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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20화 정화와 영석(2)


오후 7시를 훌쩍 넘긴 시간, 종각역은 어둠 속에서도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탄 수원행 전철은 영석이가 평소 자주 이용하는 시내버스나 붐비는 통학길과는 또 다른, 무거운 활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전철 안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서 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없었다. 영석은 전철이 끽끽 소리를 내며 흔들릴 때마다 행여 정화가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손잡이를 꽉 잡고 서 있었다. 영석의 마음은 여전히 미팅으로 인한 수아에 대한 죄책감과, 눈앞에 선 정화라는 낯선 아름다움 사이에서 복잡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전철이 영등포를 지나면서 승객들은 조금씩 빠져나갔고, 구로역을 지나자, 영석과 정화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어둠 속의 도시 불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기차가 꽤 흔들리네요.”

영석이 어색함을 깨고 말했다.

정화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무릎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저는 익숙해요. 수원까지 왔다 갔다 하면 하루에 네 시간은 기본이니까요.”

“네 시간씩이 나요?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보통 우리 학교 여학생들은 가까운 곳에서 하숙하거나 자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석은 정화의 등·하교 길이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수인선을 타는 경우와 수원역에서 구로역으로 와서 다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인천으로 가는 경우 중에서 어느 경우가 더 빠르지요?”

“수인선은 협궤열차이고, 자주 있지 않아요. 그리고 정차역이 아주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서 저는 구로역에서 1호선을 갈아타고 인천으로 가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수원역에서 구로역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40분 정도 걸려요.”

사실 영석은 아까부터 수원역에서 다시 영등포역으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자칫 늦어서 통행금지에 걸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화의 말을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서두르기만 한다면 적어도 10시 반까지는 영등포역에 도착할 수 있고 오목교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저는 자취나 하숙보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것이 더 좋아요. 저는 애들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교대에 갔는데, 수원에서 인천까지 전철로 다닐 수 있잖아요. 이것도 시대가 준 혜택이라 생각해요.”

정화가 환하게 웃었다.

“혜택이라!”

영석은 정화의 긍정적인 해석에 잠시 말을 잃었다. 자신에게 시대는 늘 ‘부채’나 ‘억압’이라는 부정적 단어들이 유령처럼 따라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팅은 왜 나오셨어요?”

정화가 갑자기 영석이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영석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네? 그게 저, 아까 태종이라는 제 친구 봤지요? 그 친구 성화에 못 이겨서 나왔어요. 저는 사실 이런 낭만을 누릴 자격이 있는 건지 늘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영석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수아라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과 수아 오빠에 대한 죄책감과 TIME 지 기사의 검은 칠 아래 숨겨진 진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정화는 영석의 복잡한 표정을 읽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종로에서 ‘이문설농탕’이라는 집에 갔었잖아요?”

“네 갔었지요.”

“그런데 왜 ‘이문설농탕’이 왜 이문동에 있지 않고 종로에 있는 거죠?”

영석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아니! 정화 씨는 어떻게 저와 똑같은 의문을 가지셨죠?”

“정말요? 오빠도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고요?”

정화가 ‘오빠’라고 하자 영석은 당황했다.

“아니! 왜 저에게 오빠라고 하시죠?”

“저에게 재수하셨다고 했잖아요.”

“저는 재수를 하지 않았으므로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지요.”

정화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한 살 차이에 오빠는 무슨?”

영석이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아니에요. 제가 7살에 국민학교에 입학했거든요.”

그 말을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영석이 본 정화의 얼굴은 무척 앳돼 보였다.

“옛날 사람들은 5살 정도의 나이 차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면서 친구로 지냈다던데. 오성과 한음의 경우가 그랬어요.”

“그래도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정화는 단호했다. 영석도 그런 정화의 태도가 싫지만은 않았다.


“여하튼 아까 제가 가졌던 의문을 오빠는 푸셨나요?”

“그럼요. 제가 다닌 학원이 종로에 있었잖아요.”

“종로에 학원이 있으면 다 알게 되나요?”

정화가 재미있다는 듯 키득키득 웃었다.

“제가 궁금해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직접 식당에 가서 물어보기도 했어요.”

“‘이문(里門)’이라는 한자는 똑같아요. 그러나 ‘이문설농탕’과 ‘이문동’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고 유래도 같아요.”

정화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 귀를 쫑긋하고 영석 쪽으로 고개를 돌려 영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영석은 그런 정화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어서 전철 바닥을 보며 이야기했다.

