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by 꽃비
IMG_9532_R.png


찰랑~


힘겹게 떨군 가벼운 원판이 벤치프레스 위에서 맑고 청량한 소리를 냈다. 밖은 따스한 봄 햇살이 나부끼며 청량한 바람과 꽃잎이 흩날리던, 보드라운 손잡고 연애하기 좋은 날이었건만, 나는 어두컴컴하고 땀냄새 찌든 체육관의 벤치프레스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화창한 날이라고 해서 운동을 거르고 싶진 않았다. 밖으로 나가 포근한 봄 향기를 맡으며 계절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지만 하루라도 운동을 거르면 이유 없이 불안해졌다. 그래서 그날도 어김없이 운동복을 챙겨 체육관으로 기어올라갔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마를 수 있냐는 말이 참 쉽게 나왔다. 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저 감탄사는 말 같지도 않은 충고와 더불어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너처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비법을 알려 달라 거나 무조건 밥을 많이 먹으라는 조언부터 개 사료와 함께 라면을 먹으라는 무식한 막말까지 그 종류도 참 많고 다채로웠다.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름은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한낮의 찌는 듯한 무더위보다 더 이상 옷 안에 숨길 수 없는 왜소함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래서 그걸 가려보겠다고 한 여름에도 셔츠를 두 개나 입고 다녔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안 덥냐? 보고만 있어도 덥다.”


“제발 좀 하나는 벗자. 진짜 왜 그러냐야~. 니 지금 땀 흘리는 거 봐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친구들의 눈빛을 애써 모른 체하며 안에 껴입은 면 티를 절대 벗지 않았다. 마른 멸치에 고추장 한 번 더 바른다고 얼마나 두꺼워질까 마는 그래도 면 티를 입고 그 위에 반팔 셔츠를 또 입으면 그나마 체격이 커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벌거벗고 다녀도 미칠 것 같은 삼복더위에 두 장의 셔츠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렇게 52 킬로그램의 몸무게는 스무 살 청년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사람들은 비만인 사람에게 ‘왜 이리 뚱뚱하냐’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하면서도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 들어온 소개팅에 나가면 남자 다리가 여자보다 더 얇다는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들었고 그때마다 잊고 있던 신체 콤플렉스가 되살아났다. 소개팅에 나온 여성이 마음에 라도 들면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래서 미치도록 바꾸고 싶었다.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다리 대신 건장하고 단단한 몸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바꿔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운동을 해야 내 몸이 변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건물 앞에 우락 부락 한 근육을 가진 남자들이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사진을 봤다. 그걸 보며 ‘나도 저 운동을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날 바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이제 내게도 신세계가 열릴 것만 같았다. 넓은 어깨와 선명한 이두근, 굵직한 다리로 멋들어지게 청바지를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꿈과 같을 그 시간은 내게 오지 않았다. 운동을 시작하고,


1년…


5년…


10년…


1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수천, 수만 번을 참고 견뎌도 근육통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몸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이 세상엔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의 몸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가진 콤플렉스를 깨부수는데 25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다. 조금 편해지는 듯하다 가도 금세 극심한 불안이 밀어닥치고 고독의 아픔이 나를 찢어 놓는다. 그래서 요가를 수련하고 매일 명상을 하며 아무리 내 마음을 돌아봐도 나는 뚜렷하게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딱 한 장 남아 있는 젊은 시절의 나를 보고 지금의 내 몸을 본다. 1년, 5년, 10년, 15년, 25년의 시간 동안 내 몸에 변화가 없다고 해서 포기해 버렸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IMG_9559.JPG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마음의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깨달은 세상의 이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3. 내가 불안장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