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영등포 시장통의 비릿한 활기 속에 자리한 ‘고향순대국밥’. 뚝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김이 시장 사람들의 고단한 수다와 뒤섞여 천장으로 흩어졌다.
“선희야! 너 진짜 맛있게 먹는다.”
숙희가 제 그릇에 든 머리 고기 한 점을 숙희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며 낄낄거렸다. 선희는 입안 가득 순대를 물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다. 선희는 일주일 중 이 시간이 가장 달콤했다.
엄마의 잔소리도 피아노 치는 일도, 학교 숙제도 이곳 영등포 시장에 와서 먹는 순댓국 한 그릇이면 모두 해결되었다. 불량식품은 먹지 말고 특히 시장바닥에서 파는 음식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이며. 위생상 좋지 않다고 한 엄마의 말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도 딱 한 번만 먹어보면 절대 그런 소리 안 할 것이라는 자신감마저 생겼다.
한참을 깔깔대며 국밥을 비우던 중, 선희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숙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근데 숙희야, 나 어제... 그거 시작했다?”
“그거? 그게 뭔데?”
숙희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선희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소곤거렸다.
“아이, 계집애야. 달거리 말이야, 생리!”
숙희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실 숙희는 얼마 전부터 밑바닥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공포에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속옷에 묻어난 검붉은 자국을 처음 보았을 때, 숙희는 자신이 몹쓸 병에 걸려 곧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차마 곰소댁에게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새벽부터 젓갈 상자를 메고 비린내 속을 구르는 엄마에게 “나 아래서 피가 나”라고 말하는 것은, 가뜩이나 고단한 엄마의 등에 돌덩이 하나를 더 얹는 짓 같아 무서웠다.
“달거리? 그게 뭔데?”
숙희의 떨리는 물음에 선희가 제법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혹시 밑에서 피 나온 적 없어?”
“응, 나 죽을병이 걸린 것 같아. 그런데 엄마한테 이야기할 수 없어서 우울해.”
갑자기 선희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숙희야, 그게 생리라는 거야. 달거리. 죽기는 왜 죽어!”
선희가 너무 웃어대서 사레가 들릴 지경이 되자, 숙희는 얼굴이 발개져서 주변을 눈치껏 살폈다.
“야! 조용히 좀 해. 남들이 들으면 어떡해.”
“바보야, 그거 병 아니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가 어른이 되려고 몸에서 꽃을 피우는 거라더라. 우리 아빠는 의사잖아. 아빠도 그랬어. 이제 선희가 진짜 숙녀가 됐다고.”
선희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섞여 있었다. 숙희는 그제야 젓가락을 내려놓고 선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꽃? 피가 나는데 무슨 꽃이야. 난 무서워서 며칠 동안 잠도 못 잤단 말이야. 엄마한테 들키면 장사하는 데 부정 탄다고 혼날까 봐 속옷도 몰래 빨아 널었는데….”
숙희의 고백에 선희는 웃음을 멈추고 안쓰러운 듯 숙희의 손을 잡았다.
“우리 아빠는 축하받아야 할 일이라고 했는데 왜 혼이 나. 너,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어?”
“그냥… 내가 입던 러닝 셔츠 찢어서 대놓고 있어. 자꾸 밑이 까끌거려서 걷기도 힘들어.”
선희는 깜짝 놀라며 제 가방을 뒤적였다. 선희의 엄마가 가방 안쪽에 몰래 넣어준, 레이스 주머니에 담긴 일회용 패드를 꺼내 숙희에게 건넸다.
“이거 써봐. 우리 엄마가 사다 준 건데, 구름처럼 폭신해. 너처럼 헌 옷 대고 있으면 덧나서 큰일 난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접착식 패드가 없어서 아주 꽉 끼는 면 팬티를 입거나, 옷핀으로 고정하거나 거들을 덧입어 패드를 몸에 밀착시키는 형태의 패드 밖에 없었대. 아니면 허리에 차는 끈과 앞뒤를 잇는 고리형 끈이 있는 T자형 형태가 대부분이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패드 뒷면에 접착테이프를 붙여 속옷에 바로 고정하는 패드가 나왔대.”
