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며, 의지는 생명이 스스로에게 부
폭포처럼 내리쏟아지는 녹음이 나를 덮쳤다. 숲속에 서니, 온몸이 녹색 빛의 바다에 잠겨버린 듯하다. 햇빛이 잎사귀 사이로 스며들어 투명한 황금빛 가루를 뿌린다.
그런데 그 화려한 녹색의 뒤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숨결이 내 귓전에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색채 너머의 욕망을 찾아 숲속 깊이 발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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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 : 뿌리 깊은 갈망
한 그루 고목 아래, 굵은 덩굴이 나무 줄기를 칭칭 감으며 하늘을 향해 비틀거리며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땅속 깊은 어둠에서 뿌리 내린 고독한 욕망이 빛을 향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듯했다. 덩굴은 단순히 기대어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무 자체가 되어 버리려하는 절박한 몸짓으로 보였다.
나는 덩굴의 마디마디에서 생명이 가진 본능적인 욕구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욕구는 단순히 살아남으려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우주에 새기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였다.
덩굴
녹음이 너무 진해도 좋으니,
햇살이 너무 뜨거워도 좋으니,
나는 이 기둥을 감고 감아,
땅속의 어둠을 뒤집으리.
내 피는 나무에 스며들어,
함께 숨 쉬고 함께 떨리리.
빛을 향한 나의 기도는,
결국 나 자신을 태우는 불이로다.
덩굴의 오름은 허공에 새기는 글자요, 땅속의 어둠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선언이다.
덩굴의 그 고집스러운 발버둥은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생명은 왜 이토록 끊임없이 자신을 연장하고 확장하려 드는가?
그것은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서서, 존재의 고독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우주적 갈망 아닐까?
덩굴의 올라감 속에는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근원적 불안과 그 불안을 뚫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 의지는 생명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숙명이자 영광이다.
이끼 : 침묵 속의 집념
암석 위에 고요히 앉아 있는 이끼 군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빛도, 바람도, 심지어 흙마저도 제대로 머물지 못하는 척박한 돌 위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작은 몸집에 담긴 강인함은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이끼는 아무 말 없이도 자신이 서 있는 암석을 조금씩 분해하여 스스로의 터전을 만들었다.
그들은 숲의 가장 조용한 구석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의 노래를 조용히 부르고 있었다.
이끼
돌 위에 핀 푸른 꿈
햇살도 흙도 없어도
고요히 뿌리 내리네
시간을 삼키며 퍼져
작은 생명 큰 울림
돌 위에 핀 푸른 꿈,
햇살도 흙이 없어도.
고요히 뿌리 내리네,
시간을 삼키며 퍼져서.
작은 생명 큰 울림
이끼는 돌 위에 쓴 푸른 시편이다.
흙 없는 자리에서도 뿌리를 내린 고요한 집념이, 생명의 본질적 욕구를 고요하고도 깊게 증언한다.
이끼의 집념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곧 욕망의 증거다.
비록 그 욕망이 미세하고 조용할지라도, 그것은 생명이 우주 앞에 내민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야말로 생명의 본질이며, 이끼는 그 진리를 가장 겸허하고도 강인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 작은 몸 안에는 생명 전체가 우주를 향해 던지는 침묵의 선언이 담겨 있다.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함으로써 증언한다.
버섯 : 어둠 속의 탄생
축축한 썩은 나무 밑동에서, 작은 송이 버섯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생을 피워내고 있었다.
버섯은 빛을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둠과 썩음을 자신의 양분으로 삼아 존재를 일구어낸다.
그들의 생명은 숲의 화려한 표피 아래 숨겨진 또 다른 욕망의 세계를 보여준다.
빛 너머의 삶,
색채 너머의 생존 방식이 거기에는 있었다.
버섯
萬葉千聲藏碧蔭 (만엽천성장벽음)
菌蕈無言破太陰 (균순무언파태음)
繁華色相皆皮相 (번화색상개피상)
一點丹心是本心 (일점단심시본심)
수많은 잎사귀,
수천 가지 소리
푸른 그늘에 감추어져 있으나 /
말 없는 버섯
깊은 어둠을 뚫고 나오네 /
번화한 빛깔과 모양 모두 겉모양이요 /
한 점 붉은 마음이야말로
참된 본심이라.
버섯은 빛을 외면한다.
오히려 어둠과 부패를 기회로 삼아 침묵 속에 존재를 일군다. 그 생명은 화려한 표피 너머, 생명 본연의 힘이 어디에서도 꽃필 수 있음을 증명한다.
붉은 갓 속에는 어둠을 뚫는 생명의 원초적 열망이 응축되어 있다.
버섯의 존재 방식은 생명의 욕망이 반드시 빛과 화려함을 향할 필요는 없음을 일깨운다.
어둠도, 부패도, 버려짐도 다른 생명의 터전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숲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생명의 순환 고리를 보여준다.
욕망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근저에는 생명이 존재를 지속하고 확장하고자 하는 동일한 본능이 깔려 있다.
버섯의 등장은 숲이 단순한 녹색의 집합체가 아니라, 무수히 층위를 이루는 욕망의 복합체임을 깨닫게 한다.
숲을 빠져나올 때쯤, 나는 녹음의 화려한 장막이 가려주던 것들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덩굴의 집요한 오름, 이끼의 고요한 뿌리 내림, 버섯의 어둠 속 발화—
이 모든 것들이 녹음 너머 숲의 진짜 얼굴이었다. 색채는 고요한 가면에 불과했고, 그 아래에서는 생명의 욕망이 쉼 없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숲은 결국 거대한 욕망의 유기체다.
각 생명은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를 갈구하며,
그 갈망들이 얽히고설켜 숲이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이룬다.
화려한 녹음 뒤에는 덩굴처럼 빛을 향한 고독한 오름이, 이끼처럼 침묵 속의 끈질긴 집념이, 버섯처럼 어둠 속의 침습적 발화가 공존한다.
그 욕망들은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부양하며 숲의 숨결을 이어가는 모습은 군중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든 빛이 내 발아래 어둠을 밝힌다. 그 빛줄기는 마치 땅속 깊이 뻗은 뿌리들을 비추는 듯했다.
숲은 표리(表裏)의 세계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는 공간이다.
빛나는 녹음과 어둠 속의 뿌리 네트워크,
화려한 꽃과 침묵의 균사체—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의 욕망이 빚어낸 다채로운 얼굴들이다.
숲은 결코 정적(靜寂)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욕망이 쉼 없이 소용돌이치는 살아 있는 우주다.
우리가 녹음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때, 그 뒤에서는 생명의 본질적 욕구가 고요하고도 격렬하게 땅을 울리고 있다.
숲은 결국 거꾸로 선 하늘이다.
그 땅속 깊은 곳에,
모든 갈망이 빛나는 별들로 박혀 있지 아니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