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지정학

세계 패권 주기 이론 2 1945-2024

by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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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991 냉전, 미소 양강 체제




독일과 일본이 차례대로 패망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 중, 가장 주요한 패권국가는 단연 미국과 소련이었다. 전통적인 유럽의 열강들은 세계 대전의 폐허 속에서 국력을 상실했으며 세계적 패권을 주도하는 민족 국가로써 인구와 영토는 한계에 직면하였다. 국력은 기술력 x 인구라는 단순한 곱셈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더 이상 압도적으로 기술과 인력 우위를 행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소련과 미국은 폐허가 된 유럽의 힘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자 패권국이 되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하여 최근 굉장히 흥미로운 입장을 발견했는데, 냉전이 시작되는 시기 소련의 패권 경쟁은 소련이 세계를 공산주의로 물들이려는 패권적 욕망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의한 수비적 생존 본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소련은 전간기 동안 영프미 서구 국가들에 의해 고립되어 불운한 외교 관계를 가졌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소련은 결과적으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나치 독일과 싸웠지만 체제적 이질성과 혐오감은 쉽게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진영의 구도를 정확히 분석하자면 세계 2차대전은 연합국 vs 추축국이 아니라 연합국+소련 vs 추축국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전쟁 동안 소련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소련은 전쟁이 끝난 후 프랑스와 영국이 마셜 원조를 받았던 것처럼 독일에 의해 폐허가 된 소련 국토를 복구할 원조가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임기 중 사망하여 당시 부통령이었던 해리스 트루먼이 정권을 이양 받게 되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트루먼은 반공주의자였으며 소련의 유럽 진출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내보였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소련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자 스탈린은 다시금 자국의 생존적 안위를 고민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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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대립







그 결과 동유럽은 소련의 우방국 및 완충 지대로 재설정될 필요가 있었으며 자국의 안보를 위하여 미국과는 필연적인 패권 경쟁이 불가피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소련의 경제력과 국력은 미국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하였다. 전쟁 종결 직후 1950년 미국의 GDP는 1조 4500억 달러인데 반해 소련은 그것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 5100억 달러였다. 소련은 새롭게 정립될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다시 한번 서구 열강들에 의해 고립될 운명에 놓인 이상 차라리 코민테른의 영역을 설정하여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할 의지를 다짐했다.




위의 미국과 소련의 각기 다른 속셈의 결과가 바로 냉전의 시작이다.




그리고 냉전이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우리에게는 불운하게도 한국 전쟁이다. 동북아 질서의 진영 경쟁은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급격하게 공산주의 측으로 균형의 추가 무너졌다. 미국은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일본의 역할을 전쟁을 다시는 일으키지 못하는 농업국가에서 자본주의 최전선의 방파제로 재설정하였다. 한국 전쟁은 김일성의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다시는 메우지 못할 한국 역사의 거대한 상처이다. 김일성은 미국이 설정한 애치슨 라인에 근거하여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였지만 미국은 한반도 적화를 가만히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미국은 UN 안보리에서 소련이 기권한 틈을 타서 재빠르게 한국 전쟁에 미국 주도의 UN 군을 파병하여 북한의 남진을 막고 한반도를 자본주의 방파제의 일원으로 바꿀 계획이었다. 반면 제3자인 줄 알았던 중국은 한반도의 자본주의화가 심각한 중국 동북방면의 안보 위협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에 한국 전쟁에 개입하였다.




스탈린은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 역량을 집중하는 순간 동유럽에서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였다. 냉전 초기만 하더라도 소련의 동유럽 영향력은 불안하였다.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소련에 반기를 든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유럽의 국가들은 소련의 완전한 지배력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스탈린은 한국 전쟁 기간 동안 동유럽의 영향력을 착실히 다져나갔으며 동시에 중국이 미국과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소련은 중국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결정된 냉전은 비록 소련이 미국에 비해 국력이 월등히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팽팽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다. 그 이유는 소련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의 피식민지 지역들에 반제국주의를 선전하여 제국주의 자본주의 열강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냉전에서 이데올로기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미소의 불균등한 세력 균형을 비등하게 만들 정도로 서구 선진국의 1차 시장과 식민지를 해방시키면서 자본주이 세계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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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력 상으로 소련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소련은 공산주의라는 반제국주의로 세계를 '해방'시키며 미국과 대립하였다.







