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나는 여전히 한 권을 50번을 읽는가?

_40년 출판 편집자의 독서밥

by 축성여석


헤매는 시간의 가치 — 독서는 언제나 느린 출발에서 시작되었다

1988년, 출판사 막내 시절이었다. 선배가 건넨 원고 더미 속에서 한 문장이 눈을 멈추게 했다.

“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도 잠자며, 자연과학은 경직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쓴 ‘토마스 바트린’의 정확한 정보를 알려고 사흘을 뒤져도 찾지 못했다. 도서관의 카드목록을 뒤적이고, 오래된 참고서적을 뒤지며 ‘도대체 누구인가’를 쫓았다.

훗날 그것이 덴마크의 의학자 토마스 바르톨린의 말이었음을 알았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헤매는 시간이야말로 독서의 진짜 출발점이라는 사실.

지금은 손끝 하나로 모든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다. 그러나 진실과 허위를 가려내는 일은 빠른 대신 얕아졌다. 지식의 파편들이 생각의 뼈대를 갉아먹는 시대, 나는 그것을 요약 중독이 만든 ‘뇌의 부식’, 즉 '뇌 썩음(Brain Rot)'이라 부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여전히 헤매고 싶다. 빠른 요약이 덜어내는 것은 시간뿐만이 아니라, 사유가 방향을 얻어 가는 느린 체온이기 때문이다.


AI는 문장을 다듬지만, ‘체온’이라는 영역은 남겨둔다

나는 40년 동안 편집자로 일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원고를 만졌고, 그 가운데 천 권이 넘는 책이 세상으로 나갔다. 그 과정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좋은 원고일수록 요약이 원고의 생명을 빼앗는다. 요약은 핵심을 남기지만, 핵심에 도달하기까지의 ‘머뭇거림’과 ‘침묵’을 지워버린다.

독자가 한 문장을 읽고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그 순간, 침 한 모금 삼키는 그 짧은 정적이 바로 책의 영혼이다. 나는 그것을 ‘행간의 체온’이라 부른다.

요즘 투고 원고나 작가 지망생들에게서 원고를 받으면 나는 조심스레 묻는다.

“혹시… 챗GPT로 퇴고하셨나요?” 대답이 “네”라면, 문장은 매끄럽지만 어딘가 체온이 빠져 있다.

속도가 사유를 이긴 흔적, 너무 평탄한 리듬. AI가 문장의 매무새는 다듬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생을 갈아 만든 ‘아픈 문장’은 대신 쓸 수 없다. 그 영역만큼은 아직도, 그리고 당분간은 인간의 몫이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은 숏폼이 아니다. ‘내가 다 안다’는 착각이다. 나는 67년 인생에서 독서법을 두 번 바꾸었다.

첫 번째는 30대 중반. 닥치는 대로 읽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읽은 책이 500권이 넘는데, 기억나는 건 다섯 권도 안 된다.”

그때부터 한 권을 쉰 번 읽기 시작했다. 깊이 읽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두 번째 변화는 2023년, 챗GPT가 등장한 뒤였다. 실험 삼아 내 첫 책 『철학하는 바보』를 AI에게 요약시켰다.

요약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서늘한 허무가 밀려왔다. 십 년의 고통이 3초 만에 소멸된 느낌.

그때 깨달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핵심을 얻는 일’이 아니라 핵심에 이르기까지 겪는 방황의 축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시 성리학자 주희를 꺼내 들었다.

“쉰 번을 읽어도 모르겠으면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주희 시대에는 책 한 권 얻는 일이 목숨을 거는 일이었고, 지금 시대에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일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숏폼이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를 만드는 건 ‘완벽한 요약’이 주는 착각—이미 다 안다는 느낌이다.

사유의 체력은 줄어들고, 독서는 점점 ‘긴 호흡을 견디는 능력’이 되고 있다.


마지막 감각은 인간의 것이다

헌책방은 거의 사라졌지만, 청계천 한켠에는 아직 몇 곳이 남아 있다. 나는 지금도 그곳에서 30년쯤 묵은 책을 집어 든다.

표지를 열면 오래된 종이 냄새, 습기와 곰팡이가 섞인 바스러진 냄새, 누군가의 손때가 오래 배어든 서늘한 체온이 스며 나온다.

AI는 이 냄새를 줄 수 없다. 책이 책으로 남는 마지막 감각은 결국 인간의 것이다.

올해 내 저서 중 여섯 권이 교과서에 실렸다는 통보를 받았다. 게재료가 통장에 입금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난한 글쟁이로 살면서도 버티며 지켜 온 작은 고집들— 그 고집이 누군가의 청소년기 속에서 아주 작은 빛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독자가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그 문장 자체가 아니라, 그 문장을 쓰던 순간의 내 체온, 나의 냄새, 나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끝까지, 깊게, 천천히 읽는 바보로 살고자 한다.

독서는 이제 사치가 아니라 저항이다. 모두가 “다 안다”고 말하는 시대에 “나는 아직 모른다”고 고백하는 마지막 방식.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한 권을 쉰 번, 백 번 읽는 바보로 살고자 한다.

40년 편집 현장에서 배운 단 하나의 자존심은, 생각은 깊게, 책은 무겁게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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