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정의 전설(9)

저수지에 대한 말

by 서완석

사월이 되면
어린 것들은 소살거리다가 새살거리고, 재잘거리며
제각(祭閣)으로 모여든다.


시제를 지내던 문중 성씨는 잊었다.
두 손 모아 기다리는 남의 조상 은덕.
쌀 1할, 고구마 2할, 무가 7할인 울 엄마 밥보다 더 고맙다.


울 아버지 제삿날은 돼지고기 산적 하나인데
여기는 아예 돼지머리가 킬킬거린다.


고사리손에 넉넉히 놓이는 떡이며 고깃덩어리.
과일 몇 알 받아 들고
콧물 섞여 찝찔해진 시루떡, 가래떡
달기만 하다.


어느 날.
상국이가 제각 부근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현장 구경 가자고 나를 꾀고,

머리에 바가지 쓴 아저씨는
이놈들 저리 안 가면 배창시가 터져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고,

귀막고 도망치고, 가고,

그렇게 저수지가 생겼다.


상국이와 내 배창시가 터지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그때 우리 배창시가 터졌으면
저수지도 안 생겼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상국이와 내가 만든 저수지다.


그런데
저수지가 생기면 제각에서 시제 지내는 거냐.

우리들 떡이랑 고기랑 과일
그런 거 먹을 수 있는 거냐.


울 엄마는
저수지에서 수영하면 물귀신이 갑자기 다리를 끌고 들어간다던데.

저번에 인천강에서 물에 빠져 죽은 형아 넋을 건진다고
고깔 쓰고 꽹과리 치며 춤추던 할머니가

그 형아 머리카락이랑 손톱을 길어 올렸다던데.

그 형아 손톱이랑 머리카락이 맞는 거냐.

어린 나는 모르겠다.
크면 알 수 있는 거냐.


그런데
저수지가 생겨도 제각에서 시제 지내는 거냐.

사월에
우리들 떡이랑 고기랑 과일
그런 거 먹을 수 있는 거냐.


오늘 고향 동생 제관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저수지 부근에는 큰 녹차밭과 '연다원'이라는 근사한 카페가 생겼는데, 손님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카페의 주인이 바로 제각에서 시제를 지내던 후손이라네요. 시제를 지낼 때마다 배고픈 우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시던 조상덕일 것입니다. 부디 번창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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