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서울의 주요 도로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밤이 되면 특히 더 그랬다. 통행금지 시간이 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자연스레 귀가를 서둘렀고, 술집과 다방의 불은 일찍 꺼졌다. 번화가라 해도 웃음소리는 줄었고, 대화는 낮은 목소리로 이어졌다. 누군가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계엄령 하의 서울은 군인들이 눈에 띄는 도시다. 주요 관공서, 방송국, 신문사 주변에는 무장한 병력이 배치되었고, 트럭에 실린 군인들이 이동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총을 멘 군인들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다.
신문의 두께는 얇아졌고, 기사내용은 한없이 건조하다. 사태의 전모나 권력 내부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공식 발표만 반복되고 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애국가, 군가, 정제된 뉴스 멘트가 흐르며, 말하지 않는 것들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한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보다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를 더 고민하는 것같다.
대학 캠퍼스는 특히 조용하다. 계엄령으로 집회와 시위가 금지되면서, 늘 소란스럽던 게시판과 금잔디 광장은 텅 비었다. 강의는 계속되고 있지만, 학생들은 수업에 들어가기 보다 복도와 계단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에게는 말 대신 침묵과 메모, 그리고 짧은 농담 속에 불안과 분노가 섞여 있다. 시민들은 일상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모습이다. 영등포시장에서는 여전히 생선이 팔리고,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달린다. 그러나 그 일상은 얇은 얼음장 위에 놓인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누구는 “곧 괜찮아질 것”이라 말하고, 누구는 “더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속삭인다. 확실한 것은, 모두가 다음 날이 두려워 조금 더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10·26 이후 계엄령 하의 서울은 소음이 줄었다. 그러나 긴장은 더 커진 도시, 움직임은 있으나, 입은 묶인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겉보기에는 질서 정연하지만, 그 질서는 불안 속에서 요동치고 있고, 시민들은 이미 다가올 더 큰 격변을 직감한 듯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것 같다. 10월 27일, 서울의 날씨는 최저 기온 8.5℃, 최고 기온 19.6℃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일교차가 약 11℃로 크게 벌어진다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서울의 하늘은 지독하게 맑지만, 도시의 표정은 꽁꽁 얼어붙어 있다. 거리마다 소총을 든 계엄군이 배치되어 있지만, 전면적인 무장 점령이라기보다, 핵심 시설과 상징적 공간을 중심으로 한 질서 유지와 경계의 성격에 가까워 보인다. 군인들은 주로 정부 기능이 집중된 지역, 도심의 요지에 배치되어 있다. 광화문 일대, 주요 관공서 주변, 청와대로 이어지는 축선, 그리고 정치적 상징성이 큰 장소들이 그 대상이다. 이곳들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눈에 띄게 관리되는 공간이고, 그 자체로 계엄이 발동되었음을 시민들에게 체감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군인들은 전투복 차림으로 비교적 단정하게 서있다. 다시 말해, 군인들은 ‘위협적으로 돌진하려는 존재’라기 보다, ‘침묵 속에서 길목을 지키는 존재’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일부 도심 지역, 특히 광화문 일대에는 전차나 장갑차가 배치된 모습이 보이지만, 이는 대규모 작전을 위한 기동이라기보다는, 상황의 엄중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성격이 강해 보인다. 중무장한 장비의 존재 자체가 불안정한 정국을 억제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대중 집결이나 충돌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메시지로 작동하는 것 같다.
그런데 서울은 이처럼 겉으로는 비교적 조용하고, 통행이 완전히 끊기거나 시내가 봉쇄된 모습은 아니지만, 군인이 서 있는 풍경 하나만으로도 그 공기는 사뭇 달라졌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삼가고 있다. 군인과 시민 사이에는 짧은 거리만큼이나 긴 침묵이 흐르고 있다. 총구는 아래를 향하고 있지만, 계엄이라는 단어는 이미 도시 전체를 조용히 얼리고 있다. 이처럼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18년의 성벽이 무너진 자리에는, 해방감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불안의 안개가 내려앉아 있는 것이다.
