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선운사 참당암, 5월 25일의 한반도는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어 전국적으로 맑은 하늘을 보였다. 선운사의 밤 기온은 약 10℃ 정도의 전형적인 늦봄의 날씨다. 선운사의 벚꽃은 4월 중순에 절정을 이루고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대웅전 앞마당에 흐드러졌던 벚꽃도 보름 전 비바람에 모두 씻겨 내려갔다. 꽃이 머물던 자리에는 핏기 없는 연두색 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동백꽃마저 대부분 떨어져 바닥에 핏기를 잃고 갈색으로 변해 뒹굴고 있다.
태허 스님이 걷는 발치에도 목이 부러진 채 떨어진 동백꽃송이들이 흙바닥에서 시들고 있었다. 시들지 않고 가장 붉은 순간에 통째로 추락하는 그 꽃들은, 이 순간 광주의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소리 없이 스러져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청춘들의 얼굴 같다. 스님은 차마 그 검게 타버린 꽃의 사체들을 밟지 못하고 발길을 멈추었다.
9월의 초가을이면 도솔천을 핏빛으로 물들일 꽃무릇들은 아직 땅속 깊은 곳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잎은 이미 봄에 말라죽었고, 꽃대는 아직 돋지 않은 텅 빈 흙바닥을 태허 스님은 가만가만 걸었다. 꽃무릇은 잎이 지고 나서 꽃이 피기에 ‘서로 만나지 못하는 인연’을 상징한다. 즉 잎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필 때는 잎이 없는 꽃이다. 7월 말에서 8월 말 경에 진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연한 보라색이나 분홍색, 노란색 꽃인 상사화와는 조금 다르지만 둘 다 상사화라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태허 스님에게 그것은 정희와 민우의 인연처럼,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결코 만날 수 없는 지독한 단절의 예언처럼 생각되었다.
“허! 이놈의 땡중이 방정맞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태허 스님은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종무소를 기웃거렸다.
“시동아 어디 있느냐?”
“예, 스님! 저 여그 있는디요?”
스님은 오늘 민우로부터 전화가 올지 몰라서 아침 일찍부터 본절 종무소로 내려보낸 시동(侍童)을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 직접 어두운 밤길을 초롱 하나 들고 내려온 것이다.
“아직꺼정 소식이 없다드냐?”
“예, 스님! 지도 종무소 전화기 옆에 하루 종일 오줌 누러 갈 때 빼고는 꼭 붙어 있었는디, 스님 찾는 전화는 한 통도 없었구만요.”
시동은 선운사가 부모가 없는 고아들을 데려다 먹이고 재우고,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본인이 원하면 스님의 길을 걷을 수 있도록 길러지고 있는 꼬마 스님으로서 대부분 노스님의 시중을 든다. 물론 그런 꼬마 스님들이 없으면 성인이 된 스님이 시중을 드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시자(侍者)라고 부른다. 그리고 정식 스님이 되기 전, 절의 일을 배우며 수행하는 단계의 사람을 행자(行者)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난번 행색이 꾀죄죄한 사람이 스님이 되겠다고 들어와 행자 생활을 하다가 물건을 훔쳐 도망한 적이 있어 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따라서 스님들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온 시동을 특히 아끼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오늘 광주에서 온 전화는 한 통도 없었단 말이냐? 혹시라도 네놈이 공양간 가서 누룽지 훔쳐 먹는 새에 올 수도 있었을 거 아니냐?”
“스님! 지가 뭣땀시 누룽지를 훔쳐먹는다요? 지는 해우소에 댕겨 온 죄밖에는 없는디.”
너무나 억울해서 샐쭉해지더니 급기야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 같은 시동을 지긋이 바라보던 태허 스님이 한 마디를 하신다.
“허허, 이눔아 내가 몰라서 허는 소리겄냐? 그만큼 지대로 전화통을 지켰는지 알아볼라고 장난친 것이니 노여워 말아라.”
