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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샘 Oct 21. 2022

뭐가 힘든지 말해 보라고 하지 마세요

마흔을 넘어 쉰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나는 십 대 소년과 소녀가 되어 그들의 마음의 소리를 전하고 싶다. 우울증 증상과 진단, 약물 복용에 대한 많은 글들이 있지만 정작 그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는 십 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은 사실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상담 현장에서 만난 십 대 청소년들을 기억하며 잠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나눠보고 싶어졌다. 나 역시 십 대 시절을 지냈고 그 시절의 내가 경험한 감정과 지금의 십 대들의 감정이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잠잠히 그 시절을 느끼며 내가 만난 십 대 내담자들의 마음을 부족하지만 읽어보려 한다.


난 이제 17살 청소년 내담자가 되어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어주려 한다. 내게 우울이 찾아온지는 오래되었다. 처음엔 그 녀석이 우울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부모님이 이혼을 하고 빈자리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우울감은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참지 못 하기도 했고, 수업 시간에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내가 걱정된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연락을 하셨다. 부모님은 “뭐가 힘드냐?”라고 물으셨다. 하지만 나도 내가 뭐가 힘든지 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뭘 힘들어하는지, 지금 내 상태는 어떤 것인지 표현이 되지 않았다. 묻다 지친 부모님은 자꾸만 다그쳐 물었고 그러다 결국 화를 내셨다. 나 때문에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지만 그땐 아무것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말이 잘 나오지도 않았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상상도 되지 않았다. 부모님이나 주변의 걱정하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 역시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힘든 점을 잘 말하고 도움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잦은 질문을 받았지만 난 내가 힘든 이유를 잘 말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정해진 울타리 밖을 향해 갔다. 잦은 지각, 결석, 수업 시간에 엎드림,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터러블, 감정 조절 불가, 주변 사람 회피, 관계 단절 등. 수없이 많은 문제 속에 나는 점점 누군가의 걱정거리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리 듯 발달센터의 문을 열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부모님이 발달센터의 문을 두드리신 거다. 처음 방문한 발달센터에서는 내 마음을 열지 못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의미 없이 출석 도장을 찍었고, 나에게는 변화가 없었다. 청소년상담센터도 찾아갔지만 그것 역시 아무 변화를 주지 못했다. 나의 학교 생활은 점점 문제가 많아졌고, 학습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혼자 방황하듯 시간을 보냈고 부모님은 바쁜 일상 중에 잠시 나의 문제를 잊으신 듯했다. 점점 나는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나 스스로 나를 지킬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영상과 음악으로 조절할 수 없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일시적인 도움이 되기도 했고, 가끔은 날 더 지치게도 했다. 부모님은 변화 없는 나를 보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선택하셨다. 나의 증상을 듣고 간단한 상담을 하고 검사를 진행한 후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 약을 처방해주셨다. 약을 복용한 후에도 나의 생활은 변화가 없었다. 약의 효과를 느낄 수 없었던 부모님은 다른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셨다. 부모님이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다른 방법으로 내가 마음을 표현할 누군가를 만나게 해주려 하셨다. 하지만 이미 이전에 경험했던 놀이치료, 청소년상담센터 상담에서 실망이 컸던지라 쉬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기 어려워하셨다. 나도 별 기대감이 없었다. 결국 부모님은 집 주변의 여러 아동발달센터를 알아보고 놀이치료가 아닌 청소년 상담이 가능한 기관을 선택하셨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 긴장되고 새로운 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새로운 아동발달센터에서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뭐가 힘든지 말해 보라는 부모님의 계속되는 요구에서 자유를 얻었다. 그 질문이 사라져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안하기까지 했지만, 상담을 통해 아주 천천히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마음의 부담이나 불편함 없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부모님도 상담 선생님의 요청에 따라 나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셨다. 부모님의 걱정스러운 질문이 사라지니 내가 문제가 있는 아이라는 생각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상담 선생님을 연결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내 문제에 대한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상담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에게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주려 하고, 힘든 이유를 반복해 물어 해결해 주려하는 주변의 관심보다는 나 스스로 자신에 대한 복잡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도록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나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아닌 제삼자인 상담 선생님과의 만남은 내게 ‘자유’를 경험하게 했다.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을 신경 써야 했다. 마음이 상할까 봐, 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줄지 두려워서 꺼내지 못한 말도 많았다. 내 거친 생각들과 말들을 상담실에서 정리해 보고 정리된 마음과 생각을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전달하면서 나는 조금씩 표현이 가능해졌다.


나와 비슷한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리고 그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가족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주려 하기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울을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가 스스로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상담이 마술 같지는 않았다. 나는 유아기부터 우울을 경험했고 그 우울이 심해져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으니까 사실 변화가 쉬 찾아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고, 이전보다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부모님도 나에 대한 걱정이 많이 줄었고, 나의 변화된 모습에 행복해하시고 욕심을 내기도 하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 문제를 가족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두려워서 감추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울증을 대하는 첫 방법이 우울증을 경험하는 당사자가 소통할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 통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이 우울증이라는 것이고 그 증상으로 내가 어떤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지, 그 증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그 증상에 둘러싸여 나를 잃어버리고 살았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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