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일이니 벌써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랑천의 월릉교에서 동부간선도로에 들어서서 군자교 가는 방향으로 운전해야 할 때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길에 성북 레포츠 센터 야외 주차장 빈구석에 차를 세워놓고 중랑천 변의 산책로를 따라 이화교를 거쳐 중랑 철교를 지나 군자교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예쁜 토끼 네 마리가 산책로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1990년대의 중랑천은 썩은 냄새가 진동하였고 통행로가 없어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던 닫힌 하천이었다. 아마도 1999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산란을 위해 중랑천을 거슬러 올라왔던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설이 있었지만, 지독한 냄새가 나는 중랑천에 물고기들이 산란을 하기 위해 거슬러 올라온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그랬던 중랑천이 이제 말끔히 정비되었고, 냄새도 거의 나지 않으며 참게를 잡거나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며 왜가리를 비롯해 많은 동물이 찾아오는 곳으로 변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토끼까지 등장했으니 이게 뭔 일인가 싶어 휴대전화기를 이용해 토끼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봤다. 정보에 따르면, 전 세계에 30종이 넘는 토끼들이 있는데 이를 크게 분류할 경우, 굴을 파고 사는 집토끼(rabbit)와 굴을 파지 않고 사는 산토끼(hare, 멧토끼)가 있다고 한다. 한낱 법학자의 눈으로 그 토끼들이 어떤 종류인지 분간할 능력은 없지만 아무래도 야생에서 자란 토끼들이 아닌 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정작 나를 심란하게 한 것은 녀석들이 나타난 장소가 장마철에 자주 범람하는 중랑천이고 바로 옆은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동부간선도로라는 점이다.
몇 주 동안 지켜보니 이 녀석들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산책로까지 나와 먹이활동을 하다가 사람들이 가까이 온다 싶으면 얼른 근처 풀숲으로 숨어버리곤 했다. 토끼는 먹이 없이 며칠간을 살 수 있지만, 24시간 이상 물을 마시지 않으면 곧 죽어버린다고 한다. 다행히 중랑천에 많은 물이 흐르고 있는 터라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녀석들이 갑자기 출몰한 것으로 볼 때 누군가 유기한 게 틀림이 없고, 그곳이 안전한 곳은 아니니 녀석들을 거두어 키웠으면 좋겠는데 아파트에서 키울 형편이 안 되니 큰 근심거리가 하나 생긴 셈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사료와 배추, 당근, 고구마 등을 사서 토끼들이 나타나는 곳에 놓아주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먹성이 좋았고, 휘파람을 불면 옹기종기 모여들어 내 발밑에서 먹이를 먹을 정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와 킥보드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였다. 설상가상으로 녀석들이 자주 산책로 중간까지 나와 깡충거리며 뛰어다니니 혹시라도 토끼들이 다칠까 싶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시각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녀석들을 지켜보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부근 관할 구청인 동대문구청에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토끼출몰 지역에서 속도를 늦추라는 안내판을 설치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사실 그런 민원까지 들어줄까 싶어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담당 공무원은 아주 친절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곳에 주의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나는 우리나라 자치행정이 이 정도까지 발전했나 싶어 뛸 듯이 기뻤다.
그런 어느 날인가? 삵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녀석이 토끼 한 마리를 쫓고 그 토끼는 죽을힘을 다해 동부간선도로 갓길로 도망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날 이후 추적자는 더 자주 보였고, 녀석들이 어디에서 눈과 비를 피하는지, 추위는 어떻게 견디는지, 먹이는 어떻게 찾아 먹는지, 가끔 목격되던 족제비나 뱀과 같은 천적들의 공격은 어떻게 피하는지 걱정은 갈수록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혹시 술이라도 마신 날에는 중랑천까지 택시를 타고 가 녀석들의 존재를 확인하고서야 집에 갈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거의 10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 토끼 한 마리가 원래 모여 있던 장소로부터 훨씬 북쪽에서 목격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녀석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거의 매일 그 장소에 가서 휘파람을 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19 구조대원들이 중랑천 산책로에 출몰한 애완 토끼를 포획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자 근처 산에 토끼를 다시 풀어주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 토끼들이 내가 먹이를 주던 토끼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토끼는 개와 고양이에 이어 가장 많이 버려지는 생명체라고 한다. 국내에 입양되는 토끼는 유럽 남서부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온 ‘굴토끼’ 종으로 흔히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산토끼’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굴토끼는 한국의 겨울을 견디지 못할 뿐 아니라 애완용으로 길러져 천적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등 야생에서 생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하니 반려 토끼를 버리거나 자연 방생 명목으로 산에 풀어놓는 것은 토끼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나 진 배 없다. 나는 인간 동물과 같이 비인간 동물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생명권을 가지고 있고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헤어짐은 언제나 어렵다. 요즘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랑천에 자주 가지 못하지만, 근처를 지날 때는 녀석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월간 ‘수필문학’ 추천작가회 회원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