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완패

by 서완석

선생에게 최고의 기쁨은 제자가 잘 되는 일이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를 넘어설 때 느끼는 대견함과 닮아 있으면서도, 학문의 길을 함께 걷는 동지로서 느끼는 경외감까지 보태어진 복합적인 희열이다. 내가 몸담았던 원광대학교를 떠나 새로운 터전으로 자리를 옮길 때, 굳이 나를 따라오겠다며 봇짐을 쌌던 세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이채우 군이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훌쩍 넘어 오늘 다시 나를 찾아왔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법한 시간 동안 제자는 청년에서 어느덧 일본의 중견 교수가 되어 내 앞에 섰다.


사실 나는 그를 학부 시절에 잠시 지도했을 뿐, 대학원에서 그를 정식으로 이끈 선생은 따로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서 민법을 가르치는 최창렬 교수다. 후배 최 교수와 나는 대학 시절 처음 인연을 맺었다. 대학원에서 그는 민법을, 나는 상법을 전공하며 젊은 날의 고뇌와 추억을 함께 나누던 사이다. 그의 성품이 얼마나 꼿꼿하고 실력이 뛰어난 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민법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제자를 그에게 믿고 맡기는 데 주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오늘 우리는 번동에서 이 교수가 먹고 싶어하던 투박한 순댓국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 교수는 차(茶)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소문난 멋쟁이다. 반면 나는 커피 맛은커녕 즐겨 마시는 소주의 종류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그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에 불과하다. 그러니 최 교수가 찻물을 우리고, 향을 맡고, 정성스레 잔을 채우는 그 고요하고 정갈한 과정이 나에게는 소주잔에 술 한 잔 툭 털어 넣는 무심한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인사동의 어느 고즈넉한 찻집, 사장님은 최 교수와 오랜 인연이 있는 듯 익숙하게 다구(茶具)를 내놓았다. 최 교수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차를 끓여 앙증맞은 찻잔에 옮겨 담았다. 대학원 시절부터 최 교수의 그림자를 밟으며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이 교수는, 스승의 손끝 하나하나에 어린 옛 기억을 되새김질하듯 연신 "우리 교수님, 우리 교수님" 하며 감탄을 쏟아낸다. 다도의 깊이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그들 사이에 흐르는 농밀한 교감이 한없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문득 이 교수가 대학원 시절 나를 찾아와 일본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직 박사 학위를 주지 못한 그의 지도교수 최 교수가 느꼈을 당혹감을 짐작했기에 고민이 깊었으나, 나는 결국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비로소 영혼이 깨어나고 성공할 수 있다는 평소의 신념 때문이었다. 다만, 혼기를 넘긴 그에게 "결혼은 하고 가라"는 엄명을 내렸고, 그는 충실히 그 말을 따랐다.


유학 생활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2년이 지나도록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오늘부터 아내와 한국말이 아닌 일본말로만 대화하라"는 서슬 퍼런 명령을 내렸다. 독한 처방이었으나 나는 그의 성실함과 끈기를 믿었기에 내릴 수 있는 채찍질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와세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 테이교대학교(帝京大學校)의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일본으로 날아갔다. 무엇이 가장 먹고 싶으냐는 나의 물음에 제자는 의외로 '스시'를 꼽았다. 고단한 타국 살이에서 스시 한 점 제대로 못 먹고 공부했을 부부의 가난한 식탁이 스쳐 지나가 마음이 짠했다.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100년 전통의 노포에서 스시를 배불리 먹는 제자를 바라보는 선생의 마음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계산서에 적힌 숫자는 부모가 자식의 빈 밥그릇을 채워줄 때 느끼는 안도감, 딱 그 정도의 무게에 불과했다.


오늘 인사동 찻집에서 마주 앉은 이 교수는 본디 클래식 음악의 마니아였고, 그를 이끈 최 교수는 다도와 카메라를 능숙하게 다루는 풍류객이다. 사제지간에 던지고 받는 대화가 어찌나 정겹고 깊은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스승과 제자는 참으로 특수한 관계다. 특히 대학원에서 맺어진 인연은 단순한 지식의 전수를 넘어선다. 도제관계는 한 사람의 생애가 다른 사람의 생애로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으로 정보를 매매하는 속도의 시대에, 스승의 그림자를 밟으며 학문의 길을 익히는 삶은 얼핏 미련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과서에 담기지 않는 정교한 손놀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찰나의 직관, 그리고 업(業)을 대하는 숭고한 태도는 오직 곁을 지키는 시간 속에서만 전수되는 보물이다.


스승은 정답을 가르치기보다 문제를 견디는 법을 먼저 몸소 보여준다. 제자는 스승의 굽은 등과 땀방울을 보며,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새기는 것임을 깨닫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리를 지키는 스승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가장 거대한 텍스트다. 그 뒷모습을 닮아가며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설 때, 도제관계는 '청출어람'이라는 아름다운 매듭을 짓는다.


오늘 나는 최 교수가 사준 흑염소 고기를 처음 맛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그의 '멋'을 보았다. 찻물을 올리는 그의 정갈한 손끝에는 세월이 빚어낸 여유가 묻어났고, 그 찻잔을 받쳐 든 이 교수의 눈빛에는 스승을 향한 경외가 서려 있었다. 투박한 소주 한 잔에 인생을 담는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정교하고도 아늑한 풍경이었다.


수없이 인사동을 드나들었지만, 나는 그저 길목의 번잡함만 스쳤을 뿐 그 속살은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은근한 차 향기에 취해 소주는 없느냐고 묻는 나를, 찻집 사장님은 차와 술을 어찌 비교하느냐는 듯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평생 어느 술집에서도 기세로 꿀려본 적 없는 내가 오늘만큼은 완패를 인정했다. 두 사제지간의 깊은 대화에 지고, 인사동의 진짜 멋에 진 날.


그러나 찻잔 속에 소주 대신 담긴 것은 스승과 제자의 변치 않는 신의였고 정이었다. 마음만은 소주 열 병을 마신 것보다 더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는, 참으로 기분 좋은 패배였다. 나의 제자가 또 다른 스승의 멋을 닮아 저렇게 우뚝 서 있으니, 이보다 더 호사스러운 술상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스승들로부터 학문만 배운 게 아니다. 그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체득해 내 것으로 만들었으니 내가 바로 스승이고, 그 스승이 또 스승을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만은 소주 열 병을 마신 것보다 더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는, 참으로 기분 좋은 패배였다. 어서 그의 부모님이 나이드시기 전에 그가 원하는 국내 대학교로의 이직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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