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31화 내륙의 섬, 그리고 운명(2)


성북역으로 돌아오는 경춘선 열차 안, 두 사람 사이에는 위도의 라일락 향기 대신 무겁고 서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수아는 기차가 출발한 이후 단 한 번도 영석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고개는 줄곧 창밖으로 향해 있었고, 시선은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 이름 모를 간이역들과 푸르게 물들고 있는 산과 말없이 흐르고 있는 강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젯밤, 자신의 생을 통째로 걸고 던졌던 승부수는 영석의 고결한 이성 앞에서 무력하게 흩어졌다. 수아에게 그 고립된 섬은 탈출구였으나, 영석에게는 지켜내야 할 도덕적 마지노선이었던 것 같다. 창문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보며 수아는 이제 쌍문동의 그라나다가 뿜어내는 차가운 금속성 광택과, ‘사돈댁’이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가족들의 잔인한 탐욕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다.

영석은 그런 수아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타는 목마름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벽에 기대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수아를 존엄하게 지켜냈다는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런 그를 믿음직하게 생각하며 속으로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이 가까워질수록, 수아의 옆얼굴에서 서서히 생기가 빠져나가고 박제가 되어가는 듯한 기묘한 이질감을 느끼자, 영석의 확신은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아가 정말 화가 난 것일까? 내가 정말 그녀를 지킨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내민 사랑의 손길을 내 고집으로 내쳐버린 것일까?’

영석은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 멈췄다. 수아의 가느다란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땀에 젖은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차라리 어젯밤 그 선을 넘었더라면, 그래서 평생을 함께 짊어질 ‘사건’의 동지가 되었더라면 수아가 지금 저토록 무서운 고요 속에 잠겨 있지는 않았을 거라는 뒤늦은 후회가 가시처럼 심장을 찔렀다.

기차가 대성리역을 지날 무렵, 창밖을 응시하던 수아의 투명한 눈동자에 아주 희미한 슬픔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명 지르지 못하는 자의 소리 없는 통곡이었다. 영석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었을 때, 수아가 그의 손을 뿌리쳤고, 그녀의 눈동자에서 툭, 하고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아야!”

영석의 당황 섞인 부름에도 수아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내려 개나리색 원피스 위로 얼룩을 남겼다. 수아는 여전히 창밖을 보며, 마치 자기 자신에게 속삭이듯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삼춘, 곧 서울이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그녀의 눈물 속에는 영석이 끝내 이해하지 못한, 혹은 외면했던 운명의 비극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영석은 그 눈물을 보며 비로소 자신이 지켜낸 것이 그녀의 미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황사 구름 사이로 서울의 회색빛 건물들이 얼굴을 내밀자, 수아의 눈물은 더욱 짙어졌다. 영석은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면서도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 노래를 부르던 대학생들도 이 둘의 모습에 신경이 쓰였는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지금까지의 소란을 그만두었다.

기차가 성북역 플랫폼에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어제 출발할 때의 그 설레던 진동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의 발걸음처럼 무겁기만 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수아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영석은 허둥지둥 캔버스 가방을 챙겨 그 뒤를 따랐다.

“잠깐만!”

개찰구를 빠져나온 수아의 걸음은 성북역 광장을 가득 메운 황사 바람보다도 빨랐다. 영석은 수아의 팔목을 조심스레 붙들었다. 수아가 홱 고개를 돌려 영석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 흐르던 눈물은 마르고, 그 자리에는 차갑고 단단한 얼음장 같은 무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영석은 그 낯선 시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바로 가지 말고 저기 앞에 있는 다방이라도 들르자. 따뜻한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얘기도 좀 더 하고, 내가 미안해서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

영석의 목소리는 비굴할 정도로 잦아들었다. 그는 수아의 마음을 어떻게든 돌려보려 애썼다. 그러나 수아는 영석이 붙잡은 팔목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그녀는 분명히 영석이를 사랑하고 어젯밤에 그의 신사다움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영석의 고결한 이성에 대한 거부감과, 자신을 사지로 돌려보내는 남자에 대한 원망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러한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됐어, 차 마신다고 뭐가 달라져?”