공산주의는 기존의 자본주의 질서에서 억압받던 세계 체제의 주변부 국가들에 해방의 나팔수로 역할하였다. 이 지역 또는 나라들은 대부분의 생산수단들이 서구 국가들의 재산에 의해 소유되었으며 역사적으로 그들의 노예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들 주변부 국가들은 대부분 남반구에 위치하여있으며 남반구가 북반구에 상대적으로 빈곤한 것은 서구 열강이 식민지의 자본을 통제하고 유리한 무관세 무역 관계를 수립한 착취 때문이었다. 이 국가들은 서구의 자본 해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쳤는데 이들은 또 자본주의 국가들의 중요 원료 생산지였다. 선진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고무, 광석, 과일, 섬유, 커피, 설탕, 농산물, 석유 등 근현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들이 이런 국가에서 생산되었다. 즉 소련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를 맹렬히 때려가며 젠가의 기둥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특히 쿠바 위기는 소련이 미국에 실존적 위협을 가져다준 굉장한 사건이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영향력 하의 중남미 바나나 공화국들과 유럽 영향력 하의 아프리카, 동남아 식민지들은 공산주의가 아니었다면 서구에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쿠바는 역사적으로 미서전쟁 이후 전통적인 미국 산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였고 쿠데타 이후 바티스타 정권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바티스타가 집권한 8년 동안 미국의 자본이 대규모로 쿠바로 유입되었는데 혁명 직전에는 미국이 쿠바 설탕 산업의 40% 전화 전기의 90% 철도의 50%를 잠식했다. 이러한 종속 구조에 묶여있는 당시의 식민지 국가들 또는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는 굉장히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저항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의 반공주의 광풍이 몰아쳤고 이데올로기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뒤이은 쿠바 혁명은 미국 내 가장 굳건한 영향력 하의 국가가 미국의 바로 아래 위치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공산 혁명에 성공하자 미국의 실존적 위협을 가져다주었다. 뒤이은 미래에 중남미 국가의 또 어떤 나라가 공산화 도미노가 무너질지 모를 상황에서 미국의 관점은 굉장히 심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체제의 특성상 경제 발전 역량이 자본주의에 비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비록 공산주의가 자본주의로 하여금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괴롭히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어도 자본주의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시나브로 공산주의는 체제 경쟁에서 밀려나고 도태되었다. 소련의 붕괴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가속화되었으나 비록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소련의 시한부 운명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소련 체제와 경직적인 지도부는 소련의 경제를 개혁하고 소련을 다시 부강하게 만들 역량을 말소시켰다.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막강하여 그 어떤 나라도 이 두 국가의 세계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지는 못하였으나 체제에 불만을 가진 진영 내 국가들도 존재하였다. 대표적으로 자본주의에선 프랑스와 중남미 바나나 공화국들 공산주의에선 중국과 유고슬라비아가 그것이다. 또 제3세계 국가들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이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세계의 영향력이 포용하고 지배할 수 없었던 독자적인 세력이면서도 진영 국가들에 적절한 중립 외교를 펼쳐 자국에 유리한 지원을 얻어낸 국가들이다.




냉전에서 나타나는 양강 체제의 특징은 1. 진영논리 2. 교묘한 지배 3. 진영 내부 저항이다.




진영 논리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세계를 두 개의 진영으로 구분했다. 핵심은 앞서 설명했다시피 그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이념은 유동적으로 지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진영이 정해지면 상대 진영에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교묘한 지배는 진영 내에서 개별 국가들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고 체제에 종속시키는 이데올로기 헤게모니이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막대한 물질적 풍요와 근면함, 반공주의를 통해 국내 불만을 잠재웠다. 반면 공산주의 진영은 평등과 안정감을 내세웠다. 흥미로운 점은 공산주의 진영에서 반자본주의 또는 반동주의는 프로파간다나 시민적 운동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정쟁의 도구로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교묘한 지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내부의 저항도 발생했다. 특이점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종속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무장 투쟁이 발생하고 국내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반면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종속 국가들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발생했고 소련은 이를 폭력적으로 억압했다. 반면 중국의 경우는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데탕트 기류를 진전시킨 특이 케이스다.




