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가서
서슬 퍼렇게 벼려온 칼로 쓱쓱 썬 황기 수십 가닥
무심하게 툭툭 떼어 넣은 것은
분명 내 고단한 살점들이었다
쫄깃하고 구수해서
입안 가득 동의보감이 통째로 씹힌다
칼국수집 간판 아래
수육 접시 위 부추무침은
우리 온다고 사장님이
애써 삶아낸 어머니의 손맛
길음동 적막 속에 계실 분이
언제 화양제일시장까지 다녀가셨을까
아프다는 소식은 자식 걱정 말라며
공중에 뿌려둔 하얀 거짓말
팔천 원에 내 영혼을 저당 잡혀도
나주와 전주, 두 고향의 바람이 버무린 김치는
혀끝에 착 감겨 놓아주질 않는다
비법을 묻기도 전에
옆자리 학생들은 대접 속에
아무 말 없이 코를 박는다
아, 커다란 양푼 너머로 피어오르는
저 구수한
울 어머니 젖몸살 냄새
어제, 이철송 교수님의 초대로 화양제일시장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동의보감수제비칼국수' 집을 찾았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벽면을 가득 채운 약초 담금주들이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내뿜더군요.
무주 깊은 산세에서 주인장이 직접 캐왔다는 약초들이 우슬주(牛膝酒)가 되고, 보약 같은 칼제비가 되어 상 위에 올랐습니다. 나주와 전주, 남도의 바람을 머금고 자란 내외분이 빚어낸 김치와 부추무침은 영락없는 우리 어머니의 손맛이었습니다.
특히 칼제비 집에서 뜻밖에 마주한 정성 어린 수육 한 접시는, 이 시대에 드문 '환대' 그 자체였습니다. 기가 막힌 맛 너머로, 96세 노모의 젖몸살 냄새를 맡았습니다. 팔천 원에 영혼을 저당 잡혀도 좋을, 참으로 귀한 저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