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문장 앞에서 멈춘 어느 밤의 기록
예순여덟의 나이에도 문장 앞에 서면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평생을 남의 글을 다듬는 편집자로 살아왔고, 내 이름으로 펴낸 책도 적지 않지만, 활자가 주는 날것의 설렘은 여전히 새것이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아니라, 문장 앞에 선다는 감각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늘 나를 조금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이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해 준다.
지난 주말, 고향 해남의 투박한 정서가 배어 있는 ‘뿌리말’에 관한 짧은 글을 동창 모임 채팅방에 올렸다. 사라져가는 말에 대한 애정 어린 옹호였다. 칠십을 바라보는 인생의 황혼길에 접어드는 나이라서 환갑이 지난 후 부쩍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고향의 숨결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마음엔 설명하기 어려운 과욕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정을 넘긴 시각, 스마트폰 화면에 세 글자가 떠올랐다.
“이미친.”
더 붙지 않은 말이 오히려 정확했다. 얼굴조차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 동창의 이름 아래 놓인 그 짧은 문장은, 문장이라기보다는 소음에 가까웠다. 순간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편집자로 살아온 시간의 반사신경이었다. ‘이 문장은 너무 거칠다’, ‘이건 고쳐야 할 문장이다’라는 생각이 거의 동시에 스쳤다.
자판 위에 올려진 손가락이 멈춘 것은, 그 판단이 지나치게 빠르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분노보다 먼저 올라온 것은, 분노를 다루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낯섦이었다.
그 짧은 멈춤의 사이로 오래된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삼총사》의 대알렉상드르 뒤마 아들이 아버지를 두고 했다는 말이다.
“아버지는 거대한 강물 같은 분이에요. 너무 커서 강가에 오줌을 누는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하죠.”
그 문장은 위로라기보다는 설명에 가까웠다. 설명은 감정을 단번에 정리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이 어디쯤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줄 뿐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상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곧장 고쳐주고 싶어 했던 나 자신에게 말이다.
그렇다. 조금만 빨랐어도, 나는 동창생 채팅방에서 무척 옹졸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분노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분노를 훈계로 바꾸는 늙은이로.
편집자로 살아온 세월 동안 수만 개의 문장을 만졌다. 향기로운 문장보다 가시 돋친 문장을 더 많이 고쳤고, 상처 입은 원고를 다독이는 일이 내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삶의 가시 앞에서는 늘 서툴렀다. 활자 속의 분노는 잘 다루면서, 현실의 분노 앞에서는 왜 이리 쉽게 흔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말이 혹시 욕설이 아니라 비명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한참 뒤에야 따라왔다. 그는 내 글이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 삶이 버거워 침을 뱉을 곳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고단한 하루 끝에 던진 말 한마디가 우연히 내 문장을 맞췄을 뿐이라면….
그날 밤에서야, 내가 늘 남에게 요구하던 자리에 내가 서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한마디해 주려고 문자판을 열었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가만히 앉아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리운 고향 해남의 뿌리말처럼 눅진한 정서가 내 안에 아직 흐르고 있는지, 아니면 말 한마디에 바닥이 드러나는 얕은 개울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대답은 즉시 오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도 분노가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하나의 답처럼 남아 있었다.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맑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그래, 이것도 흘러가거라."
나는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2026년을 지탱할 작은 경계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수첩을 펼치고 쓱쓱 썼다.
幾幸未窮窄(기핵미궁착)
거의 다행히, 아직 옹졸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아래에 몇 자 덧붙였다.
怒心必慎 心地廣遠(노심필신 심지광원)
'분노를 삼가고, 마음의 바탕을 넓게 가지라'는 의미다.
이 문장들은 다짐이라기보다 표식에 가깝다. 다시 흔들릴 때 돌아와 확인하기 위한 좌표 같은 것. 오랜 세월 문장을 다듬어온 사람에게도, 아직 다듬어야 할 마음의 여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한 경계로 삼기 위한 나만의 부적이다.
마음에 깊이 새긴 말이기에 대관령 눈밭에도 썼다. (1월 11일 일요일, 대관령 삼양목장에서)
幾幸未窮窄_하마터면 옹졸해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