중국의 핑퐁 외교는 냉전 시대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독주 체제까지 중국의 경제발전 엔진의 시동을 거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 협력이 오늘날 2024년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만들었다. 중국의 사례는 패권기에서 주변국이 힘을 기른 후 충분한 역량이 갖춰지자 패권국에 도전하는 이상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다음 챕터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양강 체제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의외로 세계의 두 진영의 우두머리는 서로를 공격적으로 존중했다는 사실이다. 핵무기의 존재는 상대 국가에 대한 조심스럽고 교묘한 외교적 행동을 강제했으며 분쟁은 국지적이고 대리적인 부분으로 대체했다. 서로를 확실하게 절멸할 수 있는 무기는 서로의 국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게끔 만들었으며 이러한 조건에서 적대적이지만 서로의 격은 무시하지 않고 존중했다. 미국은 냉전에서 승리한 뒤 다른 국가들의 우려나 주의를 신경 쓰지 않고 독보적인 외교적 움직임을 전개하였는데 이것은 냉전 시절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1991-2024(?) 미국의 일극 체제




냉전은 소련이 자기 스스로 고꾸라지면서 미국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특이하게도 새로운 신흥 강국의 발흥으로 균형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대척점의 국가가 스스로 무너지면서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패권 주기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주기의 텀이 길어진 것일 뿐이다. 미국의 일 극 체제는 주기 이론 상 냉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경쟁 국가는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일 뿐이다. 중국은 냉전의 마지막 지점에서 미국과 결탁하면서 천천히 자기 힘을 기르고 있었고 러시아는 소련 붕괴의 여파와 후유증을 정리하고 다시금 동유럽 세계의 하드파워 패권과 영향력 확보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발생한 세계의 힘의 공백은 전반적으로 미국으로 편입되었다. 유럽의 민족 국가들은 이미 2차 대전 이후에 세계를 지도할 수 있는 역량이 바닥났음이 드러났고 이 국가들은 미국 아래의 자유무역 체제에서 주변국들을 착취하는 데 만족하였다.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아시아의 국가들, 더구나 인도나 중국과 같은 인구 대국들도 후진국의 문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은 독보적 우위가 확인되자 곧바로 세계를 다음과 같은 질서로 재편성했다. 1. 달러 패권 2. 초국경적 자유무역 3. 림랜드 장악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 모든 국가들의 경제 문호는 빠르게 개방되었다. 1995년 국제 무역기구 WHO가 창설되었다. WHO는 냉전 시기 자유세계에서 자유무역 질서를 수립하였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를 전 세계적으로 포괄하여 정립하기 위한 국제기구다. 전 세계는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세계에 편입되고 그 결과 미국은 피라미드 꼭대기에 우뚝 서며 주변국 국가들을 달러 패권으로 착취할 수 있는 우두머리 국가로 군림하였다.




자유무역은 아직 산업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개발도상국에 불리한 제도다. 개발도상국들은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보단 선진국의 기술 상품들을 수입하고 저부가가치 노동집약적 플랜테이션 산업들에 치중하기 쉬워진다. 국내에서 유명한 장하준의 베스트셀러들(나쁜 사마리아인들 또는 사다리 걷어차기)이 지적하는 부분이 자유무역의 이러한 측면들이다. 즉 다시 말해서 자유 무역은 식민지의 최종 발전형이다. 식민지는 피식민지역의 관리비와 군대 유지비, 통치 비용, 또 피식민지인들의 반제국주의 반란 등에 사용되는 비용이 식민지에서 창출되는 수익을 초과하면서 붕괴되었으나, 미국의 자유무역 시대가 도래하면서 국내의 치안과 안정 유지는 주변부 국가에서 떠맡고 선진국은 저렴한 인건비에서 창출되는 원자재들을 저렴한 가격에 수입하며 고부가가치 완제품을 판매하여 완벽한 착취적 무역 관계를 형성한다.