“‘이문설농탕’이라는 식당 이름에서 ‘이문(里門)’은 조선 시대 한양을 나누던 작은 행정 구역인 리(里)의 입구에 세웠던 ‘마을의 문’을 뜻해요. 이 ‘이문’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밤에는 문을 닫아 주민들의 치안을 유지하고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던 질서와 규제의 상징이었대요. 따라서 ‘이문’은 야간통행자를 검문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문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문설농탕’이 자리했던 종로 일대는 바로 이 ‘이문’이 있었기에 ‘이문골’이라 불렸고, 따라서 이 식당의 이름은 억압적인 시대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서민들의 삶터였음을 증명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지요.”


“‘이문골’, ‘이문안’은 지금의 YMCA 건물 뒤쪽에 있었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마을 문인 ‘이문’이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조선 중종반정 공신(功臣)이었던 능천부원군 구수영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증손자인 구사맹은 인조의 외조부이고, 인조의 생모인 인현왕후는 구사맹의 딸이자 구수영의 고손녀래요. 따라서 인조가 이 집에서 살았다는 것은 어릴 때 외가에서 자랐다는 뜻이 되지요. 그 후 이 집은 안동 김 씨에게 넘어가 헌종의 후궁 경빈 김 씨의 궁인 순화궁(順和宮)이 되었다가 이완용의 집, 그리고 나중에는 요릿집인 태화관(太和館)으로 바뀌었어요. 그 후 1919년 3월에는 민족 대표 33인이 모여서 ‘대한독립선언’을 외치기도 했다더군요.”


“다시 말해, ‘이문안’이란 땅이름은 지금의 인사동과 공평동과의 경계 지점에 ‘이문’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이름이고, 한자로는 ‘이문동(里門洞), 또는 ’이문내(里門內)‘라고 했답니다. ‘이문’은 세조 11년에 처음으로 생겼는데, 여기에서 장정 몇 명이 번갈아 보초를 서며 도둑을 지켰대요. 인사동의 ‘이문’은 1930년대까지 남아 있었고, 옛날에는 서울에 10집 정도 이상의 마을이면 대개 ‘이문’이 있었답니다. 청진동, 계동, 다동, 회현동, 명륜동, 소공동 등에도 이문이 있어서 ‘이문’ 또는 ‘이문동’, ‘이문안’이리 불렀는데 지금은 서울에 딱 하나의 ‘이문동’만 남아 있어요. 어딘지 아시겠죠? 그리고 ‘쌍문동’은 쌍갈래 길에 ‘이문’이 있어서 ‘쌍문동’이라 부르고, 중구의 ‘쌍림동’은 전에 ‘쌍이문’이 있었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많은 ‘이문’들이 불에 타 없어졌대요.”

“어쩌면 그렇게 해박하세요?”

정화는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석을 바라봤다.

“국사는 그저 외우는 과목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귀에 쏙쏙 들어오고 너무 재미있어요. 나중에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을 때 오빠처럼 가르쳐야겠어요.”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저는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게 있으면 파고드는 성격이거든요.”

정화는 그저 감탄스러울 따름이라는 표정으로 영석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영석은 그런 정화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전철 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연대장까지 하셨으면, 정권이 요구하는 ‘질서’와 ‘충성’'을 잘 배웠겠네요. 저는 충무수련원에서 열흘간 교육을 받고 나오니까 애국자가 되던데요?”

정화는 영석이 하는 말을 듣더니 빙긋이 웃었다.

“겉으로는 그랬죠. 학교에서 훈련받고, 명령을 따르는 일. 하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누가 저를 틀 속에 가두려고 하면 튀는 사람이라 우리 아빠나 엄마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우리 아빠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항상 당신은 군대가 당신의 체질에 적합하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그런데 그런 환경들을 어떻게 견뎌내셨어요?”

“이중생활을 하는 거죠. 뭐. ‘틀’이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쓰고 공적인 역할이나 딸의 역할에 충실한 후, 사생활에서는 완전히 그 틀을 벗어던지고 나 자신의 진정한 가치에 맞는 활동에 몰두하는 거죠. 다시 말해, ‘틀’을 나를 억압하는 감옥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찾아내는 도전 의식을 발휘하는 동력으로 삼는 거죠.”

“결국 가능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실제 내면의 성격과는 다를 수 있지만 사회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상황에 따라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페르소나’(Persona)죠?”

“맞아요.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의 말에 잘 따르는 것처럼 살면서 밖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했어요. 일종의 가면을 쓴 거죠.”

“그런데 칼 융은 페르소나에 완전히 동화되어 진정한 자기(Self)를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는데 정화 씨는 그러지 않고 정말 잘 사신 것 같네요.”


“오빠! 이제 말 놓으세요. 제가 오빠라 하는데, 계속 제게 경어를 쓰시면 좀 그렇잖아요.”

“그렇다면 저랑 다시 만나겠다는 겁니까?”

영석은 봉숙이의 부탁이 기억나서 정화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에게 애프터 신청을 안 하려고 했던 거예요? 저는 미팅이란 걸 처음 해보는 건데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저도 처음인걸요.”

