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영원한 방랑자요, 돌은 변치 않는 주인이다. 시끄러운 물살이 스쳐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밤낮없이,
천 년 만 년을.
강가에 누운 돌은 수수께끼처럼 침묵한다. 이끼가 얼룩져 푸른 빛을 머금은 그 표면. 물은 영원한 방랑자요, 돌은 변치 않는 주인이다. 시끄러운 물살이 스쳐 지나가도 돌은 말이 없다. 두 존재가 마주하는 그 순간, 이미 고대의 대화가 침묵 속에 펼쳐진다.
*영원의 속삭임*
흘러가는 물아, 돌아오지 않으리
외로운 돌은 해마다 이끼를 품고 서 있네
파도는 변함없는 진리를 말하지만
잠긴 흐름이 고요한 자의 뼈를 움직이네
밀물과 썰물이 차가운 뼈를 깎아내리고
봄가을 이끼빛이 마음에 슬픔을 새기네
만나도 세월의 일을 묻지 말라
모두 부서진 거품 속에 담겨 있으니
월하시정
어릴 적 살던 마을에도 이런 강이 있었다. 해가 녹은 금처럼 강물 위에 부서질 때면, 나는 강가의 둥근 돌 위에 앉아 발아래로 스치는 물결을 바라보곤 했다.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 흐르는 건 물이 아니라, 이 돌과 내가 고요한 파도를 타고 시간 속으로 천천히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돌의 서늘함. 그 순간, 소음과 침묵, 흐름과 머묾이 교차하며 나는 이 거대한 대화를 처음 만났다.
물은 영원한 방랑자다. 그 본질은 '움직임'이다. 물방울이 되기도, 홍수가 되기도, 얼음이 되기도, 안개가 되기도 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만물은 흐른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모든 파문은 '무상'을 새기고, 튀는 물방울마다 존재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물의 철학은 칼로 물을 가르려 해도 계속 흐르는 무위(無爲)의 깨달음이다. 붙잡을 수 없기에 바라볼 수밖에 없다.
돌은 침묵하는 수호자다. 그 존재는 깊은 '고요'이다. 여와가 다진 오색 돌은 무너진 하늘을 기웃했고, 정위새의 집념은 동해 바다에 녹지 않는 반석이 되었다.
말없는 돌은 우주 홍망 속 '영원'의 닻이 되었다. 그러나 돌은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을까?
공자가 강가에서 탄식하길 "지나가는 것이 이와 같으니, 밤낮으로 쉬지 않는다"고 했다. 흐르는 물의 무정함을 꿰뚫은 말이다. 그러나 돌이 혼을 가졌다면 이렇게 속삭였을지도 모른다. "그대는 흐르는 강물만 보았지만, 내 돌 속 깊이 물결이 새긴 나이테를 아는가? 영원이란 더디게 사라지는 이름일 뿐이다."
고요한 돌은 거의 영원한 인내로 물이 가져온 미세한 변화를 담아낸다. 이끼는 그 나이테이고, 구멍은 그 기억이다.
소용돌이 만든 물거울에 돌의 그림자가 비치고, 돌 위 축축한 이끼는 물의 수분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인다. 움직임과 고요 사이는 경계가 아닌 영원한 교향곡이다.
* 물의 물음 *
그들은 나를 지나가는 이라 하네
얼마나 많은 돌의 차가운 이마에 입맞춤했는지?
나는 부드러움과 차가운 시간의 칼로
단단한 맹세에 원만한 상처를 새기네
돌이 속삭여, 그 소리 내 모든 파도에 잠기네
"네가 가져간 모래 알갱이는 내 벗어낸 옷이요
네가 비춘 구름 그림자는 내가 바라본 천국이로다
움직임과 고요,
너와 내가 함께하는 노래—
나의 침묵은 너의 형태요
너의 흐름은 나의 메아리라"
월하시정
수년 후 고향을 찾았다. 강물은 여전했고, 어릴 적 올라탔던 돌도 그대로였다. 돌을 어루만지니 익숙한 서늘함과 거친 감촉이 전해졌다. 오래된 이끼 자국 위에 누군가 허술하게 새긴 글씨가 보였다. "여기 ○○가 왔다".
