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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15화 곰소댁과 최사장(2)


영등포 시장의 하루가 파장하자 최사장은 곰소댁을 불러 순댓국밥을 대접하기로 했다. 최 사장은 가마솥의 불을 약하게 조절한 후, 좌판을 정리하고 퇴근하려던 곰소댁을 큰소리로 불렀다.

“곰소댁! 와서 국밥 한 그릇 먹고 퇴근혀.”

“아이고! 우리 숙희가 기다리는디?”

“얼릉 먹고 가면 되지, 내가 숙희 것도 싸줄텐게”

“그려? 그라문 쪼까 더 싸줄 수 있을랑가?”

“또 줄 사람이 있다는 말이여? 어떤 놈이 또 있는 거여?”

최사장이 농을 하자 곰소댁은 웃으며 말했다.

“응! 우리 옆집 남매들도 괴기 귀경 못한 지가 솔찬히 되었을 것인디?”

“알았어! 내가 국물이랑 큰 냄비에 싸줄 텐게 갖고 가서 갸들 배가 터지게 먹여.”


곰소댁은 생선 비린내가 배지 않도록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최사장네 가게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아따 뭘 대접 헐라고 그렇게 설레발을 떠시능가 몰러?”

“워마! 내가 언제 설레발을 떨었다고 그런당가.”

“퇴근 헐라는 사람 붙잡을라고 부산을 떨어 싼 게 안 그러능가.”

“그려서 싫단 말이여?”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최사장 오라버니께서 우리 새끼는 물론이고 우리 옆집 남매까지 챙겨준다니까 눈물이 앞을 가려서 그라제.”

두 사람의 대화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랜 기간의 신뢰가 쌓여 있지 않다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근디 우리 곰소댁은 순대국밥, 암뽕국밥, 내장국밥, 막창국밥, 뼈다귀탕 중에서 뭣을 고를랑가?”

테이블 위에는 이미 뜨끈뜨끈한 수육 한 접시와 진로소주 한 병이 놓여 있다.

“아이고! 수육 한 접시면 되얐지. 국밥이 무신 필요가 있겄어?”

곰소댁은 손사래를 치다가 다시 최사장에게 얼른 와서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 소리 말어. 내가 언제 곰소댁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간디?”

“그라문 나는 암뽕 순대국밥!”

“그려! 진즉 그렇게 말할 일이지. 자꾸 사람 애를 멕이고 있어?”


최사장은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뚝배기에 암뽕 순대를 담고, 거기에 육수를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근디 오라버니! 암뽕! 암뽕? 허는디 암뽕이 뭣이당가?”

“전라도 사람이 암뽕이 뭣인지도 모르단 말이여?”

“전라도 사람이라고 모도 다 순댓국을 좋아헌다는 벱이 없고, 전라도 사람이라고 다 같은 말을 쓰는 건 아니잖여?”

“하기사 그 말은 맞네 그려. 암뽕은 암퇘지의 ‘새끼보’를 말하는 것이여.”

“새끼보? 그라문 암퇘지의 자궁이란 말이여? 워메! (흉)헌 소리를 다 듣겄네.”

“뭐가 숭혀? 새끼보를 깨끗허게 손질해서 삶아 낸 것이라 쫄깃허고, 오독오독한 식감이 그만인디?”

최사장은 곰소댁이 참 딱해 보인다는 듯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라문 오소리감투 맛하고 똑같겄네?”

곰소댁이 최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최사장은 그런 곰소댁의 모습이 귀엽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다르제, 오소리감투는 돼지의 위장을 말허는디, 아조 쫄깃하고 탄력이 있으며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진하게 나온단 말이지. 근디 암뽕은 근육조직이 많응게 쫄깃허면서도 오독오독허거나 사각사각헌 느낌이 난단 말이여.”

“그게 그거 아녀?”

곰소댁은 최사장의 설명이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먹어 보면 확실히 알 것 아니여?”