수아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서늘했다. 그녀는 영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지막 선고를 내리듯 덧붙였다.

“삼춘은 삼춘답게 살고, 나는 나답게 살면 돼. 어젯밤에 우리가 선택한 게 그거잖아. 안 그래?”

수아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대기 중이던 녹색 포니 택시에 올라탔다.

“쌍문동으로 가주세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광장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택시는 뿌연 황사 먼지를 일으키며 영석을 홀로 남겨둔 채 멀어져 갔다. 뒷유리 너머로 수아의 개나리색 원피스가 잠깐 보이는 듯하다가 이내 회색빛 도시 속으로 사라졌다.


영석은 멍하니 택시가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힘이 빠진 듯 역 광장 구석의 낡은 나무 벤치에 볏단이 무너지듯 풀썩 주저앉았다.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이자 매캐한 연기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왔다.

‘내가 지킨 게 고작 이거였나.’

후회는 늘 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자존심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수아를 지켰다고 자위했지만, 정작 그는 수아가 내밀었던 마지막 구명줄을 끊어버린 것이라는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황사가 섞인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석은 벤치에 깊게 고개를 숙인 채, 다 타들어 간 담배 필터가 손가락을 데울 때까지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성북역 광장에 모여 있는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커가고 있었지만, 영석의 시간은 어젯밤 그 고립되었던 섬 위도에 멈춰 서 있었다.

성북역 광장을 가득 메운 황사 바람은 비단 자연의 재해만이 아니었다. 영석이 돌아가야 할 성대 명륜동 캠퍼스는 이미 거대한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5월 4일, 화창해야 할 일요일이었지만 성균관대 교정은 문무대 강제 입소를 거부하는 학우들의 비장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수아를 지켰다는 자만심에 빠져 위도에서 보낸 그 하룻밤 사이, 세상은 신군부의 서슬 퍼런 계엄령 확대에 맞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군사훈련 반대! 계엄령 해제!”

대열의 맨 앞줄에서 스크럼을 짠 학우들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수아의 눈물이 겹쳐 보였다. 오늘은 성대 학생들이 문무대 입소를 거부하며, 병영 집체교육이라는 이름의 학원 통제를 온몸으로 거부하기로 결의한 날이다. 영석은 낡은 캔버스 가방을 고쳐 매며 생각했다. 자신은 수아에게 ‘당당한 남자’로 남기 위해 유혹을 뿌리쳤지만, 정작 시대가 요구하는 ‘당당한 청년’의 자리에 서기 위해 무엇을 던져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성북역의 황사 섞인 빗줄기는 하루가 지나도 영석의 마음속에서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명륜동 캠퍼스의 최루탄 가루가 눈을 찔러도, 영석의 고통은 최루가스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수업을 빠진 채 혜화동 로터리의 공중 전화박스 앞을 서성였다.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고, 주머니 속의 십 원짜리 동전들은 서로 부딪치며 영석의 불안을 부추겼다. 수십 번 동전을 넣고 다이얼을 돌렸지만, 수아의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매번 “수아 아가씨 방에서 안 나오십니다” 혹은 “외출하셨습니다”라는 차가운 대답만 되풀이했다. 영석은 전화를 걸 때마다 자기의 심장이 거대한 닻처럼 바다 깊이 자맥질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에게서 위도가, 그 라일락 향기가, 사실은 수아가 자신에게 보낸 마지막 신호였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목요일 저녁, 기적처럼 수아가 전화를 받았다. 수신음이 멈추고 “여보세요”라는 수아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영석은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나야!”

영석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수아는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 저편에서는 오직 정적만이 흘렀다. 영석은 그 정적이 무서워 서둘러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다 잘못했어. 기차 타고 가며 네가 한 말, 그리고 위도에서 네가 보여준 행동 하나하나가 이제야 이해가 돼. 내가 너무 멍청했어. 잘못했어. 미안해. 내가 널 지켜준다고 했던 게 사실은 널 더 힘들게 만든 거였어. 우리 다시 만나자. 다방도 좋고 학교 앞도 좋아. 내가 쌍문동으로 갈게. 제발 한 번만 더 이야기하자, 응?”

