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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Apr 25. 2022

인간과 교육이란 무엇인가

시론 / 최동석_최동석인사조직연구소소장

  많은 사람이 우리 교육과 교육제도를 비판한다. 지금까지 교육의 문제에 대해 수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교육제도를 개선해왔지만, 그럴수록 교육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졌고 이에 따라 사교육시장은 계속 확장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대입 수능의 정시 비율을 높였다 낮추기를 반복했고 다양한 전형 방법을 도입했지만, 오히려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했다. 입시제도는 늘 공정성 시비만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정시 비율을 높이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입시제도와 교육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초등·중등교육뿐만 아니라 고등교육도 지금과 같은 교육방식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지금의 고등교육제도는 비합리적이다. 소위 일류대를 포함한 한국의 대학들이 제구실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많은 교육학자, 교육 관료, 지식인들이 제대로 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설사 좋은 대안이 나오더라도 그것이 실행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그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과 교육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 자원 또는 도구로 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인간을 개인적 욕망과 같은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힌 존재로 볼 것인가?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봐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인간을 한편으로는 자원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 겉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지만, 속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경쟁적 동물쯤으로 간주하고 그렇게 되도록 부추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관점은 거의 사라졌다.     


  당연히 청소년들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에서 멀어졌다. 교육에서 그들을 서로 경쟁시키기 때문이다. 시험성적을 위한 경쟁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고 올바른 인간관계를 훼손한다.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 된 이유는, 학창 시절 시험성적 때문에 무한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상태가 직장생활까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는 사회적 합의와 함께 그에 따른 교육개념과 교육제도의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음과 같은 칸트의 인간관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이성(理性, Vernunft)은 자연적 본능을 훨씬 능가하여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하는 규칙과 의도를 
확장하는 능력이며, 
그 기획력은 한계를 모른다.”* 

* Immanuel Kant,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Erstdruck in: Berlinische Monatsschrift, S. 385~411, Berlin, November 1784. Vollständige Neuausgabe, Göttingen 2019, S. 6

  이 문장의 핵심은, 인간은 타고난 이성을 통해 자기초월(自己超越) 능력과 자기입법(自己立法) 능력을 갖춘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성이란 어떤 사태의 진선미(眞善美)를 분별하여 종합·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이런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려서부터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자율적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인류는 모든 개개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것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온 이후,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써 인간에 대한 억압, 폭력, 착취가 점차 줄어들었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존엄성이 자율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아직도 억압적이다. 물리적 억압은 다소 사라졌지만, 정신적 억압은 무차별적이라서 훨씬 더 치명적이다. 학생들을 시험성적으로 서열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열화뿐만 아니라 시험성적으로 계급화한다. 서로서로 차별하고 경쟁시키기 위해서다. 우리 교육에서 이 정신적 억압을 없애야 한다. 청소년기에 필요한 것은 높은 시험성적이 아니라 자신의 타고난 이성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조건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지식을 넣어주는 것에서 벗어나 이성의 기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떻게? 학생 스스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도록 하면 된다. 즉, 스스로 생각하는 힘(사고력)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며, 그런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이성이란 자연현상과 사회현상에 대하여 합리적, 비판적, 추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육은 인간 이성의 기능(사고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정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이며,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정의하여 사회적으로 합의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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