최사장은 자신이 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라문 오소리감투도 내놓고 비교를 허라고 허든가?”

“그려! 오소리감투도 갖다 줄텐게 비교혀 봐.”

곰소댁은 최사장이 내놓은 암뽕과 오소리감투를 각각 한 점씩 먹어 보았다.

“둘 다 쫄깃한 맛이 있지만, 암뽕은 근육질이 단단허고 뭔가 모를 독특한 질감이 있는 것 같고, 오소리감투는 꼬들꼬들하면서도 찰진 것이 특징인 것 같구먼?”

“아따! 딱 맞는 말이네”


“근디 왜 암뽕 순대를 전라도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라고 헌당가?”

“가만히 생각해 보소. 우리 고향, 전라도 지역은 옛날부터 물산이 풍부허고 한반도의 곡창지대라는 지리적 조건 땜시 시장문화가 발달했단 말이여. 조선시대에는 모내기법이 알려지면서 국가 재정의 절반 이상을 전라도가 담당했다는 거여. 근디 가끔은 숭년(흉년)도 들게 마련 아니겄는가? 그러다 봉게 숭년(흉년)에 구황(救荒, 흉년 구제)을 허기 위해서 남는 물건들을 서로 교환허기도 허고 사고팔기도 허라고 시장이 생기는 것을 허용했다는 거여. 우리나라 최초의 장이 전라도 무안장(務安場)이라고 안 허던가?”

“워메! 워메! 우리 오라버니의 일언 일구가 모두 경전에서 나온 듯허네. 어쩌코롬 그렇게 유식허당가?”


“근디 암뽕순대가 발달 헌 또 한 가지 이유는 전라도 지역이 도축업이 발달했다는 데 있다는 것이여.”

“도축업 발달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쬐까 이해가 될 것도 같은디?”

“그 이유는 첫째, 전라도 자체가 조선의 곡창지대였다는 점이여. 호남평야가 워낙 비옥헌게, 농사지을 땅이 넓고 수확량이 많았것지? 따라서 당연히 농사를 돕기 위한 소의 숫자도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거여. 그라고 소가 많다는 건 무슨 뜻이겄어? 그만큼 늙거나 병들어 농사에 쓸 수 없는 소의 수도 많았다는 뜻이겄제? ‘우금령(농업생산의 핵심요소인 소를 보호하기 위해 소의 도축과 도살을 금지한 명령)’이 아무리 엄해도, 결국 이런 소들은 도축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만 말이여. 거기에다가 논이 많으니 소를 멕여 살릴 지푸라기도 많았응게 할 말 다한 거 아녀?”

“듣고 봉게 참말로 그러네 잉”

“나주에 곰탕이 발달 헌 것도 그런 이유땀시 그랬을 거 같은디?”

곰소댁이 맞장구를 치니 최사장은 더욱 신이 났다. 여편네 칭찬에 남편 놈 “에헴”하고 수염만 쓰다듬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근디 곰소댁이 하나 더 알아 둘 것이 있어. 나주에 곰탕집이 발달헌 것은 곰소댁이 말한 이유도 있겄지만, 일본 놈들이 전투식량인 소고기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서 나주에다가 큰 군수공장을 채려놓고, 하루에 수백마리를 도축혀서, 살코기는 수탈허고, 소머리, 뼈, 내장 등의 부산물은 우리나라 사람들 헌티 나눠주었다는 거여. 그걸 끓여서 팔다보니 곰탕이 발달혔다는 슬픈 사연도 있어."

"워메, 박사가 따로 없구마잉. 어디서 그런 것들을 다 배왔당가?"

곰소댁은 오늘따라 최사장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여름에 동네 어른들이 당산나무인 커다란 느티나무 옆에 세운 모정에 모여 시원한 바람 쐬며 허시던 말씀들을 우리 어린 것들이 고누두면서 들은 소리들이여. 박사는 무신 놈의 박사?"


