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제7화 수아(1)
영석은 수아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전혀 연락 안 하려던’이라는 문구에서 절망했다가, ‘나를 좋아할 것처럼 보이던 삼촌은 왜 연락을 안 하시나요?’라는 문구에서 희망을 보기도 하며 편지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도대체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날 경양식집에서 얼어붙어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쩔쩔맸던 자신을 수아는 어떻게 보았을지, 영석이 자신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저 당돌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여자는 남자의 표정이나 어투, 몸짓 등을 보고 남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인지 등에 관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학원 수학 선생님께서 학생들의 주의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다 싶을 때, ‘the art of loving(사랑의 기술)’을 외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자신은 물론 남학생들이 언제 졸았나 싶을 정도로 주의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수학 선생님은 전통적으로 여성은 관계 유지, 조율, 협력을 강조하는 사회적 역할을 많이 맡아 왔기 때문에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상대의 속내를 읽고, 상황을 주도하는 ‘사회적 기술’이 발달했다고 하셨다. 또한 남성은 직접적이고 해결 중심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선호하는 반면, 여성은 맥락적이고, 정서적 소통을 더 중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성 쪽이 “더 많이 알고 상황을 장악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여성은 관계의 안정과 조화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어 남성들이 놓치는 긴장, 갈등, 감정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이끌어가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성들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의 감정적 인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애나 부부관계에서 남성들이 “눈치 보며 따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러나 영석을 비롯한 남학생들의 관심은 그런 이론적 설명보다 오직 남성들이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여학생을 쉽게 유혹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남학생들의 이러한 마음을 기가 막히게 알고 계셨다. 그래서 큰소리로 첫째,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려 해도 오히려 태연하게 받아넘기거나 한 발 앞서 나가면서 흐름을 바꿔버려라, 그러면 여성은 “내가 통제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가 끌려가네” 싶은 심리적 역전 현상을 경험하면서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둘째, 여성이 감정적으로 원하는 말을 미리 짚어주고, “내 마음을 다 읽네”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어라, 즉 여성의 공감 능력을 거꾸로 흉내 내거나 이용하라, 셋째, 적당한 거리감, 예측 불가능한 태도, 다른 여성들이 내 옆에 얼쩡거린다는 느낌을 주어 여성들의 “잡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라. 넷째, “저 남자를 놓치면 후회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라. 다섯째, 의도적으로 허술한 듯 행동하면서도 핵심 순간에 주도권을 잡아서 여성이 남성의 허술함이나 무심함을 읽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심리적 패턴’을 무너뜨려라.
그러고 나서 수학 선생님은 손에 쥔 분필로 칠판이 ’쾅‘소리가 날 정도로 줄을 그으며, “밑줄 쫙”을 외치곤 했다. “바람둥이 남성은 여성의 심리적 주도력을 ’거꾸로 활용‘하거나, ’ 흐트러뜨리는 기술자‘라고 할 수 있겠다. 알겠나?” 이때마다 남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고작 두세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여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무슨 죄라도 지은 양 얼굴을 붉히곤 했었다. 남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영석은 배불뚝이에, 결코 잘 생겼다고 말할 수 없는 수학 선생님이 과연 실전에서 항상 승리할까?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가졌었다.
수아의 편지 마지막에는 얄밉도록 솔직한 문장이 이어졌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이 괜찮으시면 남산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길인데, 지난번에는 제가 너무 못되게 굴었죠? 미안해요. 오실 수 있다면, 노을 지는 다섯 시에 남산 분수대 앞에서 기다릴게요. 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냥 편지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P.S. 가 덧붙여 있었다. “가끔 삼춘 생각이 났어요."