영석의 말은 절박함을 넘어 비굴하게까지 들렸다. 그는 자신의 고결함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오만이 수아라는 섬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립시켰는지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영석의 간절한 호소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수아는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 영석이 “수아야, 듣고 있어?”라고 다시 물으려던 찰나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흑’하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울어? 우는 거야”

영석이 당황해 외쳤지만, 수아는 단 한마디의 대답도 남기지 않았다. 오직 거칠고 애처로운 흐느낌만이 몇 초간 수화기를 타고 영석의 귓가를 때렸을 뿐이다. 그리고 울먹이는 수아의 소리가 들렸다.

“뭘 잘못했는데? 삼촌은 잘못한 것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이내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매정한 ‘뚜’ 소리만이 공중 전화박스 안을 채웠다.


끊어진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영석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수아의 그 마지막 흐느낌은 용서의 시작이 아니라, 영석을 향한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들렸다. 혜화동 거리에는 여전히 계엄령의 서슬 퍼런 공기가 감돌고 있었고, 영석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그 존귀한 사랑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혜화동 로터리의 공중 전화박스를 빠져나온 뒤로, 영석의 세계는 소리가 소멸한 무성영화처럼 변해버렸다. 수아의 흐느낌이 마지막으로 할퀴고 간 고막 안쪽으로는 그 어떤 현실의 파동도 스며들지 못했다. 며칠째 식욕은커녕 마른침을 삼키는 것조차 버거웠다. 입안은 늘 썼고, 위장은 비어 있었으나 허기 대신 돌덩이를 삼킨 듯한 둔탁한 압박감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학교로 향하는 대성로가 오늘은 평소보다 몇 배나 더 길고 가팔랐다. 교정은 여전히 최루탄 가루와 거친 구호들로 들끓고 있었다. 대성전 안의 6백년 넘은 은행나무 잎은 짙은 최루가스에 질식해 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정문 앞에서 태종이 달려와 영석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야, 김영석! 너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나? 지금 문무대 건으로 애들 난리 난 거 안 보여? 정신 좀 차려, 인마!”

태종이 윽박지르며 영석의 몸을 흔들었지만, 영석은 그저 초점 없는 눈으로 친구의 들썩이는 입술만 바라볼 뿐이었다. 태종의 목소리는 수만 미터 깊이의 물속에서 들려오는 울림처럼 ‘웅웅’거리다 흩어졌다. 곁을 지나가는 학우들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결연한 표정으로 ‘문무대 입소 반대’, ‘독재 타도’ 구호를 외쳐도, 그들의 투쟁은 영석에게 박제된 그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 장엄한 외침들보다,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수아의 짧은 흐느낌이 영석에게는 훨씬 더 거대한 파괴력을 지닌 비명이었다. 사랑 하나가 국가의 운명보다 강했다.

강의실에 앉아 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교단 위 교수의 입술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칠판 위에는 하얀 분필 가루가 내려앉았지만, 영석의 귀에는 오직 정적만이 고여 있었다. 볼펜을 든 손등 위로 위도의 라일락 꽃잎 대신 황사 섞인 먼지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뭘 잘못했는데?, 삼춘은 잘못한 것 하나도 없어.”

수아가 남긴 그 잔인한 면죄부가 영석의 머릿속을 맴돌며 그를 난도질했다. 수아가 차라리 욕을 하거나 원망했더라면 이토록 참담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잘못한 것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기대할 것도, 함께할 미래도 없다는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영석은 텅 빈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된 전경들의 방패가 햇살에 번뜩였다. 그 차가운 금속광택은 그라나다의 그것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영석은 자신이 지키려 했던 그 고결한 선(線)이, 사실은 사랑하는 여자를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밀어 넣은 벼랑 끝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그에게 세상은 소리도 색깔도 잃어버린, 거대한 폐허와 다름없었다.

‘여자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모양일까? 남자의 그것과 사뭇 다른 모양일까?’