샐쭉해져 있던 시동의 얼굴은 밝아졌지만, 스님의 가슴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탑정 아모레 아주머니는 혹시 왔다 가셨느냐?”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찍부터 장사도 안 나가시고, 공양주(供養主) 보살님과 채공(菜供) 보살님이 주무시는 후원(공양간)옆 요사채에 머물고 기시는디 오늘 밤을 여그서 주무시겠다고 하셨다는디요?”
“그럼 가서 내가 좀 뵙자고 하더라고 전해라.”
“알 것구먼요.”
시동이 뽀르르 공양간으로 달려갔다.
종무소 안, 30촉짜리 백열전등의 불빛 때문에 밝지 않은 종무소 안으로 퀭한 눈의 정희 엄마가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해진 손수건이 땀과 눈물에 젖어 뭉쳐 있었다.
“스님! 어찌 됐당가요? 민우 총각헌티서 전화가 안 왔다요?”
정희 엄마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파르르 떨렸다. 태허 스님은 대답 대신 무겁게 가사를 정리하며 정희 엄마의 맞은 편에 앉았다. 스님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잔인한 대답이었다.
"아이고, 이를 어째야 쓰까잉. 오늘까지라고 안 했능가. 25일까지만 지둘러 달라고 그라고 갔는디. 시방 시계가 몇 시다요?"
“보살. 마음을 가라앉히시게. 아직 자정까지는 눈 깜빡할 시간이 남지 않았능가.”
태허 스님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지만, 스님의 손끝 역시 염주알 위에서 미세하게 방황하고 있었다.
“스님맹키로 수양을 많이 허신 분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 기실지 모르겄지만, 지같이 암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덜은 가슴이 시방 요로코롬 방망이질을 치는 것이 꼭 큰일이 난 것만 같어라우. 아까 공양간에서 들응게 광주 하늘이 시뻘겋게 탔다는 소문도 들리고, 군인들이 길목을 다 막아버렸다는디. 그 순하디 순한 총각이 그 지옥 속에서 어찌 살어 있겄소? 우리 정희는 어쩐다요?
정희 엄마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가슴을 쾅쾅 쳤다.
태허 스님은 감긴 눈 위로 비치는 촛불의 일렁임을 바라보며 나직이 입을 뗐다.
“보살, 불교에서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하여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고 하였네. 하지만 그것은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연의 씨앗을 품는 과정이기도 하지. ‘인연(因緣)’이라는 것은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놓고 싶다고 해서 놓아지는 것도 아니야. 지금 민우 그 친구는 자기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에 가 있는 것이니,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업(業)’이자 ‘도리’일세.”
“아따! 지는 스님이 허시는 말씀을 하나도 알아먹을 수가 없겄는디요? 업이고 뭐고 지는 그런 거 몰러요 스님! 그저 살아서, 살아서 돌아오기만 하면 장땡인디. 지가 탑정 갈기재를 넘어 강경을 지나 삼인입구 그리고 여그 선운사 경내에 들어오기꺼정 빌고 또 빌었구먼요. 제발 우리 정희 눈에서 피눈물 좀 안 나게 해 달라고요. 지는 청상과부라서 일찍 지 애비 보냈지만, 불쌍헌 우리 정희는 시집도 못 가보고 처녀 구신 되겄어요.”
태허 스님은 정희 엄마의 거친 손을 가만히 덮어 눌렀다.
“보살, 아직 시간이 남았네. 사바세계의 시간은 인간의 눈에만 야박한 법이지. ‘찰나(刹那)’가 모여 겁(劫)이 되듯, 마지막 일분일초까지는 희망의 끈을 놓지 말세. 기도가 닿으면 부처님이 굽어살피시지 않겠나.”
