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하에 흘러간 애상의 노래...

강건너 먼 절간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는 바람에 실려 산곡을 떠돌았다.

by 월하시정

산은 깊고 달은 밝아

봄산의 밤 고요한데

객지 시름 끝없고

고향은 아득하네


*산골의 밤에 피어나는 그리움의 노래*


서론 :

달빛이 흐르는 산골의 초저녁


해는 서산 너머로 기울어 갔고,

산허리에 걸린 노을은 붉은 물감을 풀어낸 듯 사방에 번졌다.


발아래로는 강물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고, 강건너 먼 절간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는 바람에 실려 산곡을 떠돌았다.


이곳은 세상의 시간이 잠든 듯 고요했지만,

내 가슴 속에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지 반백년이 넘고보니,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달빛에 씻겨

강물에 흘러가누나.


山深月白春夜靜 (산심월백춘야정)

客愁無邊故鄕遙 (객수무변고향요)

慈母倚門應垂淚 (자모의문응수루)

隔江梵音入夢遙 (격강범음입몽요)


산은 깊고 달은 밝아

봄산의 밤 고요한데


객지 시름 끝없고

고향은 아득하네


자애로운 어머니

문에 기대어 눈물 흘리시니

강 건너 염불소리 꿈속으로 들어오네*

월하시정


1 : 노모의 그림자와 강 건너 염불소리


달이 산등성이 위로 떠오르자

골짜기는 수은빛으로 변했다.


발아래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 별처럼 반짝였다.


문득

어머니가 마당에 서서 내 귀향을 기다리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손은 언제나 따뜻했고, 허리는 점점 더 구부러져 갔지만 나를 보내며 웃어주셨다.


"잘 다녀오너라."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강 건너 암자에서 울려오는

목탁 소리가 사월의 밤공기를 타고 흘러왔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님의 염불은 마치 이 세상 모든 슬픔을 씻어내려는 듯 잔잔하면서도 강렬했다.


그 소리를 따라 가슴 속에 뭉친 무언가가 조각나기 시작했다.


강의 대답

물은 흐르되 강은 머무네 /

내 발아래서 영원을 속삭이는 /

저 검은 돌들처럼 /


어머님의 기다림도 /

이 강물에 녹아 /

밤새 별빛으로 변하리


2 : 님의 흔적과 철학적 성찰


산중천 계곡물이 돌과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예년 같으면 님과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달을 떠올렸을 텐데.


님은 지금 어디서 무슨 별을 보고 있을까.


사람의 사랑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함께할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다가 멀어져서야 비로소 그 빈자리가 온몸을 파고든다.


마당 끝 감나무 그늘에 앉아 허공을 보니, 철학서에서 읽은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은 강물과 같아서 흘러가는 것 자체가 영원이다."*


하지만 이 순간의 아픔은 왜 이토록 생생한가.

달빛이 내 손등에 스민다.

차가운 듯 따뜻한 이 감각은 실재지만,

잡으려 하면 사라질 허상이다.

인생도 이와 별반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3 : 시간의 파노라마

밤은 깊어가고 은하수가 산줄기 위로 드리웠다.

어린 시절 마을 앞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쥐멱잡기 하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그땐 하루가 영원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십 년이 한순간처럼 느껴진다. 절간의 목탁 소리가 잦아들자, 극진한 정적이 산골을 감쌌다.


문득

생각난 노모의 편지 한 토막이 가슴을 친다.


*"네 방 문은 매일 열어둔다.

네가 쓰던 책상 먼지 닦다 보면,

문득 웃음이 나는구나."*


그 편지를 읽던 날,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달빛 아래서라면 그 눈물도 정화될 것만 같았다.

산중야회

露滴空山夜氣淸 (로적공산야기청)

孤燈無語對殘更 (고등무어대잔경)

人間萬事雲過眼 (인간만사운과안)

唯有慈親夢裏迎 (유유자친몽리영)


이슬은 공산에 떨어지고 밤기운 맑으니

외로운 등불 말없이 밤을 지새우네


인간 만사 구름처럼 눈앞을 지나가니

오직 자애로운 어머니 꿈속에서 맞이하리

월하시정

결론 : 새벽녘에 피는 꽃


동쪽 하늘에 금빛이 스미기 시작했다.

달은 이제 서산으로 기울어 갔고,

첫 닭우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밤새 내린 이슬이 잎사귀 끝에서 빛을 머금을 때,

나는 비로소 이 산골 봄밤이 주는 선물을 이해했다.


그리움과 아픔도 시간 속에서는 빛을 발하는 존재임을.


강 건너 절간에서 아침 예불 소리가 들려온다.

새날이 시작되는 이 순간,

나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노모의 웃음,

님의 온기,

강물의 속삭임을

가슴에 품은 채.


이 모든 것이 내 영혼의

등불이 되어 줄 것임을 알기에.


새벽의 서약

흙이 별이 되는 밤 /

상처조차 광맥으로 빛나던 /

그 시간의 품에서 /

나는 다시 태어났다 /

한 송이 수선화가 /

동틀 녘 서릿발을 깨우듯.

월하시정


이 산골 봄밤은 끝없는 여정의 한 장면이었다.

그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이 길에서, 나는 비로소 삶의 시(詩)를 발견했다.


달빛이 남긴 서정,

염불소리가 깨우친 철학,

그리고

노모의 기다림이 엮어낸 낭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영원한 영혼의 고향이 되리라.


​~ ~ ~ ~ ~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별빛에 젖은 밤은 ㆍ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