‘그저 한마디만 해다오. 아니, 얼굴 한 번만 보여다오. 그러면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5월의 태양은 눈부시게 푸르렀으나, 성균관대학교 명륜동 교정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1980년 5월 초, 신군부의 서슬 퍼런 압박 속에 학원 자율화의 불꽃은 위태로운 운명의 기로에 서 있었다. 특히 학우들을 군사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전방으로 끌고 가려는 ‘문무대 입소’는 불이 붙기만을 기다리는 화약고였다. 5월 1일과 5월 3일 사이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영석이 넋을 잃고 앉아 있던 중앙 도서관 창밖으로, 마침내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5월 4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성대생이 스크럼을 짜고 교정에 모였다. 그들은 이미 며칠 전부터 문무대 강제 동원과 삭발을 거부하며 비상 결의를 다져온 터였다. 5월 5일 어린이날과 이후 평일에 이어질 시위를 준비하고 전략을 짜는 긴박한 주말이다.

“군사훈련 반대! 문무대 입소 거부!, 삭발 결사 반대!”

“병영 집체교육 즉각 폐지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신현확은 물러가라!”

비장한 구호가 성대 교정에 메아리쳤다. 영석의 눈에 비친 학우들의 스크럼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보였다. 학생들은 문무대로 떠나야 할 버스 대신 최루탄 가루 자욱한 아스팔트 위를 택했다.

영석은 텅 빈 도서관 창틀을 잡은 채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경찰의 페퍼포그차가 뿜어내는 흰 연기가 금방이라도 교정을 집어삼킬 듯 밀려왔다. 방패를 앞세운 전경들이 정문을 부수고 진입하자, 비명과 함성이 기괴하게 뒤섞였다. 학우들이 하나둘씩 아스팔트 위로 고꾸라지고 연행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대열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 투쟁은 단순한 훈련 거부가 아니다. 어쩌면 더 큰 비극을 예견하는 청춘들의 처절한 전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석에게는 그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마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학우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피를 흘리는 그 순간에도, 영석의 머릿속에는 오직 수아가 남긴 마지막 흐느낌만이 최루가스보다 더 매운 연기가 되어 가슴을 할퀴고 있었다. 시대의 절규와 개인의 절망이 뒤섞인 1980년의 5월, 명륜동은 그렇게 회색빛으로 질려가고 있었다.

신길동 최 사장의 집은 이제 민우의 고독한 요새가 되었다. 최 사장이 목동 오목교 판자촌의 곰소댁네 셋방으로 거처를 옮기면서까지 내어준 이 집은, 민우에게 가장 안전한 피신처인 동시에 시대의 비극을 실시간으로 마주해야 하는 답답한 감옥이기도 하다. 좁은 방 안에서 낮은 볼륨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숨을 죽이고 있던 민우의 귀에, 규칙적인 세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태종이었다.

태종은 문이 열리자마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방에서 신문 뭉치와 대학가에서 은밀히 돌던 유인물을 꺼내 놓았다. 그의 안색은 명륜동에서 방금 마시고 온 최루가스 때문인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시국이 미쳐 돌아갑니다, 민우 형. 전두환이하고 신군부 놈들, 이제 대놓고 칼춤을 출 모양이에요.”

태종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유인물을 가리키며 5월 초의 긴박한 정세를 민우에게 쏟아냈다.

“보안사 놈들이 이미 'K-공작'이니 뭐니 해서 언론은 다 장악했고요, 군 내부에서는 이미 북괴 남침설을 유포하면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할 명분만 찾고 있어요. 형님, 지금 학교에서는 전두환 퇴진은 물론이고 신현확 내각 사퇴하라고 난리가 아닙니다. 학생들이 ”유신 잔당 신현확은 물러가라“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저들은 들은 척도 안 해요. 오히려 최규하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헌법을 주무르며 시간을 벌고 있다니까요.”

민우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며 태종이 가져온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다. 신군부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무자비했다. 80년의 봄은 대학가의 함성으로 달아오르고 있었지만, 그 뒤편에서는 거대한 군화 발소리가 민주화의 싹을 짓밟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단순히 학생들 잡으려는 게 아니라, 아예 판을 새로 짜겠다는 소리예요. 신현확이가 저렇게 버티는 것도 결국 군부 놈들 뒤를 봐주려는 수작이죠. 형님, 저놈들은 지금 민주화고 뭐고 간에 모두 쓸어버릴 준비가 끝난 것 같아요.”