방안의 공기는 점차 무거워졌다. 낡은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마치 단두대의 칼날이 내려오는 소리처럼 규칙적이고 냉혹하게 요사채를 울렸다. 밤 11시 50분, 55분... 정희 엄마는 아예 바닥에 엎드려 소리 없는 통곡을 삼켰고, 태허 스님은 염주를 돌리는 속도를 높이며 법성게(法性偈)를 외기 시작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마침내, 선운사의 고요한 산사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종무소의 시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자정을 알렸다.
-띡. 띡. 띡. 삐-
1980년 5월 26일 00시 00분.
민우가 생사 확인의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그 ‘25일’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순간이었다. 종무소의 촛불이 약속이라도 한 듯 길게 춤을 추다 픽 꺼져버렸다. 백열전등만 남은 속에서 정희 엄마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오! 이 나쁜 사람아! 어째 소식이 없당가, 어째!”
태허 스님은 어둠 속에서 마른세수를 했다. 스님의 뺨 위로 뜨거운 것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벚꽃은 이미 졌고, 동백은 목이 부러졌으며, 꽃무릇은 땅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지독한 단절의 예언이 완성된 밤이었다. 태허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한 마디를 뱉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요.”
산 너머 광주 쪽 하늘에서는 마른번개 하나가 소리 없이 번쩍했다.
자정을 알리는 무정한 시보 소리가 휩쓸고 간 종무소 안은, 마치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갯벌처럼 적막하고 황량했다. 정희 엄마의 비명이 잦아든 자리에는 숨소리조차 버거운 절망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사람은 죽을 고비에 이르면 본능적으로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법이다. 정희 엄마는 해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떨리는 눈빛으로 태허 스님을 바라보았다.
“스님! 시방 지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디요. 그 총각이 약속을 안 지킬 사람은 아니잖으요? 전화가 안 왔다는 것은, 전화기가 없는 디 있거나, 붙잽혀 갖고 전화를 헐 수 없는 처지에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겄어요?”
정희 엄마의 목소리에 갑자기 생뚱맞은 확신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 믿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자들이 부리는 최후의 억지일지도 모른다.
“스님도 쪼까 생각을 해보시오. 광주라는 디가 시방 전쟁터나 다름없다는디, 거기 전화기가 온전허니 남아 있겄소? 군인들이 다 뽀사부렀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민우 총각이 지금 워디 산속이나 깊은 구녕에 숨어 있어서 전화기 근처에도 못 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디, 우리가 너무 야박 허게 자정이 되얐다고 인연 끊어졌다 생각허는 것 아니냐 그 말이요.”
태허 스님은 정희 엄마의 그 처절한 ‘희망 고문’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스님의 눈에는 정희 엄마의 등 뒤로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지만, 차마 그 가느다란 빛줄기를 제 손으로 끌 수는 없었다.
“보살. 그래, 보살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사바세계의 일이 어찌 시곗바늘처럼 딱딱 맞아떨어지겠는가. 전화선이 끊겼을 수도 있고, 보살 말대로 전화기가 귀한 곳에 머물고 있을 수도 있지.”
“그라지요? 스님도 그렇게 생각허시지요? 그 총각이 워낙에 얌전허고 똑똑헌 양반이라, 절대 허투루 몸을 버릴 사람이 아녀요. 지금쯤 워디 지인 집 골방에 숨어서 ‘아따, 날이 지났는디 스님 허고 정희 엄마가 을매나 기다릴까’ 허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것이구만요. 지가 괜히 방정맞게 울었어라우. 민우 총각은 살어 있어요. 살어서 분명히 기별을 보낼 것이요.”
정희 엄마는 스스로를 설득하듯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방금까지 엎드려 통곡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야무지게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하지만 그녀의 마디 굵은 손가락은 여전히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태허 스님은 그런 정희 엄마를 보며 ‘자신을 속여서라도 오늘 밤을 버텨야 하는 것이 중생의 삶이구나.’ 싶었다. 스님은 조용히 일어나 종무소 구석에 놓인 찻물을 정희 엄마 앞에 밀어놓았다.
