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잃은 X에게, 나에게, 너에게, 그대들에게
옷깃만 스쳐도
오백 겁의 인연이라 했다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 저것이 생긴다니
눈길조차 머물지 않던 날들
어느 순간
시절이 너를 데려와
내 생의 길목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너와 나 또한
본래 내 것이 아니어
시절인연에 기대
잠시 머문
연기(緣起) 속 그림자
내가 사랑했고
내 마음이 닿았으면
그로 충분한 일
그가 사랑했는지 묻는 일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버릇
갈라진 흙 틈으로
물 스미듯
또 다른 이름 하나
조용히 차오르겠지
사랑을 잃으면
그렇다 해도
내가 사랑했음은
빛 바래지 않을 문장 하나로 남아
먼 훗날
접어 둔 페이지를 펼치면
기억의 갈피마다
마른 꽃잎처럼
가볍게 부서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