영석은 휴교령으로 텅 빈 성균관대 교정을 뒤로하고 다시 응암동 태종의 집을 찾았다. 태종의 방 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진영과 함께 킬킬거리며 세상사는 잊은 것 같던 태종의 얼굴에는 전례 없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영석아, 민주주의가 오는 소리가 들리냐? 아니면 더 크고 두려운 재앙이 다가오는 오는 소리가 들리냐?”
태종이가 말보로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물었다. 영석은 ‘양담배 규제’ 정책에 따라 외국산 담배의 수입 및 소지는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데 어떻게 태종이가 말보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어제 광화문에서 느꼈던 그 고요함이 폭풍 전야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 이제 정말 민주주의가 가까이 온 걸까?”
영석의 물음에 태종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사촌 형 말로는 궁정동 현장에 있던 인물들이 중앙정보부와 육군본부로 나뉘어 긴박하게 움직였대. 권력의 공백은 무서운 거야. 누군가 이 공백을 메우려 하는 놈이 생길 것이고, 그건 투표용지가 아니라 총칼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여. 우리는 ‘때’를 기다리자고 했지? 그런데 그때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아주 잔인하게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그래서 더 불안해.”
영석은 태종이 보여준 정보의 깊이와 예지력에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태종은 민주주의를 시스템이라 말했지만, 그의 눈은 이미 시스템 너머에서 벌어질 권력 찬탈의 암투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영등포의 ‘희다방’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구석 자리에서 정희는 찻잔을 쥔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깃을 세운 검은 코트 차림의 민우가 들어오자, 정희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우 씨, 무탈하신가 보군요.”
“정희 씨, 세상이 뒤집혔어요. 관리부 이상우의 움직임은 어때요?”
민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정희는 오늘 아침 관리부의 풍경을 전했다.
“부장님이 안절부절못하세요. 서랍 속 서류들을 없애는 것 같기도 하고, 중정에서 내려온 지침이 없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치였어요. 위장취업자 색출이고 뭐고 일단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바빠 보였어요.”
민우가 정희의 손을 꽉 잡았다.
“이게 기회일 수 있습니다.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해고된 언니들과 연락을 재개할 거예요. 하지만 정희 씨, 계엄령이라 공장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가 강화될 겁니다. 정말 조심하세요.”
정희는 민우의 눈에서 희망과 공포를 동시에 읽었다. 그가 약속했던 야간대학의 꿈은 잠시 미뤄졌지만, 두 사람 간에는 그보다 더 뜨거운 시대의 부름이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영등포 시장의 좌판은 평소보다 훨씬 늦게 펼쳐졌다. 곰소댁은 생선 상자를 내려놓으며 옆자리의 고창댁을 쳐다봤다. 고창댁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고창댁, 영숙이네는 좀 어뗘? 그나저나 이 난리에 장사가 되겠는가?”
“사우 놈은 대통령 죽었다고, 나라 망했다고 술 처먹고 자빠졌고, 영숙이는 애 데리고 울기만 혀. 아니, 그 냥반이 죽어뻔지면 이제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산당가? 우덜 보릿고개 넘기게 해 준 냥반인디 말여. 어째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어서 허전허당게.”
고창댁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곰소댁은 고창댁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당장 먹고살 걱정이 앞섰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입구녕에 풀칠이라도 허먼서 살아야제. 계엄령인가 뭔가 땜시 밤 10시만 되면 길거리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일 텐디, 저녁 장사는 다 글렀구먼. 시방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대? 나라가 어수선항게 생선값만 오지게 오르게 생겼구먼.”
서민들에게 유신의 종말은 거창한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당장 끊길 저녁 손님과 오를 물가에 대한 공포였다.
