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일할 때는 학급 아이들, 동창들, 지인들과 카페나 블로그를 만들어 소통했다. 이제 모임은 하나둘 사라지고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는 사이 몇 년 전부터 이어 오는 은밀한 즐거움이 하나 있다. 바로 ‘추억의 만화’ 관련 블로그를 들락거리는 일이다. 소극적인 편이라 정기 모임이나 오프라인 행사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 가끔 댓글을 남기거나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다. 그곳에는 놀라우리만큼 깊고 진한 향을 지닌 ‘고전 만화의 고수’들이 모여 있다.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희귀본을 소장한 사람도 많고, 꾸준히 값비싼 옛 만화책을 수집해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새소년’, ‘소년중앙’, ‘어깨동무’ 등 종이 잡지의 전성기를 이끌던 원로 만화가들까지 가끔 찾아와 글을 남기고, 정기 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내 하루의 작은 루틴 중 하나는 노트북을 켜자마자 그 블로그에 접속해 새 글을 읽고, 댓글이나 ‘좋아요’를 남기는 일이다. 추억을 함께 나누고 열정을 공유하는 분위기만으로도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예전에는 복간된 만화책을 가끔 사 모으기도 했다. 책을 옆에 두기만 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이 바로 추억이 가진 힘일 것이다.
나와 만화의 길고도 깊은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1968년, 국민학교 1학년이 되어 서울로 전학 오던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지던 등굣길에 나는 늘 만화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미닫이문 너머에 진열된 만화책들은 마치 풍성한 과일처럼 탐스러웠고, 언제나 나를 향해 황홀하게 손짓하는 듯했다. 학교 앞에는 완구와 군것질거리, 만화책과 그림책을 함께 파는 작은 좌판이 있었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던 아주머니의 모습도 아직 어렴풋이 떠오른다. 손에 쥔 동전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같은 만화 부록을 사 들고 가던 순간, 가슴은 늘 두근거렸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1년에 몇 번밖에 살 수 없었지만, 만화로 가득한 소년잡지 한 권은 그때의 나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어느 해에는 꼭 손에 넣고 싶었던 만화 부록이 있었다. 그걸 사고 싶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며 시위했고, 결국 그 만화를 손에 넣었다. 어쩌면 이런 기억들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만화를 좋아하고 그림을 조금 그려본 50~70년 대생들이라면, 비슷한 추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졸업을 앞두고 참여한 ‘자유교양미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은 용두동 시장 안 허름한 건물 2층 구석에 있던 화실에 몇 달 동안 다닐 수 있도록 등록해 주셨다. 그때를 기점으로 수채화를 비롯한 미술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중학교 시절 내내 봄·가을마다 열리던 사생대회에서 늘 최고상을 받았다. 집에는 빨간 잉크로 상이라 찍힌 노트가 늘 쌓여 있었다. 그림 실력이 늘수록 만화를 보고 따라 그리는 일에도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중학교 3년(1974~76) 동안은 만화 그리기에 빠져 지내느라 공부는 늘 뒷전이었다. 그 시절 작업물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액소시돈’이라는 거대 로봇 만화 한 권과, 볼펜으로 빠르게 그린 ‘우주작전’ 두 권, 조흔파의 ‘얄개전’을 각색한 작품이 있다. 얄개전은 표지는 사라지고 낱장으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래 붙들고 작업해 가장 많은 분량을 남긴 작품은 ‘타잔’이다. 누구나 떠올리는 “아아아~”의 바로 그 타잔이다. 나는 기성 작가들의 방식을 흉내 내며 편집부터 제본까지 직접 해 총 13권을 그렸다. 한 권이 보통 100페이지가 넘었으니, 그 작업은 상당히 오래 이어진 셈이다.
당시 인기 있던 ‘계림 문고 청소년 세계 명작’ 시리즈의 타잔 소설을 만화로 각색해 그렸고, 요즘은 볼 수 없는 누런 갱지, 당시엔 ‘시험지’라 불리던 종이에 샤프펜슬로 작업했다. 표지는 얇은 도화지에 수채화로 채색했고, 속지는 바늘에 실을 꿰어 공들여 묶어 제본한 뒤, 호치키스 심으로 한 번 더 고정했다. 앞, 뒤표지, 속표지, 작가의 말, 원작 소개, 영화 소개, 그리고 맨 뒤에는 가격과 날짜까지 적어 넣어 ‘차돌이 문화사’, ‘샛별 문고’라 이름을 붙여 기성 출판사 책처럼 제법 그럴듯하게 꾸몄다.
돌아보니 50년, 반세기가 지났다. 남아 있는 책의 상태는 손만 대도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이 글을 쓰며 책꽂이에서 꺼내 사진을 찍는데, 종이 부스러기가 누룽지 가루 떨어지듯 바삭바삭 흘러내린다.
예나 지금이나 무명작가로 설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만, 평생을 ‘그림’과 함께 해 온 덕분에 나의 추억은 대부분 그림과 맞닿아 있다. 아이들 유·초등 저학년 시절에는 “아빠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이라며 자랑삼아 보여주곤 했다. 잠깐이었지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하던 모습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대학 시절에는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책을 빌려주기도 했고, 교양 강의실 뒷자리에 둘이 붙어 앉아, ‘타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준 기억도 난다. 제인과 타잔의 러브스토리를 조금 과장해 들려주기도 했는데, 소설을 각색해 직접 만화로 그렸으니, 줄거리를 꿰고 있을 수밖에. 그 시절의 한때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련하다.
작업실 간이침대 머리맡 책꽂이에는 오래된 미술 문고와 화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사이에는 어린 시절 내가 그렸던 만화책도 끼어 있다. 손끝만 스쳐도 부서질 만큼 낡았지만, 나에게 그것들은 아직도 향수 어린 보물이다. 책장마다 어린 시절의 시간과 숨결이 배어 있다.
2025.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