“둘째, 아까도 말혔지만, 장시(場市), 즉 오일장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열리는 곳이 전라도였단 말이여. 장시가 발달허니 사람들이 모이고, 물건이 오가고, 당연히 괴기를 먹을라고 허는 놈들도 많았을 거 아녀?”

“그것도 그렇네.” 곰소댁이 또 맞장구를 쳤다.

“마지막으로, 괴기를 먹을라고 허는 놈들이 많다는 야그는 백정(白丁)놈들이 많이 살 수밖에 없다는 야그 아녀? 고놈들이 전라도 지역에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기술을 전수했다는 거여.”

“아따 우리 오라버니 참말로 무식헌 나도 알아먹기 쉽게 잘도 설명헌다. 대학교수님 뺨쳐부네 잉!”

최사장은 곰소댁이 따라주는 소주 한 잔을 마시더니 쇠젓가락으로 오소리감투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 입안에 털어 넣고 씹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소주 한잔을 따라 곰소댁에게 건넸다. 곰소댁은 잔을 단숨에 비우고는 젓가락으로 피순대 한 점을 집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곰소댁은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몸과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슬퍼졌다.

“나는 참말로 남자 복이 없어. 아니, 내가 박복해서 만나는 남자마다 그렇게 가번지는가 싶어.”

그녀는 자신의 술잔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최사장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눈이 촉촉해지는 것을 보았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여?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를 하고 있네.”

최사장이 ‘딱’ 소리가 날 정도로 테이블에 소주잔을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두 사람의 죽음이 왜 곰소댁 탓이란 말이여?”

곰소댁은 고개를 숙이며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숙희 아빠는 공장 사고로 가부렀제. 프레스에 끼어서 말이여. 시계도 못 찰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이었는디,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뛰어든 곳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갈 줄은 정말 몰랐제. 근디 그때는 그저 운이 없어서 그랬다고만 생각혔었어.”


그녀는 다시 얼굴을 들어 눈물을 닦더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첫 남편 죽고 낭게 양잿물이라도 있으면 한 사발 쭉 마시고 딱 죽어버렸으면 좋겄더만, 우리 숙희를 생각허먼 죽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더란 말이여.”

“당연하지. 그 이쁜 숙희를 놔두고 곰소댁이 죽어뻔지면, 숙희는 고아로 살란 말이여? 안 되제. 절대 안 되는 일이제. 숙희는 인생이 없는가? 최소한 지 혼자 세상 살아갈 정도는 맹글어 줘야 하는 것이 엄마의 도리 아니겄어?”

최사장이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세상일은 정말 모르겄는 것이 숙희가 있응게 다시 시장에 나와 이 악물고 장사허며 살게 되드라고. 그런디 어느 날 운명처럼 정선생을 만난 거여.”

“정 선생은 정말로 착하고 글만 알았지, 세상 물정은 몰르던 사람이여. 내가 벌어 주는 돈으로 사는 것을 고로코롬 미안해 헐 수가 없었어. 그라고 내가 얼매나 무식혀. 그 냥반이 하는 말을 아마도 절반이나 알아들었을랑가? 그 냥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아주 쉬운 말만 찾아서 허는 것 같은디, 나는 다 이해를 못 허겄드라 이 말이여. 연세대학교! 워메 우리는 그 문 앞에도 못 가본 연세대학교! 나오신 분 아니드라고?”

“나도 몇 번 뵙지 못했지만 참 좋은 분이셨지.”

최사장이 한마디를 보탰다.


“나헌티 그렇게 따뜻한 말을 많이 해줬어. 내가 비록 살집은 좀 있어도 남들한테 꿀릴 것 없는 얼굴이라고, 영등포 시장의 ‘꽃’이라고 허드만. 이제는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없네.”

최 사장은 묵묵히 곰소댁의 잔을 채웠다. 정선생이 곰소댁의 외모를 칭찬했던 말이, 미스리에게 박 사장이 뱉은 가벼운 아부와 대비되어 최 사장의 가슴을 쳤다.

