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이의 청구서

by 서완석

“정읍 와서 술 살 돈 남겨놓으시게나.”

오늘 아침, 하진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가 쓴 시 '치금을 팔았다'를 보고 보낸 것이다.


성은 하, 이름은 진. 내 친구 하진이는 세무사다.

대변과 차변을 칼같이 가릴 줄 아는 놈이

내가 진 빚을 모를 리 없다.

그래도 그렇지, 사십 년 동고동락한 친구 판 돈으로

술값을 갚으라니 참으로 야속하다.


세무사는

작년 12월에 내려가기로 해놓고 어긴 약속까지

부채 항목에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이쯤 되면 세무사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


그나저나 ‘동네집’ 아줌마 손맛도 그립고,

문권이, 상근이, 남근이, 용덕이도 보고 싶은데

빚 독촉하는 진이가 무서워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KTX도 매진, 버스표도 매진이라고 뻥이나 쳐야겠다.

시를 쓰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공개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 쪼가리 한 줄에도 빚쟁이는 어디서나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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