영석은 편지를 든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며칠간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도 자꾸 생각나던 수아의 목소리, 그녀의 보이시한 느낌과 당돌한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 남산 분수대, 노을 지는 다섯 시‘라고 편지에 씌어있는 시간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영석은 편지의 전체적인 내용을 보아 수아가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토요일에는 무조건 남산도서관으로 가야 할 것인데,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무렵부터 긴 줄이 만들어지므로 조금 일찍 출발해서 6시 반까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영석은 비루한 옷장에서 그나마 제일 나아 보이는 체크무늬 남방과 베이지색 바지를 입기로 했다. 멋을 내려고 해도 가진 옷이 변변치 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5시 30분에 출발한 1호선 전철이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의 도시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가로등 불빛이 인도를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영석은 1974년 8월 15일, 1호선이 처음으로 개통되었던 날이 갑자기 떠올랐다. 당시 영석은 옥수동 지석이 형 집을 가려고 제물포역에서 전철을 타고 동대문역까지 오는 도중이었다. 그리고 전철 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되고 있던 광복절 기념행사가 열리는 도중, 육영수 여사가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고 소리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1975년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육영수 여사는 정치와 거리를 둔 채 조용하고 겸손한 ’ 어머니‘ 이미지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영석은 막연한 추측을 했다. 그녀의 한센병 환자나 상이군인들을 돌보는 등 약자를 향한 진심 어린 봉사 활동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의 존경과 연민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영석이가 1975년 즉, 고등학교 1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에 나가겠다는 친구 성훈이의 연설문을 써주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연설문은 명문이란 소리를 듣고 성훈이는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한 달도 안 된 5월 20일에 학도호국단이 창설되면서 성훈이는 그 자리를 내려와야 했다. 아니 끌어내려진 것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1972년, 10월에 유신헌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사실상 종신 집권이 가능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을 통제하고 학생들을 체제에 동원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학생 조직인 학도호국단을 재창설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군사적 소양을 길러주어 국가 안보에 기여하고, 학업과 국방을 병행하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 유신정권에 저항하던 학생 시위와 민주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던 대학의 총학생회 등 모든 학생 자치 조직은 해체되었고, 대신 정부가 통제하는 학도호국단이 유일한 학생 단체가 되었다. 대학교와 고등학교의 모든 남학생은 이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고, 학도호국단원들은 ‘교련’이라는 군사 훈련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다. 학도호국단의 조직 체계는 군대식으로 짜여 있었으며, 정부는 이를 통해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정치적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영석은 어느 날 교련 선생님께서 불러 공포심에 떨며 교무실로 들어갔던 기억도 났다. 교련 선생님은 ”너 학도호국단 문예부장이지? “라고 하시며, 다짜고짜 영석의 머리를 바리깡으로 박박 밀어버렸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기를 수 있었던 고등학교라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참하게 잘려 나간 머리카락을 보니 눈물이 났었다. 그러나 매일 교문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위압적인 모습으로 서계시던 선생님이 무서워서, 다른 학생과 비교해 머리가 길기 때문이겠지 자위하기만 했을 뿐 감히 대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운동장에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실려 온양에 있는 충무수련원에 갇혔고, 열흘간, 하루에 네 시간 정도만 자며 정신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5일 정도 지나면서 가슴에 애국심이 영석의 가슴을 뿌듯하게 밀고 올라왔던 기억이 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앞 광장은 희미한 안개와 함께 소란스러운 버스정류장의 아침 풍경을 담고 있었다. 오가는 택시와 버스 사이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대우빌딩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 회현동에서 아현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가도로에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영석은 학원 짝꿍이었던 종석이가 아현동 고개에 있는 양정고등학교를 나왔고, 자기 선배가 손기정 선수라고 자랑하던 생각이 났다. 남산길을 오르자니 전파사에서 김정호의 ’ 이름 모를 소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석은 아침에 누나가 사다 놓은 식빵 한 조각에 설탕을 조금 묻혀 먹고 나온 터라 배가 고팠다. 그러나 저녁에 수아를 만나려면 돈이 필요하고, 점심때 국수라도 한 그릇 사 먹으려면 배고픔을 참아야 했다. 도서관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직 습기가 남아 반짝였다. 분수대는 아침 일찍이라서 그런지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었고, 독립운동과 민족정신을 대표하는 ’ 민족의 지도자상‘을 바라보며 도서관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후 5시 정각, 남산 분수대에는 사람들이 서서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 올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영석은 주머니 속에서 수아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라는 글씨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어쩌면 오지 않는 게 수아의 계획이지 않을까?”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정신을 못 차리게 했던 수아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럴 수도 있다는 방정맞은 생각마저 들었다. 영석은 애써 담담한 척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하늘을 쳐다봤다. 노을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에서 10분이 지나고 있다.
“삼춘, 설마 저한테 속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영석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수아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그러나 신발은 여전히 운동화였다. 아주 세련되고 발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닙니다” 영석은 자신의 마음을 수아에게 들킨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해졌다.
수아는 영석의 옷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에이 오늘도 촌티 나게 입었네”
영석의 얼굴이 빨개졌다. 수아는 그런 영석을 보며 킥킥 웃었다.
“농담이에요, 삼춘. 괜찮아요”
수아는 벤치에 털썩 앉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앉아요, 노을 참 예쁘다.”
영석은 수아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다만 붉게 물든 하늘과 멀리 내려다보이는 후암동의 풍경, 그리고 서로의 존재만이 함께했다. 철 지난 줄도 모르고 매미가 요란하게 울었다. 영석은 지난번의 긴장과 달리 조금은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삼춘 우리 걸어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저녁을 살게요”
“아닙니다. 제가 사야죠” 영석은 속내와 다른 말을 했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진 후, 남산의 밤은 고요와 활기를 동시에 머금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타 소리는 늦은 여름밤의 정취를 더했다. 서로 팔짱을 낀 아베크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영석은 촌놈이 그런 아베크족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에 속으로 감격하고 있었다. 수아는 이태원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삼춘! 노래 잘해요? 나 어니언스의 ’ 편지‘라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좀 불러줄 수 있어요?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따르던 영석은 당황했다. 사실 영석은 노래에는 조금 자신을 가지고 있었고, ’ 편지‘라는 노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수아가 부르라니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여졌다.