따라서 미국이 가진 달러 패권과 함께 경제적 영향력마저 휘잡으면서 미국의 패권 질서를 공고히 하였다. 미국의 수뇌부는 이 패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으로 석유를 고려하였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 국가이며 현대 세계의 가장 중요한 동력원인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욕망은 패권국인 미국으로써 체제 유지를 위한 첫 번째 전략적 수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석유를 채굴하는 산유국이지만 세계 1위 경제력 국가의 터무니없는 수요량에 비하면 생산량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석유를 향한 미국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미국의 항구적 패권 유지에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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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랜드 이론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장악해야 한다는 지정학 이론이다. 대표적으로 한반도와 대만 부속 섬이나 유럽 대륙은 러시아와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제하는 림랜드로 분류된다. 미국은 강력한 해양 세력이므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대륙 세력들의 확장주의적 행보를 견제하는 림랜드를 속속들이 군사적으로 장악하고 대양을 평정하였다. 달러 패권이나 자유 무역은 군사적 패권과 외교적 패권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왜냐하면 국제 무역의 대부분은 해양 물류가 차지하고 안전한 바닷길은 미국의 함대가 암묵적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며 달러를 세계 모든 국가에 강제할 수 있는 이유는 미국이 경제력 1등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에 투사할 수 있는 하드파워, 소프트파워가 충분히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게를 자극하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2001년 9.11 사우디아라비아의 무장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비행기 두 발이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심장을 직격했다. 미국이 중동을 공격할 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확보되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마지막 패권 다지기 행동으로 생각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림랜드이기 때문에 군사적 패권을 확장하는 목표이기도 하며 반미 국가인 이란을 공격적으로 고립시킬 수도 있었다. 세게 석유 시장의 중요한 공급처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이 바로 이라크 옆에 위치했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위치는 미국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중앙아시아로 영향력을 투사하여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이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의 국제적 반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 전쟁을 강행한 이유이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미국은 실패했다. 첫째로 안정적인 정부 수립에 실패하였으며 두 번째로 미국에서 셰일 혁명의 여파로 더 이상 중동이 전략적 경제적인 중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질서에서 미국의 기대에 부응한 가장 모범적인 협력국가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트너였다. 미국은 중국의 거대한 인력시장에서 나오는 저가 공산품을 통해서 자국의 물가 상승률을 거의 30년 동안 동결시켰다. 또한 미국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가 위태로울 때 무제한 양적완화로 전 세계에 막대한 양의 달러를 풀어놓자 동시에 그 달러를 무제한 매입한 장본인이 중국이다. 미국이 중국을 키워준 까닭은 단순히 영프가 두려움 때문에 나치 독일을 방조한 것과 달리 특별한 실용적 이유가 존재한다.




더구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국 생산품의 존재가 미국의 폭력성을 누그려뜨렸다고 평가한다. 중국 상품이 미국에 대량으로 쏟아지자 물가가 안정화되고 미국은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을 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만일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국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했다면 미국은 물가 안정을 위해 여러 국가들을 침략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석유 때문에 중동이 주요 타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발전은 미국이 통제할 수 없었다. 경제 발전을 하면 자연스럽게 독재 정부는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에 대립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다. 미국의 급작스러운 무역 통제와 고립주의는 대중 정책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새로운 패권 질서가 나타나려는 징후이다. 결국 미국은 경제적 안정과 안녕을 위해 신흥 패권국을 자기 손으로 키웠다. 후술하겠지만 선진국 패러독스의 사례 중 하나이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패권을 누려온 과정을 보면 알겠지만, 초강대국이자 최강대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 패권국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현대 미국이 거대 테크 기업의 발흥과 ai 혁신을 거듭하며 제2의 제3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지금 상황에도 불구하고 패권이 돌아가는 주기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이제 세계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경쟁 국가들이 여럿 들어서려고 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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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힘을 추스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서방 세계는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못했다. 물론 초기 전세와 예측에 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도하지는 못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는 가장 최전선의 목표이자 가장 쉬운 목표로 생각했을 터인데 지지부진한 참호전으로 소모전을 진행 중이니 체면을 구겼다. 또한 러시아에 지금의 러우전은 상당히 암울한 상황이다. 미국의 대 러시아 전략에서 우크라이나는 일종의 꽃놀이패로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지역인데 무기 지원만으로 러시아의 최중요 목표의 발을 묶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 상황으로 볼 때 미국은 과연 러시아뿐만 아니라 극동의 중화 패권주의도 억제할 수 있을까? 미국 패권의 한계는 러우전 자체가 아니라 모든 해양 세계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여러 신흥 강대국의 출현으로 명확해졌다. 미국은 양면 전선을 감당할 수 없다. 적어도 유럽과 태평양 하나는 포기해야 하며 경쟁국의 영향권을 인정해야만 한다.




