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의 글씨

by 서완석

“나는 원하는 인간상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글씨체로 바꾸어 인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다. 사람의 내면을 바꾸는 방법 중에서 글씨 연습 만 한 것은 없다.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쉬우며, 정밀하고 효과적이다.” 대한민국 제1호 필적학자, 독립운동가 친필 전문 컬렉터,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고 같은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1년간 검사로 근무한 구본진 검사의 ‘필체를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책의 프롤로그에 적혀있는 말이다. 구검사는 내가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제5기 검찰시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던 날 처음으로 만난 분이다.

나는 대학교수가 되기 전에 여러 직업을 거쳤지만, 그중에서도 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로서의 삶이다. 그리고 보니 강단에서만 무려 37년의 세월을 보냈고, 이제 1년 반이 지나면 교수로서의 삶도 마감하게 된다. 그런데 광운대학교 산하 광운중학교 교사로 일하기 전 당시 광운학원 조무성 이사와의 면접은 잊을 수가 없다. 최종 면접을 위해 이사장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이사장께서는 펜과 흰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내 이름을 한자로 써보라고 하셨다. “우선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왜 우리 학교에서 일하고 싶습니까?”, “자신의 교육관은 무엇입니까?” 등등과 같은 질문을 예상하고 갔던 나에게는 적지 아니하게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흰 종이에 이름을 쓰고 나니 그것을 본 조이사장께서는 “오늘 오후 5시까지 연락이 없으면 탈락하신 것으로 아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내게 그만 가보라고 하셨다.

나는 당시 이사장실을 나오면서 느낀 허탈했던 감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그날 오후 5시에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다. 왜 조이사장께서 내게 그런 식의 면접을 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피면접자로서 왜 그러시는 것이냐고 감히 물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 이력서상의 글씨를 내가 직접 썼는지 확인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옛날 중국 당나라 때의 당서(唐書), 선거지(選擧志)에는 “무릇 사람을 고르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몸이니, 풍채가 늠름해야 하고, 둘째는 말이니 말이 조리 있고, 정직해야 하며, 셋째는 글씨니, 글씨는 아름다움을 다 해야 하고, 넷째는 판단이니,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결국 인재 전형방식에서 인물을 고르는 표준으로 삼는 네 가지 조건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용모, 말씨, 글씨, 판단력의 기준을 의미한다. 옛말에 “문즉인(文卽人) 문기서심(文氣書心)”이라는 말이 있다. 글은 곧 사람이고 글은 곧 기요, 글씨는 마음이라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서여기인(書如基人)” 곧 “글씨가 그 사람과 같다.”는 말도 있다.

나는 초등학교 1년, 그리고 중학교 1년을 큰댁에서 산 적이 있다. 서예가이신 백부께서는 새벽 네 시 경이면 자리에서 일어나시어 화선지에 글씨를 쓰셨다. 나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먹을 갈았다. 꾸벅꾸벅 졸 때는 백부님께서 먹 가는 일도 자기 수양이라고 하셨다. 그런 덕에 각종 백일장, 사생대회, 서예대회 등에 학교 대표로 나가서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 공감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의 심기가 불편한 경우, 내가 쓰는 글씨는 어지럽다. 또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지를 채점할 때도 학생의 얼굴과 글씨가 겹쳐 보일 때가 많다.

나의 대학교 은사이시며 현재 수필가로 활동하시는 이범찬 교수님은 수필집이 나올 때마다 내게 꼭 한 권씩을 보내주신다. 우편물을 받았을 때 느끼는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서는 소포 봉투에 친필로 나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보내주시는데, 글씨가 너무 정겨워 꼭 선생님을 뵌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씨가 있는 부분만 가위로 오려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은 표지 뒤 속지 부분에 아주 예쁜 색깔의 화선지를 오려 붙이고, 거기에 몇 글자를 써서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그 몇 자의 글씨가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고맙다. 언제나 따뜻한 태도로 나를 대해 주시는 그 정을 느낀다. 아직도 글씨에 힘이 있고 흐트러짐이 없으니 틀림없이 건강하시다고 믿는다. 부디 그 글씨에 힘이 빠지는 일이 없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빈다.


이범찬 교수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선생님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

이글은 월간 수필문학 2022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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