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의 죽음에 부쳐

by 서완석

나는 어제 단편영화 ‘격정소나타’ 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분이 월세로 살고 있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매일 접하는 죽음에 관한 내용이지만 다른 기사와 달리 내 가슴을 한참 동안이나 먹먹하게 만든 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자신이 살던 다가구 주택의 또 다른 세입자의 집 문 앞에 붙여 놓았다던 쪽지 내용 때문이었다. 쪽지에는 “그 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주세요.”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서 측은 그녀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수일 째 굶은 상태에서 치료도 못 받고 냉방에서 쓸쓸히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기사를 읽은 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중요 회의를 마치고 갖게 된 단체 점심식사 자리에서 내 앞에 놓인 푸짐한 음식을 보고 나는 그 작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한 어느 한 분이 “참 그 분도 답답하네. 먹을 궁리부터 먼저 해야지”라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 아침에는 어느 아나운서 분이 작가의 죽음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으며, 그녀의 죽음이 마치 결혼 전 옥탑방에 살았고, 지금은 자신의 동반자가 된 사람이 눈을 감은 것만 같아 자꾸 가슴이 아파오더라는 이야기를 트위터에 남겼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배가 고프면 무엇이라도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다가 급기야 헛것이 보이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편안해지는데 편안해지기까지의 과정이 제일 고통스럽다. 이러다 보니 굶는 것에 이력이 날만도 한데 미국에서의 가난한 유학시절과, 귀국 후 시간강사 시절의 배고픔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제도권에 들어왔지만 시간강사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아려오고 그분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은 감정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경험 때문이다. 배고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픈 사람들을 먼저 탓하기도 하는 것 같다. 대부분 “오죽 게으르면” “오죽 못났으면” “오죽 비현실적이면”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교수로 임용받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하는 시간강사가 게을러서, 배고파서, 비현실적이어서 배고픈 것일까?


얼마 전에는 문단의 거목이었던 박완서 선생님께서 가난한 문인에게 조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하고 돌아가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생 시절 지금은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친구와 지방 국립대의 교수가 된 형님 한 분 등과 허름한 선술집에서 밤을 새우며 선생님의 작품을 놓고 열변을 토했던 적이 있으니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들 중 한 분이심에 틀림없다. 조의금이라는 우리네 문화는 과거 집안의 길흉사에 동네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던 풍습이 그대로 전승된 것으로서 어쩌면 품앗이라고도 할 수 있는 법이고, 선생님께서 생전에 남의 애경사를 안 챙기셨을 리 없기에 돌아가신 후 조의금을 받을 권리는 당연히 있었을 텐데도 이를 거부한 것은 가난한 문인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설 연휴에 나는 ‘세시봉 콘서트’를 보며 아련한 추억에 가슴 떨리는 진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고 내게는 별 감흥도 주는 것 같지 않은 젊은 가수들의 문화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방송에 나는 오래 전부터 불만을 느껴왔다. 그리고 이들 말고도 과거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다른 가수들이나 우리를 울고 웃겼던 코미디언과 같은 사람들도 초청해 그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중장년층들을 겨냥한 무대를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든 문화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너무나 항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 자연물 외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유형물이건 무형물이건 모두 문화의 산물이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 심지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까지도 대부분 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생성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 한 그 사회의 문화를 호흡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소위 아이돌 문화라는 것에 별 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내 삶이 스펀지처럼 주변의 것들을 쏙쏙 빨아들이던 시대에 내 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세시봉과 같은 문화 탓이다. 우리 모두는 문화라는 공기를 호흡하며 살고 있는데, 그 공기가 없거나 탁하다면 우리네 삶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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