선희가 준 패드에는 유한킴벌리와 ‘뉴 프리덤’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선희야 그러면 나 이제 안 죽는 거야?”
선희가 다시 까르르 웃으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배를 붙잡더니 허리를 구부렸다.
숙희는 처음 보는 하얀 솜뭉치 같은 물건을 신기한 듯 만져보았다.
“선희야 그런데 생리라는 게 뭐야?”
선희는 엄마에게 들은 얄팍한 상식을 뽐내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애기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했어.”
“애기?”
숙희는 논을 동그랗게 뜨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 기집애야. 이제 우리가 애기를 가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러면 내가 언제 애기를 낳게 되는 건데?”
숙희는 극도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애기는 결혼하고 손잡고 자야 생기는 거지. 근데 엄마가 그러는데, 이제부터는 남자애들 조심해야 된대.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된다고… 아무튼 너 이제 진짜 어른이야. 축하해, 숙희야!”
축하한다는 말에 숙희는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졌다. 죽을병이 아니라는 안도감보다, 자신이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슴 한편은 무거웠다. 선희의 아빠는 꽃이라고 축하해 주고 엄마는 배를 만져줬다는데, 우리 엄마는 오늘도 생선을 파느라 내 얼굴 볼 시간도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건너편 좌판에서 고창댁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를 바라봤다.
“선희야, 나… 이거 엄마한테 말해야 할까?”
“당연하지! 너희 엄마가 알아야 맛있는 것도 해주고, 미역국도 끓여주지.”
숙희는 대답 대신 국밥 국물을 크게 한술 떴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며칠간 맺혀있던 울음 같은 응어리가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선희는 식당 밖으로 나가 팔꿈치까지 오는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생선 박스를 정리하던 곰소댁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숙희가요 어른이 됐대요. 그런데 자기 엄마 바쁘다고 말도 못 하고 혼자 죽을병 걸린 줄 알았나 봐요. 좀 챙겨주세요.”
곰소댁의 손에서 생선 박스가 툭 떨어졌다. 억척스럽게 돈 벌어 남부럽지 않게 키우는 게 최고인 줄 알았지, 제 새끼 몸에 꽃이 피는지 피눈물이 나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세월이 매서운 채찍이 되어 심장을 때렸다.
곰소댁은 선희가 다시 최사장네 가게로 돌아간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고무장갑 위로 비린내 나는 생선 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마음속에 차오르는 자책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 새끼 피 흘리는 줄도 모르고 생선 박스만 옮기고 있었구나.’ 곰소댁은 장화를 신은 채로 시장통 약국으로 내달렸다.
“약사님! 그… 거시기, 코텍스 하나 주쇼. 제일로 좋은 놈으로다가!”
약사가 건넨 하얀 상자. 거기엔 ‘코텍스’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희가 말한 일회용 패드였다. 곰소댁은 그것을 품에 안고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훔친 사람처럼 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열심히 국밥장사에 여념이 없는 최사장에게 가서 귀엣말을 한 후,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 반 근과 미역 한 톳도 샀다.
곰소댁과 최사장이 집에 도착하자, 숙희가 여느 때처럼 낡은 교과서를 펴놓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숙희야! 자고 있었던 거여? 엄마 아빠가 왔는디 나와보지도 않고.”
곰소댁은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달달 볶으며, 평소답지 않게 숙희를 향해 부드러운 눈길을 보냈다.
“숙희야. 이 미련한 곰탱이 같은 년아, 아프면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녀. 왜 그렇게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냐?”
숙희는 엄마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희가 말해버렸다는 걸 직감한 숙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올랐다. 최 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밥상 위에 곰소댁이 내려놓은 상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따! 우리 숙희가 달거리를 시작했단 말이요.”
“뭣이여? 우리 숙희가 달거리를 한다고? 인자 진짜 숙녀가 되어부렀구만? 오늘 잔치해야 쓰겄네!”
최 사장은 주머니를 뒤적여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한 장을 숙희에게 건넸다.