“정 선생은 나랑 살면서 행복허다고 혔어. 결핵약을 먹고 있응게 잘 멕여야 헐 거 아녀? 최사장네 피순대국도 사다 멕이고 남는 생선 중에서 가장 싱싱헌 놈으로다가 정성 들여 밥 해 먹였지. 그래서 쬐까 좋아지는가 싶었는디, 생각도 못한 간암으로 갈 줄은 누가 알았당가?”

“정말 불쌍헌 사람이여! 고놈의 사법고시인가 뭔가 땜시 한 사람의 인생이 아조 망가져부렀어.”

“그런디 내가 지금도 이해를 못 허겄는 것이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나 몰라라 헌 것이여.”

곰소댁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게 말여. 적어도 부모님은 안 그랬을 텐디 왜 그랬을까?”

최사장도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셨고, 고시공부에 몰두하느라 부모님 재산에 대해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정선생을 제쳐놓고 형제들이 재산을 모두 다 나눠가졌다고 허더라고.”

근디 법을 전공허신 분이 왜 법적으로 해결허지 못 혔을까?”

“그 냥반은 돈보다 사람이 중요허다고 맨날 나헌티 야그 허신 분이여. 형제끼리 싸우고 싶지 않다고......”

“맨날 자기가 카뿌까라고 허는 사람이 쓴 ‘병신’이라고 혔던가? 그 소설의 주인공 같다는 거여. 난 아직도 그 소리가 뭔 소린지 몰러.”

“병신‘이란 제목의 소설도 있네 그랴?”

최사장이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오라버니! 내 팔자는 이 국물처럼 뜨거운 사람을 만나도, 그 국물을 식게 만드는 팔자인 개벼.”

곰소댁은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울컥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려 했다.

“곰소댁! 자네 인생도 참 기구하지만,인생도 보통은 아녀.?”

곰소댁을 지긋이 바라보던 최 사장이 일어서더니 가마솥에서 갓 떠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순댓국물을 다시 곰소댁 앞에 놓인 뚝배기에 부었다.

“나는 말이여! 돈이 사람을 이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봐”

“곰소댁!, 자네가 박복해서가 아녀. 이놈의 세상이 글러 먹은 것이제.”

최사장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펄펄 끓는 가마솥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 방식으로만 살았제. 어렸을 때부터 힘센 놈들이 약한 놈 괴롭히는 것이 고로코롬 싫더라고. 내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평생을 약한 놈 편에 서 있었어. 학교 다닐 때도, 공장에서도 약한 사람들 쪽이었어. 그리고 여기 와서는 오직 최선을 다해 국물만 끓였제. 이 국밥에는 내 땀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거여. 새벽 4시 30분, 남들 다 잘 때 가게 나와서 뼈 고고, 잡내 하나 안 나게 피순대 만들었어. 이게 내가 사람 사는 도리라고 믿고 살아온 내 삶의 방식이여.”


그는 접시 위 피순대 한 점을 집어 들었지만, 먹지는 않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스리도 알았을 거여. 내 국물이 얼마나 진국인지. 내 마음이 얼마나 뜨거운지. 처음에는 내 진심도 알았을 거여. 구로공단에서 그 개새끼에게서 미스리를 구해냈을 때, 우린 서로의 전부라고 생각혔어. 그때는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 돈이나 권력을 이기는 세상이라고 생각혔고, 나는 미스리의 그 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제.”

"난 말여, 미스리가 하도 이쁭게 나 버리고 어디로 갈까 싶어서 나 버리면 안 된다고 맨날 야그 혔었어. 그때마다 미스리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사람이 물건인가 버리게?"라고 말허곤 혔어. 근디 이렇게 버려부리더만."

