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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Oct 21. 2023

번호표 이야기

80년도 말에 은행에 공채모집에 응시해서 염원하던 은행원이 되었다. 내가 다니는 은행에서는 그 당시에 번호표라는 동그란 모양의 플라스틱자재로 그 안에 번호를 새겨 쉽게 위조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사용했다.


지금은 온라인 시대라 창구직원이 오시는 손님의 업무처리를 즉석에서 처리해 주지만, 그때는 예금통장에 있는 돈을 찾으러 오면, 손님은  예금청구서에 찾을 금액을 우리말이나 한문으로 적어서 통장과 도장을 같이 창구직원에게 제시한다.


창구직원은 접수를 하고 번호표 하나를 손님에게 드리고 그 번호를 예금청구서에 적어둔다. 뒤에 있는 직원은 원장을 찾아서 원장과 통장에 찾아가는 금액을 표시해서 대리님에게 결재를 받아서 출납(지점 돈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넘기면 그 직원은 청구서에 적힌 번호를 불러 그 손님이 앞에 오면 번호표를 받고 통장과 돈을 드린다. 그런데 바쁜 날이나. 손님이 묻는 것에 팔려서,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날에는 깜빡하고  번호표 회수하는 걸 잊어버리기도 한다.


저녁에 마감시간에 그날 사용했던 번호표를 회수하는 직원이 번호표 몇 번이 없다고 하면 큰일이다. 반드시 그 번호표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고객이 돈 안 받았다고 번호표를 다시 들고 오면 이중으로 지급해야 하는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해서다. 그때는 CCTV도 없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면 전화해서 번호표 안 받았다고 돌려 달라면 돌려주시기도 하지만, 못 가니 집으로 찾으러 오라시는 분, 필요 없는 것 같아서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분, 연락이 안 되는 분들 다양하다.


문제는 못 찾으면 담당직원이 사유서를 써서 제출해야 되고, 일 못 하는 직원이 되어 지점장에게 크게 혼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그 직원은 퇴근하는 길에 손님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여직원 같은 경우는 혼자 가기 무섭다면 친한 남자직원이 같이 가기도 하고, 나중에는 둘이 결혼하는 커플도 많이 생긴다. 그때 나도 여직원과 한 번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번호표는 순서만을 표시하는 징표지만, 그때 은행에서의 번호표는 돈이기도 했다. 온라인 전산 컴퓨터가 없는 오래전 아날로그 시대, 그때 선배들처럼 열심히 해서 승진하고 지점장도 되고자 했던 풋사과처럼 싱싱했던 그 시절의 나와 정겹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출처:네이버,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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