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슈퍼맨의 슈트

by 황성동

예술과 슈퍼맨의 슈트



나는 영화를 자주 보지만, 예술성이나 작품성만을 따지진 않는다. 대체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은 재미있는 영화를 장르에 상관없이 즐긴다. 가끔은 ‘예술영화’를 찾기도 하지만, 복잡하고 난해한 작품보다는 서사가 분명하고 익숙한 주제를 다룬 영화를 선호한다. 낯선 세계의 설렘도 좋지만, 익숙한 감각 속에서 깊이 스며드는 울림이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복잡한 미로보다, 오래된 골목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풍경을 더 반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 어린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초 하월곡동. 뒤편으로는 돌산이 우뚝 솟고, 언덕 아래로는 복개되지 않은 깊고 너른 개천이 흐르던 동네에서 나는 자랐다. 그 무렵,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건 미국 만화 속 영웅들이었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나는 종이로 거미 가면을 만들고, 만화책 속 그림을 따라 그리며 개천변과 돌산을 누비고 다녔다. 친구들과 함께 영웅이 되는 놀이에 푹 빠져들던 그 시절이 지금도 선명하다. 어린 나에게 그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상상의 날개였고, 작고 여린 내게 조용히 힘을 건네주던 마법 같은 존재였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한 첫 슈퍼맨 영화가 개봉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극장으로 달려갔다. 만화 속에 머물던 영웅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 감동은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마음 깊이 새겨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맨’이라는 이름이 붙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자연스레 끌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현실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다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작은 시간 여행이었는지도 모른다.


2025년 7월, 제임스 건 감독의 새로운 슈퍼맨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예고편 속 슈퍼맨은 오랜 팬들의 기억을 정통으로 건드린다. 파란 슈트 위에 붉은 팬티를 덧입은 익숙한 모습 그대로,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가 지닌 상징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양한 버전의 슈퍼맨이 극장과 OTT에서 쏟아졌지만, 이번 작품은 마치 시곗바늘을 되감은 듯, 원작의 본모습을 품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듯하다.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더욱 매력적인 슈퍼맨을 탄생시킨 것 같아 기대가 크다.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주는 존재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의 활약을 통해 잠시나마 일상의 고민을 잊고,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슈트는 단순한 의상이 아니다. 시대마다 달라진 색감과 질감, 문양과 실루엣은 시대정신과 미적 감각의 변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팬들의 마음엔 늘 ‘원래의 슈퍼맨’이 아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과거를 향한 그리움이 아니라, 변주 속에서 사라져 버린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마음이었다. 이번 슈트는 그런 원형적 매력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만들어내는 강렬한 대비,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는 망토의 유려한 곡선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 한 인물의 신념과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슈퍼맨은 다시금 우리에게 말한다. 정의, 희망, 그리고 유년기의 찬란했던 꿈에 대해. 생각해 보면, 슈퍼맨의 슈트 변화는 일종의 예술적 흐름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지 코스튬의 진화가 아니라, 시대가 원하는 영웅의 얼굴과 그를 담는 색채에 대한 응답이자 제안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예술이 걸어가는 길과 닮아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고정된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는다. 슈퍼맨의 슈트처럼, 예술 역시 형태와 표현 방식이 달라질지라도 본질적인 메시지를 잃지 않는다. 시대의 미적 감각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그 속에서 변치 않는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이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던 창작들도 시간이 흐르며 익숙해지고,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한다. 결국 예술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우리의 삶과 깊이 연결된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간다.


한동안 슈퍼맨의 붉은 팬티가 사라졌어도, 그는 여전히 강력한 영웅으로 남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예술도 그 형식과 매체가 변하더라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변화는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며, 우리는 그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얻는다. 결국, 예술은 슈퍼맨의 슈트처럼 변하고 진화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감동과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2025년 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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