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8화 수아와 도시락

1979학년도 대학입시를 위한 체력장을 대비하여 재학생들은 학교 체육 시간에 체력장 종목을 꾸준히 연습하고 점수를 관리할 수 있지만, 재수생들은 작년에 치른 체력장 점수가 반영되지 않으므로 11월 5일에 지정된 시험장에서 다시 체력장을 치러야 한다. 따라서 영석은 재수생 신분으로서 체력 단련을 위해 따로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고,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바로 이틀 후에 바로 예비고사를 치르는 것이 매우 불안했다. 게다가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탓에 심리적 압박감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시험에 실패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영석은 잠시 쉬는 시간에 남산도서관 계단을 오르곤 했다. 그러나 열 계단만 올라도 숨이 턱에 차고, 가슴을 조여 오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느낌이 들어 한참 동안 주저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계단에 주저앉아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니,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영석에게 도시락은 애증의 물건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소풍을 갈 때면, 엄마는 항상 영석의 도시락은 물론이고 담임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주셨다. 그리고 선생님의 도시락은 항상 5층짜리 찬합에 싸주셨는데, 1층은 쌀밥, 2층은 찰밥, 3층은 멸치볶음과 같은 마른반찬, 4층은 김치나 나물과 같은 진반찬, 5층은 정성스럽게 자른 각종 과일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반장은 선생님 도시락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계셨고, 청자 담배나 신탄진 담배도 한 보루 넣어주시곤 했다. 선생님은 영석이 엄마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하셨고,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도 영석이 담임 선생님 곁으로 몰려와 같이 엄마의 음식을 드셨다. 그때마다 영석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영석은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 ‘보루’가 무슨 뜻인지 여쭤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영어의 보드(board)를 일본 사람들이 제대로 발음할 수 없어 ‘보루(ボール)’라고 한다고 하시며, 일본어와 달리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겠느냐고 말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으로 전학을 온 후, 영석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기억이 별로 없다. 누나의 벌이가 시원찮았고, 엄마가 시골에서 고생하며 보내주시는 돈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석은 겨울이 무척 싫었다. 친구들은 3교시가 끝나면 모두 자신의 도시락을 조개탄 난로 위에 올려놓고서 당번을 정해, 도시락이 타지 않도록 뒤집는 역할을 맡겼다. 그런데 부잣집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 속에 들어 있는 계란반숙이나 햄이 밥과 함께 익어가는 냄새가 항상 영석의 속을 뒤집어 놓아 무척 괴로웠다.


의사 선생님께서 결핵 초기니까 항결핵제를 착실하게 복용하기만 하면, 전염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학교생활도 할 수 있다고 하셨으며, 무엇보다도 누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영석은 한방에서 지내는 누나에게 자신이 폐결핵에 걸렸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국민학교 6학년 신체검사 때 키가 169㎝여서 가장 뒷자리에 앉았던 영석의 키는 아직 173㎝에 머물러 있다. 영석은 그동안 제대로 못 먹은 탓에 그런 것이라 여겼고, 누나는 영석이 어렸을 때부터 삐쩍 마른 몸매를 하고 있었으니, 영석이 살이 빠져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영석은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먹으라던 삼겹살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엄마가 비닐로 몇 겹이나 싼 후, 다시 비료 포대로 포장하여 이를 화물열차에 실어 보내면, 제물포역 수하물보관소에 가서 미리 우편으로 받은 물표, 즉 수하물보관증과 바꿔서 집으로 들고 올라온 김치가 반찬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석은 겨울보다 여름이 좋았다. 여름과 달리 겨울에는 추워서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친구들이 점심 먹는 장면을 애써 외면한 채 공부하는 체해야 했는데, 그것이 너무 곤욕스러워 애꿎은 화장실만 들락날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봉지 쌀을 사다 도시락을 싸주었다. 동생이 힘들어하는 것이 보기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영석은 신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이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4교시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서 3교시가 끝난 후, 휴식 시간을 이용해 도시락을 먹어버렸다.

4교시는 담임 선생님의 세계사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코를 감싸 쥐더니 소리를 지르셨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영석과 친구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어떤 놈이 4교시까지 참지 못하고 벌써 도시락을 까먹고 김치 냄새를 풍기는 거냐?”

영석은 너무나 민망해 얼굴이 발그레 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접니다”

“이리 나와” 친구들은 빙글빙글 웃었다. 모두들 “선생님께서 영석이 볼이라도 한번 꼬집으며 잠시 놀리시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석이 엷은 미소를 띠며 주춤주춤 하며 선생님 앞으로 다가갔을 때, 선생님은 갑자기 영석의 뺨을 후려쳤고, 영석은 휘청하며 벽에 부딪혔다가 다시 튕겨 나왔다. 선생님은 튕겨 나오는 영석의 뺨을 또 때리고 또 때렸다. 힘 없이 쓰러진 영석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사내자식이 배고픈 것 하나 참지 못해서 뭐가 되려고?”

“들어가!”

영석은 자리로 돌아와서 조용히 가방을 쌌다. 그리고 교실 밖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어! 저놈 봐라. 너 지금 반항하는 거야?”

“거기 서!”

영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영석은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몸도 더 아픈 것 같고, 학교에 가는 것이 지옥에 끌려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누나가 왜 일찍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면 “아침 자율학습이 없어져서 그래”라며 둘러댔다.


토요일 오후 세 시쯤, 영석이 방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는데,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석은 화들짝 놀랐다.

"이 집이 영석이가 사는 집인가요?"