한참 시국 이야기를 이어가던 태종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영석이 놈 때문에 걱정입니다. 녀석, 요즘 제정신이 아니에요. 사람 꼴이 말이 아닙니다.”

민우의 눈썹이 움찔했다.

“왜? 영석이가? 데모하다 다치기라도 했단 말이야? 아니면 어디 연행이라도 됐다는 거야?”

“차라리 데모하다 다쳤으면 제가 업고 병원이라도 가겠어요. 녀석, 수아랑 위도에 갔다 온 뒤로 완전히 넋이 나갔다니까요. 학교엔 나오는데 귀가 먹은 것 같이 굽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도, ‘영석아’ 하고 불러도 아무 대답이 없고,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멍하니 창밖만 보고 있어요. 수아랑 완전히 틀어진 모양인데, 그놈 성격에 자기가 지옥을 자처하고 앉아 있으니 보는 제가 다 복장이 터집니다.”

태종은 답답한 듯 가슴을 팍팍 치며 덧붙였다.

“지금 세상은 신현확이니 전두환이니 하는 놈들 때문에 총칼이 오가는 사투인데, 그놈은 제 가슴 속을 가시로 후벼파면서 스스로 피를 흘리고 있어요. 수아도 쌍문동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 영석이의 전화도 받지 않나 보더군요. 영석이 이 바보 같은 놈은 자기가 수아를 지켰다고 믿으면서 동시에 수아를 잃었다는 사실에 무너지고 있는 겁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제 마음 하나 못 추스르는 걸 보니 정말 미치겠습니다, 형님.”

민우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최 사장이 오목교로 떠나며 남긴 빈집의 적막함 위로, 영석의 무너진 모습이 겹쳐 보였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영석과 수아의 가냘픈 사랑이 비명을 지르며 으스러지고 있었다.

며칠 뒤, 태종은 명륜동 뒷골목 홍성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할머니의 지청구를 듣는 둥 마는 둥 넋이 빠진 채 앉아 있는 영석을 거의 반강제로 잡아끌어 신길동 최 사장의 집으로 데려왔다. 민우 형이 피신해 있는 그 적막한 공간에 도착하자마자 태종은 시장통에서 사 온 머릿고기와 소주 몇 병을 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영석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벽만 응시했다. 민우는 그런 영석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묵묵히 잔을 채웠다. 방 안에는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창문을 때리는 비릿한 바람 소리만 감돌았다. 한 잔, 두 잔, 소주가 이미 막걸리에 취한 영석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굳어 있던 감정의 둑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야, 김영석. 너 정말 바보냐? 아니면 도를 닦는 신선이라도 되려는 거야?”

태종이 답답하다는 듯 소주잔을 탁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술기운이 오른 태종의 목소리가 민우의 조용한 방 안을 울렸다.

“너는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몰라. 여자가 ‘삼춘은 잘못한 거 없어’라고 했다고? 그게 무슨 뜻인 줄 알아? 그건 ‘왜 그때 더 용감하지 못했어? 왜 내 손을 더 꽉 잡아주지 않았어?’라는 피맺힌 원망이야, 인마. 여자는 말이야, 남자가 자기 도덕 지키겠다고 뒤로 물러설 때 고결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라면 지옥 불에라도 같이 뛰어들겠다는 그 무모함에 생을 거는 존재라고.”

태종은 영석이가 자신의 추궁에 마지못해 몇 마디 중얼거린 소리를 안주 삼아 영석이를 호되게 몰아쳤다. 세상 여자의 심리는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영석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종은 멈추지 않고 영석의 가슴 가장 깊은 곳을 후벼팠다.