“보살, 차라도 한잔 마시고 어서 가서 눈을 붙이시게. 보살이 기운을 차려야 민우 그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반갑게 목소리를 들려줄 것 아닌가. 인연의 끈이 가늘어졌을지는 몰라도, 보살의 마음속에서 끊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네.”
“그라지요? 그라지요? 그라지요? 네, 스님. 지는 믿는구먼이라우.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아니면 모레라도 저 전화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면서 민우 총각 목소리가 나올 것이요. 암, 그라고 말고.”
정희 엄마는 식어버린 찻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마치 그것이 민우의 생사를 확인해 줄 신묘한 약수라도 되는 양. 창밖 선운사의 밤하늘은 여전히 맑았지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꽃향기 대신 비릿하고 서늘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 태허 스님은 종무소를 나서는 정희 엄마의 굽은 뒷모습을 보며, 차마 뱉지 못한 염불을 마음속으로 갈무리했다.
‘보살이 붙잡은 그 가느다란 줄이, 부디 부처님의 자비이기를. 거대한 폭풍 전의 마지막 기만이 아니기를.’
산사에는 다시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고, 멀리 광주 쪽 하늘에 번뜩이던 마른번개는 이제 더 잦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 가리봉동의 '벌방' 역시 선운사의 종무소만큼이나 지독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낮 동안 공장의 기계 소음에 파묻혀 억눌러왔던 공포는 어둠이 내리자, 습기 찬 벽지를 타고 올라와 남매의 목을 죄었다. 영석은 아까부터 하릴없이 삐걱거리는 문밖의 발소리 숫자만 세고 있었다. 그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곧 숨이 멎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5일 자정이 지난 지 이미 오래였지만, 방 안의 누구도 불을 끄거나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방 한구석, 정희는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올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빨간색 눈물이 한가득이었다. 그가 남겼던 “25일까지만 기다려달라”는 그 단호한 음성이 이제는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가슴을 찔러댔다.
“누나! 좀 누워. 밤이 너무 깊었어.”
영석이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뗐다. 하지만 정희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영석아.”
한참 만에 정희가 입술을 뗐다. 목소리는 힘없이 흩어졌다.
“민우 씨가 길을 잃었나 봐. 서울 오는 길이 험해서, 어디 발이 묶였나 봐. 그치?”
영석은 차마 누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태종이 안동장에서 내뱉었던 '총격'과 '도살장'이라는 단어들이 영석의 뇌리에서 괴물처럼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영석은 그 끔찍한 진실을 누나 앞에 차마 꺼내놓을 수 없었다. 법학도인 그가 평생 믿어온 정의와 국가라는 이름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나의 가냘픈 희망을 도려내는 가장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럴 거야, 누나. 지금 광주 쪽은 전화도 안 되고, 길도 다 막혔다잖아. 민우 형 성격에 무리하게 움직이다 사고 날까 봐 어디 안전한 데 숨어 있을 거야. 형 똑똑하잖아.”
영석의 위로는 허공에 붕 떴다. 정희는 다시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좁고 눅눅한 벌방 안으로 창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새벽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정희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그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을 지탱하던 가장 굵은 줄 하나가 방금 전 소리 없이 끊겨나갔음을 직감한 여자의 본능적인 전율이었다.
남매는 서로의 얼굴을 피한 채 각자의 지옥을 견뎠다. 영석은 속으로 ‘아직은 아닐 거야’라고 되뇌었지만, 자꾸만 젖어드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낼 기력조차 없었다. 정희는 벽에 걸린 낡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민우의 심장 소리이기를 간절히 빌며, 오지 않는 소식을 향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선운사의 태허 스님이 보았던 그 마른번개가 서울의 밤하늘에서도 번뜩였을까. 가리봉동의 잿빛 골목길 위로,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진실이 박제된 채 무겁게 내려앉고 있었다.
