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16화 숙희(1)
“숙희야! 학교에서 뭔 일 있었어?”
숙희가 밥도 먹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훌쩍이는 모습을 보고 곰소댁은 애가 닳았다.
숙희는 곰소댁이 이불을 걷어내고 얼굴을 보려 해도 앙증맞은 두 손으로 이불깃을 꼭 잡고 한사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곰소댁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정희네 집으로 갔다.
“아주머니! 숙희 때문에 속상하시죠?”
“뭔 일이 당가? 쟈가 밥도 안 묵고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서 훌쩍이고만 있응게 속 터져 죽겄네”
“나 오기 전에 우리 숙희 델꼬 있었응게, 무슨 말 들은 거 있능가?”
“제가 퇴근하고 들어오니까 숙희가 울고 있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어봐도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요. 영석이도 도서관에서 돌아와 숙희 붙들고 한참 동안 달래 봤는데 요지부동이었어요.”
“저년이 지애비 닮어서 황소고집이라 그려.”
곰소댁이 정희 남매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니 숙희는 잠이 들은 모양으로 쌔근대는 숨소리만 들릴 뿐 방안이 아주 조용했다. 곰소댁이 가만히 이불 끝을 들어 올리니 눈물로 얼룩진 숙희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 어린것이 뭔 걱정이 있다냐?”
곰소댁이 숙희의 얼굴에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을 지우니 숙희가 잠결에 옆으로 돌아누웠다.
“네가 무슨 죄가 있겄냐? 박복한 에미 만난 죄지.”
곰소댁은 내일 아침에 자초지종을 물어보기로 하고 숙희가 벗지 않고 잔 옷을 조용히 벗겼다. 곰소댁의 눈이 그렁그렁한 눈물로 가득 찼다.
새벽 4시에 일어난 곰소댁은 숙희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한 소리에도 숙희는 깨지 않고 자고 있다. 어제 무척 피곤했나 보다 싶어 곰소댁은 숙희의 자는 모습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며 반찬을 준비하고 밥을 했다.
숙희가 입고 갈 옷을 준비하고, 세수하고 간단하게 얼굴에 로션을 찍어 바르는데 숙희가 깬 것 같았다.
“워메! 우리 강아지 깨부렀네?” 곰소댁은 숙희의 엉덩이를 두드리다가 얼굴에 뽀뽀를 했다.
숙희는 아직도 기분이 풀리지 않은 모습으로 엄마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자 아침인게 엄마한티 어제 뭔 일이 있었는지 말해 봐”
숙희가 고개를 숙인 채, 마치 큰 죄라도 진 것처럼 말했다.
“엄마! 선생님이 엄마 학교 오래.”
“뭣이여?”
“뭔 일이 나도 큰일이 나부렀는가 보다 잉. 워메! 이것이 뭔 일이 당가?”
“근디 선상님이 언제 오라고 허디?”
“될 수 있는 한 빨리 오라고 했어.”
“뭔 일이 있는지는 암 말씀도 안 허시고?”
숙이는 다시 입을 다물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알었어! 이년아! 네 에미가 죽기라도 혔냐? 울기는 왜 울어?”
“아따 속 터져 죽어불거따, 워메 폭폭한 거”
곰소댁은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말했다.
“엄마가 시장 가서 일 좀 보고 학교 갈팅게 걱정 말고 어서 세수도 허고 단장도 혀.”
“너 몇 학년 몇 반이라고 혔지?”
“4학년 3반, 조성철 선생님.”
“알았어. 엄마 시장 나갈팅게 엄마가 해놓은 밥묵고 씩씩허게 학교에 가서 있어. 알었지?”
숙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문 엄마 시장 나간다. 잉”
시장에 나온 곰소댁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고창댁, 자네 새끼들 땜시 학교 가서 선상님 뵌 적 있능가?”
“응! 있지. 아적까지 한 번도 숙희네 선상님 뵌 적이 없간디?”
“먹고사는 일만 신경 쓰느라고 선상님 뵐 생각을 하지 못했응게 내가 죽일 년이지.”
“근디 말이여. 선상님이 먼저 나를 오라고 허는 것은 뭔 일이 있어서 그렁 거겄지?”
“숙희가 와서 그려?”
“응! 이놈의 가시낭년이 울기만 허고 통 말을 안 헝게 뭔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여.”
“애들끼리 싸웠는가 보네.”
“아무리 생각혀도 오늘 장사는 작파허고 학교나 댕겨 와야겠네.”