영석은 수아를 만나기로 한 안국동 찻집으로 향했다. 수아는 이미 도착해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삼춘, 오빠 면회가 이번 주에도 안 된대. 부대 전체가 비상이라면서 아예 접근도 못 하게 해”
수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영석은 태종이로부터 10.26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의 경계는 극도로 삼엄해졌고, ‘사상 전향’과 ‘통제’라는 명분으로 군에 강제 징집당한 수혁과 같은 이들은 보안사・헌병・정보 장교의 별도 조사 대상이 되고 있고, 과거의 동향, 인맥, 조직 관계를 반복적으로 캐묻는 과정에서 “협조하면 편하게 군 생활하게 해 주겠다.”, “제대 후 학교 복귀를 도와주겠다.”, “협조하지 않으면 영창・군기교육대・전방 전출이 있다.”라고 하는 제안을 받는 경우가 있으며,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끊임없는 감시 대상이 되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협조’라 함은 동료 학생・운동권 인사에 대한 정보 제공, 제대 후 학교 복귀 시 내부 동향 보고라고 한다. 태종이는 그러한 제안 중에 외국 유학을 시켜주겠다는 제안도 있다고 했다. 태종이는 이를 ‘프락치(Informant) 강요 공작’이라고 불렀다.
태종이가 설명한 ‘프락치 강요 공작’의 특징은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군대라는 폐쇄적 공간을 활용한 국가 차원의 조직적 폭력이었다. 영석이가 보기에 프락치 활동의 가장 반인륜적인 특징은 피공작자에게 동료 학생이나 소속 단체의 정보를 수집하여 보고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었다. 프락치가 된 자들은 휴가나 외출을 이용하여 학내에 투입되고, 정기적으로 첩보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며, 학생 본인에 대한 신체적 위해뿐만 아니라, 가족을 볼모로 하여 가족의 안위나 향후 사회적 진출을 방해하겠다는 위협을 통해 거부할 수 없는 굴레를 씌운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 학생들이 느끼는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 가혹행위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인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가혹한 심리적 압박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당사자가 아닌 영석이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하물며 당사자의 심정은 도대체 어떨까? 어제까지 함께 민주주의를 외쳤던 동료들을 감시하고 밀고해야 한다는 사실은 극심한 도덕적 파탄을 불러올 것이고, 자신이 믿어온 가치와 실제 행위 사이의 괴리로 인해 자아 분열적인 고통을 겪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프락치 활동을 수행하면서 동료들이 자신을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실제로 정보를 넘겼을 때 오는 자기혐오는 개인을 철저한 고립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고, 이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대인기피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국가 폭력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동료를 위태롭게 하는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됨으로써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또한 제대 후에도 보안사의 감시가 계속되거나, 프락치 활동 사실이 알려질 경우, 동료 집단으로부터 배척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아 평생의 삶을 잠식할 것이다. 영석은 과연 국가가 한 인생을 이렇게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궁금했다.
영석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이나 각종 유인물 그리고 사상지 등에서 접한 인물 중에 함석헌 선생은 국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았고, 국가가 개인을 희생시키는 순간 그것은 이미 국가가 아니라 폭력이라고 했다. 선생은 “사람 하나를 망가뜨려서 지켜야 할 나라라면 그런 나라는 지킬 가치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그리고 장준하 선생은 “국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국가를 위해 소모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강제징집, 사상검증, 연좌, 사회적 매장에 대해 그는 ‘인생 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선생의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국가는 질서를 명분으로 한 개인의 전 생애를 회복 불가능하게 파괴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영석은 언젠가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의 생각이 헤겔의 국가 절대주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생각은 아닌지 궁금해서 헤겔 철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국가가 최고 가치다’, ‘개인은 국가의 부속품이다.’, ‘따라서 개인 희생은 정당화된다’는 등의 말은 후대 권위주의 국가가 헤겔을 차용한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작 헤겔은 “국가는 개인을 먹어 치우는 괴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헤겔에게서 국가는 무엇인가? 