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어느 날.
대학로에서 소양교육을 받았다.
어떤 놈이 친절을 베풀면 무조건 도망가라 배웠다.
배낭 하나 메고 상훈이 놈과 비행기를 탔다.
히드로 공항에 내려 전철을 탔는데 바닥이 나무판대기였다.
술 취한 영국 놈이 여행계획 세우던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며 소리쳤다.
서울역에 막 내린 쩌어그 전라도 산골 촌놈처럼 눈치 보며 입을 닫았다.
배를 타고 도버해협을 건너 벨기에 오스탄드에 닿았다.
잘 생긴 백인이 다가와 자기가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한국인들 모두 도망갔지만 나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한국인이었다.
2000년 8월 어느 날.
김포공항을 출발해 워싱턴 덜래스 공항에 도착했다.
완수와 동완이란 놈이 마중 나왔다.
처음 보는 내 친구 정환이 후배들.
나보다 먼저 미국물 먹은 두 놈은
촌스럽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잔뜩 쫄은 나는 또 눈치보며 입을 닫았다.
차를 타고 도착한 메릴랜드 하숙집.
완수와 동완이에게서 미국을 배웠다.
2025년 2월, 인천공항.
홋카이도로 증권법학회 세미나를 간다.
이 나라가 처음인 듯 눈치 보는
외국인들이 지천이다.
1990년의 나와 2000년의 내가 거기 있었다.
완수랑 동완이 이놈들!
무던히도 날 놀렸겠다.
저승 가는 공항에서는
내 앞에서 고개 숙여 절하고
웃으며 보내라.
거기에서는 이승에서 온 촌놈들을
내가 마중나가 위아래 훑어볼 테다.
그러면 너희들 쫄아서 입을 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