돌이 알았다면 이 피상적인 '불멸'의 흔적을 향해 침묵의 비웃음을 보냈을 것이다. 억만 년 물살에 깎여 둥글게 다져진 몸을 이런 피상적인 칼질이 새길 수 있을까? 부드러운 물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다듬고, 침묵하는 돌이 세월을 증언하는 대화는 어떤 각인보다 영원하다.
이 우스운 인간의 삽입구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진리의 작은 주석이 되었다. 사람은 돌에 흔적을 남겨 불멸을 꿈꾸지만, 돌의 진정한 나이테는 흔적 없이 흐르는 물이 써내려간다.
해질녘 강물은 다시 녹은 금이 되었다. 나는 돌 위에 앉았다. 물결은 쉼 없고, 돌은 흔들림 없이 자리했다. 문득 깨달았다.
'변함'과 '불변'이란 커다란 오해였다.
물은 흐르며 돌을 만들고, 돌은 머무름으로 물을 정의한다. 물의 모든 방울은 다르지만 여전히 물이며, 돌의 모든 순간은 바람에 깎이지만 결국 돌이다. 강가의 대화는 멈춘 적 없다. 물은 모래를 가져가고, 돌은 물결을 새긴다. 침묵은 소리를 기르고, 소리는 침묵의 깊이를 키운다.
흐르는 물과 움직이지 않는 돌은 대립이 아니라 공생이다. 인생이라는 역경의 길에서 우리는 물과 돌의 합체가 아닐까? 피와 살은 물처럼 새로워지고, 뼛속 깊은 곳에는 단단한 버팀목이 있다. 치솟는 욕망과 침묵하는 지킴은 흐르는 물과 반석처럼 삶의 강에서 서로를 빚어낸다.
강물은 영원히 흐르고,
돌은 말이 없으나 그 소리는 깊다.
소용돌이와 이끼가 공존하는 강가에서 영원한 대화는 멈춘 적 없다. 변하는 것이 사라짐이 아니듯, 영원한 것도 멈춤이 아니다. 우리가 물과 돌의 속삭임을 들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이 흐르는 강물 속의 반석임을 안다.
사라짐과 머묾의 교향곡 속에서 우리는 흐르면서도 영원한, 오직 자신만의 나이테를 새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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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대(水石對)>
천추유수부회천 千秋流水不回天
천 년 흐르는 물 하늘도 돌리지 못하니
일석잠영송만년 一石潛影送萬年
한 돌 그림자 잠겨 만 년을 보내네
파도무심공각옥 波濤無心空刻玉
파도 무심히 허공에 옥을 새겨도
월혼유골한청전 月魂有骨寒靑田
달의 혼은 뼈 있어 푸른 들판에 서리내리네
사해진구래복거 四海塵垢來復去
사해의 티끌 왔다 가는데
반생유표유연연 半生有標猶然然
반평생 표적 있어도 오히려 그 모양이로다
창파자설변화리 滄波自說變化理
푸른 물결 스스로 변화의 이치 말하지만
만고위증부운편 萬古唯證浮雲片
만고에 오직 뜬구름 조각만 증언하네
월하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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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언덕에 서니 달빛이 물결을 은빛 칼날로 만든다. 돌들은 오래된 철학자처럼 파도의 흐름을 몸에 새기며 말없이 증언한다.
파도가 돌을 두드릴 때마다 공명하는 소리는 우주의 심장박동이다.
강물은 영원한 유목자요 돌은 시간의 수집가다. 그 대화는 "파도무심공각옥"처럼 물은
돌을 깎지만 정작 그 깎임 자리가 영원의 서판이 된다.
달빛이 강 위에 부서지는 이 밤,
나는 돌이 전하는 계시를 듣는다 :
"만고위증부운편"
영원을 증언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뜬구름 조각을 쫓는 일임을.
그래도 파도는 새기고 돌은 받아들이니, 이 부단한 각자의 이율배반이 곧 "천추유수부회천 일석잠영송만년"의 진리라.
흐르는 것과 머무는 것,
그 경계에서 우리 인생은 돌에 비친 달빛처럼 -
영원의 강에 잠깐 비친 그림자이자 동시에 영원 그 자체인 모순을 품고 흐른다.
"영원이란
흐르는 강물이 돌에게 남기는 상처의 깊이요 /
돌이 그 상처를 천년의 주름으로 품는 방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