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라인(Red Line)

by 서완석

미아사거리역에서 계양역 가려면

잠든 4호선 전철을 깨워야 한다.

정갈하게 수염을 밀고 얼굴을 닦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온도로 내보내야 한다.


객차 안에는 이 나라에 일하러 온 이방인이

섞이지 못한 채 눈만 껌벅이고 있다.

그 눈망울 속에서,

이십육 년 전 날마다 몸을 실었던

워싱턴 D.C. 레드라인 속의 나를 본다.


누가 툭 치는데 큰 딸이다.

낯설지 않아 다행이다.


낯모르는 말들이 캐리어를 끌고 서울역에서 내린다.

그들은 어디든 갈 태세로 공항철도를 탄다


나는 아픈 명석이를 보러 간다.

명석이를 데리고 다시 그 레드라인을 타고 싶다.

낯익은 친구 하나 있어 킬킬 웃겠다.


다음은 계양역입니다.

다음은 유니온 스테이션입니다.


계양역이 아니다.

보자르 양식의 레드 라인 유니온 스테이션이 보인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보이고,

카라칼라 욕장도 보인다.

1990년에 내가 본 로마의 테르미니역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가.


명석이가 계양역 건너편에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와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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