“이건 내가 주는 축하금이여. 선희랑 맛있는 것 사 먹어. 오늘 둘이서 속닥속닥 하더니만 그런 야그 허느라고 그렇게 깔깔거리고 웃었구먼. 숙희야, 인제 너는 몸 귀한 줄 알아야 혀. 여자 몸은 꽃밭이랑 같은 것이여.”
곰소댁은 잘 끓여진 미역국을 한 사발 가득 떠서 숙희 앞에 놓아주었다. 평소 같으면 “빨리 처먹고 숙제나 해!”라고 했을 곰소댁이었지만, 오늘은 숙희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가만히 쓸어 넘겼다.
“숙희야, 미안허다. 에미가 암 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라 네 몸 변하는 것도 몰라보고… 인제는 그 헌 옷 떼기 쓰지 말고 이거 써라. 선희네 엄마가 사준 것만 못 헐지 모르겠지만, 이거이 세상에서 젤로 비싼 놈이란다.”
숙희는 따뜻한 미역국 김 사이로 엄마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았다. 죽을병에 걸린 줄 알고 밤잠을 설쳤던 공포는 어느덧 사라지고, 국물보다 뜨거운 것이 가슴속을 타고 내려갔다. 숙희는 미역국을 한술 크게 떠 입에 넣었다. 짭조름한 국물 맛이 오늘따라 유난히 달았다.
“엄마, 나 안 죽는 거지? 진짜 어른 되는 거지?”
“아이고 이년아, 죽기는 왜 죽어! 너 장성해서 시집가고 애 낳을라고 몸이 준비하는 것이라니께.”
곰소댁과 최 사장의 웃음소리가 낡은 문틈을 타고 신길동 골목으로 흘러나갔다. 가리봉동 벌방의 정희가 겪는 고통과 달리 신길동의 작고 비릿한 '생명의 피'가 1980년의 잔인한 5월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 시각, 가리봉동의 눅눅한 단칸방에서 정희는 짓물러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민우는 분명 25일까지는 어떻게든 생존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약속했던 날짜가 지났지만 민우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도 정희는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싶어 뜬눈으로 지새웠고, 아침이 되자마자 부어오른 눈으로 가판대에 가서 사 온 조간신문을 뒤지며 민우에 대한 소식의 단초가 있을까 확인했지만.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했다. 당장 끊긴 끼니와 밀린 방세를 해결하기 위해 정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정희는 가리봉동 오거리의 자욱한 매연 속을 걸어 구로동 공장 단지로 향했다. 공장 담벼락마다 '여공 구함'이라는 방이 붙어 있었지만, “우리 공장은 시국이 시끄러워서 사람 안 뽑아요!”라는 매정한 외침이 비수가 되어 꽂혔다. 정희는 수시로 교대하러 들어오는 여공들의 소란스러움을 들으며, 민우가 없는 세상에서 혼자 밥벌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울음을 터뜨렸다. 광주의 소식도, 민우의 생사도 알 길 없는 정희에게 구로동의 거대한 공장 굴뚝은 마치 거대한 감옥처럼 보였다.
신길동 단칸방의 미역국 냄새가 채 가시기도 전인 다음 날인 5월 26일 새벽, 영등포 시장의 공기는 평소와 달랐다. 생선 궤짝을 내려놓는 소리도, 채소값을 깎는 흥정 소리도 죽어 있었다. 사람들은 셋 이상만 모이면 목소리를 죽이고 갓 발행된 호외나 라디오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보위가 이달 31일에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라네.”
누군가 나직이 읊조린 그 생소하고 딱딱한 이름은 시장 사람들에게 ‘군인들이 이제 대놓고 정치를 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그 서슬 퍼런 칼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바로 사회악 일소라는 명분 아래 진행될 ‘정화 사업’의 소문이었다.
상인들은 ‘국보위’라는 단어의 발음조차 낯설어했지만, 그 조직이 내건 슬로건만큼은 명확히 이해했다. ‘국가 기강 확립’과 ‘사회악 일소’. 그것은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절차보다 서슬 퍼런 칼날이 먼저 움직이는 시대가 왔음을 의미했다. 시장 어귀에 붙은 관보에는 ‘질서’와 ‘정화’라는 단어가 무섭게 박혀 있었다.
