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이 더위에 영혼 구원은 둘째 치고, 지금 당장 냉면 한 그릇이
웃으며 후회 줄이기 !
한여름 더위의 돌다리를 건너기도 전에, 땀으로 범벅이 된 스님(각진)과 신부(베드로)가 시원한 다실에서 마주 앉았다. 선풍기 바람에 스님의 가사자락이 살랑거리며 신부의 성경 책장을 넘겼다.
“아이고, 신부님. 이 더위에 영혼 구원은 둘째 치고, 지금 당장 냉면 한 그릇이 시방정토(十方淨土)로군요.” 스님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멘. 그런데 각진 스님, 요즘 신도들 고해성사 보면 ‘후회’ 얘기가 태반이더군요.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을까요?” 신부가 아이스 커피를 홀짝였다.
“호호, 그건 중생이 늘지 않는 법이 없기 때문이지요.
‘산다는 건 발자국 남기기’인데, 뒤돌아보면 왜 그렇게 찍혔는지 스스로도 황당할 때가 많아요.”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경을 펼쳤다.
“전도서 3장에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했소. 문제는 그 ‘때’를 놓치는 인간의 우둔함이지!”
“맞소이다. 옛 현자도 이르시길…”
스님이 목탁을 ‘똑’ 두드리며 일언했다.
“즉, ‘지금 이 순간이 최고’라 여기지 못하면, 성공한 인생도 빈 잔과 같소.”
“스님, 그건 좀 잔인하네요.
제 신도 중엔 승진도 하고 집도 장만했는데,
‘왜 이렇게 살았나’며 오는 이가 많아요.”
신부가 한숨을 쉬었다.
스님이 빙그레 웃었다.
“그건 *‘바른 삶’을 ‘완벽한 삶’으로
착각하기 때문이오.
저도 스무 살 때는 중이 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소. 그런데 이제 와 보니, 수행도 매일의 선택의 연속이더군요.”
신부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러고 보니 예수님도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하셨는데…
인간은 왜 꼭
‘과거의 오류’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허우적대는 걸까요?
“호호, 그건 *마음이 ‘시간 여행자’이기 때문*이오.”
스님이 여의주를 굴리며 말을 이었다.
“과거에 집착하면 우울해지고,
미래에 집착하면 불안해지니,
현재를 망치는 기술의 달인이 되는 셈이지요.”
이때 다실 주인이 복숭아를 내왔다.
스님이 벌컥 한 입 물며 중얼거렸다.
*후회는 복숭아 씨 같소. 삼키면 체하고, 뱉어내면 아깝고…*
“앗, 그건 제가 할 말이었는데!”
신부가 웃으며 따라했다.
*인생은 복숭아잼 만들기와 같아.
설탕을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쓰고,
너무 적으면 쉰내 나지.*
둘은 폭소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스님이 진지해졌다.
“진정 *‘후회 없는 삶’이란 선택의 결과가 아닌, 선택의 태도에 달렸소.*
옛 선현 말씀이
‘마음이 바르면 행동이바르고, 행동이 바르면 습관이 바르고, 습관이 바르면 운명이 바른다’ 하지 않소?”
신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제가 보기엔 *후회를 줄이는 비결은
‘작은 책임’을 다하는 거요.*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기, 약속 시간 지키기, 길 가다 쓰레기 줍기… 이런 사소한 성실함이 인생의 골격을 세운답니다.”
“아, 그러니
‘소신껏’이 가장 큰 지혜군요.”
스님의 눈빛이 반짝였다.
한 스님이 제자에게 말했소.
‘내일 죽을 것처럼 정진하고,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라’고.
이 모순 속에 진리가 있소.
다실 창밖으로 해가 질 무렵,
신부가 마지막 시를 읊었다.
발은 발자국을 남기고
가슴은 사랑을 남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에
발자국은 길이 되고
사랑은 강물이 되어 흐른다
- 고은, <길> 중에서
“후회를 이기는 건 사랑이오, 스님.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한 연민…*
그것이 진정한 ‘바른 삶’의 시작이 아닐까요?”
스님이 합장하며 답했다.
“모든 중생이 제 스스로의 불성(佛性)을 깨달아, 후회 없는 길을 걷게 하소서.”
신부가 십자가를 긋고 말을 보탰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이 내일의 감사로 이어지게 하소서. 아멘.”
해가 지자 그들은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스님은 절로, 신부는 성당으로.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엔 여름 더위보다 따뜻한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었다.
인생의 후회는 결국
‘지금 여기’
살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니까.
선비들이 벼슬길에 오를 때는
"천하를 경영하리" 다짐했으나,
귀향할 때면
"내 집 동산에 국화나 심으리" 하더이다.
큰 뜻도 좋지만,
작은 정성으로 쌓는 오늘이
진짜 인생의 밑그림이라고 일러거늘.