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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에 젖은 밤은 ㆍㆍㆍ

밤하늘은 가장 오래된 책이다. 검은 바탕에 흩뿌려진 은빛 점들은 고대의

by 월하시정

시간을 건너는 사랑과 우주의 속삭임!


밤하늘은 가장 오래된 책이다.

검은 바탕에 흩뿌려진 은빛 점들은 고대의 점성술사들이 남긴 신비로운 기호 같기도 하고, 무한한 시간을 견뎌온 증인들의 눈빛 같기도 하다.


그 별빛 아래 서면,

인간의 영혼은 이상하게도 녹아내린다.

짙은 사랑의 추억과 그 끝에 서린 애상, 이별의 쓴맛과 멀어진 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세월이라는 강물이 쓸고 간 자리에 남은 가슴 저린 공허.


이 모든 감정들은 밤하늘의 검은 캔버스 위에서 더욱 선명하게, 더욱 깊게 다가온다.


별빛은 과거의 빛이다.

수백, 수천, 심지어 수백만 년

전을 떠나 지금 우리의 망막에 도달하는 그 빛은 본질적으로 '시간 여행자'다.


그 빛에 몸을 맡길 때, 우리는 단순히 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우물 속에는 우리 자신의 사랑과 상처,

기쁨과 슬픔이 별처럼 반짝이며 떠다닌다.

내 침상 앞에 밝은 달빛이 비치네

이슬 서린 서리인가 의심스러워라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니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床前明月光 (상전명월광)

疑是地上霜 (의시지상상)

舉頭望明月 (거두망명월)

低頭思故鄕 (저두사고향)

이백(李白), <정야사(靜夜思)> 중


이백의 이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시구는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가슴을 친다. 침상 앞의 달빛, 그것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의 매개체가 된다.


별빛 아래서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빛은 사랑했던 이의 미소, 손의 온기, 속삭임의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 이별의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마법의 촉매제다.


그 빛은 추억을 아름답게 수놓지만, 동시에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영원한 이별의 아픔을 각인시키기도 한다.


사랑의 추억은 별처럼 반짝이며 아름답지만, 그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시간만큼이나 멀리, 그리고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이 애상을 깊게 만든다.


우리가 바라보는 별빛 속에는 어쩌면 이미 사라진 별의 마지막 숨결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이의 모습도, 그 순간의 감정도, 이미 과거 속에 굳어진 화석처럼 우리 마음에만 남아 있다.


이별의 그리움은 바로 이 '시간의 간극'을

실감할 때 가장 격렬하게 타오른다.

세월은 잔인하면서도 은유적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의 열정이 식어가는 냉정함을, 약속이 빛바래가는 과정을, 그리고 추억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것을 목격한다.


마치 멀리서 바라본 별빛이 본래의 맹렬한 열기를 잃고 고요한 빛으로만 다가오듯이.


그러나 이 과정 뒤에 남는 것은 단순한 공허나 쓸쓸함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가슴아림'이라는 독특한 정서가 자리한다. 그것은 상실의 아픔과 그 아픔조차도 시간에 의해 부드러워지고, 형태를 바꾼 것에 대한 일종의 감사,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자체의 숭고함에 대한 깨달음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다.


세월이 흐른 뒤 밤하늘을 바라볼 때, 과거의 뜨거웠던 사랑이나 치명적이었던 이별의 아픔은, 마치 은하수 너머로 보이는 안드로메다 은하처럼, 여전히 존재하지만 거리를 두고 아름답게 빛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 거리감이 주는 서정적 감상은 낭만 그 자체다.

낭만은 단지 달콤한 동경만이 아니다. 상실과 고독, 무상함을 직면한 뒤에 피어나는, 삶의 깊이와 비극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다.


별빛이 비추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만 비로소 우리는 이런 낭만의 진정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라*

무한함을 손바닥에 쥐고*

영원을 한 시간 속에 담아라.*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순수의 예언서(The Book of Thel)> 중에서


블레이크의 시는 우주의 광대함과 미세함의 경이로운 연결을 노래한다. 별빛 아래 선 인간의 존재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흔들린다.


고요한 어둠과 무한한 천체의 세계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철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순간처럼 지나가는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의 사랑과 슬픔, 그리움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수억 광년 떨어진 별의 죽음과 내 가슴속의 상처는 같은 우주적 질서의 일부인가?


이 질문들은 종교적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별빛은 신비의 베일이자, 초월적 존재에 대한 증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빛 아래서 우리는 파스칼이 말한 "생각하는 갈대"의 존재론적 고독과 미약함을 동시에 깨닫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독감은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한한 우주를 의식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질문할 수 있는 존재는, 현재로서는 우리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별빛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의식 자체가 지닌 경이로움을 동시에 일깨워주기도 한다.


이 엄숙한 질문들 사이에서, 밤하늘은 때때로 교묘한 위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그토록 진지하게 바라보는 그 별들 중 상당수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


우리가 '현재'라고 인식하는 밤하늘은 사실 다양한 과거의 풍경이 뒤섞인 '시간의 콜라주'라는 사실.


이 생각은 우주가 지니고 있는 거대한 유머 감각을 암시하는 듯하다. 마치 우주가 장난스럽게 속삭이는 것 같다:


"네가 지금 느끼는 그 깊은 사랑과 아픔, 그 모든 게... 어쩌면 이미 사라진 빛의 그림자일지도 모르지?"


이 깨달음은 오히려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이 비록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순간의 반짝임에 불과할지라도, 그 순간의 반짝임 자체가 이 거대한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무이한 역할임을 인정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과 슬픔, 그리움은 비록 작지만, 그 빛을 발하는 순간만큼은 진실되고 소중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나의 이른 아침 나의 노오란 노랑 꽃이름도 모르는 지점(地點)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金春洙), 꽃(花)중에서


김춘수의 시는 이름 불림의 순간, 관계 맺음의 순간에 존재가 빛난다는 것을 말한다.


별빛 아래서의 사랑과 추억,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들이 '이름 불림'을 받았기에, 관계 맺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우주의 무의미한 공간 속에서 의미 있는 '꽃'이 될 수 있었다.


그 빛은 과거의 것이지만, 지금-

여기의 우리 의식 속에서

재생되어 새로운 의미를창조한다.


별빛에 젖은 밤은 결국 시간과 존재에 대한 성찰의 장이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의 달콤쌉쌀한 기억 속으로, 이별의 칼끝 같은 아픔 속으로, 세월의 흐름이 남긴 서정적 감상 속으로 데려간다.


동시에 고요한 어둠과 광대한 천체는 우리를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한다.


그 광막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작은 감정들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 그 무한한 별빛 아래서 자신의 유한함과 고독,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사랑과 그리움의 아름다움을 직시하는 용기 자체가 의미일 것이다.


별빛은 답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며, 우리로 하여금 가장 깊은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는 우주의 속삭임이다.


그 속삭임에 젖어,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빛남 – 비록 잠깐이지만, 사랑하고 아파하고 그리워하며 존재했던 우리만의 독특한 빛남 – 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거대하고도 침묵하는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이 내뿜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채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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