‘벌집 위’나 ‘봉소위’로 부르는데, 되새김질을 돕고, 소가 먹은 철사, 돌 등 이물질을 걸러 제1위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더군. 제3위는 천엽 또는 겹주름 위라고 하는데, 내벽이 천 개의 얇은 잎사귀(주름)처럼 겹겹이 쌓여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수분을 흡수하고 음식물을 압축하는 역할을 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4위는 ‘진위’, 즉 ”진짜 위“라고 부르는데, 단백질을 소화하는 위액이 분비되는 사람의 위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하더라고.”

“아빠한테 한번 듣고서 이렇게 기억을 잘한다는 것이 놀랍네.”

영석은 진짜로 수아의 해박한 지식에 깜짝 놀랐다.

“공부 못했다더니 아닌 것 같은데?”

“아냐!, 나는 예비고사에 나오지 않는 것들에 강할 뿐이야.”

수아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여자 종업원이 프라이팬 위에 빨갛게 볶은 ‘양밥’을 가져왔다.

“삼춘, 어서 먹어 봐. 내가 이 집에 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양밥”때문이야”

영석이 '양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자 아삭한 깍두기와 쫄깃한 양깃머리가 씹히며 고소한 참기름과 깍두기 국물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입속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하… 진짜 완벽하다. 이 매콤한 맛이 기름진 고기를 다 잡아주고, 진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야.” 영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숟가락을 놓을 줄 몰랐다.

“맛있지? 봉산집도 맛있지만, 여기 '양밥'은 이 특유의 양념 맛이랑 양깃머리가 씹히는 맛이 강렬하고 풍성해서 나는 개인적으로 평양집 '양밥'을 더 좋아해. 그런데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영석은 프라이팬에 남은 누룽지까지 싹싹 긁어먹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식값을 계산하는 수아 옆에서 영석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는 내가 살 거야, 입학한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나를 먹여 살려야 해. 알았지?”

영석은 갑자기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쭉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먹여 살려야 된다.”라고 하는 말이 주는 힘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삼춘! 오늘 쌍문동 가지 않을래?”

“쌍문동? 왜?”

“우리 보광동 집 팔고 쌍문동으로 이사 가기로 했잖아”

"우리 잘난 오빠 때문에 이사 가는 거잖아.”

영석은 얼마 전에 남산에서 수아가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쌍문동까지 걸어갈 수 있겠어?”

“나 걷는 것 좋아하잖아”


영석은 어이가 없었다. 용산에서 쌍문동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분명히 먼 거리인 것만은 틀림없는데, 안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 운동화 신었고, 삼춘도 내가 사준 운동화 신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여기서부터 대략 20㎞ 정도 되니 50리야. 그 정도는 남자가 걸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영석은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수아는 앞장을 서더니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영역을 지나 서울역, 시청 앞, 광화문, 그리고 안국동을 거쳐 원남동에 이르렀을 때, 수아는 어느 집 대문 앞 계단을 가리키며 “여기가 옛날에 우리가 살던 집이야”라고 했다. 수아는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뀐 이야기도 해주었다.

수아는 서울대 병원을 지나 성균관대학교 입구에서 오른쪽 1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과거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문리과 대학이 있던 자리야”

“그리고 이 ‘학림다방’은 가장 오래된 다방이래. 우리 친구들이 가끔 와서 놀다 가는 곳이야.”

영석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다시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동선동을 지날 때 왼쪽을 바라보니 언덕 위에 판잣집이 즐비했다.

그리고 그 판잣집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거적때기가 깔려있는 것이 비라도 내리면 수월하게 올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해놓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영석은 옆에 수아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를 탔을 것이다. 그런데 수아를 힐끗 보니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다.


돈암동을 지나는데 점집이 수두룩해서 영석은 수아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원래 남산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시각장애인 역술인들이 종로 3가나 남산 주변에 거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1960년대 도심 재개발과 무허가 주택 철거 과정에서 터전을 잃게 되자 상대적으로 주거 비용이 저렴한 이곳 미아리 고개로 옮겨왔다는 것 같은데? 나도 자세히는 몰라.”


서서히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지만, 영석은 수아에게 얻어듣는 서울의 역사를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해서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길음동을 지날 때는 빈민촌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미아삼거리 대지극장 앞에 당도하니 상권이 형성되어 상대적으로 화려했다. 그리고 수유리도 마찬가지였는데, 수아는 미아리나 수유리는 경기 북부나 강북의 동북부 지역으로 향하는 주요 관문인데 미아리가 그 중심이고, 수유리에는 군 검문소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진짜로 군 검문소가 있고, 술집이 아주 많았다.

쌍문동에 이르렀을 때, 영석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수아는 아직도 쌩쌩했다.

“여기가 우리가 이사 오게 될 집이야.”

커다란 초록색 대문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있는 엄청나게 큰 집이었다.

“보광동 집을 팔고, 여기가 땅값도 싸고 집값도 싸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노후에 살 집으로 마련한 거야”

“두 분이 사실 건데 이렇게 큰집이 필요한 거야?”

“나도 시집가기 전까지 이 집에 살 건데 뭐”

“그런데 이 동네는 아직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심심할 거야. 친구들 만나기도 불편하고, 삼춘 만나기도 그렇고”

“이제 집구경 했으니 돌아가자.”

영석은 화들짝 놀랐다.

“또 걸어가는 거야?”

“아닐세. 이 사람아! 남자가 그 정도 걸어놓고서 비실대기는 어이구!”

영석은 수아가 걷는 것을 좋아하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걸어 다녀야 한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13번 버스를 타고 종로 5가까지 가서 저녁 먹자”

“그런데 집구경 잠깐 하려고 여기까지 걸어온 거야?”

“삼춘, 내가 설마 그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여기까지 걸어오자고 했겠어?”

“누구는 맨날 포니 자동차 타자고 하는데, 난 걷는 게 좋거든.”

“그리고 삼춘이 얼마나 끈기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어”

영석은 포니 자동차 타자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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