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슬그머니 나타나는 그 사람
"저 죄송한데 설문조사에 참여 가능하실까요?"
카페에서 늦은 점심을 대충 때우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말소리에 고갤 들어 위를 올려다보니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단정한 옷차림을 한 안경 쓴 여성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아... 제가 지금 심리 상담과 관련된 설문 조사를 하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리는 심리 검사인데
좀 도와주시겠어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쓰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날은 아침을 먹지 못한 데다 점심시간을 놓쳐 배를 아주 주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 표정이 너무 안 좋으세요..."
그녀는 험악한 내 얼굴을 보더니 아까보다 더 조심스러운 말투로 나에게 말을 했다.
순간 나는 다른 사람에게 너무 노골적으로 표정을 드러낸 것이 슬쩍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K 장녀 유교 걸로서 엄마뻘 되는 어른께 너무 공격적으로 대한 것에 대한 도덕적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이것만 작성하면 되는 거예요?"
윽. 또 어설픈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발동한 나는 마지못해 그녀에게서 설문지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내 옆에 자연스레 착석했다.
아줌마, 난 앉으란 말은 안 했다고요....
그녀는 신이 난 듯 설문지의 공란을 가리켰다.
"여기에 동그라미를 그려보세요"
나는 순순히 그녀의 지시에 따라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네모를 그려보세요"
얼마나 했다고 나는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미쳤지'를 속으로 중얼거리며 휘적휘적 네모를 그려 넣었다. 그다음엔 세모도 그렸던가? 아무튼 도형 몇 개를 그리고 났더니 설문조사 끝이 났다.
그녀는 설문지를 보더니
"이 도형 테스트는 상담자님의 심리를 반영하거든요. 그림을 보니까 상담자님은 지금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으로 보이네요." 란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마침 그날은 준비한 자격증 시험 성적이 생각보다 좋게 나와서 자신감이 뿜뿜하는 상태였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거야 현대 사회에서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 예... 그래요?"
나는 아직 다 먹지 못한 샌드위치를 얼른 먹고 싶단 생각에 얼렁뚱땅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마음과 달리 자리를 비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저희가 설문조사를 토대로 검사 내용 결과를 전화로 알려 드리거든요.
아오 밥 좀 먹자!!!!!!!!!! 나는 그만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까는 그런 얘기 없으셨잖아요. 전화번호는 못 드려요."
내가 인상을 벅벅 쓰고 얘기하자 그녀는 얘는 더 이상 얘기가 안 통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자리를 떴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뉴스를 통해 그 사람이 종교와 관련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그날 자신감도 없고 심리가 불안정했다면 영락없이 종교단체에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리곤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남 등쳐 먹고 내 소중한 점심시간까지 방해한 그녀가 꼭 벌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