”노래를 잘 부르면 내가 더 맛있는 저녁을 사줄 건데, 경숙이가 삼촌 노래 잘할 것이라고 했어요. “
말없이 건네주고 달아난/차가운 손/가슴속 울려주는/눈물 젖은 편지/하얀 종이 위에/곱게 써 내려간/너의 진실 알아내곤/난 그만 울어 버렸네/멍 뚫린 내 가슴에/서러움이 물 흐르면/떠나버린 너에게/사랑 노래 보낸다
영석은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남산길과 조금씩 어두워지는 서울의 야경이 어우러져서 그런지 영석이 생각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감미롭다고 느꼈다.
“어머! 어머! 삼춘 노래 너무 잘한다.”
수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폴짝폴짝 뛰며 박수를 쳐댔다. 그리고 갑자기 영석의 팔짱을 꼈다. 영석은 잠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수아에게서 옅은 화장품 냄새가 났다.
“그럼, 다음 둘 중에서 골라봐”
수아가 갑자기 말을 영석에게 놓았다.
“’리자‘는 저번에 가봤으니 또 다른 경양식집 ’ 라베타‘와 한식을 파는 ’ 코리아 하우스‘ 중에서 골라봐”
영석은 배도 고프고 한식이 먹고 싶어서 코리아 하우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좋아 기분이다! 코리아 하우스가 가격이 비싸다는 걸 삼촌이 어떻게 알지?”
영석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렇다면 ’ 라베타‘로 가시죠” 영석은 수아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었다.
“아니 삼춘, 언제까지 존댓말을 할 거야? 우리 동갑이란 것을 잊었어? 친구끼리 무슨”
“재수생 신분인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경고음이 울렸다. 무엇보다도 올 초에 신체검사를 받은 터라 입대하라는 영장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내년에는 반드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야 한다는 다짐은 수아의 명랑한 목소리와 남산의 밤공기 속에 희미해지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는 수아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이 시간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재수 생활의 유일한 일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삼춘, 왜 그렇게 말이 없어?”
수아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영석은 놀라서 멍하니 수아를 쳐다봤다.
“응, … 그냥” 영석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놓았다.
수아는 씩 웃으며 “좋았어!” 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경숙이는 옆에 있으면 조잘조잘 말이 많은데, 왜 삼춘은 말이 없지? 가끔은 삼춘처럼 아무 말 없이 그냥 같이 있어 주는 사람이 좋기는 하지만”
“삼춘, 그런데 혹시 지금 공부해야 할 시간에 나랑 있는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니지?”
수아의 직설적인 질문에 영석은 변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 뭐…”
“오늘 머리 식히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뭐, 우리처럼 대충 하는 공부하는 애들과는 다를 거 아냐?”
”삼춘이 나중에 대학 가서 합격증 보여주면 진짜 맛있는 것을 사줄 게, 자, 약속! “
수아가 영석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영석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 새끼손가락을 수아의 새끼손가락에 걸었다.
“나 솔직히 공부를 잘 못했거든, 꼴찌는 아니지만, 중간보다 조금 아래야”
“그래서 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부러워 “
“대학 갈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어, 우리 아빠도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고 했어.”
수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영석은 일탈에 대한 죄책감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삼춘.”
“왜 나한테 연락 한 번도 안 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영석은 당황했다.
“그게…” 영석은 말을 더듬었다.
“내 생각이 한 번도 안 났어?”
영석은 수학 선생님의 ‘사랑의 기술’이란 아무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가 싫지는 않은 건가?”
영석은 자신도 모르게 용기를 내어 물었다. 수아는 잠시 영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 글쎄?”
수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영석은 도서관에서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수아에게 며칠간 편지를 쓸지, 말지 수없이 고민하며,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볼 수 있느냐”는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집어넣어 버렸다.
편지를 부치고 난 후, 영석은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편지가 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하느님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을 초조하게 기다렸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영석은 9월 9일에 개최된 MBC 대학가요제에서 입상을 하지 못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 너무 좋아서 따라 불렀다. 애잔하면서도 절제된 감정, 격정적이지 않고 담담하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한 노래가 자신의 처지와 같아서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을 받았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사랑의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그 어느 날 차 안에서 내게 물었지/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고개를 떨구던 그때 그 사람/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 주고/위로하며 다정했던 사랑한 사람/안녕이란 단 한마디 말도 없이/지금은 어디에서 행복할까/어쩌다 한 번쯤은 생각해 줄까/지금도 보고 싶은 그때 그 사람/외로운 내 가슴에 살며시 다가와서/언제라도 감싸주던 다정했던 사람/그러니까 미워하면은 안 되겠지/다시는 생각해서도 안 되겠지 음/철없이 사랑인 줄 알았었네/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이제는 잊어야 할 그때 그 사람
2주 후, 영석의 집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