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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17화 수아와 영석이의 학교 생활


"삼춘! 우리 둘째 오빠 면회 가지 않을래?"

"면회? 둘째 오빠가 어디 있는데?'

"응! 구파발 부근에 있는 군대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내가 보고 싶다는 편지가 왔어."

영석은 당황스러웠다. 수아의 오빠를 만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내가 가도 되는 거야?"

"그럼! 되고 말고. 우리 둘째 오빠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심리학과에 다니고 있는데, 삼춘하고 이야기 상대가 될 것 같고, 나도 남자 친구를 오빠에게 소개해주고 싶어서 그래. 나는 큰오빠보다 작은 오빠와 가장 말이 잘 통하거든. 내가 오빠한테 삼춘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낯을 가리는 영석이는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왜? 우리 오빠 앞에서 면접 보는 기분이 들어서 그래?"

"아냐. 그렇다기보다 처음 뵙는 거라서..."

영석은 말꼬리를 흐렸다.

"같은 대학생이잖아. 내가 모르는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면 좋지 않겠어? 옆에서 귀동냥하다 보면 나도 배우는 게 많을 것이고."

"알았어. 그럼 언제 갈 건데?"

"이번 토요일 어때?"

"알았어."

"그런데 면회 가기 전에 알아야 할 점이 있어. 우리 둘째 오빠가 현 시국에 아주 관심이 많고, 현 정부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사람이야. 큰 오빠하고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 아빠와 통하는 데가 아주 많은 사람이라는 거지. 그런데 웃기는 건 박통체제에 비판적인 우리 아빠가 둘째 오빠가 데모하다 잡혀갈까 봐 강제로 군대에 보내버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지."

"부모님 마음은 다 그러신 가봐. 우리 엄마도 맨날 데모하지 말라고 하셔."

영석이가 대답했다.

"우리 둘째 오빠가 학교 정문 앞에서 유인물을 뿌리다가 관악파출소에 끌려갔고, 우리 아빠가 절대로 데모하지 않도록 하겠으며, 만일 또 데모하다 걸리면 군대에 보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오빠를 꺼내왔거든."


영석은 관악파출소는 '동양 최대 파출소'라는 자조적인 별칭을 갖고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약 300명의 경찰관이 상주하며 숙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악파출소는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발생하는 시위의 규모가 커지자, 캠퍼스 진입을 막거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하는 상징적인 시설로 알려져 있다. 신문에 연일 '불순 세력 척결'이르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리고, 성균관대학교에서도 수시로 학내 데모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거의 매일 보고 있는 영석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아빠는 "네가 정의롭다는 것도 알고 있고, 네가 나보다 백배, 천배 똑똑하고 용기 있다는 것도 알지만, 네가 거리에서 외치는 자유가, 잡혀가서 겪을 고통보다 소중한 것이냐?',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 독재의 시대에 섣불리 나서지 말아라."라고 신신당부하곤 했어."

"그럼 오빠는 어떤 태도를 취했지?"

영석은 수아 둘째 오빠의 반응이 정말 궁금했다. 자신 역시 입학하자마자 데모에 잎장서는 친구들에게 심한 마음의 부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영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비겁하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다. 특히 입학하자마자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몰두하는 법대생들의 경우, 데모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우리 엄마까지 나서서 "너는 우리 집안의 희망이다. 네가 잘못되면 이 어미가 어떻게 사냐?"라고 하시면서 눈물로 호소했어."

"그러니까 오빠가 뭐라고 했냐니까?"

영석은 수아 둘째 오빠의 반응이 어땠는지 알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엄마! 제가 왜 잘못됩니까? 저는 옳고 정의로운 일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저희들이 나서지 않으면 이 나라는 영원히 잠들어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어."

영석은 수아의 둘째 오빠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자신과 같은 경계인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또한 자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자문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안다. 안다. 네 말이 맞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네가 잡혀가 고문당하는 것만큼 이 어미를 아프게 하는 일은 없다. 너 하나 때문에 이 집안이 풍비박산 날까 봐 두렵다."라고 말하니까 오빠가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라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데모 안 한 거야?"

영석은 자못 궁금했다.

"안 하긴? 이번에는 성대까지 가서 데모하다 혜화경찰서에 끌려갔어."

"우리 학교?"

"그래! 서울대, 성대, 연대, 고대 등의 대학생들이 경인지구 연합회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연대활동을 펼쳤거든. 그런데 성대 도산연구회와 낙골야학 동지들과 오빠가 자주 만났다나 봐."

"아! 그랬구나."

"우리 둘째 오빠는 '용공불순세력', '불온학생'으로 찍혔고, 병역법 제65조(징집연기취소)에 근거해서 군대에 가게 된 거야."