단순한 권력 기구도 아니고 경찰・군대・통치 기구가 아닌 ‘윤리적 삶(Sittlichkeit)의 최고 형태’, 즉 가족에서 시민사회로 그리고 국가로 발전하는 자유의 제도적 완성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는데 “국가가 '진정한 국가’ 일 때만 개인의 희생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헤겔에게 허용되는 것은 전쟁 시 병역, 공동체 유지를 위한 위험 감수, 법 앞에서의 처벌 등인데 이는 개인의 자유가 보편적 자유 속에서 스스로 매개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그리고 헤겔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은 개인을 단순한 수단으로 만드는 것, 공포를 통한 통치, 사적 양심을 짓밟는 국가 등인데, 그는 국가가 개인을 도구화하는 순간, 그 국가는 더 이상 윤리적 국가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인생을 부러뜨려서 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헤겔적 의미의 국가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헤겔이 나치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나치는 헤겔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자신들의 폭력을 철학적으로 분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치와 군국주의가 헤겔의 '국가 우위 사상'을 차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헤겔 철학의 본질인 '보편적 자유와 이성'은 완전히 제거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헤겔의 껍데기만 빌려와 그 속을 광기로 채운 '뒤틀린 계승자'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칼 포퍼 같은 이는 헤겔 철학이 근대 전체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고 보며 그를 '열린 사회의 적'으로 강력하게 비판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포퍼에 따르면 헤겔의 '역사주의'는 역사가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흘러간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부정하고 독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한 헤겔은 국가를 지상의 절대적인 신성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개인을 국가의 부속품으로 전락시켰고, 모순을 허용하는 변증법을 통해 어떤 논리적 비판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지적 부정직함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는다. 쇼펜하우어 같은 사상가들 역시 헤겔이 난해한 용어로 실체 없는 사상을 포장해 권력에 영합한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일갈하며, 그의 철학이 합리적 사고를 마비시킨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헤겔의 철학이 비판과 토론이 살아있는 자유로운 사회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사상적 뿌리라고 평가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영석은 헤겔 철학을 강제징집・프락치 강요에 대입시켜 보았다. 그리고 헤겔의 기준으로 보면 병역 그 자체는 가능, 병역을 정치적 보복이나 사상검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 개인의 양심을 파괴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 경우 국가는 보편적 의지의 구현이 아니라 단지 특정 권력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기계가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헤겔식으로 말하면 이는 ‘Staat(국가)’가 아니라 ‘Herrschaft(지배)’인 것이다. 영석은 헤겔에게서 국가는 한 인생을 ‘파괴할 권한’이 없지만 자유로운 공동체를 위해 개인이 자신을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론을 내리니 국가를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동 방향도 결정할 수 있었다.
“수아야, 지금은 군 전체가 예민한 시기라 그래. 조금만 참아보자.”
영석은 수아를 위로했지만, 머릿속에는 태종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권력의 공백을 메우는 건 총칼이 될 것’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새로운 군부 세력이 등장한다면, 수혁과 같은 강제 징집자들은 그들의 충성도를 증명하는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 영석은 수아의 떨리는 어깨를 보며 이 잿빛 여명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 자신도 이제는 '벽돌 한 장'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끝나고 11월로 접어들자, 서울은 유난히 이른 추위와 함께 기묘한 활기가 돌았다.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피어올랐으나, 그 밑바닥에는 여전히 군화 발소리가 서늘하게 깔려 있었다. 영석과 정희, 그리고 태종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가올 폭풍을 예감하고 있었다.
태종은 평소답지 않게 영석을 종로의 한 으슥한 지하 술집으로 불러냈다. 사촌 형에게서 들은 군 내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영석아, 수아 오빠 수혁이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을지 몰라. 보안사령부. 그쪽에서 ‘강제징집’ 대상자들을 다시 분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그런데 단순히 사상 개조가 목적이 아니야. 지금 군 내부에 새로운 실세들이 등장하고 있는가 보더라. 자기들 세력을 공고히 하려고 학생 운동권 출신 프락치들을 대대적으로 활용하려나 봐."
영석은 술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태종의 말대로라면 수혁은 지금 새로운 권력자들의 '눈과 귀'가 되라는 압박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수아에게는 아직 말하지 마.”
영석은 태종의 경고를 새기며, 이제는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수아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공장의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대통령 서거 이후 잠시 넋을 놓았던 이상우 관리부장은 이제 새로운 생존 본능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정희야 잠깐 내 방으로 와봐.”
관리부장의 방에 들어선 정희는 이상우가 뚫어지게 보고 있는 서류에 적힌 명단 하나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김성태’라는 이름이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김성태라는 이 친구, 지난번에 베어링 문제로 우리 방에 왔었지?”
정희는 눈앞에 불이 번쩍하는 것 같더니 식은땀이 흐르며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러나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관리부장은 서류를 보고 있느라 얼굴이 하얘진 정희를 보지 못했다.
“이 친구 지금 생산동에 근무하고 있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이 친구 어떤 친구야?”