“거 참, 이름 한번 무시무시하네. 보위(保衛)라니… 나라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겠다는 소리 아니여?”
정육점 김 씨가 고기를 썰다 말고 라디오 소리에 귀를 바짝 들이댔다. 앵커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김 씨를 비롯한 시장 상인들 모두는 국보위가 출범과 동시에 입법, 사법, 행정의 전권을 장악하며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할 것임을 짐작하고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정치인들 역시 입을 다물었고, 대학가는 숨죽였다. 이제 정치는 여의도가 아니라 군복을 입은 자들이 모인 위원회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시장 사람들에게 이 거대한 권력의 이동은 당장의 생계보다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사회악’이라는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조차 신고 하나로 ‘정화 대상’이 될 수 있는 흉흉한 세상이 된 것이다.
“곰소댁, 소문 들었는가? 그 곗돈 들고 튀었던 미스리 말이여. 경찰에 붙잡혔다고 했잖여, 근디 고것이 단순한 사기 사건으로 끝날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여.”
고창댁은 건너편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최사장이 들을 리 없는데도 최대한 소리를 낮춰 곰소댁의 귀에 대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원수를 갚았다며 쾌재를 불렀을 미스리의 체포 소식이었지만, 고창댁의 눈에는 희열 대신 서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이번에 국보위에서 ‘사회 정화’인가 뭔가를 한다고, 미스리 같은 사기꾼이나 동네 건달들을 싹 다 잡아다가 군부대로 보낸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거기 가면 사람을 개 패듯이 패서 인간을 개조시킨다나 뭐라나. 이름이 무슨 ‘훈련’인가 ‘교육’이라는디, 한 번 들어가면 제 발로 걸어 나오기 힘들다는 거여.”
곰소댁은 전율을 느꼈다. 숙희의 성장을 축하하며 최 사장과 미역국을 나눠 먹던 평화가 한순간에 잿빛으로 변하는 기분이었다.
곰소댁은 고창댁의 말을 들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미스리가 밉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장 사람들의 쌈짓돈을 긁어모아 야반도주했을 때만 해도, 잡히기만 하면 피해자들이 머리채를 다 뽑아놓을 것이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인간 개조’니 ‘군부대’니 하는 말들은 미스리에 대한 해방감보다 더 거대하고 정체 모를 공포를 몰고 왔다.
국보위가 내건 ‘사회 정화’라는 명분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민초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었다. 신군부는 국보위 출범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심 곳곳에 무시무시한 구호들을 내걸었다. 부조리 척결, 부정축재자 처단, 그리고 사회악 일소, 얼핏 들으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 같았으나, 그 방식은 지독하리만큼 폭력적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건전한 사회 기풍’을 조성해야 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시장 사람들에게 건전함이란 곧 ‘침묵’을 의미했다. 깡패나 도둑뿐만 아니라, 정부에 쓴소리를 하거나 눈 밖에 난 이들, 심지어는 마을에서 인심을 잃은 사람조차 ‘정화’라는 이름 아래 어디론가 끌려갈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법의 심판대 대신 군화 소리가 먼저 들리는 세상, 그것이 신군부가 보여주는 ‘질서’였다.
“아니, 그려도 죄를 지었으면 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제, 군대에 보내서 두들겨 패는 법이 어딨당가?”
곰소댁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고창댁이 질겁하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쉿! 입조심 혀. 지금은 벽에도 귀가 달린 시상이여. 국보위가 나라를 다시 세운다고 큰소리를 쳐대는디, 그 놈들 눈에는 재판이고 뭐고 귀찮은 모냥이여. 무조건 잡아다가 정신을 개조시켜야 나라가 바로 선다니 힘없는 우리 같은 것들은 어쩔 것이여.”
곰소댁은 등덜미가 서늘해졌다. 숙희가 처음 피를 흘렸을 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무지에서 온 것이었다면, 지금 영등포 시장을 휘감고 있는 공포는 너무나도 명확한 힘에서 오는 것이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이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누가 먼지이고 누가 쓰레기인지 제멋대로 판단해 쓸어버리겠다고 선언한 셈이었다.