“그려 어서 댕겨 와! 근디 봉투 하나는 챙겨 갖고 가소.”
“봉투? 무슨 봉투?”
“워메! 이놈의 예펜네 보소. 학교 선상님 뵈러 가는디 빈손으로 갈라고?”
“박카스 한 박스 사 갖고 갈라고 혔는디?”
“아따! 이렇게 세상물정 모르는 예펜네가 있당가!”
“‘촌지’라고 못 들어봤어?”
“‘촌지’? 촌지가 뭐 당가?”
“워메! 폭폭헌 거. ‘촌지’라는 말은 ‘작은 정성’이란 뜻이여.”
“그렁게 작은 정성으로 박카스 사 갖고 간다고 안 헝가?”
“돈봉투”
고창댁이 꽥소리를 지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나 시장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고창댁을 쳐다봤다.
“하얀 편지봉투에다가 만 원짜리 한 장 넣어 가지고 가.”
“세종대왕님 그려진 만원?”
“그려 세종대왕님 말여.”
“선상님이 짜장면 하루에 한 그릇씩 한 달은 드실 수 있어야 할 것 아녀?”
곰소댁은 집에 돌아와 처음으로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립스틱도 발랐다. 아껴두었던 미색 저고리에 짙은 남색 치마를 입고 흰색 버선을 신었다. 그리고 구두도 꺼내 신고 20여 년 만에 들어보는 핸드백에 최사장에게서 빌린 빳빳한 만 원권 지폐가 담긴 하얀 봉투를 넣었다. 처녀 시절에는 몸도 날씬했고, 곰소 바닥에서는 내로라할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뱃사람들이나 염전에서 일하는 남정네들 꽤 울렸던 여자인지라 차리고 나서니 시장에서 탄 얼굴만 아니면 사내놈들이 모두 탐낼 만한 얼굴이다. 부안여자중학교에서 예쁜 축에 속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살집이 붙었나 싶었다.
“이것은 내가 많이 먹어서 찐 살이 아니고 나잇살이여.”
곰소댁은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양평동에 있는 약국에 들러 박카스를 한 박스 사 들고 숙희네 학교 교정에 들어서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서무실을 지나려는데 “어디 가시죠?”라고 서무과 직원인 듯한 사람이 물었다.
“예! 4학년 3반 조성철 선상님을 찾아왔는디요.”
“아 그러세요? 오른쪽으로 돌아가시면 교무실이 있는데, 조 선생님 지금 수업 중일 테니 교무실에 가서 조금만 기다리세요.”
교무실을 향해 가는데 풍금 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곰소댁은 자신도 모르게 복도에 서서 노래를 가만히 따라 불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화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의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곰소댁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마을에 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교무실에 들어서며 곰소댁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니 “누구를 찾아오셨습니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앞에는 ‘교무주임’이라고 쓰인 검은 팻말이 놓여 있다.
“아! 네 저기 조성철 선상님을 좀 뵈러 왔는디요.”
“아! 그러세요. 여기 이 자리입니다. 조 선생님은 지금 수업 중이시니 이곳에서 좀 앉아 기다리세요.”
교무주임 선생은 교무실 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을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그 자리 옆에는 먼저 왔던 학부모인 듯한 사람이 뾰로통해서 앉아 있었다. 교무주임 선생은 그 학부에게 깍듯이 인사를 한 후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학부모는 아주 부잣집 마나님인 듯 한껏 차려입고 멋을 부렸다. 예쁜 귀걸이에 번쩍거리는 시계를 차고, 미장원에서 한껏 부풀린 듯한 머리를 했으며, 옆에 앉는데 진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곰소댁은 혹시 자신에게서 생선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싶어 그 여자 옆에 앉지 않고 한 자리 건너 앉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자신에게서 비린내가 나는지 확인했다. 몇 번이고 씻어내고 화장도 했는데 자꾸 자기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아 곰소댁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랐다.
차임벨이 울리고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소리가 들리면서 출석부와 그리고 책과 지시봉을 든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속속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조 선생님! 회장님과 학부모님이 와서 기다리고 계셨어요”
교무주임 선생이 머리가 상당히 벗어진 40대 후반의 남자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 선희 어머님 오셨어요? 아니, 회장님!”
조선생이라는 사람은 곰소댁은 쳐다보지도 않고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뾰로통하게 앉아 있던 학부모에게 인사를 했다.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녀는 고개를 까딱하며 조 선생에게 예를 차렸다.
