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넷 / 이충일_월간문학공감분과장, 경기새넷연구위원장
‘몸은 멀게, 마음은 가깝게’라는 구호가 2년 넘게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몸은 멀어지게 두고, 마음을 가까이 두라는 것인데 이게 당최 가능한 일인가 싶네요. 코로나의 시간은 몇 해째 회전문을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허탈감을 안겨 주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시간은 ‘몰라봤던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구 반대편과 여기가 서로의 들숨과 날숨을 공유하는 호흡 공동체였다는 것, 정상적인 호흡이 어려운 상황에서 진정한 힘을 발휘한 것은 나눔, 연대와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몰라봐서 미안했고, 이제라도 알아봐서 다행인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포스트 코로나를 상상하는 진정한 동력일 것입니다.
《월간문학공감》은 멀어진 몸의 거리를 ‘문학’을 매개로 연결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학의 쓸모없음이 가장 유용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일종의 각성 같은 것이었죠. 문학으로 소통하고 정서적 교통을 나눠보자며, 무작정 문을 두드렸던 게 바로 일 년 전입니다. 다행히 일곱 명의 작가님과 수백 명의 선생님이 기껍게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문학을 말하는 자리가 이 정도의 환대를 받을 줄은.
이제 갓 돌이 지난 《월간문학공감》 분과는 ‘작가와의 대화’와 ‘쌤책방’,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자는 전국에 모든 교사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강연 형식이라면, 후자는 새넷 회원들이 작품과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분과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입니다. 매달 작가와의 만남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월간의 의미는 ‘쌤책방’ 쪽에 가까운 셈이지요. 애초에 문학이라는 구심점으로 연결되다 보니 여느 분과와는 색채나 결이 사뭇 차이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기 새넷 분과이지만 전국 선생님들로 구성되어 있고, 밴드에는 다수의 비새넷 선생님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느슨하면서도 경계 없는 네트워크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뻔히 아는 길을 가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월간문학공감》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작품의 완결성은 물론이거니와, 때와 이슈에 맞는 시의성을 고려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지요. 작품은 동화, 동시, 청소년소설, 그림책 등을 골고루 선정하였는데 앞으로는 영화와 음악 등도 관심을 넓혀볼까 합니다. 그럼 이제, 지난 1년간 《월간문학공감》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까 합니다.
창간호 격인 4월호는 이 안 시인(『오리 돌멩이 오리』, 2021)께 ‘4월 꽃말’을 분양받으며 시작되었지요. 5월에는 김해원 작가(『오월의 달리기』, 2013)와 함께 80년 5월의 광주를 이어 달렸고요.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4월과 5월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기억'이었습니다. 망각에 저항하며 기억의 영토를 지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정한 과거를 희망의 현실로 전환할 힘이 아닐는지요. ‘4월 꽃말’과 ‘5월의 달리기’는 교실 속에서 아이들의 호흡을 빌어 부활하였습니다. 기억을 품은 서사가 새롭게 탄생하였으니, 그 자체가 작은 소망일 거라 믿습니다.
(왼쪽) 동시 ‘사월 꽃말’과 함께 피어난 4.16 수업 나비 한 마리 한 마리에는 아이들의 손편지가 적혀 있다.
(오른쪽) ‘오월의 달리기’로 부활한 5·18 수업. 계기 교육의 낡은 허들까지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7월과 9월의 북 토크 주제는 ‘함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7월 정진호 그림책 작가와의 대화는 앞만 보고 사는 세상에서, 위를 보았을 때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일깨워 준 시간이었지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뜨거운 장르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 시간이기도 했고요. 9월은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로 잘 알려진 김중미 작가의 최신작 『곁에 있다는 것』(2021)을 함께 읽었습니다. ‘살아가던 삶’이 ‘살아나는 삶’으로 도약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삶과 글이 일치된 김중미 작가의 이야기 속에, 그 해답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10월에는 『서찰을 전하는 아이』(한윤섭, 2011)를 읽고, 동학 농민 운동 시대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열두 살 보부상 아이를 만났습니다. 혹자는 내년에 고학년을 맡아 역사 온 작품 읽기를 해보고 싶어졌다고 했고, 혹자는 동학을 공부하고 싶어졌다고도 했지요. 11월에는 문현식 시인과 함께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는 동심의 세계로 ‘詩며 드는’ 순간을 함께 했습니다. 동시의 집에서 푹 빠져 놀기에 참 좋은 계절이었지요.
2021년의 마지막 호는 이수지 그림책 작가였습니다. 그림과 음악이 어우러지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간은 어느 청자의 말처럼, ‘마치 한 편의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켰지요. 그리고 얼마 전 이수지 작가가 그림책 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하면서, 우리 《월간문학공감》 밴드에도 축하와 응원의 인사가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지난 12월의 만남이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될 듯합니다.
다시, 봄입니다. 우람한 빙벽 같던 팬데믹도 물러나고, 오래된 소문처럼 봄의 기운이 교실 교실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창이 환한 교실에서 시와 동화, 그리고 소설이 팝콘처럼 팡팡 터져 나오길 소망합니다. 《월간문학공감》도 그 길 어딘가에 함께 있겠습니다.
(추신: ‘쌤책방 2호점’이 준비 중입니다. 새넷 회원이라면 누구나 줌을 통해 참여할 수 있으니, 《월간문학공감》 밴드를 통해 신청해 주세요! 네이버에서 ‘월간문학공감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