최 사장이 고개를 들어 곰소댁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짙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그런디 박 사장 그놈은 뭐여? 하는 짓이라곤 장사하면서 돈으로 사람 부리고, 시장에서 완장 차고 권력 놀음 하는 것밖에 없잖여? 그놈은 돈으로 사람도 사고 돈으로 인생도 살 수 있다고 생각허는 놈이여. 미스리는 그놈의 인생관이 옳다는 것을 그놈에게 증명해 준 것이고. 안 그려? 그놈은 미스리를 통해 더 기고만장해졌을 거 아녀? 난 그 이후로 여자를 믿지 못 하고 살아오고 있어. 여자는 돈 많은 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 같더란 말이여. 어떤 놈이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보고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본다고 헐 때, 이 세상 여자가 다 그런 것 아니라고 쓸데없는 소리허지 말라고 쏘아붙여 주었는디, 내가 딱 그 짝이 나고 봉게 그놈 말이 맞는 야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 싫다고 떠난다는디 어쩌겄어. 나는 사람 싫은 건 정말 견딜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혔지만, 진짜 마음은 붙잡고 싶더라고. 그래서 아침에 나랑 밥 한 끼 하며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자고 허고 잤지. 그런데 나 잠든 새에 떠나버렸더라고. 이 세상 여자는 다 그런 게벼."

“내가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끓인 이 국물도 결국 돈 아래에 있더란 말이여.”

최 사장은 다시 테이블 위에 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쨍’ 하는 소리가 시장의 정적을 갈랐다.


“결국 미스리는 돈을 쫓아갔어. 내 국물 냄새가, 그리고 이 가게 안이 ‘답답하다’고 혔지. 성실하게 국물 끓이는 내 삶이 지루하고, 박 사장의 돈이 주는 화려함이 더 좋았던 거여. 내가 그동안 지켜온 사람의 진심과 고집이, 그놈의 돈 몇 푼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여. 월매나 슬픈 일이여?“

곰소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첫 남편도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공장 프레스 앞에 섰다가 죽었고, 정 선생도 가난한 고시 낭인으로 살다가 병마에 스러졌다. 그리고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돈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 역시 자본의 무게 아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맞어! 오라버니, 미스리 잘못만은 아닐지도 몰러. 이 세상 자체가 사람 사는 인정보다 돈이 더 무서운 힘을 갖고 있응게. 돈이 사람의 마음을 꺾고, 돈이 사람의 도리를 무너뜨리지. 우리가 아무리 진한 국물을 끓여도, 그 국물을 맛볼 여유조차 돈이 허락해야 하는 세상이니까.”

최 사장은 소주 한잔을 다시 마시고 뚝배기 안의 국물을 수저로 떠 마셨다.

”나도 인자 잘 모르겄어. 내가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성실하게 국물만 끓여서, 결국 가장 소중허게 생각한 사람을 돈 때문에 뺏기는 이 패배감을 어떻게 견뎌내야 헐지 정말 모르겄어."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쉽게 사람을 갈아탈 수 있지? 어쩌면 진짜배기로 내가 싫어져서 떠났을랑가 모르지만서도."

최 사장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다시 한번 되뇌었다.

“결국 이 세상은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이기는 세상인 개벼.”

곰소댁이 조용히 일어나 휴지를 찾아 최사장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 악착같이 살어서 저 박사장 놈이나 미스리에게 돈이 전부가 아니고 인간이 우선이란 걸 보여줘야제. 그것이 우리의 복수인 것이여."

"자신헌티 헌신헌 오빠같이 착헌 사람 버리고 떠난 미스리 그년은 반드시 천벌받을 것이여. 그라고 여우같은 그년이 천성적으로 색을 밝히는 나쁜 년일지도 모릉게 언능 잊어부려야 혀."


“오라버니! 나 이제 가야 겄어. 우리 숙희 배곯고 있을 텐게.”

“아차! 내가 숙희한테 큰 죄를 지었구먼. 잠깐만 지둘려. 내가 음식 싸줄텐게.

“전화도 없는 집이니께 연락을 헐 수도 없으니 걱정이 돼 야서 그려. 물론 옆집 남매가 평소에도 잘 돌봐주니까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기는 허지만 말이여.”