그러고 나서야 조 선생이 곰소댁을 바라보았다.
“숙희 어머니시죠?” 그는 곰소댁에게 아까 다른 학부모에게 하던 태도와 달리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 이분이 숙희 어머니예요?”
선희 엄마인지, 회장님인지 하는 사람이 곰소댁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조 선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애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그 모양입니까?”
곰소댁이 어리둥절해서 조 선생을 쳐다보았다.
“선희 어머님! 속상하셨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숙희를 많이 혼냈습니다.”
곰소댁이 가만히 보아하니 선희라는 아이와 숙희가 어제 싸웠고 그래서 담임선생인 조 선생님이 두 학부모를 학교로 부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직 자초지종을 모르니 곰소댁은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를 더 들어볼 요량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깐만요. 곧 4교시가 시작되는데 두 분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얼른 가서 애들 자습을 시키고 오겠습니다.”
“아니 숙희 엄마는 왜 내게 사과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근디 아까부터 지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신가 본디, 나는 선상님이 오라고 혀서 온 것뿐이고 암 것도 모르고 지금 앉어 있는디 무슨 일이다요?”
“아까부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봄서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인디 쪼까 기분이 나쁠라고 허요.”
곰소댁을 만만하게 보았는데 아니다 싶은지 선희 엄마라는 사람은 처음보다 한풀 꺾인 모습이다.
“아이고! 선희 어머님 죄송합니다. 아이들 자습시키고 왔습니다.”
아까부터 조 선생은 곰소댁을 염두에 두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탓인지 선희 엄마는 다시 기가 살아난 모습이다.
“아니, 사내놈도 아닌 계집애 얼굴을 그렇게 손톱으로 할퀴어 놓으면 어떡합니까?”
그제야 곰소댁은 대강의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숙희가 선희라는 아이와 싸우다가 그 아이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이 사건의 전말인 것 같았다.
“그라문 우리 숙희가 선희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것이구먼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두 분의 자리를 만들어서 숙희 어머니가 선희 어머니께 사과를 드리고, 선희 치료를 해주시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오시라 한 겁니다.”
“인자 쪼까 알아듣겄습니다. 선상님! 근디 어찌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는 나도 쪼까 더 알아야 쓰겄구만요.”
“그럼 두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시지요.”
“아니요! 우리 선희를 그런 아이와 함께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 것에 전 반대합니다. 우리 선희 상처 난 것 치료를 해주고, 숙희라는 애가 제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육성회장님!”
곰소댁은 육성회장이라면 뭔가 높은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초지종은 알고 싶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디요? 내가 아무리 무식혀도 ‘고장난명’이란 말의 의미는 알고 있당게요.” “외손뼉은 울릴 수 없다. 즉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습디여? 절대로 우리 숙희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요. 선상님은 우덜보다 많이 배워서 그 자리에 계신 것 아닙니까? 정확하게 해주셔야 할 것 같은디요?”
“네! 선희가 가볍게 숙희를 놀렸는가 봅니다.”
“가볍게 놀렸다고라? 내가 아는 우리 숙희는 그렇게 가볍게 놀리는 말에는 화를 내는 아이가 절대 아닌디요? 우리 숙희와 선희를 불려 주시요.”
조 선생과 선희어머니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숙희야. 너, 에미 앞에서 거짓말 허지 말고 솔직히 이야기혀야 혀. 알았어?”
“만일 네가 잘못했으면 에미가 너를 용서 못혀. 그라고 네가 선희 얼굴에 상처를 낸 것은 분명히 네가 잘못한 것이여. 그건 네가 사과혀. 그라고 내가 치료도 해줄 것이여. 그러나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는 에미 앞에서 솔직히 말혀 봐. 그라고 선희 너도 우리 앞에서 솔직히 말혀야 혀.”
“아줌마! 제가 먼저 잘못했어요.”
선희 엄마는 자기 딸이 먼저 사과하는 것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숙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려. 고마워! 선희야! 네가 뭐라고 혔길래 우리 숙희가 너한티 몹쓸 짓을 했다냐?”
“제가 숙희에게 ”거지야! 비린내 나니 저리가“라고 했어요.”
“아, 그려? 비린내 나는 것은 그럴 수 있어. 이 아줌마가 영등포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허니께 우리 숙희 몸에서 비린내가 날 수 있단 말이여. 그러나 우리가 거지는 아녀. 밥 빌어먹으러 다니는 사람은 아니니께.”
