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바로 세우는 일, 그 길 위의 편집자

_문장을 다듬는 일, 마음을 닦는 일

by 축성여석

편집자로 살아온 시간

출판 편집자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40년을 넘어섰다. 원고지와 만년필, 타자기에서 시작해 오늘날 인공지능과 디지털 플랫폼에 이르기까지 매체는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언어’였다.
언어는 저자의 생각을 독자에게 건네는 다리다. 그러나 그 다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아무리 진심 어린 메시지라도 왜곡되거나 희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늘 문장을 다듬는 일에 집착해 왔다.

소설과 희곡으로 등단해 스무 권 넘는 책을 집필한 작가로서, 그리고 수천 편의 원고를 교정한 편집자로서, 바른 문장은 내 삶을 지탱한 근본이자 독자와 소통하는 통로였다.


문장을 바로 세우는 교정 노트

책을 오래 가까이하다 보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여러 권이 떠오르지만, 단 한 권만 꼽으라면 남영신 선생의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다.
제목 그대로 한국어 문장을 바로 쓰도록 안내하는 실전 교정 노트다. 얼핏 국어 문법서처럼 보이지만, 추상적 규정보다 현실에서 자주 부딪히는 문장을 골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글을 쓰다 보면 지나치기 쉬운 작은 실수들이 메시지를 크게 왜곡한다. 조사 하나, 어미 하나가 문장의 맥락과 뉘앙스, 심지어 저자의 진심까지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순간을 정확히 짚어내며, 설명 뒤에는 곧바로 연습 문제가 따라와 스스로 고쳐 보게 한다.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써 보게 하여 지식이 ‘내 문장’ 속에 자리 잡도록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참고서를 넘어, ‘쓰기 훈련장이자 마음을 다듬는 수련장’에 가깝다.


편집 현장에서 배운 문장의 법칙

수많은 원고를 다루며 절감한 것은, 많은 저자가 자신의 말버릇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구어체와 문어체가 뒤섞이고, 시제와 호응이 맞지 않아 문장이 삐걱거리는 경우가 잦다. 마음은 분명하지만 문장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독자에게 오해나 거리감을 만든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는 이런 난맥상을 정밀하게 짚어 준다.

“생략은 복원 가능할 때만 허용된다”, “부정어는 반드시 호응해야 한다”, “높임말은 주체·객체·상대의 축을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들은 내가 편집자로서 늘 부딪혀 온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문장을 다듬는 일은 단순히 텍스트를 고치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 왜곡 없이 닿도록 돕는 일이며, 결국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다리를 튼튼히 놓는 과정이다.


언어가 드러내는 관계의 품격

이번 개정판[아직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에는 ‘순화’와 ‘호칭·지칭’ 항목이 보강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외래어를 남용하고, 직함을 과장하거나 차별적인 호칭을 무심코 쓰곤 한다. 하지만 언어는 곧 사고의 틀이며, 인간관계의 거울이다.
어색하고 난삽한 표현은 결국 사람 사이의 마음을 멀어지게 한다.

남영신 선생은 “말을 다듬는 일은 곧 삶을 다듬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 문장은 내 마음에도 오래 남았다.
언어의 품격이 곧 관계의 품격이며, 바른 문장은 세상을 단정하게 하는 힘이 된다는 믿음이 새로워졌다.


바른 문장이 삶을 바로 세운다

나는 지금 브런치에 "총명기, 출판편집 40년의 기록"을 연재하며, 후배와 독자들에게 편집이라는 직업과 글쓰기의 세계를 조금 더 가까이 전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다시금 깨닫는 것은, 바른 문장이야말로 글쓰기와 삶의 중심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태도와 품격을 드러낸다.
문장을 고친다는 것은 사고를 고치는 일이고, 사고가 바로 서면 삶의 방향도 곧바로 선다.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는 그 길을 안내하는 단단한 디딤돌이며, 마음을 세우는 나침반이다.

편집자이자 작가로서 나의 소망은 단순하다.
나부터 바른 문장을 쓰고, 다른 이들의 문장을 바르게 세우는 데 힘을 보태는 것.
문장은 곧 사람이고, 바른 문장은 바른 사람을 만들며, 그 바른 마음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할 것이다.


뱀발


그러나 이 길은 40년을 걸었어도 여전히 고독하고 지난하다. 바른 문장을 향한 집착은 결국 스스로에게 씌우는 엄격한 잣대가 된다. 완벽하게 '직조하고 싶은 글'과 '연재 날짜에 맞춰 내야 하는 글' 사이에서, 종종 나 자신에게 실망한다.

문장을 다듬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의 마음은 정말 글다운 글, 내가 꼭 남기고 싶은 글을 한 편 한 편 수를 놓듯이 직조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시들해지고 몸이 게을러져서 형식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요 며칠,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자꾸 뇌리를 맴돈다. 지금의 내 마음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하다가도 문득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도 어느새 조급해진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으로 가라앉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애쓴다면,
조금은 더 깊이, 글의 결을 이해할 수 있겠지.
만약 그것이 쉬운 일이었다면
그 안에서 어떤 기쁨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다시, 붓을 들어야겠다.

_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전 13화망할 놈의 예술, 그리고 글쓰기의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