“그러니까 당연히 서로에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 안 되죠.”

“그렇다면 첫 미팅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안 들더라도 반드시 애프터 신청을 해야 하는 거군요?”

“그런 말은 아니죠. 이렇게 예쁜 사람이 차인다는 것은 너무 비극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정화 씨는 마음에 안 들더라도 첫 미팅을 하는 상대방을 배려하여 꼭 다시 한번 만나실 겁니까?”

정화는 멈칫했다. 영석은 정화 역시 수아만큼이나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석은 봉숙이의 부탁도 있고 해서 정화에게 언제쯤 어떤 방식으로 애프터를 신청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오히려 정화 쪽에서 긍정의 신호를 보내오니 한시름을 던 형국이 되었다. 그래서 영석은 이 순간만은 수아의 존재를 잊은 페르소나로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정화는 영석에게 단순한 미팅 상대를 넘어, 자신과 똑같은 시대의 고민을 공유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긍정하고 헤쳐 나가는 새로운 종류의 매력을 가진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영석이의 수아에 대한 사랑이 옅어졌거나 수아를 버리고 정화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영석은 정화의 말처럼 영석의 페르소나로 행동하려 한 것뿐이다.


전철은 어둠 속을 질주하며 율전과 화서역을 빠르게 지나쳤다. 율전에는 성대 수원캠퍼스가 건립되어 올해부터 이공대학 공학부와 농학부의 2, 3, 4학년생들에 대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서울캠퍼스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데모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수원캠퍼스 건립에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로 성대가 갖고 있는 유교적 전통과 종합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은 하나의 캠퍼스, 즉 서울캠퍼스에 집적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캠퍼스가 서울과 수원으로 이원화되면서 대학의 역사적 구심점이 약화하거나 서울캠퍼스의 위상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었다. 둘째로는 새로운 캠퍼스 건설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면서 기존 서울캠퍼스의 교육 시설 개선이나 복지 향상 등 재학생을 위한 투자가 소홀해질 것을 우려하는 시각이었다. 물론 새로 지어지는 수원캠퍼스의 교육 환경이나 편의시설이 미비할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수원으로 캠퍼스가 분리되면서 학생과 교수진이 겪게 될 장거리 통학 및 교통 불편에 대한 반대가 컸다. 특히 서울캠퍼스에 남아 있는 학생들의 불만이 컸는데, 아예 서울캠퍼스를 없애고 수원캠퍼스로 통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영석은 서울캠퍼스가 너무 협소하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지라 그러한 논리에 찬성하지 않았다. 특히 앞으로 성대가 발전하려면 다른 학교에 비해 너무나 뒤져 있는 이공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원화된 캠퍼스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데모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없었다.


차창에 비친 영석의 얼굴은 낮의 복잡한 고뇌 대신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세상일은 참 모르겠어요.”

영석이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어제까지 전혀 모르던 우리가 오늘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수원까지 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현상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영석이 정화를 처음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더 큰 질서나 원인에 의해 일어난 필연적인 사건이 아닐까요?”

정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기야 불교에서는 옷깃만 스치는 작은 만남조차 전생에 500겁(劫) 동안 쌓인 깊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잖아요.”

영석이가 자못 심각한 듯 말했다.

“저는 요즘 철학 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스토아 철학에서도 우주는 운명과 섭리 즉 ‘로고스’에 의해 완벽하게 짜여진 대로 움직인다고 했어요. 그리고 인간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알고 보면 그 필연적인 질서를 인간이 알지 못하기 때문일 뿐이래요.”

정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철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현대 철학, 특히 실존주의는 세상은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우연’의 연속일 수 있지만, 그 우연한 만남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관계를 맺을지,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합디다. 다시 말해, 어제의 낯선 사람이 오늘 나의 삶에 들어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그 만남을 피할지, 대화할지, 밥을 먹을지 결정한 나의 선택에 의해서 규정된다고 했어요.”

“결국 모든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고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네요.”

정화는 활짝 웃으며 영석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맞아요. 그래서 오빠가 수원에 가고 있는 것이고. 또 수원역에 내리면 또 어떤 결정을 하겠지요? 그리고 그것조차 큰 틀에서 보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겠네요.”

정화는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 진짜 도착하나 봐요.”

전철이 속도를 줄이며 수원역 플랫폼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오후 8시 35분.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영석의 마음은 급해졌지만, 정화가 인계동 가는 버스를 타는 것까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철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승객들이 빠져나간 플랫폼 위로 걸어 나왔다. 수원역은 서울역처럼 화려한 역사는 아니지만, 경기도 남부의 중심지답게 활기가 넘쳤다. 역사 밖으로 나오자, 아직은 조금 찬 기운이 코끝을 스쳤다.

