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사의 자랑질

by 서완석

흔히 자랑은 양날의 검과 같다고들 한다. 타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타인으로부터 자기 비하나 혐오, 열등감, 시기나 질투를 유발함으로써 인간관계를 해치는 부정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같은 자랑이라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때에는 신 중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성경의 고린도 전서에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라고 씌어 있는 것처럼 다른 어느 종교에 서도 지나친 자랑에 대해 너그럽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어머니 역시 자식들이 자랑하는 것 을 극히 경계하시며 내게도 자주 주의를 주셨다. 무엇보다도 내세우면 안 되는 여덟 가지, 즉 팔불출(八不出)을 강조하신다. 그런데 그런 우리 어머니도 손주들이 당신에게 기특한 일을 한 경우에는 주변인들에게 가끔 자랑하시곤 하니 손주 사랑에는 당신도 어쩔 수 없으신가 보다.

나 또한 자신을 아무리 경계하려 해도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거나 뭔가를 이루었다고 느끼는 때에는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함으로써 상대편으로부터 “지금 자랑하는 거지?”라 는 소리를 듣고 무안해진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가족이나 내남없이 지내는 친구로부터 그런 소리를 듣는 때에는 괘씸하다는 생각보다 내 태도를 점검하여 제동을 걸어주는 고마움과 든든 함을 느낀다.

작년에 나는 대학 동기를 통해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소개받아 시청한 후 큰 깨 달음을 얻어 주변 사람들과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를 전파하고 있다. 하지만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살아오면서도 자신의 선행에 대해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고 옷 한 벌도 허투루 사지 않는다는 그 분은 촬영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적이 없고, 영화 감독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만나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영화를 완성했을 뿐이라고 한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즉 주머니 속의 송곳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듯 그분이 아무리 감추 고 싶어 하신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널리 알려질 선행이고 그러한 그분의 성품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분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갈 정도로 소견머리 좁은 나로서는 이러한 자랑거리가 타인들에게 알려지고 선한 영향력이 두루 퍼짐으로써 이 세 상이 좀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내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 김판사로부터 친구들끼리 모여 식사를 하고 싶다 는 연락이 왔다. 50여 년 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였으며, 환갑여행을 같이 가고 자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인지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사당동의 한 음식점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데 김판사가 “오늘 술값은 내가 낼게, 그리고 내가 친구들을 이렇게 불러 모은 것은 자랑질을 좀 하고 싶어서야”라고 하였다. 김판사는 과거 우리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에 흔히 상장에 씌어 있던 “품행이 단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 다. 거의 모든 판사가 그러하겠지만 김판사는 우리 친구 모두에게 사표가 될 정도로 가정생활 이나 사회생활 모두에서 거의 만점을 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언젠가 판사 월급만으로는 자식들 공부 뒷바라지가 힘들어 돈을 좀 벌어야겠다면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눈앞에 두고 로펌에 들어가 변호사 생활을 하더니만 자식들이 모두 성장 해 자리를 잡자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는 판사라는 직업이 가장 적성에 맞는다며 몇 년 전 다시 말단 판사로 들어가 일하며 올 8월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삶만 으로도 충분한 자랑거리인데 또 무슨 자랑할 거리가 있나 의아했다. 김판사는 변호사의 길을 걷던 딸이 이번에 판사 임용을 받은 것이 너무 자랑스러운데 법원 내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꺼 냈다가는 욕먹기 십상이고, 자랑질은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미치겠으니 우리 친구들 몇 명 을 모아 근질거린 입을 풀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굳이 ‘자랑’에 접사 –질을 붙여 조금 이라도 쑥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지만 우리 친구들에게 그의 자랑질은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상대 앞에서 열등해 보이 지 않으려는 서글프고 과장된 포장도 아니고, 우리의 열등감을 자극하려는 못된 취미에서 나 온 것이 아님도 우리는 안다. 김판사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판사의 길을 딸과 같이 걸어가 게 된 게 너무나 기쁜 것일 뿐이다. 김판사의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판사복을 입고 같이 찍 은 부녀의 사진을 보며 우리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뻐서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특히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행운을 약삭빠르게 얻어낸 것도 아니고, 남의 덕에 얻은 성취도 아니므 로 그러한 일을 자랑질이라고 비하할 일도 아니다. 우리는 김판사의 근질거린 입을 풀어줌으 로써 그의 병통을 낫게 해주었으니 그 대가로 술 한잔 다시 사라고 요구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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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문학’ 천료 등단(2022. 12.)

현재 가천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명예교수

이글은 월간 수필문학 2024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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