“지난번 베어링 주문으로 이 사무실에 왔다 간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중정 요원들이 이 친구를 유심히 관찰하라는데 내가 보기에는 어리숙해 보이던데 말이야. 정희 네가 보기에는 어땠어?”
“제가 보기에도 그랬어요. 충청도 말투를 쓰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력 수준이 초등학교나 중졸 수준으로 보였는데, 그런데 중정 요원들이 왜 그러는 거죠?”
“나도 몰라. 그저 유심히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혹시 위장 취업자라고 의심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친구 이력서랑 인사 서류 좀 가져와 봐.”
정희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서류함에서 민우의 서류를 찾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여기 있습니다.”
“이제 중정 시대도 가는 것 같아. 시방 보안사 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위장 취업자들을 찾고 있단 말이야. 내가 살려면 이놈들 하나는 넘겨줘야 해. 너 혹시 짐작 가는 애라도 있으면 지금 말해. 그게 너와 내가 사는 길이야.”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어서요.”
“애먼 사람 잡았다고 되치기를 당하는 수가 있으니 우선 이놈 뒷조사를 철저히 해보자.”
“그럼요. 애먼 사람 잡았다가 우리가 더 크게 당할 수도 있는 일 아닌가요?”
“나도 오늘부터 이놈에 대해 뒤를 캐볼 테니 너도 오늘부터 정보를 최대한 물어 와.”
“알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상우는 정희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고 민우에 대해서도 긴가민가하는 것 같았다. 정희에게는 천금 같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였다.
“김성태 이놈이 눈치채면 큰일이니 절대 비밀로 하고 동태를 살펴봐.”
“그렇다면 지금 당장 생산동에 가서 동태를 살펴볼까요?”
“그래”
관리부장은 순순히 동의했다.
생산동까지 걸어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민우는 기계 손질에 여념이 없어서 미처 정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희는 민우가 일하는 생산라인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마치 볼일이라도 있어 온 듯 행동하며 남성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몇몇에게는 안부를 물었다. 비로소 민우가 정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어쩐 일이대유? 정희 씨가 여그까지 귀한 걸음을 허시니까 이 기름 냄새나는 생산동이 오늘따라 훤허네유.”
“어 우리들은 여자 아닌가? 그렇다면 이 생산동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뭐가 되는 거야?”
“아차 지가 실수했구만유. 오랜만에 관리부서에서 순시를 나오닌께 이놈이 놀래 갖고 실수혔네유. 용서하세유.”
“김기사, 앞으로 조심해요.”
어느 여공의 농짓거리에 다른 사람들이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김기사님, 요즘 시간 나면 영등포 시장의 다방에서 레지 꼬시느라 바쁘다는 소문이 있던데 우리 언제 국수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민우는 정희가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서 농담을 하는 것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정희가 뭔가 할 이야기가 있으니 ‘희다방’으로 오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날 밤, 정희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우를 만났다. 민우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대학가의 시위 계획과 노동 현장의 연대를 조직하느라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다. 정희는 좌우를 살피며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민우 씨,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해요. 부장이 민우씨 이름을 보안사에 넘기려 하고 있어요.”
“정희 씨,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권력의 공백기에 우리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또 다른 독재자가 나올 겁니다. 부산과 마산의 불씨를 서울에서 살려야 해요.”
민우의 눈은 열정으로 번뜩였지만, 정희에게는 그것이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의 날갯짓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민우씨가 잡히면, 민우씨가 말한 그 민주주의는 누가 만드나요? 제발, 일단 몸을 피해요.”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갑자기 왜 그래요?”
이제야 심각성을 눈치챈 듯 민우가 진지한 모습으로 물었다.
“여기도 위험해요. 어서 나가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할게요.”
정희의 눈물 섞인 호소에 민우는 처음으로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알았어요. 정희 씨가 원하는 그 야간대학 갈 수 있는 날이 꼭 올 겁니다. 조금만 더 버텨줘요. 사랑해요.”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말고 어서 피하세요. 그리고 당분간 저에게 연락하는 것도 위험해요. 저도 사랑해요.”
