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時節因緣)

사람을 잃은 X에게, 나에게, 너에게, 그대들에게

by 서완석

옷깃만 스쳐도
오백 겁의 인연이라 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 저것이 생긴다니


눈길조차 머물지 않던 날들
어느 순간

시절이 너를 데려와
내 생의 길목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너와 나 또한
본래 내 것이 아니어

시절인연에 기대
잠시 머문

연기(緣起) 속 그림자


내가 사랑했고
내 마음이 닿았으면
그로 충분한 일


그가 사랑했는지 묻는 일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버릇


갈라진 흙 틈으로
물 스미듯

또 다른 이름 하나
조용히 차오르겠지


사랑을 잃으면

그렇다 해도
내가 사랑했음은

빛 바래지 않을 문장 하나로 남아


먼 훗날
접어 둔 페이지를 펼치면

기억의 갈피마다
마른 꽃잎처럼
가볍게 부서지겠지


새벽 3시 반에 잠이 깨어 갑자기 제목을 바꾸고 글을 수정했습니다. 이 또한 이 글이 저와 맺은 인연의 법칙이겠지요. 이제는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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