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쌈짓돈

by 황성동

할머니의 쌈짓돈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해,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다. 처음 정착한 곳은 하월곡동 산동네, 판잣집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었다. 서울살이는 쉽지 않았다. 부모님은 방학마다 나를 고향 이천의 큰집으로 보내셨다. 방학 내내 머물며 여름이면 개울에서 물놀이하고, 수박과 참외밭을 누볐다. 논둑에 물을 대며 민물고기를 잡고, 마당 멍석 위에서 식사했다. 여치와 잠자리, 개구리를 쫓아다니던 추억이 가득하다.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었다. 해 질 녘이면 화롯불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가래떡과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 추억의 한가운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과묵하고 다소 무뚝뚝하셨다. 말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긴 곰방대에 연초를 꾹꾹 눌러가며 연기를 뿜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반면, 할머니는 늘 다정다감하셨다.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손길, 정겨운 목소리로 나를 안아주셨다. 끼니때를 잊고 놀고 있으면 동네를 돌며 내 이름을 부르셨다. “성둥아! 성둥아!” 식사하라고 부르던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방학마다 부모와 떨어져 홀로 고향으로 내려온 손주. 흙투성이가 되어 뛰노는 나를 바라보며, 할머니 마음 한편엔 늘 짠함이 깃들었을 것이다. 괜찮은 척 웃으며 등을 토닥이셨지만, 아마도 밤이면 이불속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셨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나는 몰랐다. 그 부름의 목소리 안에, 밥 한 끼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 숨어 있었다는 걸!

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로 올라가기 전이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따로 불러 앉히셨다. 가족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틈을 타 나를 마주 보신 뒤, 옷깃 깊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접힌 지폐를 꺼내 내 손에 꼭 쥐여주셨다. “조심히 깊숙이 넣어 갖고 가라. 서울 가면 이것저것 살 것도 많을 텐데.”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 미소 너머엔 그리움과 염려가 배어 있었다. 어린 나에겐 그 돈이 늘 크고 벅찼다. 그저 “할머니는 참 많이 주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다 철이 들고서야, 그 돈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그 용돈은 6·25 때 전사하신 두 분 큰아버지, 아버지 형제들의 핏값이었다. 나라에서 ‘전사자 가족’에게 매달 주는 유족 위로금이었다. 할머니는 그 귀한 돈을 쓰지 않고 아껴두셨다가, 손주에게 쥐여 주셨다. 나는 그 돈으로 서울에서 연필을 사고, 공책을 사고, ‘소년중앙’과 ‘새소년’ 같은 만화잡지도 샀다. 조금 큰 후인 고등학생 때에도 용돈이 필요해지면 일부러라도 큰댁을 찾곤 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할머니가 주시던 쌈짓돈에 이유가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할머님은 1986년 겨울에 돌아가셨다. 한 세기에서 아홉 해가 빠지는 연세였다. 그날도 나는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있었다. 대학생이 된 겨울방학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할머니는 익숙한 몸짓으로 치마 아래 품속에서 또다시 지폐를 꺼내 내 손에 쥐여주셨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작은 손자였다. 사랑채에서 상을 들고 나와 마당을 건너 안채 마루에 상을 놓았다. 큰어머님, 누이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돌아갔다. 사랑채 한쪽, 장롱 옆에 가지런히 쌓인 이불에 기댄 채로, 할머니는 눈을 감고 계셨다. 조용히, 마치 낮잠이라도 주무시는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 “할머니…”나는 조심스레 불렀지만,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손자와 마지막 점심을 나누고, 쌈짓돈을 쥐여주시고는, 따스한 손길을 마지막으로 남긴 채 고요히 세상을 떠나셨다. 마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더는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하셨던 것처럼, 평온하고 조용하게.

할머니의 쌈짓돈은 단순한 용돈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때 그 손길의 온기가 내 삶을 조용히 감싸주는 듯하다. 돈은 사라졌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반짝이고 있다. 쌈짓돈 속엔 가족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역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런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2025. 4. 23

1986.년 실크스크린 판화 밑그림-할아버지.할머니.jpg 1986년 대학시절 판화시간 실크스크린 밑그림으로 그린 '할머니, 할아버지'- 판화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밑그림만 남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