정희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오전, 가리봉동의 좁은 골목에 집배원의 자전거 벨 소리가 울렸다. 영석은 이 집 주소를 모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혹시나 민우 형의 소식일까 싶어 맨발로 마당까지 뛰어나갔다. 하지만 집배원이 건넨 것은 투박한 관공서 봉투가 아닌, 은은한 살구색 빛이 감도는 도톰한 편지봉투였다.
봉투 뒷면에는 정갈하면서도 힘 있는 필체로 ‘이수아’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영석의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 영석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 후, 손을 떨며 봉투를 뜯었다. 그 안에는 정성스레 접힌 편지지가 두 장이나 들어 있었다. 편지지의 3분의 2 이상을 빽빽하게 채운 수아의 글씨는 영석의 눈앞에서 하얀 나비처럼 너울거렸다.
삼춘!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어요.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에 제 마음도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신경이 많이 쓰였답니다. 가리봉동이라니요. 서울 하늘 아래 그런 곳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삼춘이 그곳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눅눅하고 좁은 방에서 법전과 씨름하며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몸은 좀 어떠신지, 혹여 식사는 거르지 않는지 걱정부터 앞서네요.
이사하시느라 정신없으셨을 텐데 제 안부까지 세심히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편지에 적어주신 주소를 보며 삼춘이 그곳에서 보냈을 밤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사는 무사히 잘 마치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삼춘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남산의 그날을 다시 그려보았어요. 그때는 참 맑고 투명한 날씨였는데, 어느덧 계절은 초여름의 문턱에 와 있네요.
남산에서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 사실 한참을 고민하고 또 망설였어요. 하지만 행간마다 묻어나는 삼춘의 간절함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제게는 더 힘든 일이었답니다. 이번 주 수요일(28일) 오후 2시, 우리가 처음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던 그 벤치에서 기다릴게요. 그날 만나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바랄게요.
1980년 5월 23일, 이수아 올림.
영석은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이 쓰였다’, ‘걱정이 앞선다’, ‘다행이다’라는 평범한 문장들이 영석의 메마른 가슴에 거대한 불꽃을 지폈다. 편지의 길이나 정성으로 보아 이건 결코 이별을 통보하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영석의 눈에는 수아가 자신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다시 열어둔 것처럼,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애정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아가... 수아가 나를 잊지 않았어. 나를 걱정하고 있어.’
영석은 편지를 가슴에 꼭 품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곰팡이 핀 천장의 얼룩이 수아의 미소처럼 피어올랐다. 민우 형에 대한 불안감으로 꽉 막혔던 가슴이 수아의 편지 한 통에 마법처럼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 비좁은 가리봉동의 벌방이 수아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약속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는 환희가 영석의 온몸을 휘감았다. 영석은 수아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단어 하나 글자 하나가 가진 의미를 탐색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터지는 웃음에 어쩔 줄을 모르는 듯했다.
그때, 대문 밖에서 힘없는 정희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영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베개 밑 깊숙한 곳에 편지를 감췄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너무나 화사해 보여, 영석은 뺨을 몇 번 때리고 입가를 비틀어 짐짓 어두운 표정을 만들었다.
정희가 어깨를 늘어뜨린 채 방으로 들어왔다. 일동방직을 그만두고 가리봉동 오거리 직업소개소며 인근 공장들을 전전하다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흙먼지와 절망으로 얼룩져 있었다.
“누나. 고생했어. 일자리는 좀 어때?”
영석은 가슴속에서 춤추는 기쁨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최대한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은 시국이 이래서 그런지 다들 사람을 안 쓴다네. 내일 다시 나가봐야지.”
정희는 대답할 기운조차 없는지 벽에 기대어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은 다시 퀭하니 허공을 향했다. 민우가 반드시 연락을 하겠다던 데드라인이 지난 후, 정희에게 세상은 무채색의 지옥이었다. 영석은 누나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 머릿속으로는 수요일 남산에 입고 나갈 셔츠의 깃을 매만지고 있었지만, 입술은 오직 누나만을 걱정하는 지극한 남동생의 말을 내뱉었다.