"병무청이 '공공질서 문란행위'나 '국가 안보 위협 행위'로 판정된 자에 대해서는 징집연기 사유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실제로 경찰이나 중앙정보부, 문교부의 통보를 받은 병무청이 행정명령으로 즉시 징집통지서를 발부했어. 우리 오빠도 그런 케이스라 할 수 있어."

"법적 절차라기보다 정치적 보복수단에 가까운 것이네."

영석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석이도 선배들로부터 체포 및 조사 시위 참가 학생들은 경찰이나 보안사,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게 되고, 주동자나 반복 참가자는 ‘불온인물’로 분류되며, 각 대학의 학도호국단, 문교부, 경찰서 또는 보안사 정보과에서 병무청으로 그 명단이 송부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리고 그 명단은 “소요 주동자 ○○○ 등 ○명 강제입영 조치 요망” 등의 내부 공문 형식으로 전달되고, 병무청은 해당자의 징집연기(대학생 신분)를 취소하게 되는데, 해당자는 즉시 징집대상자로 전환되고. 대부분 훈련소 입소 통지서가 1~2주 내 도착한다고 하였다. 결국 학생은 구금에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논산훈련소, 육군훈련소 등으로 강제 입소하게 된다는 말인 것이다.


3월 말의 서울역 앞은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쌀쌀함 속에 있었다. 그러나 해가 길어지고 공기 중에 미세하게나마 봄의 기운이 섞여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새벽녘의 회색빛 하늘 아래, 웅장한 서울역사의 건물은 여전히 굳건했고, 길거리의 가로등은 퇴색한 도시의 새벽을 비추고 있었다.

영석과 수아는 70번 시내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드문 인파 속에서 짙은 녹색의 70번 버스가 요란한 공기 제동 소리와 함께 도착했다. 토큰을 투입구에 넣는 '짤랑'하는 소리가 이른 아침의 정적을 갈랐다. 버스는 남대문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시청 주변의 고층 건물들과 상업 지구는 아직 잠들어 있었고, 창밖 풍경은 서울의 경제 심장부의 엄숙한 새벽을 보여주었다. 시청 앞을 지날 무렵,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고,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의 묵은 때를 씻어내는 청소 차량도 보였다.


광화문 네거리를 통과하자, 멀리 보이는 북악산과 인왕산 봉우리에는 여전히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겨울의 끝을 붙잡고 있었다. 버스는 종로 대신 새문안로를 거쳐 경교장 근처를 지나 독립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홍제동과 녹번동을 지나며 점차 서울의 중심부를 벗어났다. 길가의 가게들은 낡았지만, 그 위로 비치는 아침 햇살은 희망적인 빛을 띠기 시작했다. 3월 말의 흙냄새, 겨울의 건조함이 사라지고 땅이 머금기 시작한 물기가 섞인 습한 냄새가 차창을 통해 은은하게 느껴졌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버스는 진관동을 지나 구파발 쪽으로 깊숙이 들어섰다. 북한산 자락이 더욱 가까워지자,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푸르스름한 산세가 주변을 압도했다. 길가에는 간혹 군용 차량들이 지나갔고, 그것들이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아오르는데, 위압적인 철조망과 초소의 모습은 이 지역이 군사 지역임을 상기시켰다.


마침내 70번 버스의 종점 근처 정류장에 차가 멈춰 섰다. 승객들은 외곽의 찬 기운을 맞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새벽의 쌀쌀함은 여전했지만,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워져 있었다. 저 멀리 북한산 계곡을 따라, 곧 따뜻한 봄 햇살이 깊숙이 스며들 것 같은 예감과 함께 목적지인 군부대의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30사단이라고 했다. 봄의 길목에서 만나는 군 면회는 희망과 기다림의 복합적인 감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한껏 치장을 한 풋풋한 여성들은 애인을 만날 설렘에 상기된 얼굴이었고, 보따리를 바리바리 든 어르신들은 오랜만에 만날 아들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 탓인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오빠 나온다."

"안녕하세요? 김영석이라고 합니다."

영석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수아의 오빠는 거수경례를 했다.

"아! 수아의 편지를 통해 말씀 많이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수아 오빠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고, 영석은 두 손으로 공손히 수아 오빠의 손을 잡았다.

"오! 손이 참 따뜻하시네요. 심리학에서는 '물리적인 따뜻함'이 '사회적인 따뜻함', 즉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나 이타심과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악수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가 영석 씨가 타인에게 얼마나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비언어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매우 좋은 느낌입니다."

사실 영석은 주변 사람들과 악수를 할 때마다 손이 따뜻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때마다 흘려듣곤 했는데 수아 오빠로부터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수아오빠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적인 냄새가 팍팍 풍기다 못해 상대편을 압도하는 느낌이 드는 건 무엇때문일까?