“너는 네 자존심, 네 고결함 지키느라 수아가 내민 마지막 손을 놓쳐버린 거야. 수아한테 위도는 도피처가 아니라, 너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최후의 전쟁터였어. 걔한테도 자존심은 있을 거 아냐? 여자가 먼저 대시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 근데 너는 거기서 신사 노릇이나 하고 앉아 있었으니, 수아 입장에서 그게 사랑으로 보이겠냐? 그냥 자기를 책임지기 싫어하는 비겁한 남자의 변명으로 들렸겠지. 설마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모두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말을 안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민우가 조용히 영석의 잔을 다시 채우며 한마디 거들었다.

“영석아, 세상이 이토록 엄혹할 때는 사랑도 투쟁처럼 해야 하는 법이다. 네가 지키려 했던 그 선이, 수아에게는 거대한 벽이 되었을지도 몰라.”

태종과 민우의 말들이 독한 술기운과 섞여 영석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마침내 영석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굵은 눈물방울이 소주잔 속으로 툭 떨어졌다. 처음에는 어깨를 들먹이며 끅끅대던 울음소리가, 이내 봇물 터지듯 통곡으로 변했다.

“내가, 내가 정말 잘못했어. 수아야!”

영석은 상 위에 엎드려 아이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술에 떡이 되어 붉어진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그는 수아의 이름을 부르며 방바닥을 손톱으로 긁었다. 위도의 라일락 향기가, 그녀의 가느다란 어깨가, 그리고 성북역에서 뿌리치던 그 차가운 손길이 영석을 끝없는 자책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신길동의 낡은 자취방, 시대의 어둠에 갇힌 청춘들이 소주병 뒤로 몸을 숨긴 채 울고 있었다. 영석의 오열은 신군부의 군화 소리가 가까워지는 1980년 5월의 밤공기를 타고 처절하게 흩어졌다.

영석의 처절한 통곡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태종이 당황하며 영석의 입을 거친 손으로 막다시피 감싸안았다.

“야 인마! 민우 형 잡혀가길 바라는 거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이 등신아!”

태종은 영석을 나무라면서도, 그의 무너진 어깨를 떨리는 팔로 꽉 끌어당겼다. 영석의 눈물이 태종의 낡은 점퍼 소매를 적셨다. 그 뜨거운 온기에 태종의 눈시울도 이내 붉어졌다. 시대에 쫓기고, 사랑에 다친 친구의 울음소리는 곧 자신들의 신세 같기도 했다. 태종은 영석의 등을 투박하게 두드리며, 새어 나오는 신음을 삼키듯 조용히 함께 울기 시작했다.


“형님! 제가 수아를 한번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그 아수라장 같은 슬픔 한복판에서 민우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더니 홀로 구석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민우의 시선은 얼룩진 천장 한구석에 고정되었다. 영석이 수아를 부르짖으며 흘리는 눈물은 민우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침전물을 흔들어 깨웠다.

천장의 누런 얼룩 위로 정희의 얼굴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민우 씨, 우리에게도 봄이 올까요?’

함께 밤길을 걷던 정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민우에게 정희는 사랑이자 신념이었고, 그가 이 척박한 투쟁의 길을 걷게 만든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민우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었다. 영석이 겪는 '내륙의 섬'이 수아와의 갈등이라면, 민우의 섬은 정희가 없는 이 거대한 시대의 어둠 그 자체였다.

민우는 타들어 가는 담뱃재를 털지도 못한 채, 환영 속 정희의 눈동자를 쫓았다. 영석은 수아를 잃었다고 통곡하지만, 민우는 정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지워야 하는 운명 속에 있었다.

“사랑도 투쟁처럼 하라고 했는데, 내가 영석이에게 너무 잔인한 말을 했나.”

민우가 읊조리듯 내뱉은 연기가 방 안의 공기 속에 흩어졌다. 술에 취해 울다 지쳐 잠든 영석과 그 곁을 지키는 태종, 그리고 정희의 얼굴을 그리며 밤을 지새우는 민우. 신길동의 밤은 그렇게 각자의 섬을 가슴에 품은 채 무겁게 깊어만 갔다. 창밖으로는 5월의 비가 황사를 머금고 끈적하게 내리고 있었다. 민우가 말없이 담배 한 대를 다시 피워물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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