정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이상우와 중정요원들이나 보안사 요원들이 둘을 덮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따로따로 나가야 할 테니 어서 먼저 나가세요.”
민우는 남이 보든 말든 정희를 껴안았다. 그리고 볼에 가볍게 뽀뽀를 한 후 재빠르게 다방을 나갔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선 정희는 커피값을 계산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정희를 바라보며 레지가 물었다.
“나쁜 남자네요. 헤어지는 마당에 커피값도 여자 친구에게 떠넘기고 먼저 가다니요. 저런 남자는 얼른 잊어버려요.”
그녀는 민우가 정희의 볼에 뽀뽀하는 장면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민우와 헤어진 정희는 다시 관리부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관리부장실로 들어가 관리부장의 캐비닛 뒤편에서 먼지 쌓인 장부 하나를 빼냈다. 그것은 이상우 부장이 지난 몇 년간 중정 요원들에게 상납한 비자금 내역과 공장 여공들을 부당하게 해고하며 노동청 직원을 매수한 기록, 거래처로부터 받은 리베이트와 사적인 이득을 취한 뒷거래 기록 등이 담긴 ‘치부책’이었다. 정희는 관리부장실에만 있는 제록스 복사기를 이용해 이를 모두 복사한 후 치부책은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정희는 이 회사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마저 회사를 관두게 되면 의심을 살 것이 뻔하므로 최대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기로 했다.
오목교 판자촌의 밤은 야간 통행금지로 인해 적막만이 가득했다. 곰소댁은 방 안에서 숙희의 해진 양말을 꿰매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영석의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아줌마 계세요?”
영석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문을 열자, 영석이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우리 누나로부터 무슨 소식 들은 일 있나요? 통금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집에 오지 않았어요.”
곰소댁은 들고 있던 바늘에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다. 핏방울이 숙희의 양말 위로 툭 떨어졌다. 대통령이 죽고 세상이 바뀐다더니, 가난한 이들의 자식들은 여전히 사선(死線) 위를 걷고 있었다.
"워메, 아적까지 정희가 안 들어왔단 말이여? 이 시국에 워쩐 일이당가? 어쩌면 좋다냐!“
욕심이 과했는지 정희는 관리부장의 치부책을 복사하다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치부책을 한 장씩 꼼꼼히 복사했고, 제록스 복사기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더 그러했던 것 같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47분이다. 비상 계엄령 하에서 밖으로 나갔다가는 유치장에서 밤을 보낸 후 아침에 포승줄에 묶여 즉결심판소로 넘겨질 판이었다. 그리고 단순 위반자라도 3일에서 5일 정도의 구류 처분을 받게 될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즉결 심판 후 바로 풀려나지 못하고 정신교육이나 노역에 동원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것은 ‘단순 통금’ 위반을 ‘불순분자’의 활동으로 의심받는 일이다. 민우의 일도 있고 자신마저 위태로운 상태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일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사무실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는데 전화가 없으니, 영석이에게 연락할 길이 없어 환장할 노릇이었다.
사람의 뇌는 심리적인 소외감이나 슬픔을 실제 신체적인 통증이나 추위와 매우 유사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를 당하거나 외로움을 느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실내 온도를 평균 5도 정도 더 낮게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외롭거나 슬프면 뇌가 이를 '신체적인 위기'로 착각하고 체온을 떨어뜨리거나 추위를 느끼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정희는 어느 책에서인가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공포를 느끼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가 반응을 하는데, 혈관 수축, 체온 저하를 느낀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지금 곁에 민우가 있다면 정서적 유대감 때문에 온기를 느낄 것이지만, 기댈 곳 하나 없이 혼자 너무나 무거운 일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사무실 공기가 영하로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정희는 새벽 4시까지 오들오들 떨며 사무실에 있다가 택시를 타고 오목교 집에 왔다.
"누나, 어떻게 된 거야?"
영석은 잠을 한숨도 못 잔 듯 퀭한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정희야 바람이라도 난 거여?"
소란스러운 소리에 곰소댁도 안심이 되었다는 듯이 농담을 했다.
정희는 아무 말없이 이불 위로 쓰러졌다.
몸이 조금 나아진 듯하여 오늘부터 또 열심히 써보려 합니다. 즐거운 성탄절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