“누나, 너무 상심 마. 민우 형 똑똑하잖아. 광주 통신이 다 끊겼다니까 연락이 안 되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몰라. 형 성격에 사고 날 짓은 절대 안 했을 거야. 어디 안전한 곳에 숨어서 기회를 보고 있겠지. 머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누나가 잘 알잖아.”
위선이었다. 영석은 수아의 편지를 읽으며 민우의 얼굴을 단 일초도 떠올리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희의 얼굴을 보자 연인의 생사를 몰라 피가 마르는데, 자신은 헤어진 연인의 답장 하나에 구원이라도 얻은 듯 환희에 젖어 있다는 사실에 잠시 죄책감이 스쳤다. 하지만 베개 밑에 숨겨진 수아의 편지가 주는 그 달콤한 촉감이 등 뒤를 타고 올라오자, 그 죄책감은 이내 구름 위로 흩어졌다.
영석은 고개를 숙인 채 누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슬퍼하는 누나를 위로하는 지극한 동생의 모습이었으나, 영석의 심장은 수요일 오후 2시의 남산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가리봉동의 눅눅한 벌방 천장 위로, 누군가에겐 죽음보다 깊은 절망이, 누군가에겐 생명보다 달콤한 희망이 엇갈리며 기이하고도 슬픈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영석의 손은 누나의 떨리는 어깨를 다독이고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베개 밑에 숨겨둔 편지의 문장들을 탐닉하고 있었다. 누나의 눈물은 차가운 얼음처럼 그의 손등을 적셨으나, 수아의 필체가 주는 미열은 그의 심장 전체를 뜨겁게 달구어 그 어떤 비극도 침범할 수 없는 가느다란 낙원을 만들어냈다.
사람의 마음에는 단 하나의 촛불만 켤 수 있는 방이 있어서, 누군가를 향한 열망이 그 방을 가득 채우고 나면 바로 곁에서 터져 나오는 곡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법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때로 가장 가까운 이의 피눈물을 거름 삼아 피어나는 잔인한 꽃이다. 이래도 사랑을 선택할 텐가. 인간은 사랑을 선택한다.
비극은 언제나 평등하지 않다. 가리봉동의 눅눅한 단칸방 안에서 정희는 연인의 부재라는 지옥을 살고 있고, 영석은 연인의 답장이라는 천국을 살고 있다.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하고 있었으나, 영석에게는 누나의 지옥보다 자신의 손끝에 닿은 분홍빛 종이 한 장이 훨씬 더 실재(實際)에 가까웠다.
(주)
공양주(供養主): 절에서 밥짓는 소임을 맡은 보살
채공(菜供): 공양주 보살을 도와 채소를 다듬거나 반찬을 만드는 소임을 맡은 보살
후원(공양간): 절에서 음식을 만드는 곳
요사채: 사찰 내에서 스님들이 먹고 자고 수행하며, 사찰의 살림살이를 맡아 하는 모든 주거 공간을 통칭하는 말. 대웅전이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공간이라면, 요사채는 스님과 신도들이 생활하는 생활공간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위없이 높고 깊고 깊은 미묘한 부처님의 법이여!”라는 의미
제행무상: 제행(諸行)이란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의 모든 현상과 존재를 말하는 데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 감정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무상(無常)이란 항상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집착으로부터의 자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 희망의 근거를 의미한다. “꽃이 져서 열매를 맺고, 어둠은 물러가 아침을 만든다. 즉 무상은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과 순환을 의미하는 우주의 역동성이다. 제행무상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는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는데 나라고 할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자세히 살펴 퇴고를 해야 하나 너무 오랫만에 올리는 글이고, 또 기다리시는 분들도 계셔서 우선 올리고 봅니다. 몸이 아직 정상이 아니라서 내일 자세히 보고 수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