영석은 어디에라도 빨리 숨고 싶었다. 그러나 개미 코딱지만큼이나 작은 방에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문이 하나 있고, 너비가 50㎝ 정도쯤 되는 마루만 있을 뿐 뒷문이 없으니, 퇴로가 전혀 없어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제발 그런 학생 없다고 말해주세요”

영석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주인 할머니는 충청도 분이신데, 저녁 10시 이후에는 전깃불도 켜지 못하게 하시고, 월세가 밀리면 누나를 심하게 닦달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영석은 할머니가 무서워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가 빈교실에 있다가 수위가 복도 불을 끄기 시작하면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므로 일주일간 마당에 있는 화장실 가는 외에는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이 방인데, 누구 슈?”

“아까 참에 화장실 가는 기척이 있었는 디, 방에 있는가 모르겄네유?”

“왜? 학상이 학교를 안 간 겨?”

“학상, 안에 있는 겨?”

영석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참고 있으려니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선생님께서 마루에 걸터앉는 기척이 있었는데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영석은 문을 열고 밖에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선생님이 나지막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다. 영석아 내가 정말 잘못했다.”

“네가 이렇게 사는 줄도 모르고.....”

“네 얼굴 볼 면목이 없으니 돌아가마, 그러나 내일부터 꼭 학교에 나와라, 등록금 걱정은 말고” 영석은 벌써 3기 분치 등록금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후, 돌아가시는 소리가 들려도 영석은 밖에 나가지 않았다. 아니 다리가 얼어붙은 듯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학상, 선생님이 오셨는디, 내다보지도 않고 뭐 하는 겨?”

“여기, 뭘 놓고 가셨구먼”

“이게 뭐여? 밀감 아닌겨?”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할머니가 선생님께서 놓고 가신 물건을 살펴보는 눈치였다. 귤 농사를 지어 자식들 대학에 보낼 정도로 비싼 대접을 받아 ‘대학나무’라 불리는 귤을 선생님께서 사 가지고 오셨다니 영석은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누나는 선생님께서 누나가 주간에 근무하는 대한통운 사무실에 친히 전화를 하시고는 등록금 걱정 말고 학교 나오랬다며 영석에게 마구 화를 냈다.

“나는 네가 일주일간 학교 안 간 걸 몰랐잖아, 너 미쳤어?”


그다음 날 담임 선생님은 영석을 교무실로 불러 영석이의 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아무 걱정 말라고 하셨다. 영석은 나중에 체육선생님을 통해 담임 선생님께서 3기분이나 되는 등록금을 대신 내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사 월급으로 어떻게 그런 돈을 내주셨는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선생님 제가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그럼 갚아야지, 넌 고집이 황소고집이라 꼭 성공할 거야, 어디 나중에 네 술 한잔 거하게 얻어 먹어보자”


“삼춘 여기 있었구나” 수아의 밝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영석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차라 너무 놀라 뒤를 돌아봤다.

“도서관 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없지 뭐야, 그래서 혹시나 하고 와봤더니 여기 있네”

“삼춘, 내가 도시락을 가져왔어, 같이 먹을래? 그런데 내가 처음 싸보는 김밥이라 맛은 장담하지 못하니, 흉보지 말고 정성 100%, 맛 0%를 기준으로 하여 평가를 해줘야 해”

수아는 준비해 온 돗자리를 깔고, 먼저 자리에 앉더니 영석에게 손짓으로 어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번번이 미안해서 어쩌지?”

영석은 정말로 몸 둘 바를 몰랐다. 천성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남에게 줘야 마음이 편한 성격인데 연달아 두 번이나 수아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였다.

“됐네요, 이 사람아! 어서 여기 앉기나 하세요”

수아가 장난스럽게 말하니 영석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져서 자리에 앉았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정읍 충렬사 부근에 있는 우순이 자취집에서, 두 살 위 고모가 끓여주던 김치찌개가 맛있었고, 중학교 다닐 때는 용현동 독쟁이고개와 철뚝길을 지나 있는 재윤이네 엄마가 차려주시던 김치찌개 맛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중앙시장 부근에 있던 정환이 할머니와 정환이 누나가 끓여주던 김치찌개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 수아 덕을 보고 있는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김밥은 옆구리가 터진 것도 있고, 그 모양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맛은 기가 막혔다.

영석은 언젠가 머리를 식히려고 도서관 열람실을 벗어나 대출실에 들른 적이 있다.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영석은 인천 애관극장에서 상영했던 영화 ‘어느 특별한 날’에 출연한 소피아 로렌에게 흠뻑 빠졌었다. 그리고 대출실에서 언뜻 눈에 들어온 그녀의 요리책 ‘In the Kitchen with Love’을 본 적이 있다. 그 책에서 그녀는 “모든 좋은 가정식 요리에서 가장 필수적인 재료는 바로 요리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아니 자신이 수아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삼춘, 여기 마호병 속에 있는 따뜻한 물도 마시고 이제 얼른 들어가 공부해”

영석은 수아의 말을 들으며 “마호병은 보온병을 뜻하는 일본어 ‘마호빙(魔法甁, まほうびん)에서 나온 말이니 그냥 '보온병'이라 하면 될 것을 왜 저러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아 이놈의 못된 버릇”하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영석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벤또’, ‘쓰미끼리’, ‘지리’와 같은 일본말을 들으면 꼭 상대방에게 지적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나는 간다.”

수아는 서둘러 짐을 챙기더니 미처 영석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휭하니 가버렸다. 영석은 한동안 멍하니 서서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수아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쓸쓸함을 곱씹었다. 그리고 사랑은 때로 이처럼 따뜻함과 쓸쓸함을 함께 안겨 주는 맛인가 싶어 하늘을 한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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