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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녀부장 Apr 19. 2023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새로운 퇴근길 루틴을 만들었다. 빨간 브레이크 등이 빼곡히 넘실대는 퇴근길 차 안에서 평정심을 유지...아니 오히려 흥을 돋굴 수 있는 새로운 루틴. 애창곡 리스트를 업데이트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블루투스 마이크를 장착하고 퇴근길 차 안 노래방을 운영 중이다. 노래방 가는 일은 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지만 짬짬이 새로운 곡 한두개쯤은 익혀두어야 박치의 사회생활이 덜 쫄리는 법이다. 한 일주일 퇴근길 차 안 노래방에 흥이 올랐는지 눌러두었던 악기욕심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중이다. 그런데....그만하자. 이제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중학교 첫 음악 실기시험이 악기 연주였다.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리코더 등 그 어떤 악기라도 괜찮았다. 고민이 됐다. 피아노 실력은 미천한데 그렇다고 모양 빠지게 하모니카, 리코더를 불어대고 싶지는 않았다. 핑계 김에 친구들이랑 기타를 배우러 다니기로 했다. 시내에서 제일 유명한 음악학원에 등록했다. 유명세에 걸맞게 선생님도 아주 잘 생긴 분이었다. 일주일에 세 번 기타 학원 가는 날이 너무 즐거웠다. 하지만 딱 첫 달만. 두 달, 세 달...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코드를 바꾸고 스트로크도 하는데, 나는 뭔가 엇박이 나기 시작했다. 음악시험을 치를 곡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서 간신히 마쳤지만, 친구들과 진도는 점차 벌어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대학 입학을 앞둔 고3 겨울방학. 입시 준비 때문에 뒷전으로 미뤄둔 교양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콤플렉스인 미천한 피아노 실력을 업그레이드할 요량으로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열심히 다녔지만 역시 바이엘 하에서 버벅거림이 시작되더니 결국은 하농에서 선생님이 두 손 들었다. 메트로놈을 이렇게 못 맞추는 학생은 처음이라고 했다.

대학 1학년 때 노래방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어떤 모임이건 마지막 코스는 노래방이었다. 노래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순서가 돌아오면 빼거나 하지 않았는데... 노래방 가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내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서서히 눈치채게 됐다.


일 년에 두어 번 8촌까지 모조리 모이는 집안 모임이 있는데, 십 대 초반까지는 군소리 없이 부모님을 잘 따라다녔다. 거한 저녁식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다. 다들 뻘쭘해하면서도 순서가 돌아오면 한 곡씩 자기 몫을 채웠고 마이크는 순조롭게 돌아갔다. 그런데 그 마이크가 내 부친에게만 돌아오면 뻗치기 시간이 길어졌다. 기다림에 지루해진 친척들 성화에 못 이긴 부친이 일어나 ‘나는 노래 못합니다’라고 한 마디 읊조리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에이~하는 실망 어린 야유가 짧게 흘렀고 노래판은 다시 이어졌다. 대신 옆에 앉은 모친의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오래 새어 나왔다. 일어난 김에 그냥 한 곡 부르면 될 것을 뭘 그리 빼냐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모친의 차례다. 부친이 살짝 모친을 말리지만 흥이 오른 그는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듣고 있자니 뭔가 아쉬움과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내 모친은 흥은 있지만,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했다.


부친이 한 번도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쑥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박자 맞추기를 못해서라는 것도, 흥을 빼고 나면 엉망인 모친의 노래도 다 부족한 박자 감각 때문이라는 것을 난 꽤 늦게 알아챘다. 양친의 박자 감각을 아낌없이 물려받은 내가 음색 고운 박치라는 것도 스물이 넘어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늦게 알아차린 만큼 내가 박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박치에서 벗어나려는 눈물겨운 노력으로 드럼도 배워보고, 보컬 클래스도 다니고, 무시로 기타 학원도 다녔다. 매번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짙어지는 좌절감에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악기 하나, 노래 한곡만 몸에 새기기로 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기타를 끌어안고 소파에 앉았다. 달밤에 Knocking on the heaven’s door를 반복해서 불렀다. 3개월 정도 지나니 들을 만한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기타를 연주하며 팝송 한 곡을 그럴듯하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거실 한 켠에는 항상 기타가 그럴듯하게 세워져 있다. 악기로서가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으로.


요즘도 가끔씩 늦은 밤에 기타를 끌어안고 소파에 앉는다. 편안하게 읊조리는 노래 한 곡...‘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다시 실력은 초급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나는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고 기타를 안고 있는 시간이 즐겁다. 더 이상 내가 박치라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는다. 노래하는 것이 즐겁고 어설프게 기타 줄 쓸어내리는 시간이 즐거우므로. 취미는 내가 즐거운 것이 가장 중요한 거니까. 모든 것에 최고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필요는 없는데...하고 싶다. 아...다시 피아노 레슨 받고 싶다. 죽을 때까지 배우다 포기하기를 반복한다고 해도. 말할 수 없는 비밀 OST 중 한 곡만 손에, 몸에 새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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