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의 끄적거림에 대하여

— 마지막 한 줄을 붙잡는 삶

by 축성여석

이번 주는 유난히 바빴다. 연재를 건너뛸까 고민했지만, 매주 글을 올리겠다고 한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졸음이 엄청난 기세로 밀려오지만, 오늘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아마도 이 고집이, 그리고 이 자존심이 나라는 글쟁이를 떠받치는 힘인지도 모른다.


새벽 다섯 시, 문장이 먼저 일어나는 시간

가끔 새벽 서너 시쯤,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지는 날이 있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문장이 먼저 깨어나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반투명한 형체로 떠 있다가, 손을 뻗지 않으면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문장. 춘설처럼 녹아버릴 것이 뻔하니, 나는 섣불리 다시 잠들지 못한다.

휴대전화 메모 앱을 켜 두 줄만 적어두면 마음이 겨우 놓인다. 이때의 문장은 아직 '문장'이라기보다, 의식의 밑바닥에서 떠오른 감각의 덩어리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 조각을 붙잡는 이유는 단 하나다. 글쟁이는 안다. 끄적거림은 버려지는 낙서가 아니라 언젠가 제 주인을 찾아오는 문장의 태아라는 것을.

사람들이 묻는다.

"그냥 쉬면 안 되나요? 매번 메모하고 적는 게... 글쟁이의 직업병 아닌가요?"

맞다.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로운 병이 아니라, 화가가 빛을 보면 손끝이 근질거리고 사진가가 그림자를 보며 셔터를 당기는 것과 같은, 천성의 움직임이다.

40년이 넘도록 글과 편집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이 천성을 싫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끄적거림이 왜 글쟁이의 생명선인가

사람들은 완성된 글만 본다.

날이 바짝 선 문장, 교정이 잘 잡힌 구조, 자신 있는 목소리. 하지만 그 기원은 언제나 미약하다. 글쟁이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문장이 되기 전의 문장들이다.

커피숍에서 들은 짧은 대사, 버스 창밖 풍경이 툭 건드린 기억의 고리, 심지어 TV 광고의 대수롭지 않은 멘트 한 줄조차 문장 안쪽의 어딘가를 톡 하고 두드릴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쓰다 만 비유, 단어 하나만 적힌 메모, 그날 이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기록들. 이 모든 끄적거림은 살아 있는 문장의 씨앗이다. 예를 들어, 한 여행 중 우연히 본 오래된 팻말의 "길은 걸어갈수록 스스로를 드러낸다."라는 짧은 끄적거림이 훗날 장편소설의 한 구절이 되어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던 것처럼 말이다.

쓰는 사람에게 끄적거림은 '이미 잘 쓰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계속 써 나가기 위한 호흡'이다.

글이 막힐 때 나는 오래전 메모들을 다시 펼친다. 언젠가 적어둔 한 줄이 갑자기 "지금이에요" 하고 손을 들 때가 있다.

그 한 줄을 붙잡으면 문장이 열린다. 문장이 문단을 부르고, 문단이 뼈대를 만들고, 마침내 글 전체가 나아갈 길이 드러난다. 그래서 끄적거림은 결코 사소한 부스러기가 아니다. 글쟁이는 그 부스러기 속에서 오늘의 글을 이끌어낼 실마리를 발견한다. 끄적임이 없다면 글쓰기의 생명선도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끄적이는 삶, 그것이 글쟁이의 숙명이라면

어떤 날은 메모 앱을 열어도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형편없는 단어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조각들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가볍다. 그 실패한 기록들 역시 나라는 사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글은 어느 날 갑자기 잘 써지는 것이 아니다. 삶이 하루하루 쌓이듯, 문장도 끄적거림이 모여 어느 순간 형체를 갖춘다. 이 느린 축적을 견디는 일이 글쟁이의 인내이며, 그 시간을 견딘 자만이 진정한 문장을 얻게 된다.

나는 이제 이런 삶이 싫지 않다. 메모 속 문장 파편들을 다시 읽다 보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자잘하게 숨어 있다. 기억은 흐려지지만 기록은 남고, 그 기록이 마침내 나의 문장, 나의 글이 된다.


문장을 붙잡아두려 애쓰는 일, 생각의 조각을 제때 적어두는 일, 남들이 보면 쓸데없어 보일 기록에 집착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글쟁이의 숙명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숙명을 짊어지고 싶다. 끄적거림은 언제나 나를 다시 글 앞으로 데려왔고, 도망치고 싶은 날에도 '다시 써 보라'며 어깨를 두드려줬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몇 줄의 끄적거림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 앞에 내밀 수 있는 글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그 시작은 항상 그렇듯, 아주 작은 메모 한 줄이었다.

글쟁이의 끄적거림은 내일의 글을 준비하는 오늘의 오솔길이다. 그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또 한 편의 글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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