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 먼지가 가볍게 흩어지며 불이 붙는다. 금세 속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따스한 기운이 서서히 공간에 스며든다. 몇 분 지나 열기가 자리를 잡으면 불꽃도 고르게 가라앉는다. 가장 낮은 단계로 온도를 맞춰도 하루 종일 춥지 않다. 한 시간이 지나자, 작업실엔 온기가 차곡히 쌓여 몸을 감싸는 따뜻함이 넘친다. 가운데 붉게 타오르는 속살에서 아지랑이 같은 더운 공기가 퍼져 나온다. 석유 타는 냄새마저 오래된 정겨움처럼 다가온다. 난로 옆 의자에 앉아 꾸벅 졸다가 문득 눈을 뜨면, 그 잠깐의 나른함이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하다.
며칠 전, 가을비가 지나간 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면서 올해 첫 불을 지폈다. 어느새 입동이 지났고, 벌써 세 번째 점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속옷 바람으로 버텨도 될 만큼 더웠는데, 계절은 미련 없이 지나간다. 내 겨울 채비라야 석유난로 하나뿐이지만 이만한 벗도 없다. 스무 해 가까이 사용해 왔다. 비싼 석윳값이며 안전을 이유로 전기난로를 들여보기도 했지만, 몸속 깊이 스며드는 온기는 석유난로를 따라갈 만한 것이 없다. 창고 한편에 선풍기 모양 대형 전기히터가 지금도 비닐을 뒤집어쓴 채 멈춰 있다.
어린 시절 고향 갈 때 서너 시간 타고 다니던 완행버스가 생각난다. 운전석 옆에 평평한 회색의 엔진 덮개가 있었다. 그 위가 보조 좌석 역할을 해 자주 앉아 갔다. 겨울이면 아랫목처럼 따듯해 추위를 잊게 해 주었으니 다른 불편함은 충분히 감내했다. 역한 경유냄새와 포장 안 된 구도로의 흔들림, 매연 등으로 차멀미를 심하게 한 것은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등교 시 탔던 만원 버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석유난로에 대한 애정은 그때의 향수가 좀 섞여 있는 듯하다.
나는 더위보다 추위를 더 심히 탄다. 한여름에도 키 큰 선풍기 한 대면 충분하다. 거의 8월은 돼야 여름 채비로 선풍기를 꺼내놓고 어떤 땐 찌는 더위에도 킬 생각도 잊고 지낸다. 현재 반지하 작업실은 여름에는 바깥보다 기온이 떨어져 한기가 있는 편이고 겨울이면 온도가 높아 따듯한 편이다. 올 초 거의 4월 말까지 간혹 난로를 피웠을 것이다. 그때 주문한 석유가 아직 5통 남아있다. 한 번에 8통씩 시키는 석윳값이 만만치 않지만, 지금껏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에게 가장 맞는 적절한 난방은 석유난로로 결론지어져 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부터 머물던 집을 떠나, 10년 만에 뉴타운으로 이사했다. 이사 전후로 챙길 일이 많아 거의 일주일 만에야 오랜 시간 작업실에 머물 러 있다. 10월과 11월 전시로 작품들이 빠져나간 텅 빈 작업실을 오늘에서야 말끔히 정리했다. 구석구석 굵은 먼지를 쓸고 닦고 대걸레로 물청소했다. 석유난로를 틀어놓으니 빠르게 건조한다.
땀 흘려 대청소하고 오늘은 간편식이 아닌 특별한 점심으로 추어탕을 먹고 왔다. 커피를 내려와 난로 옆에 앉는다. 갓 내린 커피 향과 난로의 온기가 섞이니 한껏 여유롭고 식곤증도 몰려온다. 데스크탑 컴퓨터화면 속 유튜브에서 작년 겨울의 커다란 균열이 아직도 봉합되지 못한 채, 재판정에서 부딪히는 목소리들과 뒤늦게 드러나는 진실의 그림자를 쏟아내고 있다. 우두머리의 적반하장은 이제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을 넘어 뒤집힌 거울처럼 현실을 비틀어 댄다.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고관대작이나 정치권의 민낯 또한 가관이다. 저마다의 이해를 껴안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말끝에서 오래 묵은 위선의 냄새가 고약하고 지독하게 피어난다. “그래, 쉽지 않겠지. 어리석은 신념은 평생의 업으로 무덤 속으로 끌어안고 가는 것이 인지상정 일 테니.” 난로 옆에 앉아 혼자 말을 해본다.
뜨거웠던 지난여름을 함께 보냈던 작품들은 전시로 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 젯소 칠한 백색의 캔버스와 상자들이 고요히 숨을 고르고 있다. 한여름의 더위만큼이나 뜨겁게 몰입했던 기대감은 전시장 앞에 서면 종종 부끄러움과 초라함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때때로 문득, 나의 신념도 저 광장에서 흩어지는 메아리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낡은 깃발처럼 언젠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외로운 고집은 아닐까 두렵다. 청년의 우직함도, 장년의 노련함도 갖추지 못한 채 섬세함과 철저한 마무리, 묵묵한 준비 대신 허술함만 내보이는 듯해 마음 한편이 공허해진다.
그래도 이 겨울만큼은 잠시 웅크리고 다시 설계하자. 철저히 시작하고, 충분히 마무리하자. 많이 그리고 더 깊고 단단하게 준비하자.
릴케의 ‘위대한 여름’은 잠시 내려놓고, 겨울의 고요 속에서 다시 작은 기대를 천천히 실천해 보자.
2025. 11. 17.
전시광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