최사장은 서둘러 푸짐하게 음식을 싸서 곰소댁을 재촉해 택시를 잡으러 나갔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고 올게”

“아따! 걱정 붙들어 매쇼. 어떤 놈이 보쌈이라도 해서 날 데려갔으면 정말 좋겠지만. 다 늙고 딸까지 달린 년 누가 데려가겠어?”

“그라문 내가 보쌈해 갈까?”

최사장은 자기가 한 말에 자기가 멋쩍어서 얼른 말을 돌렸다.

“택시가 얼른 잡혀야 헐틴디.”

곰소댁은 최사장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다행히 택시가 바로 잡혔고, 택시비는 최사장이 미리 지불했다.

최 사장이 잡아준 택시를 타고 오목교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새벽 두 시를 넘기고 있었다. 곰소댁은 최 사장이 싸준 국밥 냄비와 다른 먹거리가 든 봉투를 양손에 들고 조용히 대문을 열었다.

영석이네 방에서 희미한 스탠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곰소댁이 노크를 하자 영석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숙희가 칭얼대다가 얼마 전에 잠들었어요.”

“그래 정말 고마워! 오늘 시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어서 한잔 혔어. 은혜 잊지 않을게.”

“아이고 무슨 말씀을 하세요? 가족 같은 사이에.”

숙희는 정희와 함께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정희가 숙희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겨웠다. 영석은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었는지 책상 앞에 스탠드 불빛이 보였다.

“미안혀. 공부하는 사람 앞에서 술 냄새나 풍기고 아줌마 못 됐지?”

“아녜요! 아줌마 저, 체력장이랑 예비고사는 마쳤구요. 이제 본고사 준비하는 중인 걸요.”

곰소댁의 시선이 숙희 옆에서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정희를 향했다. 정희의 얼굴이 스탠드 불빛 때문인지 평소보다 핼쑥해진 것 같았다.


“아줌마 오셨어요?”

정희가 얕은 잠에 들었었는지 퍼뜩 눈을 뜨더니 곰소댁을 향해 아는 체를 했다.

“미안혀! 오는 내가 시장에 일이 있어 늦었어. 그리고 내가 오늘 순댓국이랑 여러 가지를 싸왔응게 지금 뎁혀서 먹든지, 내일 아침에 영석이 총각이랑 국물 뜨끈하게 데워서 먹든지 혀. 알았지?”

“네! 아줌마! 정말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내일 아침에 무슨 국을 끓일지 고민 중이었는데.”

“회사 일로 고민 많지? 힘내! 언젠가는 사람이 돈을 이기는 세상이 올 거라고 나는 굳게 믿고 싶응게.”

“네! 고마워요. 아줌마네 연탄불은 제가 갈아 놓았어요.”

“정말 고마워! 천사 같은 우리 정희 아가씨!”

“착하고 약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 당하는 이 세상을 보면 하느님이 진짜로 계신 것인가 의심이 들 때도 있단 말이여. 교회는 저렇게나 많은디, 세상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있응게 말이여. 그러나 이 남매가 바로 천사들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허는디. 맞제?”

“에이! 아줌마. 연탄 한 장 갈아주었다고 천사가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겠네요. 하하” 정희가 빙그레 웃었다.


“이 국물은 절대 배신 안 헐 거여. 왜냐면 최사장이 진심을 담아 끓인 국물잉게. 내일 아침에 꼭 먹어봐”

곰소댁은 두 남매를 보며 최 사장의 국물처럼, 이 두 남매가 사는 세상도 결국은 사람의 진심과 노력이 이기는 세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숙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탄불로 달궈진 방인데도 아무도 없는 방은 너무나 쓸쓸했다. 연탄불도 사람의 온기를 이기지는 못하는 것을 보니 집안의 온기는 불이 아닌 사람의 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파리한 모습의 정선생이 떠올랐다. 술기운 때문인지, 정선생이 보고 싶어서인지 모르지만 곰소댁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오늘은 강의가 있는 날이라 글을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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