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의 가을

by 서완석

‘내셔널 몰(National Mall)’이라는 이름에서 쇼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Mall’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나무 그늘이 진 산책로, 양쪽에 나무가 늘어선 길’이라는 의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워싱턴 D.C.는 계획도시로 미국의 수도이다. 그리고 정식 명칭은 컬럼비아 특구(District of Columbia)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탐험가이자 항해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미국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행정구역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13개 식민지 간의 연합을 주도하기 위해 결성된 대륙회의가 열린 곳이 필라델피아인데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미국의 첫 수도가 필라델피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이 독립한 후 1785년부터 1790년까지 최초의 수도는 뉴욕이었다. 뉴욕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공식적인 수도였으므로 뉴욕을 첫 수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1789년 조지 워싱턴 취임 이후 수도 유치작전이 벌어졌고, 북쪽 주들과 남쪽 주들 간의 경쟁 속에 정치적 합의로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는 대신에 연방정부가 독립전쟁 중에 생긴 독립 주들의 전쟁 빚을 모두 흡수하는 조건으로 만든 수도가 바로 워싱턴 D.C.였다. 그리고 새로운 수도가 건설되는 10년 동안 필라델피아는 임시수도였다. 그런데 워싱턴 D.C.를 설계한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랑팡은 미국 정치의 핵심적 가치인 삼권분립을 도시 설계에 반영하여 워싱턴 기념탑을 기준점으로 해서 동쪽 끝 가장 높은 언덕에 입법부의 상징인 미 의회 건물을 두고 북쪽으로는 행정부를 상징하는 백악관을 배치함으로써 두 건물이 워싱턴 기마상에서 만날 수 있게 하는 직각삼각형 형태로 도시를 설계하였다. 그리고 1902년에 맥밀런 계획에 의해 미 의회 건물과 마주한 서쪽 끝에 링컨기념관을 세우고, 백악관과 마주한 남쪽 끝에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의 기념관을 세움으로써 워싱턴 기념비가 동서남북 축이 만나는 곳에 있도록 하였다. 이를 내셔널 몰이라 부르는데, 주로 박물관이 밀집된 지역으로 워싱턴 기념탑부터 미 의회 건물을 쭉 잇는 문화구역을 일컫는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이 길을 수없이 걸었다. 청설모가 도토리를 모으느라 바쁜 11월의 워싱턴 D.C.는 정말 아름답다. 물론 우리나라 제주도가 원산지인 왕벚나무 ‘벚꽃축제(Cherry Blossom Festival)’로 유명한 봄의 워싱턴 D.C도 아름답지만 내게는 적갈색 단풍의 계절이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찬탈을 묵인한 대가로 일본이 미국에 선물한 왕벚나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꽃은 꽃으로 보아야 하는데 마음 한쪽이 너무 아리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없는 나는 전철을 타고 걸어 다녔기에 매일 아름드리나무와 마주치는 복을 누렸다. 또한 여름밤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던 반딧불과 동틀 무렵 내 방 창문 밖에서 커다란 눈을 껌벅거리던 사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가슴 뭉클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워싱턴 D.C.는 11월에 가을의 절정을 맞이한다. 서늘하고 쾌적한 가을 기후를 느끼며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양측의 주 경계인 포토맥강 건너편의 버지니아 숲 단풍을 바라보노라면 그 오묘함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리고 벚나무보다 훨씬 많다는 노란 은행나무가 뽐내는 황금색 자태 역시 환상적이다. 산이 없는 평지인지라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서울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숲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나무와 잔디가 많다.


나는 재학 중이던 American University 로스쿨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학교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 막차를 놓칠 때가 많았다. Red Line 전철을 타기 위해 Tenleytown 역까지 30여 분을 걸어가야 하는데, 말없이 걷다 보면 불 켜진 집안에서 가족들끼리 까르르 웃는 소리, 두런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고국이 너무 그립고 어린 두 딸이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1월에는 또 집 앞에 눈·코·입을 가진 불 켜진 호박 그리고 빗자루가 놓여 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Halloween Day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생소한 풍습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그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유행하고 이태원 참사로까지 이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남겨진 유족들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질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귀국한 후, 단 한 번도 미국 땅을 다시 밟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워싱턴 D.C를 방문할 기회가 온다면 11월에 가고 싶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나무와 풀들은 그 냄새 그대로 일지, 까르르 웃던 가족들의 웃음소리를 지금 다시 들으면 어떤 감정일지, 버지니아 숲속의 저택에 살며 나를 초대해 맛있는 초밥을 마음껏 먹게 해주었던 한국인 형님은 안녕하실지, 오늘은 워싱턴 D.C의 가을이 사무치게 그립다. 가난한 주머니 탓에 학교 부근 스타벅스에서 몇 번이나 주문을 망설이던 커피를 지금은 당당하게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 글은 월간 수필문학 2023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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