"오빠! 오늘 우리가 여기 오는 거 아빠와 엄마는 모르셔. 따라오신다고 할까 봐 아무 말도 안 하고 왔어. 그래서 엄마의 음식을 맛 보여 주지 못해 미안해. 대신에 내가 식당에 가서 특별히 주문해 온 도시락을 먹어 봐."

여기저기서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는 소리에 면회소는 아주 시끄러웠다.

"아주 맛있구나. 영석 씨도 어서 드세요."

"제가 두 살 아래니까 펀하게 말을 놓으시죠."

"오빠 그렇게 해. 삼춘도 그게 더 마음이 편할걸? 안 그래?"

수아가 오빠 한번 보고 영석이를 한번 보며 말했다.

"그래! 그게 좋겠다."

낯을 가리는 영석이도 초면에 쉽게 말을 건넬 수 있을 정도로 수아의 오빠는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게다가 탤런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준수한 용모의 귀공자 스타일이라 촌놈 스타일인 영석은 조금 주눅이 들었다.


"그런데, 형님! 군대 생활은 견딜만 하십니까?"

수아 오빠는 주변을 경계하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문제 인물'이야. 감시대상으로 분류되어 헌병이나 정보부대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어."

영석은 괜한 것을 물었구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오빠! 그럼 맞기도 하나? 의문스러운 죽음이나 구타사건도 있다던데."

"엄마, 아빠는 건강하시니?"

수아 오빠가 갑자기 화제를 전환했다.

"응! 안녕하셔. 다만 나한테 자꾸 시집가라고 해서 짜증이 나."

수아 오빠가 영석의 얼굴 표정을 힐끗 살피며 수아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형님이 군대 가실 때 부모님께서 뭐라고 설득하셨어요?"

"설득하고 말고 가 어디 있나? 강제징집이나 마찬가지인데."

수아 오빠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다만 프랑스문학을 전공하신 우리 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어."

"뭐라고 하셨는데요?"

"아들아,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카뮈라는 작가가 '페스트'라는 소설에서 "우리는 언제나 역병(페스트)과 싸워야 한다. 하지만 역병 속에서 살아남아 그 역병이 끝날 때까지 증인이 되어야 한다."라고 했어. "지금 이 시대가 바로 페스트와 같다. 네가 지금 혼자 나서서 싸운다고 역병이 끝나지 않아. 네 몸을 지키고, 군대에 가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이 어둠이 끝나면, 그때 네가 나서서 이 모든 것을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일이다."라고도 하셨지."

영석은 누나가 자신의 입장에서는 증언자가 되는 일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형님은 어머니의 말씀에 설득되어 오신 거군요."

"절대 아니라네. 증언자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전면에서 투쟁해야 할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난 아까 말했지만 강제징집당한 거야."

"수아랑 예쁜 사랑하게. 응원할게."

영석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오빠는 응원해줄 거지? 큰 오빠는 아닐 거야."

영석은 기분이 우울해졌다.


다음 날, 영석은 안림 교수의 '경제학 개론'을 청강하러 수선관에 갔다. 안림교수는 학생들에게 매우 유명한 분이다. 영석은 수강신청서를 작성할 때, 무슨 과목을 수강해야 할지 몰라 남들이 따라 하는 대로 적어서 제출했는데 입학하고 보니 듣고 싶은 과목들이 아주 많았다. 특히 인문과학 쪽 강의도 듣고 싶고, 경제학 과목도 아주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오늘은 빈 강의시간을 이용해서 선배들이 추천한 안림교수의 강의를 듣기로 한 것이다.

법대 건물에서 수선관으로 가려면 금잔디광장을 지나서 가야 하는데 금잔디 광장에는 누가 봐도 경찰로 보이지만, 대학생처럼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앉거나 비스듬히 드러누워서 지나가는 여학생들 모습을 가지고 순위를 매기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라도 지나간다 싶으면 괜히 불러서 유인물이 있나 조사한다면서 가방 검사를 하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수치스러움에 항의해보기도 하고 급기야는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한다.


대형강의실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앉거나 서 있었다. 영석도 자리를 잡지 못해 강의실 뒷벽에 기대고 섰다.

영석은 안림교수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의에 거침이 없고, 학생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명쾌하게 강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너! 짭새지? 짭새가 왜 내 강의실에 들어왔지?" 안림교수가 강의를 하다 말고 크게 소리쳤다. 학생들의 시선이 가방을 들고나가는 한 남학생게게 꽂혔다.

"아닙니다. 교수님 저 ROTC 학생입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미안하네."

안림교수가 머쓱한 표정을 짓자 학생들이 '와'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안교수님은 그 학생이 머리를 짧게 잘랐고, 일반 학생들이 들고 다니지 않는 007 가방을 들고 있으며, 그것도 수업중간에 나가니 경찰로 오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 강의에 짭새들이 들어오는 것을 난 용납할 수 없어. 보다시피 학생들이 앉을자리도 없는데."

영석은 안림교수가 절대로 '어용교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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