“그리고 제가 ”에비도 없는 년“이라고도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숙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곰소댁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차올라 곧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책상만 바라보고 있다가 울고 있는 숙희를 꼭 껴안았다.
조 선생은 책상 서랍을 반쯤 열어 휴지를 꺼내는 것 같더니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교무실을 나갔다. 그 사이에 선희 엄마는 두툼한 봉투를 아이들과 곰소댁 눈치를 보며 얼른 반쯤 열린 조 선생의 서랍 속에 넣었다. 곰소댁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것을 보았고, 고개를 숙인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그려! 선희야, 우리 숙희 친아버지는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고, 새아빠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 그려서 우리 숙희가 아직 슬퍼. 아직 슬프다고.... 그렁게 쬐까만 도와주라 잉. 그라문 이 아줌마가 니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이뻐해 줄 팅게.”
선희가 갑자기 “와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교무주임과 뒤늦게 들어온 조 선생이 선희를 껴안으며 달랬다. 선희 엄마는 핸드백을 챙기더니 인사도 없이 교무실을 나갔다.
“선상님! 지는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지만 사람 속이지 않고. 이 세상에 사람이 젤이라고 생각허먼서 살고 있구먼요.”
“우리 불쌍헌 숙희 미워허지 마시고 쬐끔만 돌봐주시면 백골난망이겄구만요”
“아무럼요. 우리 선생들은 학생들 차별하지 않고 모두 사랑합니다.”
“정말로 감사헙니다. 그라문 저 선상님만 믿고 가겄습니다. 선희 치료비는 제가 내드리겠습니다.”
“아녜요 아줌마! 저 마데카솔 연고 있어요. 그리고 상처도 보시다시피 크지 않아요.”
곰소댁이 선희의 얼굴을 부여잡고 뽀뽀를 해주었다. 선희의 얼굴은 숙희의 손톱자국이 있었지만, 곧 딱지가 생겼다 떨어지면 아무 흔적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숙희랑 친하게 지낼게요.”
교무실에 앉아 있던 선생님 둘이 환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둘이 껴안고 서로 볼에 뽀뽀해”
숙희와 선희는 서로 꼭 껴안았다.
“고맙다. 선희야, 세상 사람이 항상 부자인 것도 아니고, 항상 가난헌 것도 아니여. 돈이라는 것은 ‘돌고 돈다”고 혀서 돈이여! 여그 내 봉창에 있는 돈 100원이 계속 내 봉창에 있는 것은 아니잖여. 언제 내 봉창을 떠나 선희, 네 봉창으로 갈지 모르는 벱이여. 우리 숙희가 나중에 부잣집 사모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여. 그렁게 둘이서 친허게 지내. 알았지?”
“선상님 지가 돈이 없어서 갖고 올 것은 없고 박카스 한 박스 가져왔구만이라우. 제 작은 정성으로 받어주시면 감사허겄습니다.”
조 선생은 한번 사양하는 듯하더니 박카스를 받았다.
곰소댁이 ‘고향 순대국밥’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최 사장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마솥 앞에서 뼈를 건져 올리며 땀을 닦고 있었다. 곰소댁은 한복 치마를 대충 걷어 올리고는, 어제 최 사장이 술잔을 내려치며 절규했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오라버니! 나도 이제 ‘돈이 이기는 세상’이 뭔지 알아부렀네."
최 사장은 곰소댁의 곱게 차려입었던 한복 차림과 상기된 얼굴을 보고 잠시 놀랐다.
“학교는 갔다 왔능가? 뭔 일 있었어?”
곰소댁은 만 원짜리 봉투가 든 핸드백을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거기, 만원 봉투 아직도 들어있을 거여. 그 육성회장이라는 여자는 돈봉투를 선생 서랍에 넣드라고 그리고 두툼하더라구, 근디 내가 그걸 봐부렀네. 그걸 보고 낭게 왜 미스리가 오라버니의 뜨거운 국물을 버리고 박 사장집으로 들어갔는지 알겠더구먼.”
“나 오늘 한잔혀야 겄어. 어이! 고창댁! 오늘 나랑 찐허게 쐬주 한잔 찌크러 부릴랑가?”
“그려! 하루 장사 못헌다고 굶어 죽겄는가? 한잔 해불세.”
고창댁이 국밥집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오라버니 여그 암뽕 하나, 내장 하나, 그리고 수육 한 접시에 진로소주 한병!”
“지화자!”
고창댁과 최사장이 합창을 했다.
“좋다”
곰소댁이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