“인계동 가는 버스는 건너가야 있어요. 이제 저 혼자 갈 수 있으니까 제게 연락처나 주고 가세요.”

영석은 갑자기 수아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한 번은 애프터 신청을 하라던 봉숙이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려 애를 썼다.

“그런데 우리 집에 전화가 없는데 어쩌죠?”

“그렇다면 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되잖아요.”

정화는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부모님께서 낯선 남자가 전화를 해도 괜찮다고 하실까요?”

“우리 엄마는 남자 친구 좀 데리고 와보라 했어요.”

“그런데 오빠 집주소는 있을 거 아녜요?”

영석은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오목교 판잣집 집주소를 적어주었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빠의 이야기 덕분에 지겨운 통학길이 처음으로 짧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다음 약속은 오늘 정하지 말고 서로 연락하기로 해요. 그리고 오빠 학교로 찾아가도 돼요?”

정화가 영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큰 눈이 반짝였다.

“그럼요. 저도, 정화 씨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어요. 정말 고마워요. 돌아가는 길이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아침에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할 테니 어서 가서 쉬세요.”

영석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네! 오빠도 어서 통행금지 걸리지 않게 서둘러서 가세요. 그리고 나는 목적지에 다 왔으니 먼저 가세요. 가는 걸 지켜봐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정화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영석이 다시 전철 타는 곳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석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 서울 방향 전철을 타기 위해 급한 발걸음을 옮겼다.


영석은 다행스럽게도 서울로 가는 전철을 바로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출발지이고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전철 안은 빈자리가 아주 많아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전철은 굉음을 내며 다시 어둠 속을 가르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것은 드디어 태종이와의 실랑이가 끝났다는 안도감과 통행금지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곧 그 안도감은 죄책감의 무거운 그림자에 완전히 짓눌렸다. 영석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머릿속은 '페르소나'라는 가면으로 잠시 합리화했던 즐거움의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정화는 철학적 사유와 긍정적인 현실 인식을 가진, 이 시대가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청춘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딱딱한 교과서나 검은 칠이 된 시사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생생하고 진정한 ‘숨구멍’이었다. 태종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중생활을 하는 거죠, 뭐. 틀이 요구하는 페르소나를 쓰고...”

정화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 오늘은 ‘페르소나’였다. 수아에게 미안함과 부채를 느끼는 본연의 김영석이 아닌, 태종의 성화와 시대의 압박에 잠시 도피하려 했던 청년의 가면. 그 가면을 쓴 덕분에 그는 ‘로고스’와 ‘자유의지’를 논하며 한밤의 낭만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가면 놀이는 구로역에 다다르기 전에 끝내야 했다.


영석은 눈을 감았다. 수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정한 머리 모양, 늘 맑고 곧은 눈빛. 수아는 그에게 시대의 진실 그 자체였다. 그녀는 ‘낭만’을 이야기하기 전에 ‘책임’을 먼저 이야기했고, 수아의 둘째 오빠는 ‘이중생활’'을 허용하는 ‘페르소나’'를 쓰는 대신 진실한 마음으로 거짓된 자들과 싸우고 있다.

“수아에게 미안한데, 수아 오빠는 힘든 길을 가고 있는데, 나는 기껏 이문동의 유래나 읊으며 다른 여자의 미소를 보고 있었단 말인가?”

영석은 주머니 속에서 정화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꺼냈다. 종이의 감촉이 죄의 무게처럼 느껴졌다. 태종은 ‘경계인이 잠시 쉬는 쉼터’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자신이 이 쉼터에 머무르는 것은 수아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시대의 짐을 회피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진정한 자기(Self)’는 정화의 말처럼 낭만을 찾으라고 속삭이는 것이 아니라, 수아 곁에서 부채를 갚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전철이 영등포역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영석은 메모지를 단단히 접어 바지 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이 이상은 안 된다. 딱 한 번만 더 만나고 이 만남을 여기서 단절시키자. 정화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수원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인연의 끈을 놓아야만 한다. 나는 수아에게 돌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 이 불안한 청춘이 시대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전철이 덜컹거리며 영등포역에 정차할 때까지 영석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정화의 맑고 솔직한 눈빛, 역사 속에서 ‘낭만적 저항’의 명분을 찾으려 했던 태종의 논리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던 정화의 ‘생존으로서의 긍정’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영석은 수아에게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수원역 플랫폼에 남겨두고 온 것은 단순한 미팅 상대가 아니라, 암울한 시대 속에서 잃어버렸던 자신의 밝고 자유로운 가능성의 조각일지도 모르며, 그 조각이, 앞으로도 오래도록, 영석의 깊은 잠을 방해하는 작은 파편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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