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00년대 낭만파 화가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를 보고 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건, 바위 끝에 단단히 발을 디딘 인물이다. 그는 짙은 녹색의 긴 코트를 입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있다. 등이 곧게 펴진 실루엣은 마치 오랜 여정을 걸어온 끝에 잠시 멈춰 선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앞엔 산과 봉우리들이 겹겹이 펼쳐지고, 그 사이를 안개가 구름처럼 뒤덮고 있다. 모든 것이 부유하고 모호하지만, 그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의외로 명확하고 확고하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마치 고요히 맞서는 듯한 태도. 그는 정면이 아닌, 등을 보이고 있다. 보는 이를 향해 돌아보지 않은 채, 단단히 선 채로 저 너머의 안개와 산맥을 바라보고 있다. 그 뒷모습에 나의 뒷모습을 세워본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귀가 순해진다는 예순을 지나니 전보다 반성과 후회의 어리석음은 덜해진 듯하다. 지난 시절의 철없던 노여움과 잔망스러운 조바심, 앞뒤 없이 끓던 화가 많이 없어졌다.
인생의 많은 것들이 지나간 지금, 나는 이 그림 속 방랑자보다 훨씬 더 많은 안개를 지나왔을지 모른다. 젊었을 땐 안갯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지금은 다르다. 안개는 이제 익숙한 존재고, 때로는 나를 감싸주는 따뜻한 이불처럼 느껴진다. 그 속에서 방향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쉰다는 걸 이제는 안다.
삶의 고난과 흔들림, 지난 시절의 환희와 영광, 안개는 그 모든 것의 경계를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인생은 선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그리고 그 모호함에 마음이 더 쓰이는 나는 이 장면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 정상을 정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서 있는 것’의 의미를 안다.
삶의 고도를 오르내리는 동안,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보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바라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그림은 그래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제는 안개의 중심에, 고요한 마음으로 서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방랑자가 아닌, ‘머무는 자’로서의 나.
때론 멈춰 선 자리가 목적지일 수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나는 산을 넘기 위해 오르지 않는다.
승부도, 증명도, 열망도 이제는 안개의 결 속에 고요히 녹아든다.
남은 것은 오직 바라보는 일.
그저 ‘존재하는 것’의 고요한 품격이 삶의 중심이 된다.
2025.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