정화(淨化). 깨끗하게 씻어낸다는 그 아름다운 단어는 역설적이게도 1980년 5월의 끝자락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단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박수를 쳤지만, 대다수의 민초는 언제 그 빗자루가 자신들의 발밑을 쓸어버릴지 몰라 숨을 죽였다.
시장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낮게 내려앉았다. 남산 쪽에서 시작된 먹구름이 서서히 영등포를 덮어오고 있었다. 숙희의 머리맡에 놓였던 하얀 코텍스 상자와 엄마의 따뜻한 미역국은 이 거대한 시대의 광기 앞에서 너무나 작고 연약한 평화였다.
영석이 남산으로 떠날 채비를 하던 정오 무렵, 대문 밖에서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십니까? 김영석 씨 댁이죠?”
장마를 앞둔 눅눅한 바람을 타고 들려온 목소리에 영석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문을 열자 동사무소 직원이 서류철이 들어 있는 낡은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서 있었다. 그는 영석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갱지처럼 누런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방위병 소집 통지서입니다. 여기 수령인 명부에 도장 찍으세요. 도장 없으면 지장이라도 찍고.”
영석의 시선이 그 누런 종이에 박혔다. 국방부 장관과 병무청장의 관인이 붉은 피처럼 선명하게 찍힌 통지서였다. 직원은 사무적인 태도로 볼펜을 내밀며 재촉했다. 손가락 끝에 인주를 묻혀 명부에 지장을 찍는 순간, 영석은 마치 자신의 자유가 그 붉은 낙인 속에 저당 잡히는 기분을 느꼈다.
‘입영 일자: 1980년 7월 8일’ ‘소속 및 장소: 대방동 공군본부’
직원이 떠나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주먹 안에 든 통지서의 감촉은 서늘하면서도 무거웠다. 7월 8일. 수아를 향한 그리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 한 달 남짓 뒤였다. 대학생 신분으로 입영 연기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지만, 국보위 출범 직후의 흉흉한 시국은 예외 없는 징집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영석은 2학기에 휴학을 하기로 했으니 병역의무 이행은 당연한 것이지만, 갑자기 통지서를 받고 보니 뭔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고3 때 앓은 폐결핵이 그를 방위병으로 입소하게 만든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바이지만, 여하튼 뭔가 찝찝하고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석은 방 안으로 들어와 책상 앞에 멍하니 앉았다. 창밖으로는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남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방위병이라니... 대방동 공군본부라니.’
가리봉동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 담장 너머는 지금 영석이 딛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광주보다도 멀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영석을 미치게 하는 것은 오늘 남산에서 만나기로 한 수아와의 약속이었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통지서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가 다시 꺼내 펼쳐보기를 수십 번. 빳빳한 종이 끝이 손가락을 베어 물 것 같았다. 수아를 향한 설렘은 어느덧 군 입대라는 현실적인 벽과 국보위가 드리운 서슬 퍼런 공포에 잠식되어 기형적인 모양새로 변해갔다. 만남의 기쁨보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비장함이 영석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영석은 서둘러 누나 몰래 다려놓은 와이셔츠를 입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곧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 나갈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는 홧홧한 가슴을 누르며 집을 나섰다. 대방동 공군본부 담벼락을 지나 남산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 창밖으로 후드득 첫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버스 차창에 매달린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영석의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처럼 번졌다. 주머니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집 통지서. 정희와 민우, 태종이의 얼굴, 곰소댁과 숙희 그리고 최사장 등의 얼굴이 수아의 얼굴과 겹치면서 모든 것이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그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수아만... 수아만 약속 장소에 나와 준다면.”
영석은 자꾸만 젖어오는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서울역에서 내려 남산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데 잔뜩 흐린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자못 커져서 가끔 후드득 소리를 내기도 했다. 주머니 속 통지서가 빳빳하게 허벅지를 찔러왔다. 그것은 마치 가지 말라고 붙잡는 시대의 손길 같기도 했고, 어서 가서 이 비극을 끝내라고 재촉하는 운명의 채찍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