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향기는 이미 지나간 계절의 흔적이자, 아득히 먼 곳에서 온 편지와도
초여름이 창밖에서 인기척을
내고있다. 틈새로 창으로 흘러드는 바람에 실려온 꽃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문득 발걸음이 멈춘다.
그 향기는 이미 지나간 계절의 흔적이자, 아득히 먼 곳에서 온 편지와도 같다.
부드러운 바람은 흩날리는 꽃잎을 데리고 가지만, 공기 중에 남은 여운은 시간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순간의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여전히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증명한다.
보이지 않아도, 만질 수 없어도,
그 존재는 분명하다.
철학자들은 종종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지만, 꽃향기의 여운은 그 답을 가장 사소한 곳에 숨겨둔 듯하다.
봄꽃이 지고 난 뒤에도 공기 중에 맴도는 미세한 향입자는, 사라진 것들의 영혼이 되어 우리 곁을 맴돈다.
그것은 물리적 실체를 잃었지만,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존재의 형태다.
마치 추억이 그렇듯, 형태를 벗어난 것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영원히 순환한다고 하지만, 흘러간 것들이 남기는 여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적들이 모여 새로운 삶의 토대가 되듯, 꽃향기의 잔향도 다음 계절을 기약하는 약속이 된다.
연풍유향(軟風遺香)
軟風搖細柳 (연풍요세류)
香度碧空 (잔향도벽공)
花隨流水去 (화수류수거)
在月明中 (춘재월명중)
부드러운 바람이 가는버들 흔들고
남은 향기 푸른 하늘에 머무네
꽃은 흐르는 물 따라 사라져도
봄은 달빛 속에 스며들어 있도다
월하시정
서정적으로 보자면,
이는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 했는데, 꽃향기의 잔재는 그 아름다움의 순간을 연장하는 마법과 같다.
바람에 실려 온 향기가 피부에 닿을 때, 우리는 미각과 청각을 넘어선 감각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것은 색채 없는 그림이자,
소리 없는 음악이다. 공허한 공간을 채우는 향기의 선율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고요한
울림을 남긴다. 이처럼 자연은 인간의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신비를 은유로 풀어낸다.
낭만적 상상력은 이 여운을 사랑의 메아리로 확장시킨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 남은 추억처럼, 꽃향기도 부재의 아름다움을 말해준다.
떠나간 이의 온기가 잔류하듯, 향기는 그 자리가 채워지지 않았음을 은유한다.
그러나 그 빈 자리야말로 가장 풍요로운 공간이 된다. 공허함 속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몸짓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향수”에서 “추억은 마지막 향기”라고 읊었지만, 사실 향기는 추억의 시작이기도 하다. 지나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 현재를 더욱 생동하게 만드는 역설.
연풍유향
바람이 멈춘 자리,
꽃잎은 이미 땅에 젖었지만
공기 속에선 이름 모를 향이
손끝을 스쳐 흐른다.
저문 하늘에 걸린 노을이
어제의 붉음을 씻어내도
숲은 그 향을 품은 채
한 줄기 숨을 돌리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모든 빛깔을 삼키지만
내 발걸음마다 피어나는
너의 잔향 계절되어 흐르네.
월하시정
꽃향기의 여운은 또한 인간 존재의 덧없음과 극복을 동시에 상기시킨다. 우리 모두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순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은 영원의 회로를 떠돈다. 물리적 몸은 사라져도, 정신이 남긴 파장은 우주를 떠다닌다.
고요히 눈을 감으면, 그 파장이 심장을 두드리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인간이 써내려가는
모든 시와 음악, 사랑의 말들은
꽃향기처럼 보이지 않는 흔적들처럼.
문득 바람이 그쳐도 향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내 안에 머물며,
또 다른 계절을 기다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