중국과는 무역 분쟁을 치르며 중국의 기술발전과 경제 발전을 억제하고 있고 러시아와는 대리전을 지속하면서 그들의 팽창주의를 억제하고 있다. 사실 전자는 지지부진한데 반해 후자는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억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의 트럼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협상에 나서고 중국과의 일면 전선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이 지속되더라도 러시아와의 소모전은 이길 수 없다. 전쟁 초창기에 러시아의 빠른 진군이 좌절된 것에 대해서는 놀랐지만 러시아의 덩치에 우크라이나가 소모전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진즉에 예상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다가오는 신질서 2024(?)~




이제 향후의 패권 질서는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일단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특이점은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의 존재 때문에 전쟁과 같은 급진적 방식으로 패권이 조정되지 않았다. 핵무기 방어 무기가 없는 이상 강대국 간의 직접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가올 신질서는 냉전 시대의 종말과 마찬가지로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향후 미래의 질서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예상한다.




첫째로 다시금 미국의 절대적 일극 체제 둘째로 중국 미국의 양극 체제 셋째로 주요 강대국들의 다극 체제다.






첫 번째 가능성으로 미국의 독주 체제다. 미국의 독주 체제가 이전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의 고립주의다.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세계를 통제하던 과거와 달리 미국만 잘 먹고 잘 사는 일극 체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셰일 가스 혁명과 ai 기술 발전 때문이다.




셰일 가스 혁명은 미국에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부족한 자원인 석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켰다. 더 이상 미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안정적인 석유 수급을 할 필요가 없다.




둘째로 ai 기술이 미국에서 독보적인 진보를 일궈내면서 전 세계의 부가 미국이 선도하는 ai 서비스 산업으로 이전될 위기에 놓였다.




미국이 이 두 가지 지점에서 조건을 만족한다면 미국은 전 세계가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미국 내에서 모든 이권을 향유하는 엘리시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양분하는 양극 체제다.




사실 나는 이 가능성을 제일 높게 친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엘리시움의 가능성을 높게 쳤었는데 딥시크와 같은 경쟁력 있는 AI 기술을 따라잡았다는 점에서 중국의 경쟁력은 정말 막강하다.




이제 허구한 날 떠드는 중국 패망론, 중국 붕괴론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10년 전만 해도 난 진지하게 이것을 믿었는데 정말 중국 붕괴론이 사실이며 중국의 내적 모순이 한계에 다다랐다면 애당초 진즉에 망했어야 했다. 중국의 3000년 역사를 정의하면 팽창의 역사이다. 황하 주변의 문명권에서 시작한 중화문명은 이제 서쪽으로는 티베트 동쪽으로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팽창의 역사에서 지금껏 잘 살아남았지만 지금으로부터 천 년 뒤에 아니, 백 년 뒤에 과연 독립을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중국은 미국과 대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영향력을 팽창할 것이다. 대국굴기의 최전선에서 대한민국은 굉장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국력이 증가할수록 이전의 독일제국이나 일본 제국이, 그리고 미국이 중동에서 그러했듯이 안정적인 자원 확보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대일로 정책은 그러한 의중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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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가능성은 압도적으로 패권을 휘어잡는 국가가 등장하지 않고 주요 강대국들이 지역적 패권을 유지하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다극 체제다. 후보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인구 대국, 국토 대국이 패권의 한 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럽을 빼놓은 것에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유럽이 패권 질서의 한 구성원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유럽은 통일된 국가가 아니다. 분권적이고 복잡하며 느슨한 정치 연합체가 현재 EU의 상황이다. 중세 근대 시절의 신성로마제국이 연상되는 국가 연합체인데 이 집단이 통일되고 일관적인 목표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전통적인 선진국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다른 패권국들에 비해 인구가 빈약하며 유럽 내 고만고만한 결정력에 만족하고 있다.




선진국과 부국들의 실황을 보면 이 국가들은 선진국 패러독스에 빠져있다.




이 패러독스는 국가가 문화적 경제적으로 선진적이고 부유할수록 점차 패권이나 강대국과 같은 목표에는 점점 멀어지는 현상이다. 그 국가의 개개인들의 인권이나 생명의 존귀함, 인건비는 증가하는데 정작 패권과 강대국에 대한 목표는 인명을 소비하고 수단이 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인명이 손실되고 다치게 되는 공동체주의적 의무와 결정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미국인들이 생필품 값을 정상적으로 지불했다면 중국의 대국굴기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스스로 자신의 패권에 균열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이것을 마냥 비난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30년 동안 물가가 안정된 것은 실제로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다. 오죽하면 코로나 이전에는 뉴노멀이라는 디플레이션 현상이 떠올랐을까.




이런 까닭에 전쟁을 두려워하고 전쟁을 방비하지 않고 느긋하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입으로만 당위를 역설하게 된다. 그러한 세계관을 머릿속에 설정하고 나면 전쟁은 잘못된 것이고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는 것이며 부당한 것인데 전쟁에 방비하거나 패권주의적 노력과 의지도 평가절하되고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린다.




머릿속에서 당위로 만들어진 전 세계의 평화주의는 필연적으로 안전불감증을 낳고 패권국들의 확장주의를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패권과 확장주의는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인권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인구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된다. 선진국은 그 반대다. 자국의 인권과 생명만 존귀한 지 알고 후진국들의 원료는 자유무역으로 매우 쉽게 착취하여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전쟁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바로 눈앞에 적성국을 두고 있는 유럽과 대한민국과 대만 등이 처한 현실이다.




따라서 유럽은 만약 다극 체제가 성립된다면 러시아와 미국의 외교적, 물리적 영향력 경쟁의 주요 격전 지역이 될 것이다.




세 가지 가능성을 예측했지만 이것들은 모두 인류 역사에서 경험해 본 유형들이다. 그러나 패권의 주기와 주기의 방식은 지금껏 달라진 적이 없었다. 패권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경쟁국과 신흥국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며 지형도와 힘의 균형은 유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인간 역사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전쟁은 패권의 움직임과 패권국의 의중에 따라 발생하며 나이브한 평화주의로는 억제할 수가 없다. 패권국이 된 이상 자원의 자급자족과 인근의 영향력 확보는 강대국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팽창주의는 반드시 다른 강대국과의 충돌로 이어진다. 핵무기가 있는 이상 직접적으로 붙진 않더라도 대리전이 발생하고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근대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패권 주기의 진행 과정이 시대마다 어떻게 작동해왔는지 알아봤다.




패권국의 자원 독점 - 패권 질서 안에서 경쟁국은 조용히 성장 - 경쟁국의 체제 불만 고조 - 갈등 - 신질서 성립




이 패러다임 혁명의 과정은 체제의 전환 속에서 일관되게 포착할 수 있다.




정치 현실주의의 주요 이론 중 높은 설명력을 가진 공격적 현실주의와 방어적 현실주의는 내가 봤을 때는 체제 안에서 패권 국가들이 시행할 수 있는 수단 내지 방식과 같은 것일 뿐, 체제의 본질적인 흐름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패권국은 자국이 처한 조건에 따라 수비적이든 공격적이든 수단을 고려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수단의 차이가 패권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자국의 우위가 어느 정도 보장되자 국력의 방출을 조절하여 방어적 현실주의를 채택한 결과 몇십 년간 벨 에포크 시대를 향유한 반면, 전간기 영국은 새로운 전쟁의 확산을 두려워한 나머지 방어적 현실주의를 채택한 결과 나치 독일의 성장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처럼 강대국의 형성과 지배는 패권 주기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포착될 수 있다. 향후 전개될 세계 질서에 대하여 패권 주기 이론이 미래를 해석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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